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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으로 사는 삶의 아름다움
-수필집 ‘애인이 생겼어요.’를 읽고 -
1.
이기숙수필가는 작가로서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65세에 등단한 늦깎이 작가이다. 지금은 고희에 이르렀다. 그런대도 이번에 낸 수필집을 보면 첫수필집치고 이만큼 충실한 내용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여간 내용이 알찬 것이 아니다. 평자는 작품을 그만큼 기쁜 마음으로 공감하며 읽을 수가 있었다.
흔히 수필을 일러 삶의 반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역으로 생각하여 펴낸 수필집이 읽어내는 동안 내용이 보잘 것이 없다면 좋은 인생을 살지 못한 것뿐 아리라 결코 잘 써진 작품이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한데, 이기숙수필가의 ‘애인이 생겼어요.’는 수록된 첫 작품부터 시선을 끌게 만든다. 이런 작품들이 오십 편 모두 제각기 무늬와 색깔을 보이고 있다. 마치 낟알이 고른 씨앗을 대하는 기분이다. 이것은 처음부터 한 호흡으로 읽기 좋게 구상하여 쓴 치밀한 계획 때문이 아닌가 한다.
작품을 대하는 순간, 심모원려(深謀遠慮)한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가 있었다. 독자에 대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언급하고 넘어갈 것은, 글이 부담 없고 재미있다는 것이다. 글이 재미있다는 것은 작가에겐 크나큰 덕목임과 동시에 독자에게는 마음을 끌게 하고 사로잡게 하는 마력이다.
나는 작품을 읽어 내려가며 무엇보다 넉넉한 인품을 만날 수 있었다. 잘 살아온 좋은 삶을 들여다보는 별스러운 맛이었다. 그러면 여기서 직접 독자와 함께 이기숙 수필가의 문학세계를 탐구해 보자.
2.
먼저 표제작으로 올려진 ‘애인이 생겼어요.’ 작품
이 작품에서 작가는 남다른 글맛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능청스러울 만치 주제를 숨겨놓고 잔뜩 궁금증이 일도록 만들어 놓고 있다. “어느 가을날, 우리 부부는 친구들과 여행하고 돌아와 친구 집에서 놀다가 밤중에 집으로 오게 된 일이 있었다. 남편은 딸한테 우리를 데리러 오라고 연락을 하라는 것이다. 나는 그 사고방식이 좀 못 마땅했다. 영재 교사로 주로 오후에 일을 하는 딸은 늦게 귀가해 피곤할 터인데, 밤중에 차 끌고 오랄 것이 뭐 있느냐고 반대했다. 친구의 차를 빌려 타고 오면서 남편은 나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자식교육을 잘못 시킨다며, 남편 말을 우습게 안다고, 친구 부인 아무개 같으면 그랬겠느냐고 불평을 털어놓았다.
남의 부인 들먹이며 나무라는 바람에 발끈 화가 났다. 둘만의 공간에서 우린 음성을 높였다. 분하다는 생각에 흥분된 감정을 자제할 수가 없었다. 교역자로 목회하는 남편이라, 부부싸움도 마음 놓고 못해본 우리가 큰소리로 시시비비를 따졌다. 그 일로 기분이 몹시 상하였는데 잘잘못을 거론 않고 지내자니 우리는 서서히 거리가 멀어졌다. 사과도 않고 다독거리지도 않는 남편이 싫어졌다.
이것은 글속으로 독자를 이끌려 들도록 한 고도의 심리작전.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맨 나중에다 배치해 두고 있다. 한데 여기서 눈에 띄는 부분은 흔히 여류수필가의 작품에서 보게 되는 내숭이 잔뜩 끼어있거나 무얼 보여주려고 애쓰거나 반대로 어떤 부분은 보여주기 싫어서 감추는데 신경 쓰는 경향이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전혀 그런 게 없다는 것이다.
이 글속에서는 애인이란 실체를 쉽게 노출시키지 않고 계속 끌어간 점도 재치가 있지만, 흉을 본 남편에게 앙금이 남지 않도록 마음을 써서 따뜻하게 갈무리한 점도 높이 살만 하다.
‘산고를 지켜보며’는 딸이 출산하는 조바심을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산통을 겪는 딸의 아픔과 그 과정을 지켜보며 안절부절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담아내고 있다. 그렇게 초조하게 기다린 끝에 드디어 순산했다는 소식을 듣자 밀려오는 기쁜 마음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간간이 아픔을 호소하는 소리만 들릴 뿐 예정시간이 다 됐어도 소식이 없다. 마음은 점점 더 초조해지고 불안하다. 애써 태연한척 하려니 한 시간이 천년같이 길게 느껴진다.
드디어 8시 반이 되어서야 간호사가 사위에게도 흰 까운을 입혔다. 그리고는 의사가 지키고 서서 산모에게 위로도 하고 힘주라고도 하며 출산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중략...딸의 비명소리와 의사의 “됐어”하는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이어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손을 꽉 잡고 속으로 감사 찬미를 외쳤다. 얼마 후 사위가 나와
“어머님, 딸인데요. 3.3Kg이랍니다.”
