최근 출판불황이 빚어내는 풍경과 시사점을 짚어본다.
일본 유수의 어느 신문사 사장은 얼마 전 “한국이 일본을 따라오지 못하는 이유는 양국의 독서량 차이”라고 주장했다. 도쿄(東京)의 지하철이 ‘이동 도서관’이라면 서울 지하철은 ‘달리는 침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는 책과 담을 쌓은 지 오래다.
한국인들의 독서 시간이 ‘세계 꼴찌’라는 충격적인 내용이 최근 보도됐다. 1위를 차지한 인도 국민 10.7시간의 3분의 1에도, 30개국 평균인 6.5시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독서 시간이다. 지난해 우리 국민의 평일 독서시간은 평균 8분, 하루 10분 이상 책을 읽는 사람은 12.7%에 그쳤다. 2003년 유엔 조사에서도 한국인의 한 달 독서량은 0.8권으로 세계 166위. 한국인의 독서 시간은 흡연자의 하루 흡연 시간(20분)보다도 짧다.
많은 사람이 바빠서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지만 한국 성인남성은 1주일에 15시간40분, 성인여성은 23시간20분을 TV 앞에서 보낸다는 통계를 보면 ‘바빠서’라는 이유는 설득력을 잃는다.
끝없는 출판불황 어디까지
얼마 전 한 단행본 출판사 편집장은 신문에 난 책 광고를 보고 새삼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공전의 베스트셀러로 지금도 ‘잘나가는 책’인 <선물>의 광고 카피가 ‘30분이면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책이 안 팔린다고 해도 책이 내용이 있고 좋다는 것이 아니라 한번 훑어만 봐도 되는 가볍기만 한 책이라고 강조하는 것을 보고 나니 혼란스러웠어요. 이런 불황 속에서도 이렇게 책을 내야 하는 것인지…, 답을 모르겠습니다.”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 매년 출판계 소식에서 들리는 ‘관용 어구’다. 그런데 정작 수치로 드러나는 상황은 사실 나쁘지 않다. 오히려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대표적 오프라인 서점인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경우 지난해 ‘성장률 감소’ 통계로 출판계를 놀라게 했지만, 이는 ‘온라인 교보문고’의 매출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점의 매출을 합치면 14.97%의 성장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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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상은 팔리는 책과 안 팔리는 책의 양극화 현상이 심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IMF 시절만 해도 100억 원 매출을 이뤄내는 출판사가 거의 없었지만 지난해에는 단행본 출판사 중 매출 300억 원대 출판사로 5개사가 등장하고 100억 원대 이상의 출판사는 약 30개사나 포진했다.
개별적으로 보면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영업을 개시한 랜덤하우스중앙은 애초 매출목표 300억 원에서 20억 원을 초과하는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해 300억 원 전후의 매출을 기록한 출판사는 민음사·시공사·넥서스·김영사 등이다. 1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출판사는 21세기북스·웅진닷컴·문학동네·창비 등으로 나타났다. 이들 30위권 이내 출판사의 매출을 합하면 약 5,000억원 규모. 이는 단행본 전체 매출액의 3분의 1 수준이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IMF가 닥친 1998년 무렵만 해도 단행본 출판사 중에서 50억 원의 매출을 넘기는 곳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상위 출판사들의 약진은 눈부시다”며 “지난 몇 년 동안 10억 원에서 50억 원 규모의 매출을 올리던 출판사는 그야말로 상위권으로 성장했거나 하위권으로 도태해 ‘가족형 기업’으로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것으로 양극화됐다”고 말했다.
