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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국으로의 진입 - 004 누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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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불.선 주춧돌 위에 선 한국적 이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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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樓)는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룻바닥을 지면에서 한층 높게 지은 다락 형식의 집을 말한다. 누는 궁실
원림(園林) 속에 조성되기 시작하여 후대에 일반 사대부들이 야외에서 풍류를 즐기는 장소로 일반화 되었다. | |
누각은 보통 법회나 강학, 또는 대중 집회 장소로 활용되고 있으나, 그 이름 속에는 불교 뿐만 아니라 한국인이 추구하는 모든 정신세계가 반영되어 있다. 일주문.중심법당과 일직선에 놓여 원래 누각은 자연과 함께하는 남성위주의 풍류와 휴식의 공간이다. 그러나 사찰의 누각은 단순히 자연 경관을 감상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조성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 누각처럼 사방이 활연히 트인 경우보다 전면을 제외한 나머지 삼면이 판벽이나 여닫이문으로 마감된
경우가 많다. 사찰 누각은 만세(萬歲).보제(普濟).덕휘(德輝).천보(天保).안양(安養).구광(九光).구룡(九龍).침계(枕溪).영월(映月) 등 그 이름도 다양하다. 그런데 이들 사찰의 누각 이름은 불교적인 것보다는 오히려 도교, 또는 유교적 정서를 배경으로 한 것이 더 많은데, 이점은 우리나라 사찰에서 볼 수 있는 흥미로운 현상 중 하나이다. 누각의 이름 중에서 가장 흔하게 눈에 띄는 것이 만세루이다. 그러나 만세라는 말은 불교 자체에서는 그리 많이
사용하는 말이 아니다. ‘천수만세(天壽萬歲)’, ‘왕비전하만세(王妃殿下萬歲)’라는 말에서 보듯이 ‘만세’는 ‘현재의 복락이 영원히 유지되기’를
바랄 때 쓰는 말로 도교적 시간 개념에 가깝다. 만세루 다음으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보제루다. ‘보(普)’는 ‘널리 두루’, ‘제(濟)’는 ‘건너다’,
‘건지다’는 뜻이니, ‘보제’는 ‘두루 구제한다’, ‘널리 보살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조선시대 동대문 밖에 보제원이라는 역원(驛院)이
있었다. 한편, 불교에서는 ‘보제’를 중생이 생사 왕래하는 세 가지 세계를 뜻하는 삼계(三界)에 투망을 놓아 인천(人天)의
고기를 건진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경에서는 ‘보제’라는 말이 자주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법구비유경〉 제1권, 무상품(無常品)의, “옛날
제석천이 부처님 처소로 달려갔을 때 부처님께서는 기사굴산(耆山)의 석실 안에서 좌선하시며 보제삼매(普濟三昧)에 들어 계셨다.”라는 대목에서 한
예가 찾아진다. 안동 봉정사 만세루 안에는 아직도 덕휘루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덕휘’는 ‘덕이 빛난다’는 뜻으로, 나라가 태평하면
하늘에서 봉황이 내려온다는 전설과 관련되어 있다. 중국 한나라의 유명한 시인 가의(賈誼)가 지은 〈조굴원부(吊屈原賦)〉에 이런 대목이 있다. 치자(治者)의 덕을 기리고 칭송하는 뜻을 담은 누각이 화성 용주사에도 있다. 천보루가 그것인데, 이름은
〈시경(詩經)〉 소아(小雅) 편에 나오는 ‘천보(天保)’시의 제목을 그대로 인용했다. ‘하늘이 뒤에서 도운다’는 의미의 ‘천보(天保)’ 시는
달.해.남산.송백.산.언덕.작은 언덕.큰 언덕.개울 등 아홉 가지 영원의 상징형을 열거하면서 임금도 이들처럼 오래 살기를 축수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한편, 하동 쌍계사는 팔영루가 있어 더욱 유서 깊은 고찰이 되었다. 팔영루의 유래는 중국 양(梁) 나라 때 학자이며
시인인 심약(沈約, 441~513)이 영가 태수(永嘉太守)로 있을 때 지은 원창루(元暢樓)에서부터 시작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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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각 중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건물이 완주 화암사의 우화루(보물 제662호)다. | |
누각의 이름은 법화육서(法華六瑞), 즉 설법서(說法瑞).입정서(入定瑞).우화서(雨花瑞).지동서(地動瑞).중희서(衆喜瑞).방광서(放光瑞) 중에서 우화서를 직접 인용한 것이다. 우화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설법하려 할 때 하늘에서 흰 연꽃, 붉은 연꽃 등의 꽃비가 내린 상서로운 현상을 말한다. 이에 연유하여 스님이 불경을 강설하는 곳을 우화대(雨花臺)라 부르기도 한다. 누각 가운데는 영주 부석사 안양루, 서산 개심사 안양루처럼 안양(安養)이라는 말을 사용한 경우도 있다. 안양은 모든
일이 원만 구족하여 괴로움이 없는 자유롭고 안락한 이상향으로, 이 사바세계에서 서쪽으로 10만억 불토를 지나간 곳에 있다는 극락정토를 말한다. 여주 신륵사에는 구룡루가 있다. 혹자는 구룡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했을 때 아홉 마리 용이 물을 뿜어 부처님 몸을 깨끗이 했다는 불전설화와 관련이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동양 고래의 용생구자설(龍生九子說)과 관련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합천 해인사에는 구광루(九光樓)가 있다. 일설에 구광은 부처님이 7처(七處) 9회에 걸친 법회를 열 때 설법 전에
백호에서 빛이 나왔다는 ‘방광(放光)의 상서(祥瑞)’와 관련된 것이라 하나, 구광이라는 말은 불교 쪽보다 도교 쪽에 가까운 개념으로 봐야 한다. 도교적 풍류가 넘치는 이름을 가진 누각이 해남 대흥사, 울주 석남사, 순천 송광사에도 있다. 이름이 침계루인데,
대흥사 침계루는 진인(眞人), 곧 신선을 찾는 다리라는 뜻의 심진교(尋眞橋)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다. 침계루는 말 그대로 계류를 베개 삼은
누각이라는 의미로서, 그 뜻에 걸맞게 석남사, 송광사 침계루도 대흥사 침계루처럼 모두 계류 가에 서있다. 야외에서 사찰 안으로 들어 온 누각은 지금 법회나 대중 집회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으나, 그 이름 속에는 불교의
이상세계와 함께 자연과 더불어 즐기는 풍류의 여운과 원천적 자유를 누리는 도교의 신선계가 펼쳐져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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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100美 100選은
2005년~2006년까지 2년여 동안 불교신문에 연재된 글이며 최근
그 내용이 동명의 책으로 나왔습니다. 지금 옮겨 재편집하는
자료는 예전 신문내용이므로
최근 나온 책과는 내용이 약간 다름을 일러둡니다. 크게 다르지는
않고 부분부분 수정, 가필등이 되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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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네, 감사히 봅니다. 연꽃지기 법우님.^^()
보화루, 보제루, 우화루...풍류와 휴식의 공간이라는 누각이 어째 절집까지 들어왔을까요? 경위야 어떻든 멋집니다. 잘 들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