생명탄생 순간의 묘사가 너무나 리얼하다. 또한 작가는 딸의 출산이야기를 자신의 경험과 대비시켜 다른 출산환경에서 겪었던 사람들의 과거도 자연스레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다음은 ‘삶의 마지막 장식’ 이 작품은 사뭇 감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한 농가의 맏며느리로 시집와 많은 식구의 뒷바라지로 몸이 열 개라도 모라랐던 노모가 40년도 넘은 옛날에 쌀을 사왔던 대금을 갚으라고 건네 준 이야기이다. 딸을 통해 대금 20만원을 돌려주는 장면을 극적으로 그려놓고 있다. "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지만 어머니의 맑고 고운 삶의 마지막 장식을 딸자식은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는 작가의 말은 구지 인용하지 않아도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한 감동을 안겨준다.
‘더덕향이 그리워’ 는 풍겨오는 더덕향 못지않게 문향이 물씬 풍기는 작가의 대표적 서정수필이다.
작가는 어느 날 지하철 환승역에서 후각을 매료시키는 향내를 맡게 된다. 그것은 더덕 향이었다. 작가는 초췌한 옷차림에 나이 많은 할머니가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이고 팔고 있는 것을 한 무더기를 사게 된다.
그리고는 그 일부는 껍질을 벗겨서 반찬으로 쓰고, 나머지는 산에다 심어놓는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몇 달이 지난 늦가을에 다시 찾았다. 그리 무성하던 잡풀이 다 말라버린 때이다. 막대기로 휘저으며 찾았다. 마른 풀잎가운데 잘 모르지만 더덕 잎이 아닌가 싶은 게 있었다. 그 줄기를 따리가 땅을 파 보았다. 놀라운 일이다. 더덕 뿌리가 보였다. 더덕향이 코를 찌른다.”
이 작품은 더덕 이야기로 일관하지만 작가의 의도는 실상 다른 데에 있음을 조금 있으면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다음 문장.
“나 비록 주름진 얼굴에 퍼진 몸매로 여인으로서의 매력은 잃었지만 멀리까지 퍼지는 인생의 향기를 뿜어 낼 수는 없을까. 진한 더덕 향처럼...”이 있기 때문이다. 우수작으로 내세워도 전혀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다음 작품은 ‘산밤 도둑'
그 내용의 한 대목. “공산치하라 가끔 미군비행기가 쌩하고 날아와 폭격을 가할 때는 살았다고 할 수가 없다. 바로 내 머리위에서 나를 보고 폭격을 하는 것 같았다. ‘이제 난 죽었구나.’ 하고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있다가 아무 소리도 안 나면 눈을 떠 보고는 '후-유 - 살았구나.’ 한숨을 쉬곤 했다. 살아있어도 산목숨 이라고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이 부모님만 만날 수 있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중에 날마다 몇 알이라도 주울 수 있는 울안의 알밤 줍기는 나의 기쁨이요 즐거움 이었다.”
작품속의 주인공 소녀는 6.25당시 외갓집에 맡겨져 있었다. 이때 틈틈이 나가서 알밤을 줍곤 했는데, 그때마다 미군비행기가 간헐적으로 공습을 해왔다. 한치 앞의 안전을 도모할 수 없던 눈물 나는 이야기가 실감나게 이어진다. 6.25가 발발한지도 어언 60년. 그 시절의 겪은 진한 이야기가 전율케 한다. 이제는 그 시정을 증언할 사람들도 많지 않은 이때, 이 작품은 당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나의 좋은 역사적인 실증 자료로써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글속에서 작가는 그 상황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빗발치는 포화에 얼마나 조바심을 태웠을까.
‘종이접기에 미친 여자’는 무엇에 한번 매달리면 끝장을 보고야마는 작가의 집념과 성정이 잘 드러나고 있다.
“약 3년 동안 나는 종이접기에 미친 여자였었다. 갖가지색종이를 이용하여 작품을 만들며 그 성취감에 마냥 행복했었다. 어느 날은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새벽 2시까지도 접고 만들고, 어느 날은 새벽부터 일어나 접고 만들기를 수없이..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아마 하루도 못했을 것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힘든 줄도 모르고 즐거운 마음으로 해냈다. 작품 하나하나가 완성될 때의 쾌감은 나만이 아는 비밀인 것이다”
수필집에 실린 종이접기 작품을 보면 실물을 보지 않아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무어든지 하나를 붙들면 끝장을 보고 마는 집념의 모습이 잘 작품 속에서 잘 드러난다. 아마 이러한 생활태도가 비록 짧은 문단경력에도 불구하고 이만한 작품집을 엮어내게 됐는지 모른다.
이 밖에도 작품집에는 선교시찰과 그 과정에서 보고들은 여행기가 많이 실려 있다. 흔히 여행기라면 두서없는 구경거리를 소개하는 것이 많은데, 이 글들은 교회활동이라는 단일한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일관되게 글을 쓰고 있어 그런 혼선을 막고 있다. 덤으로 그 고장의 풍물을 접하게 하면서 교회사적인 사료와 역사를 접하게 하여 또 다른 읽을거리를 제공한 것은 읽으면서 얻은 부수적인 수확이다.