유통시장도 이와 다르지 않다. 교보문고는 지난해 최초로 광화문 매장의 매출이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강남점의 성장을 감안하지 않은 수치다. 교보문고는 전국 70개 점 개설에 전체 점유율 30%를 추구하고 있다. 반디앤루니스는 지난 4월국세청 자리에 종로점을 개점했다. 이들 서점과 영풍문고·리브로 등도 경쟁적으로 지점을 늘리고 있어 서점 체인화는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중소형 서점은 폐업 또는 도산이 이어지고 있다. 1994년 말 5,683개로 정점을 이루던 서점은 현재 1,950개 이하로 줄어들었으며 그 수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소매점의 몰락으로 공급처를 잃은 도매상들의 앞날도 밝지 않다. 지난해에는 변종 도매업체인 벤더들이 줄줄이 도산한 데 이어 올해 본격 도매상이나 지방 도매상이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무한경쟁 질주 시대
악화하는 상황 속에서 관련업체들의 살아남기 경쟁은 치열하다 못해 처절할 정도다. 최근 베스트셀러들을 보면 ‘책값을 정가에 비해 많이 할인해 줘야 한다’는 새로운 조건이 생겨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터넷 서점들을 중심으로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른 책은 대부분 정가의 70% 판매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정가의 50% 수준도 적지 않다. 심지어 정가의 28%에 살 수 있는 책도 있다. 독자 입장에서는 ‘베스트셀러를 전례 없이 싼값에 살 수 있는 시기’가 된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7월1일부터 소액상품의 경품 규모를 3,000원에서 5,000원으로 늘릴 수 있게 허용하고,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 앞장서서 8월부터 인터넷 서점들 간의 ‘가격 비교제’를 시작한 데서 본격화됐다. 인터넷 서점과 출판사들은 기존의 책값 할인과 적립금 혜택 외에 각종 현금 쿠폰 제공, 제휴사와 함께 하는 추가 할인 혜택 등을 주고 있다.
인터넷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은 대부분 일반 서점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점의 판매량을 합산한 한국출판인회의의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12주째 1위인 <모모>는 인터넷 서점들에서 정가의 65%에 살 수 있다. 3위인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은 55%, 5위인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는 60%, 9위인 <연금술사>는 62%에 팔린다. 200만 권을 넘긴 <다빈치 코드>는 500원짜리 쿠폰을 합쳐 정가의 52%에 팔린다. 인터넷 교보문고의 철학심리교육 분야 베스트셀러 3위인 <유혹의 심리학>은 적립금과 쿠폰을 포함해 정가 1만2,000원의 28%인 3,330원까지 구입가를 낮출 수 있다. <오 자히르>는 한때 정가의 30%에 살 수 있었다.
최근의 할인 경쟁에 따라 “출간 1년이 안 된 책의 경우 인터넷 서점들이 정가의 10% 내에서 책값을 낮출 수 있다”고 규정한 ‘도서정가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화됐다. 하지만 현재 인터넷 서점들이 제공하는 적립금과 쿠폰 등은 몇몇 조건을 달고 있는 경우가 있어 ‘경품류 제공에 관한 불공정 거래’에 직접 해당하는지는 모호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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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에 소개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천당과 지옥 차이’다. 도서정가제에 누구보다 찬성하는 입장인 나부터도 교보·인터파크·예스24 같은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로 올려줄 테니 세게 할인해 달라’고 하면 응한다. 어떤 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 “책을 몇 권 읽느냐보다 어떤 책을 읽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지금 인문서들은 다 죽어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도 “최근의 도서 할인 경쟁에는 불법적인 면이 있다. 