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평화를 위하여 차일혁 경무관
1951년 1월 6․25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빨치산 2,000여 명이 칠보 발전소를 포위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전쟁 중에 발전소가 속수무책으로 적의 손에 넘어가자 18전투대대 대대장인 차일혁 경무관(당시 총경)은 망설임 없이 75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50여 일간 전투를 벌여 빨치산을 격퇴하였는데요.
오늘 훈터 여러분과 함께 차일혁 경무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겠습니다.
차일혁 경무관은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중국으로 건너가 중앙 군관학교 황포분교 정치과를 졸업한 뒤 항일전을 위해 1938년부터 1943년까지 조선의용군에 들어가 항일유격전 활동을 벌였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귀국하여 유격대를 결성해 북한의 인민군들과 싸우던 중 경찰에 특채되어 빨치산 토벌대 대장으로 복무하였습니다.
6·25전쟁 중에는 발치산 소탕을 담당하는 전투경찰대에 근무하며 조선 공산당 총사령관인 이현상 등을 토벌하는 역할을 수행하였고, 1953년 9월 차일혁 경무관은 빨치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을 사살하는 공적을 올렸습니다. 이를 계기로 빨치산들의 기세는 크게 꺾이게 되었고, 이를 통해 토벌 작전도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공적으로 정부에서는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하였으며 2011년 8월 차일혁 총경은 경무관으로 승진되었습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도 빨치산들은 우리나라를 파괴하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차일혁 경무관은 그때마다 그들과 대적했고 빨치산들에게 귀순을 유도하며 목숨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이런 모습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차일혁 경무관을 휴머니스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차일혁 경무관과 관련된 이야기가 몇가지 더 있는데요.
지리산 일대의 빨치산 세력을 상대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상부에서 적들이 은신하기 쉬운 주변의 절들을 모두 소각하라는 명령이 내려옵니다. 명령을 받은 경무관은 부하들을 이끌고 구례의 화엄사라는 절로 향하는데요. 화엄사는 백제시대 창건된 유서 깊은 절로서, ‘각황전(국보 67호)’, ‘각황전 앞 석등(국보 12호)’, ‘4사자 3층 석탑(국보 35호)’ 등의 우수한 문화재들이 자리하고 있어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이었습니다.
이런 소중한 문화유산을 태울 수 없었던 경무관은 빨치산들이 숨을 수 없도록 화엄사의 문짝들만 때어내어 불을 피웠습니다. 상부의 명령을 지키면서 문화재를 지키는 꾀를 부린 것이죠.
“절을 태우는 데는 한나절이면 족하지만 절을 세우는 데는 천 년 이상의 세월로도 부족하다.”
-빨치산 토벌작전수행 중 명령으로부터 지리산 일대의 사찰들을 구해낸 차일혁 총경
#.차일혁 경무관의 기록
<차일혁 경무관의 수기 ‘진중일기’ 출처 : 위키피디아>
이현상을 죽였다해서 금방 이 땅에 평화가 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동족끼리 왜 피를 흘리며 싸웠던가를 밝힐 때 이 땅에 평화가 깃들 겁니다. 새벽부터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겠습니까...이 전쟁은 어쩔 수 없는 동족상잔이 아니겠습니까.’ -차일혁 경무관의 전장기록 중에서-
차일혁 경무관의 전장 기록에서 6․25전쟁에 대한 경무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데요.
차일혁 경무관은 6․25전쟁을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보고 이러한 상황을 매우 안타까워했으며, 전쟁중에 겪었던 모든 일들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왼쪽에서 두 번째에 서있는 차 경무관 출처 : 후암미래연구소>
산속의 지형지물을 이용해 요새화했던 빨치산과의 전투는 전투경찰이 창설되고도 5년을 더 끌었을 만큼 끈질겼는데요.
처음에는 양측 모두 양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민간인 학살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빨치산에게 가족을 잃은 18대대 김용운 중대장이 보복을 위해 고향으로 자진 출동해 빨치산의 가족들을 몰살시킨 사건도 그 중 하나였는데요. 당시 보도되지 않았던 이 사건은 차일혁 대장의 기록 속에 가감 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여과없는 기록 속에서 6․25전쟁과 관련된 우리 민족의 아픔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차일혁 경무관은 빨치산 토벌이라는 작전을 수행하면서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데요. 그의 극적인 일생은 창작 뮤지컬 ‘카르마’로 만들어져서 2012년 공연되기도 했는데요. 작전을 수행하면서도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차일혁 경무관의 모습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