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부처 다시 찾기"
불교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1)부처란 무엇인가?
2)부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3)부처가 되고 난 후에는 무엇을 행하며 살아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을 하고 싶을 것이다.
나 또한 여러 종교를 섭렵하고 난 후, 불교를 대하면서
위의 질문에 공감하기에 나름으로 이론적이나마 파헤쳐 보고자 한다.
1) 부처란 무엇인가?
사전에는 수행을 거쳐 일체의 번뇌를 끊고
무상(無常)의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교화했던
석가모니를 존경하여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부처는 깨달은 사람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석가모니에게만 국한된 절대적인 명칭은 아니다.
부처는 “본래 내 안에 있었던 부처"를 다시 찾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2)부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게된 이유는 스승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석가모니 후에 태어난 우리는 깨달음을 얻고 싶다면
스승은 있지만 가짜 부처의 목을 베지 않으면 안된다.
그 이유는 나의 부처는 오직 내 안에 있기에...
부처가 마치 내가 아닌,
남인 것처럼 생각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부처가 될 수는 없다.
부처가 되려면 무엇 보다도
먼저 내가 스스로 부처인 것을 알아야 한다. 아니 느껴야만 한다.
그래야 출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말해 “깨달음”이라는 것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스스로 내 자신이 본래 부처라는 것을 체득하는 것이다.
그동안 백팔번뇌에 사로잡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 왔을 뿐
“나는 본래 부처였다는데...” 라고 깊이 통탄한 후에
내 안의 잠자고 있던 그 부처를 다시 깨우는 순간 나는 그 부처를 찾은 것이다.
스스로 부처를 체득하는 방법은 “명상”이다.
고요히 앉아 외부에서 내면으로 자신을 바라 보는 것이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지식에서 느낌으로
논리에서 사랑으로... 고요히 자신을 지켜보는 것이다.
그러다 마음이 청정해진 어느 날 “아하 나는 본래 부처였구나”
그리 깨닫는 것을 “견성”이라 하는데
이것은 내가 잃었던 내 안에 본래 부처를 다시 찾은 것 뿐이다.
내 본래 성품을 보았다 햐여 "견성"이라고 한다.
3) 부처를 찾고 난 후에는 무엇을 행하면 살아야 하는가?
내가 견성을 하여 내안의 부처를 한번 보았다 하여
영원히 부처가 된 것이 아니라
단지 내 부처의 모습을 본 것 뿐이기에
나태하면 어렵게 찾은 내 부처도 잃을 수 있고
부처도 등급이 하도 많은지라 부처를 다시 잃은 땡중부터
수행을 잘 행해 등급이 올라간 부처님도 계시니...
내가 부처임을 깨달은 견성,
그 다음 순서가 부처로서 살아가기인데 그 답이 육바라밀인 것이다.
"육바라밀"은 여섯가지 수행으로서 사바세계로 부터 견성을 거친 후
열반의 저 언덕으로 건너가는 수단을 말한다. 퍼온 글이지만
1. 보시 바라밀
일체의 탐욕을 떠나서 남을 대할때는
희생과 봉사와 헌신의 정신으로 주고 베푸는 마음으로서 대하라.
2. 지계 바라밀.
계율을 지켜 타인에게 즐거움을 줄지언정 피해를 주지말며
사물에 있어서 후회하는 일은 하지말라.
3. 인욕 바라밀
몸과 뜻과 입에서 일어나는 모든악한 행동을 참고 이기며
오로지 자비로운 마음으로서 모든일을 이루어라.
4. 정진 바라밀
일체의 부정과 불법에 관여하지 말것이며
바른일을 위해서는 끈기 있게 노력하라.
5. 선정 바라밀
잡된 번뇌와 망상을 버리고
깨끗하고 맑고 티없는 마음으로 삼매에 들도록 노력하라.
6. 지혜 바라밀
부처님의 법과 자비에 입각하여 오로지
선정으로서 미련하고 어두운 마음을 밝게 하는 지혜를 갖도록 노력하라.
견성을 못한 중생이 육바라밀을 행하기가 어려워도
행하지 않는것 보다는 조금이라도 행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부처님께 더 다가 가는 일이라 그리 생각 해본다.
더불어 또한 올리고 싶은 글은
명상, 견성, 해탈에 대한 오쇼라즈니쉬라는 인도의 道人 글이다.
"명상, 견성, 해탈"
서론>
인간은 동물의 세계와 신들의 세계 사이에 놓인 다리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동물(중생)과 신(부처)의 중간 단계라 할 수 있다.
인간은 꼭 그 중간에 있다.
그러하기에 동물로 전락할 수도 신으로 도약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道공부는 동물적 요소를 줄이고 신의 요소를 늘려가는 과정이겠고.
해탈이란 궁극적으로 신의 요소로 가득 차올라 신의 세계를 깨닫는 순간이리라...
본론>
1.마음의 침묵
명상을 통해 동물적 요소(에고)를 비워라
명상이란 단순히 마음의 모든 내용물을 비우는 것이다.
기억, 상념, 생각, 욕망, 기대, 투영, 기분,
이 모든 내용물을 스스로 끊임없이 비워야 한다.
그대의 내면에서 신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도록 더 고요해 져라.
점점 명상을 더 많이 하라. 시간이 날 때마다 명상하는 것을 잊지 말라.
그대의 첫 번째 취미는 명상이 되어야 한다.
2.느낌의 침묵
신은 신이라기보다 신성이다.
느낌을 통해 신적인 요소(神性)을 채워라.
텅 비는 순간, 저 너머로부터 무엇인가가 그대를 가득 채울 것이다.
단지 구경꾼으로 머물지 말고 참가자가 되어라.
별들이 가득 찬 하늘을 보면서 그대도 그 일부가 되어라.
하나의 작은 별이 되어라. 그 춤 속에 그대도 참여하라.
전체 속으로 녹아드는 것, 내게는 그것이 바로 종교이다.
강이 바다 속으로 사라지듯이 그대도 신 속으로 사라진다.
결론>
1.명상 (마음의 침묵)
눈을 감고 내면을 바라보는 것 외에 다른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
내면을 바라보는 기술, 그것이 바로 명상이다.
그릇을 비워야 한다. 완전히 텅 비는 순간, 내부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2.견성 (느낌의 침묵)
그리고 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이 완전히 고요해지고 침묵이 자리 잡는 순간,
내면의 빛이 나타난다. 그것은 물질이 아니라 순수한 에너지이다.
갑자기 모든 것이 빛이 된다.
그대 존재 속에서 수천 송이의 꽃들이 일시에 피어난다.
3,해탈 (궁극의 침묵)
앞의 두가지 침묵(마음의 침묵 , 느낌의 침묵)이 존재할 때,
처음으로 그대는 지켜보는 자 또한 사라졌다는 것을 안다.
지켜 볼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아는 자가 사라진다.
그것이 궁극적인 침묵이다.
두 단계는 궁극의 침묵을 위한 디딤돌이다.
그 궁극의 침묵을 붓다는 <해탈>이라 부르고 예수는 <신의왕국>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