결국 자금력이 있는 큰 출판사들이 펴내는 정보·오락 위주의 베스트셀러들이 독자들을 과다하게 빨아들일 것이다. 인문서들은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얼마 전 <동아일보>가 조사한 한국 대학생들의 독서 실태에서도 이는 고스란히 나타난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부산대·경북대 등 전국 14개 대학에서 2000~2004년 5년간 대학 도서관의 도서 대출 순위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최다 대출 도서 20위 가운데 인문·사회과학 서적은 단 1권뿐이었다. 나머지 19권은 소설이었으며, 특히 판타지·무협·추리소설이 13권이나 포함돼 인문학적 교양 기반이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14개 대학의 도서 대출 횟수를 종합한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인터넷에 연재돼 폭발적 인기를 모았던 전동조의 판타지 소설 <묵향>이었다. 이 책은 주인공 묵향이 무림(武林)의 최고수가 돼 판타지 세계를 평정한다는 내용이다. 20위 안에 든 유일한 인문서적은 로마의 흥망성쇠를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내용 전개가 소설만큼 흥미로워 쉽고 재미있는 책을 선호하는 대학생들의 독서 성향이 그대로 반영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판타지 및 일본소설은 쨍쨍, 교양도서는 먹구름
송승호 학고재 편집부장은 “대학 도서관의 대출 순위가 시중 도서 대여점의 순위와 거의 비슷하다”며 “대학 도서관이 소설 대여점으로 전락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종합순위 1위를 차지한 <묵향>의 저자 전동조 씨가 자신의 책에서 “내 책은 지명이나 인명 따위를 외우느라 앞쪽을 다시 뒤질 필요가 없도록 쓰였다”고 한 말은 최근 대학생의 독서성향을 함축적으로 나타내 준다. 이 같은 현상은 인터넷 소설이 등장한 1990년대 중반 이후 두드러졌다. 특히 취업난이 심화하면서 대다수 학생이 전공 서적이나 수험서를 보는 시간을 제외하면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가벼운 소설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 대학 측의 분석이다.
교보문고 등 일반 서점에서 집계한 베스트셀러 순위와 비교할 때 대학 도서관 대출 도서 순위에서 나타난 또 하나의 특징은 실용서적이 아예 없다는 것. 지난해 서점가에서 큰 인기를 모은 <아침형 인간>이나 <10년 후 한국>과 같은 처세 및 경제·경영 서적은 물론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나 <화> 등 명상서적도 찾아볼 수 없다. 직장인들보다 생활 현장에서 오는 고민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의 삶은 내 방식대로 즐긴다’는 신세대의 삶의 방식이 반영된 결과로도 해석된다.
한편 일반 서점에서 집계한 베스트셀러 순위는 대학가의 모습과는 판이하다. 최근 <아침형 인간> <메모의 기술> 등 일본 실용서나 자기계발서들이 인기를 끌면서 그동안 출판시장에서 찬밥 신세였던 일본책이 ‘쏟아져’ 나오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한국 출판사들의 경쟁으로 일본 실용서의 선인세는 1년 전에 비해 50%가량 오른 상태다.
더난출판 이홍 부장은 “요즘 줄지어 나오는 일본책의 경우 대부분 아주 사소한 기능적 측면을 다루거나 획일적 인간화를 부추기는 책들이라는 점에서 다변화해 가는 사회 흐름과는 오히려 상반되는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이 부장은 경제·경영 분야에서도 경영이나 조직 등 거대담론보다 ‘부자 코드’와 개인관리 쪽에 과다하게 책이 몰리는 편식현상 역시 외국의 출판 경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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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서의 끝 모를 추락
인문을 비롯한 전통적 분야의 부진이 구조화하고 시장 중심이 처세서나 자기계발서, 경제·경영서 쪽으로 옮겨가면서 많은 출판사가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처음으로 경제·경영서를 펴낸 웅진닷컴의 경우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이쪽 분야에서 승부를 겨룰 계획이다.
역시 ‘메이저’급인 시공사도 최근 경제·경영서를 출판하기로 결정했고, 실용서 분야의 최강자들인 넥서스와 영진도 경제·경영 쪽 서적을 본격적으로 펴내기로 했다. 인문 분야 책을 주력으로 하다 실용이나 처세 쪽으로 눈길을 돌린 출판사는 그야말로 부지기수다.