‘가장 긴 신혼여행’은 60년대 초 작가가 결혼하여 신혼생활을 했던, 고장을 방문하며 회상에 젖어본 글이다. 그곳에서 살적에 ‘봄이면 모 밥이라고 모를 심는 집마다 밥과 반찬을 한광주리씩 가져다주며, 가을이면 타작 밥이라고 타작하는 집마다 가져다 주’는 따뜻한 인정을 회상하며, 야산에 올라 풀피리 불며 노래하고, 산딸기 따먹고 찔레 꺾어 먹고 냇가에 나가 미역 감던 일을 잊지 못해한다.
그리고 그곳에 살적에 양봉을 치는 법, 돼지 키우기와 닭을 키웠던 소중한 체험을 잊지 못해한다. 아마도 나중에 주말농장을 가꾸며 푸성귀를 뜯는 재미를 잊지 못하는 건 그때의 체험이 큰 몫을 하고 있음이 분명한 것 같다. 이 작품을 통하여 글을 읽은 궁금해 하는 독자에게 작가의 초창기 자기 삶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이곳이 바로 나의 ‘신혼여행지’이고 2년이라는 긴 세월 신혼의 단꿈을 꾼 곳이다. 외국으로 3박4일이나 1주일 정도의 신혼여행을 다녀오는 요즘 세대 신혼부부들에게 나는 말하고 싶다. ‘41년 전 내가 다녀온 신혼여행지가 더 아름다웠다고.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가장 긴 신혼여행 기간이 행복하였다고 ...’
굳이 부연 설명이 없더라도 그 기분을 충분히 느끼게 해준다.
‘아름다운 동행’은 특별히 작가가 남태평양 팔라우라는 섬나라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활동을 하는 이홍원 목사와 그의 부인 김숙자 씨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타국에서 힘든 노동과 외로움에 시달리던 그들은 교회 오는 시간이 즐거움이었다. 날로 그 숫자가 많아지고 기독교를 알게 되고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니 이곳에 오는 중국인 노무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교회에 나왔다. 그래서 이 선교사는 한인교회를 사임하고 중국인들 선교에만 심혈을 기울였다.”
초기 개척당시에 어느 장로의 지원으로 3천 평이 넘는 땅을 6만 불에 임대하여 오늘날에 번듯하게 일구기까지의 교회개척 역사를 감동을 적어놓고 있다. “결혼 후 20년 동안 필리핀으로 대만으로 팔라우로 옮겨 다니며 선교 사업에 총 매진하는 이흥원 선교사부부. 어려움도 많았고 절망할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만 의지하고 한맘 한뜻으로 이겨나가며 살아왔다는 이들 부부를 ‘아름다운 동행’의 주인공으로 추천하고 싶다.” 실천적 삶이 사뭇 감동적이다.
‘내 생애 마지막 이사였으면’은 작가가 결혼생활 46 년 동안, 스무 번의 이사 끝에 서울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면서 마지막 이사이기를 바라고 쓴 글이다. 글을 따라 읽다보면 이사 다닌 내력이 소상하게 그려지고 있어 이제 그만 이사를 다녔으면 하는 마음이 잘 드러나고 있다. 특히 자신의 살림집 보다는 교회 짓는데 헌신하여 200평 대지에 80평 이층 교회를 3년에 걸쳐 짓던 일. 군 생활 13년의 퇴직금을 몽땅 털어 교회부지를 산 일. 그러면서도 교인들의 시샘을 사서 어려움을 겪던 일들을 증언하고 있다.
“이제 부모님의 노후가 편안하여 마음이 놓인다고 무척 좋아한다. 좋아진 환경. 25년 만에 나의 집으로 와 살게 됨을 감사드리며 ‘내 생애 마지막 이사였으면’ 하는 소원을 빌어본다.”
그런 소망을 비는 마음이 독자들에게 충분한 공감을 일으키는 글이다.
3.
이상으로 살펴본 바와 같이 작가는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자서전처럼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놓은 건 아니지만 그 살아온 삶을 능히 들려다볼 수 있게 잘 엮어 놓았다. 그동안 작가는 본인도 머리글에서 언급 하고 있듯이, 엄마로 주부로 교사와 사모로 일인 사역의 짐을 지고 바쁘고 고단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그 짐이 이기숙 작가에게는 결코 무겁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 아니었음을 글 속에서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처한 환경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잘 극복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나, 그러한 삶을 한 권의 수필집으로 엮어내는 일은 젊은 사람도 여간 녹록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희에 이른 나이에 이만큼의 무게감 있는 작품집을 펴냈다는 건 대단한 역량이며 성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디 바라건대 남은여생도 행복하길 바라며, 더욱 작품쓰기에 정진하여 앞으로 써내는 작품마다. 원숙한 인생경지에 걸맞게 계속 우수작품을 선보여주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문운을 빈다.
(2008년에 임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