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마음
중학교 교장으로 근무할 때이다. 교장실에 혼자 있다 보면 선생님들과 소통할 기회가 거의 없다. 교장실을 언제나 개방하고 있으니 아무 때나 들려 교육활동에 대한 고민을 같이 나누었으면 한다고 전체 회의 시간에 공지했건만 선생님들이 교장실을 방문하는 일은 업무상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렇다고 내가 교무실을 자주 방문하는 것도 선생님들 업무에 지장을 줄까 봐 조심스럽다. 하루 한 번 정도만 교무실을 들른다.
어느 날 교무실에 들렀는데 국어를 가르치는 김 선생님께서 “교장 선생님. 커피 한잔 드시고 가세요.” 하면서 교무실 한편에 있는 회의용 탁자로 커피를 내왔다. 그날따라 표정이 무척이나 밝아 보였다. 요즘 들어 선생님은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들을 친자식 돌보는 것처럼 세심하게 신경 쓰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셨다.
요즘 뉴스를 보면 학생 인권을 강조하다 보니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생활지도 차원의 훈육이나 벌을 주면 아동학대로 신고까지 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것이 교단의 현실이다. 학생과 선생님 사이에 관계가 틀어지면, 학부모들은 선생님이 정서적 아동학대를 했다며 교사의 태도를 비판하는 민원전화가 교장실로 종종 온다.
학기 초 발생했던 특수학급 최모 학생 얘기다. 최모 학생은 대부분 수업은 특수교사가 진행하는 특수반 교육과정에 참여하고, 일부 교과는 일반학급에서 통합수업 교육과정에 참여하고 있었다. 김 선생님이 담당하는 국어 통합수업에 최모 학생이 참여했는데 자기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교실을 돌아다녔다. 김 선생님이 몇 번이나 주의를 줬으나 달라지지 않아서, 모둠으로 진행하는 수업에 방해가 되니 교실 뒤에 가서 서 있으라 했다. 그것이 문제의 발단이 될 줄이야. 학생이 귀가하여 선생님이 통합수업을 받지 못하게 했다는 말을 학부모에게 전했고, 학부모는 전후 사정을 알아보지도 않고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해 버린 것이다.
몇 차례 경찰조사에서 아동학대의 협의가 없다는 결론이 났고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학부모는 교육청과 교장실로 해당 교사를 징계해 달라고 민원을 제기했다. 민원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학생을 등교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해당 교사의 말을 자세히 들어보고 민원 해결 방법을 모색하기로 했다. 학부모에게 학생을 데리고 학교에 오시도록 요청하면서, 학생의 얘기를 저와 부모님이 함께 들어보자고 설득했다. 학생한테 본인의 잘못과 선생님의 잘못을 다 얘기해 보라고 했다. 학생이 얘기는 선생님이 평상시에도 자기를 미워해서 교실 뒤로 가서 서 있으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수업 중에 교실을 왜 돌아다녔니? 다른 학생들이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방해되지 않겠어?”라고 물었다. 다른 모둠에서 활동하는 것이 재밌어서 돌아다니며 구경했다는 것이다.
선생님께도 따로 상황을 물어보니 학기 초이고 담임이 아니다 보니 특수반 학생인 줄 전혀 모른 상태였다고 한다. 단지 집중력이 없고 산만한 학생으로만 알고 수업 방해를 경고하는 차원에서 교실 뒤에 서 있으라고 한 것이었다.
다시 선생님과 학생, 학부모 한자리에 모이도록 해서 서로의 입장을 다 털어놓고 얘기해 보기로 했다. 서로의 오해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선생님은 학생의 특수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점을 사과했고, 학부모는 자녀가 수업 방해를 한 사실을 몰랐다며 사과했다. 학생도 내일부터 등교하겠다고 약속하며 잘 마무리되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요즘은 학생들을 보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상관없이 그냥 예뻐요. 말썽부리는 것조차 예쁘다니까요.” 몇 마디 안 되는 말속에 예쁘다는 단어를 반복하며 심정을 고백하는 선생님 눈빛이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빛난다.
“선생님. 그거 아주 심각한 병인데요. 아직 마흔도 안된 분이 벌써 할머니가 손자 보듯 학생들을 예뻐하면 빨라 늙는대요. 큰일이네. 그 병에 걸리면 약도 없다던데.” 별생각 없이 농으로 던진 말에 선생님이 어린애처럼 까르르 웃었다. 그 모습이 천생 학생들을 닮았다. (2023.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