이에 따라 출판사들이 핵심 역량이 아닌 분야의 책을 내다 보니 수준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20년 넘게 ‘자기 색깔’ 있는 인문서적을 꾸준히 내온 한 출판사 사장은 더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했다. “출판사들이 판매와 효율 위주로 책을 만들다 보니 다양한 가치를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실용·경영·처세서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한 책이 필요한 만큼 새로운 지식을 유통시키고 축적하는 책 본연의 역할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서점에 가면 제일 많은 책이 ‘부자 되는 법’을 가르치는 책인데, 묵직하게 문제제기를 하는 책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정통 인문서들은 여전히 바닥을 기고 있지만 ‘인문서=딱딱한 책’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책들은 인문서의 가능성을 다시금 확인해 준다. 푸른역사·그린비 등 참신한 기획·편집과 새로운 글쓰기로 무장한 책들을 펴내는 출판사들이 그 주역이다. <미쳐야 미친다>(푸른역사), <열하일기>(그린비)와 같은 책은 타 출판사에서 ‘부러운 책’으로 꼽힌다. 그린비 유재건 대표는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독특한 틈새시장을 기획으로 파고들어 좋은 책을 만들면 팔린다고 생각한다”며 “노력하지 않고 불평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사회과학서는 소생의 희망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한 인문·사회과학 전문 출판사 대표는 “사실상 사회과학 쪽 기획출판은 손을 놓은 상태”라고 아쉬워했다. 이처럼 사회과학서들이 ‘전멸’한 것은 대학생 독자가 전혀 없는 탓도 있지만 사회과학 쪽 저술가들의 문제도 크다고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필자가 누구인지 전혀 드러나지 않는 딱딱한 논문식 글쓰기를 고집하면서 출판 분야의 빠른 변화를 외면한 탓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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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책으로 세상을 이끈다. 대중적 책뿐 아니라 인문·사회·과학 등 모든 분야의 책이 살아 숨쉬는데 우리는 상업적 책만 넘쳐난다. 왜 그런가? 미국은 국가가 공공적 차원에서 출판을 전략적으로 키운다. 대중성은 없지만 꼭 필요한 책이 나올 수 있는 것은 도서관에서 그만큼 소화해 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도서관을 한번 봐라. 한숨만 나온다.”
‘부끄러운’ 도서관
전 세계 어느 나라나 도서관이 있다. 책은 국가가 사서 공짜로 보라고 하는 유일한 상품이다. 신문·방송이 특정 ‘상품’을 대놓고 소개하는데도 ‘불공정거래’라고 하지 않는 것 또한 인류가 책의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남긴 지식이나 정보를 가장 효과적으로 정리해 당대에 전파하거나 후대에 남기는 가장 유용한 형태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도서관 상황은 ‘부끄러울’ 정도다. 전국 200여 대학 도서관 중 장서 100만 권 이상을 보유한 곳은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단 5곳에 불과하다. 한국도서관협의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 도서관이 2004년 기준 228만여 권의 장서를 보유해 국내 최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북미지역 111개 대학이 가입해 있는 연구중심대학도서관협회(ARL)의 통계에 따르면 97위로 하위권에 그치는 실정이다.
선진국의 경우 한 대학 안에 중앙도서관, 단과대 도서관, 전문 도서관 등 수십 개가 넘는 도서관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의 경우 도서관이 무려 90개나 된다. 일리노이대 40개, 버클리대 25개, 스탠퍼드대 20개에 비하면 우리나라 대학의 도서관에 대한 투자는 심히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숫자보다 더 큰 문제가 ‘유통 방식’이다. 이를테면 도서관이 책을 구입할 때 내용과 질에 관계없이 싼값에 낙찰되는 것들로만 채운다는 것이다. 출판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 사서가 부족해 업자들에게 책 구입을 맡겨두다 보니 출판사와 ‘흥정’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한 실태 조사가 정부 차원에서 이뤄지지 않는 것 또한 문제다.
대학 도서관이 이 정도이니 초·중·고등학교 도서관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또한 책이 영상과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서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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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인회의 김인호 상무는 “독서인구를 기본적으로 늘리는 부분이나 출판의 본래 기능을 회복하는 것은 시장 기능에 맡겨 놓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김 상무는 “단순히 출판사가 어렵기 때문에 ‘도와 달라’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식의 총량을 늘리는 작업 차원에서 출판을 바라봐 달라는 것”이라며 “출판은 지식산업에서 마치 경부고속도로나 고속철도에 해당하는 인프라”라고 말했다.
