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좀 부탁 드려요.
주사는 환자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원하지 않습니다.”
회복돼서 퇴원하시면 몰라도 시간만 연장케 하는 주사가 환자에게 더
고통이 될수도 있다. 보호자 일행은 기저귀 보따리를 건네주며 잘 좀 부탁한다는
인사를 하고 어둡기 전에 먼 길을 가야 한다며 병실 문을 닫고 떠났다.
환자의 상태는 의식불명의 중증 노환으로 들어오신 할머니셨다.
치료를 위해 1인실에 입원을 하고 놓고있는 수액을 거부한다면 왜 입원을 했을까
집으로 모시지 하면서 혼자 중얼거리며 물품을 정리했다.
환자옷으로 갈아 입이고 기저귀를 채우며 몸을 만지며 닦여도 아무런 감각도
의식이 없다. 해질 무렵 문이 열리니 낯익은 얼굴이었다.
“아ㅡ니. 라 회장님 웬일이세요? ”
사회복지협의회 회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자세히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우리 장모님 이신데 그동안 춘천에서 아들이 모셨고 딸도 자식인지라
사위가 살고 있는 철원으로 모시고와 살아생전 잠시라도 곁에서 돌봐 드리며
어머니가 베풀어 주신 사랑에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고 싶어 모시고 왔다고 한다.
또 장모님과는 특별히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고 했다.
결혼 후 사위 생일이면 떡을 해서 머리에 이고 올챙이국수를 해서
손에 들고 힘겹게 해마다 오시던 장모님이셨다. 그때는 좋아하지도 않는 걸
수고스럽게 왜 그렇게 해 오시는지 그다지 반갑지 않았고, 그때는 미쳐 그것이
어머니가 주시는 사랑이고 정성이란 걸 몰랐다고 했다.
세월이 흐르고 장모님이 연세가 드시며 건강을 잃고 그 사위도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를 먹고 보니
그 옛날 장모님의 사랑이 마냥 그립다고 했다.
뒤돌아보면 그 많은 날들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왜소하고 야윈 어머니가 되어
병석에 계신다. 자식들은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고 손주들은 커서 어른이 되고
보니 그때 그것이 장모님의 사위 사랑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단다.
이제는 생일이 돌아와도 장모님이 병석에 계시니 좋아하지도 않는 떡이었지만
어머니의 떡 함지가 그리워 돌아가시기 전 장모님께 받은 사랑에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아 볼까 생각 했단다.
사위는 간호사실을 분주하게 드나들며 우리 어머니 좋은 영양제로 놔드리라며
밤낮으로 수액을 바꿔가며 놓기 시작하였다.
며칠을 두고 의식이 없더니 기력을 찾으시고 눈을 뜨고 물로 입술을 적시며
미음을 죽으로 바꿔가며 조금씩 넘기셨다.
며칠전만해도 금방 돌아가실 것 같더니 웃기도 하고 사위의 얼굴도 알아보셨다.
사위는 밤사이 별일은 없었는지 새벽마다 안부를 묻는다.
신기하게도 하루가 다르게 호전되어가는 장모님.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 눈을 뜨고 웃으실 땐 모습을 찍어 사위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어머니의 건강은 회복되어가고 사위는 보람을 느끼며 즐거워했다.
사위는 틈만 있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병원에 들러 장모님과 대화도 나누며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억하시냐고 묻기도 했다.
사위는 오늘도 장모님이 좋아 하는 간식을 가득 들고 와 냉장고에 넣는다.
침대에 누워 마음대로 먹을 수도 없는 음식을 장모님은 눈으로만 먹고 있다.
‘어머니 내가 누구야’ 하는 사위 물음에
“대통령”
아마 장모님에겐 사위가 대통령처럼 위대하고 크고 귀한 존재인가보다.
할머니가 평소 즐겨 드신다는 요플레이를 떠 먹여 드리며 사위의 정성으로
일어나셨다는 그동안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들려 드렸다.
그리고 그 옛날 사위 생일이면 떡을 하고 올챙이국수를 해서 이고 들고
다니신 기억이 있으시냐는 물음에 할머니는 빙긋이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사위가 장모님께 받은 사랑을 잊지 못해 은혜를 갚으려고 한다는 사위의 기특한
마음도 잊지 않고 전해주었다. 장모님은 알아들으셨는지 환하게 웃으시며
요플레이 한통을 어느새 깨끗이 비우셨다.
우리는 왜 사랑이 떠난 후에야 사랑의 의미를 알고
다시는 볼수 없는 이별한 후에야 안타까움에 그리워할까.
아무것도 먹을 수도 없는데 냉장고 안은 맛난 것이 가득하다.
그땐 왜 몰랐을까 사랑이란 걸.
잊어버릴만하면 1인 병실에서 한 번씩 뵙던 올챙이국수 할머니
주고받는 장모와 사위 사랑에 가슴이 뭉클하며 뿌듯하다.
지금도 생존에 계신지 빙그레 웃으시는 인자하신
할머니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아직도 기억하는 번호로 할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춘천에서 건강하게 생존애 계시다는 소식에 너무나 반가웠다.
지금쯤 사위도 장모님도 받은 사랑에 흡족하셨으리라 생각된다.
주고받는 사랑속에 꽃피는 행복이다.
2021 7/20
첫댓글 마음에 진한 감동을 주는 글입니다.
누구도 흉낼 수 없는 나만이 쓸 수 있는 글
진심으로 값진 글 입니다.
박하꽃님 감사합니다
얼굴좀 자주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