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전통에서 미사는 단순한 종교적 의식을 넘어, 상처 입은 영혼과 육신을 어루만지는 깊은 치유의 은총이 임하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지금은 ‘감사성찬례’란 말도 사용하지만,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성공회 공동체와 함께해 온 '미사'라는 호칭도 사라진 것은 아니고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고 정통 전례의 깊이를 담아내는 소중한 언어적 유산입니다. 예를 들어 장례나 위령 같은 경우는 장례감사성찬례, 위령감사성찬례 대신에 장례미사, 위령미사라고 쓰는 것이 어감상으로도 적절한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주일예배는 2부의 성찬의 전례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1부 말씀의 전례도 있기 때문에 이 둘의 균형성을 이야기할 때에 미사라는 호칭을 써야 할 경우도 생깁니다. 이 예식의 시작부터 흐르는 고백과 용서, 말씀과 성찬의 나눔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며 메마른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특히 미사 중에 행해지는 예식의 상징들은 깊은 치유와 구원의 의미를 체감하게 합니다. 성찬을 준비할 때 사제가 포도주에 물 한 방울을 섞는 예식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결합을 뜻하는 동시에, 우리의 연약한 본성이 하느님의 거룩한 신성 속에 흡수되어 새롭게 빚어지는 변화를 상징합니다.
이어지는 성체거양과 보혈거양은 이 미사의 영적 절정입니다. 이때 제단에 선 사제는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대신하여(In persona Christi) 거룩한 예식을 집전합니다. 사제는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당신 자신을 단번에 영원한 구원의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며 빵과 잔을 높이 받들어 올립니다. 이 경건한 순간, 사제는 하늘과 땅을 잇는 영적 통로가 되어 천상의 거룩한 은총을 지상의 교우들에게 온전히 가져다주는 천사적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 거양의 순간은 과거 십자가의 구속 은총이 지금 이 자리에 임하여, 현재를 사는 우리뿐만 아니라 이미 세상을 떠난 영혼들까지 모두 아우르는 구원의 능력임을 믿고 하느님 아버지께 올려드리는 거룩한 봉헌입니다. 신자들은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과 피로 받쳐질 때, 모든 죄책감과 절망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과 평화 속에서 온전한 치유와 쉼을 얻게 됩니다.
[원주교회 관할사제 조정근 프란시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