개혁 요구에 ‘공감대’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출판계 내부에서는 “변해야 산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우리도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어느 정도 세대교체도 일어나는 조짐이다. 한 중견 출판인의 넋두리다.
“세대교체가 좀 더 빨리 일어났어야 하는데…. 구닥다리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너무 오래 꿰차고 앉아 출판이 구시대적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2월 대한출판인협회(이하 ‘출협’) 회장에 박맹호 회장이 당선된 것을 출판계는 단순히 회장이 바뀐 것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교재나 어린이책, 전집류 출판사들이 오랫동안 장악해 온 출협의 주도권을 박 회장을 대표로 내세우는 단행본 출판사들이 ‘쟁취’해 냈다는 점에서 출협의 대대적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출협과 출판인회의로 양분돼 있던 출판계는 박 회장을 중심으로 힘을 합쳐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으리라는 것이 기대의 핵심이다.
출협은 그동안 출판계를 대표하는 최대 단체임에도 다양한 출판사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하지 못했으며 출판계 전체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해 비판받아 왔다. 출판인회의가 만들어진 시초도 여기서 비롯된다. 1998년 외환위기 때 대형 출판 도매상이 잇따라 쓰러지는 유통대란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모임이 2000년 사단법인 한국출판인회의로 출범했던 것이다. 출판인회의의 출범 계기는 유통 문제였지만 출판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공적 기능을 담당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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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두 권 펴내 근근이 살다 베스트셀러 나오면 사업 늘리고 사옥 짓고 땅 사는 데 몰두해 왔다. 영화는 수입품시대에서 국내 창작물시대로 넘어오지 않았나? 영화인들이 외국으로 유학가고 자기계발을 하면서 인프라를 구축할 때 우리 출판인들은 책이라는 상품을 팔아 집 늘리기에 바빴다.”
DJ정부는 영화를 대중문화의 핵심으로 보고 국가 전략산업으로 집중 지원했다. 영화산업이 성장한 배경에는 멀티플렉스 영화관도 큰 몫을 차지한다. 여기에 스크린쿼터제를 적용해 국내 영화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그 결과 한국영화는 양적, 질적으로 급성장했고 ‘어렵다’고 생각했던 국제영화제에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출판계의 고민은 “작은 단위의 아이디어는 많은, 출판산업의 관점에서 지휘’할 수 있는 ‘머리’가 없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문화관광부 소속 ‘출판신문과’가 있지만, 정책 집행 기구이기 때문에 효과적인 정책 제안부터 예산 마련까지 기대하기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출판진흥위원회’의 설립이다.
한 중견 출판인은 “수많은 위원회 중 문화산업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출판 관련 위원회가 아직 없다는 사실이 실로 놀랍다”며 “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는 책에 그만큼 무관심했다는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그런 의미에서 출판진흥위원회 건립안은 꼭 통과돼야 할 과제다.
세계로 뻗어라, 한국 출판
출판도 이제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세계를 향해 손을 뻗을 시점이다. 한국어라는 한계가 있지만 영화처럼 ‘보편성’에 근거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국제화 전략’이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지난해 말 중국 출판계는 ‘한국소설 붐’을 10대 뉴스의 하나로 꼽았다. ‘귀여니’ 이윤세의 소설 <그놈은 멋있었다>(70만 권)와 <늑대의 유혹>(60만 권)이 중국 청소년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얻은 덕이다. 중국에서 김하인의 <국화꽃 향기>는 해적판까지 합쳐 300만 권이나 팔렸다. 그런가 하면 국산 판타지 동화인 <고양이학교>는 프랑스·대만·중국과의 판권계약에 이어 최근 영문판을 출간했다.
<가을동화> <엽기적인 그녀> 등 영상물과 결합한 책도 없어 못 판다. 최인호의 <상도>와 <대장금>의 원작 소설은 대만에서 베스트셀러 1위 행진을 계속하며 20만 권 이상 팔렸다. 일본에서는 <겨울연가> 원작 소설이 120만 권이나 판매됐다. 경제·경영서로는 더난출판이 <1%만 바꿔도 인생이 달라진다>와 <컬러 리더십>의 저작권 계약을 중국의 출판사와 체결하기도 했다.
박맹호 대한출판인협회장은 “출판의 경우 단순히 한류로 규정지을 수 없다”면서 “전체 지식 인프라 총량이 늘어나면 세계로 흐르게 돼 있다”고 확신했다.
출판계에서는 랜덤하우스중앙과 같은 기업모델이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선진 출판 모델을 통해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툴’을 보여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출판인은 “랜덤하우스중앙이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하는 것만 지상목표로 삼을 것이 아니라 중소형 출판사들에 정보 노하우를 전수하는 의무감도 가졌으면 한다”며 “거대한 자본력으로 우리의 우수한 필자와 더불어 세계로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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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1만 권의 책을 읽었지만 여전히 내 몸은 서럽기만 하다”고 은근히 자랑했다. 이에 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친다”고 받아쳤다. 서구에 비해 나으면 나았지 전혀 뒤질 것이 없는 우리의 책 사랑과 지적 풍토를 상징하는 촌철살인이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직지>가 세계 무대에 우뚝 선다. ‘2005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한국의 자존심을 걸고 세계 속에 날개를 펴는 것이다. 이 ‘날갯짓’이 우리나라 출판문화에 한줄기 힘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빌 게이츠는 “내가 살던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 나를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활자의 연금술이야말로 21세기의 경쟁력이다. 책에는 길이 있고 미래가 있다.
수술대 위에 오른 도서정가제 “변칙 할인공세에 法 유명무실…재고 할인판매 심의제 도입해야”
그러나 실제로는 온라인 서점들이 ‘마일리지제도(누적점수제)’를 활용해 1년 이내의 신간도 20% 이상 할인판매하고, 한 권을 사면 덤으로 한 권을 더 주는 ‘1+1’ 등의 변칙 할인제 등도 있어 사실상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들 인터넷 서점이 실제로는 할인판매로 손해를 보면서도 다른 상품을 팔기 위해 집객용 미끼상품으로 쓰면서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인터넷 서점과 달리 책을 할인할 수 없어 위기로 내몰린 일반 서점들이 도서정가제가 원래 취지대로 유지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나섰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쪽은 “책은 공공적이고 문화적인 속성상 일반 공산품처럼 조건 없는 할인경쟁이 적용되는 성격의 상품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며 “할인경쟁이 언뜻 소비자들에게 이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할인을 대비해 책값을 올리는 거품현상이 생기고, 무엇보다 팔리는 책만 취급해 다양성이 사라져 좋은 책이 나올 기회가 봉쇄될 우려가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책값을 고정하는 이런 제도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주요 선진국들도 채택하고 있다. 세계적 시장을 가진 미국을 빼면 프랑스·독일·일본·이탈리아 등 출판 선진국 대부분이 도서정가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 법 개정은 어떤 방향일까? 변칙할인을 봉쇄하기 위해 사은품·누적점수제·할인쿠폰 등을 금지하는 조항을 신설해 완전히 정가대로만 팔 수 있게 된다. 또한 발행 1년이 넘은 간행물은 10% 이상 할인해도 되는 현행 조항도 삭제해 구간 할인도 사라진다. 대신 출판사 쪽이 출판한 지 오래된 책을 할인해 팔기를 원할 경우 별도 심의기구에 신청하면 심의를 거쳐 허락받는 길을 열어놓기로 했다. 또한 지금까지는 도서정가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던 잡지도 법 적용을 받게 된다. 도서정가제를 5년 한시법으로 규정한 조항도 삭제해 항구적 법안으로 바뀌게 된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간사인 우상호 의원은 “위기에 처한 출판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도서정가제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개정안이 별 무리 없이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첫댓글 유용한 자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