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5:1-13
▣ 교회의 권징-고린도전서 5장-
바울은 이제 그에게 보고된 일들 중에서 두번째 문제를 다룬다. 즉, 교회 내의 부도덕함과 범법자를 교회가 처벌하지 않는 문제이다. 이와 같은 무서운 죄가 “일반적으로 알려져“ 그 교회의 전도의 문을 막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 바울은 범죄하는 교인들을 교회가 징계해야 하는 세 가지의 이유를 말한다.
1. 범죄한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5:1-5)
권징이 요구되는 상황-교회에서의 징계는 경찰관이 죄인을 체포하는 것처럼 설명되기보다는 아버지가 그의 아들을 징계하는 것과 비슷하다. 최우선의 동기는 그 죄인을 돕기 위한 것이며, 그가 회개할 수 있기를 바라서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보여 주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 회중들에게 공개적으로 죄를 짓고 살도록 버려 두는 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에 대해서도 죄를 짓는 결과가 된다!
이 특정한 교인은 그의 계모와 불륜의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었던 것이 분명한데(레 18:8 참조), 그 여자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을 것은 확실하다. 만일 그리스도인이었다면 바울은 그녀도 함께 처리하였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구원받지 않은 사람과 죄 중에서 살고 있는데도 교회가 이에 대해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권징의 정당성-교회는 “교만해져서“ 그들의 “진보적인“(liberal) 태도를 자랑으로 여기고 있었다. 바울은 그들이 통한히 여겨야 함이 마땅하다고 말했는데, 이 단어는 “죽은 자들을 향해 통곡하는 것“을 뜻한다(뒤에서는 그들의 죄를 누룩과 비교하는데, 누룩은 무엇이거나 부풀게 한다). 죄에 대한 그들의 “관용적인 자세“는 범법자와 교회에 상처를 줄 뿐이다. 마음아프다고 해서 말하지 않는다면 바울과 주님 자신에게로 그 원인을 돌리는 것이 된다. 바울은 그 사람을 심판하고 성도의 교제에서 그를 추방하도록 지시하였다.
누군가는 마태복음 7장을 가리켜 “하지만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는가?“라고 물을 것이다. 물론,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죄인들과 성도들에게 다같이 알려진 죄들에 대해 눈감아 주라는 뜻은 아니다 !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동기에 대하여 비판할 수는 없다(마 7장이 가리키는 것은 동기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판단을 할 수 있으며, 해야만 한다.권징의 방법-권징은 교회에서 단체적으로 처리되어야 한다. 이것은 지도자가 혼자 처리할 문제가 아니다(4절). 대두된 문제는 공식적으로 알려서 공식적으로 해명하고, 공식적으로 처리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회개하기를 거절하면 그를 교제에서 추방해야 한다.
“사단에게 넘겨 준다“는 말은 그를 지옥으로 보낸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교회란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그를 교회의 교제에서 잘라 냄으로써 사단의 조종을 받고 있는(요 12:31/골 1:13) 세상에서 살 수밖에 없게 한다는 뜻이다. 권징의 목적은 교인 한 사람을 잃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죄인을 회개의 자리에 이르게 하여, 심판의 날에 상을 잃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교회에서의 권징이 잊혀져 가고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진실로 서로를 사랑한다면, 그리고 만일 목회자가 진실로 그 양무리를 사랑한다면 방황하는 사람들이 경고를 받으며 합당한 징계를 받는 것이 그 사람 자신에게 유익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고전 5:6-8
2.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5:6-8)
모든 사람을 그리고 어떤 회원이라도 받아들이는 것이 교회로서는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 자기의 집 문을 열어놓고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들어오게 할 사람은 없다. 사실이 그렇다면, 우리는 원하는 사람이면 어떤 사람이든지 모두 교회의 교제에 들어오게 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보통 교회에 가입하는 것은 많은 세상적인 기관에 가입하는 것보다 어렵다! 바울은 “너희의 자랑이 옳지 않다! 죄 중에 사는 한 사람이 온 교회를 더럽힐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가?“라고 경고한다.
바울은 유월절 만찬의 예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강조한다(출 12:15- 참조).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누룩이란 언제나 죄와 타락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유월절을 앞두고는 집을 구석 구석 살펴서 모든 누룩의 형적을 제거한다. 그리스도인도 이와 똑같은 태도를 지녀야 한다. 우리는 감히 죄의 누룩이 우리의 교회에서 소리 없이 부풀어서 문제를 일으키고 수치를 가져오게 해서는 안 되겠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 이는 우리를 세상과 같이 만들기 위함이 아니요 하나님처럼 만들기 위함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은 목회자나 집사들이 신자들의 생활을 엿보는 탐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각 사람은 죄의 누룩이 자신의 생활에서 자라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만일 죄가 알려지면 목회자와 집사들은 교회의 영적인 복지를 보호하기 위한 제 단계들을 취해야 한다.성경에서 경계하고 있는 몇몇 종류의 그리스도인들이 있는데, 이들은 지교회에서의 교제가 허락되지 않는 신자들이다.
-성격적인 차이를 해결할 수 없는 사람:마태복음 마 18:15-17
-죄인이라고 평판이 난 사람:고린도전서 고전 5:9-11
-거짓 교리를 주장하는 사람:디모데전서 딤전 1:18-20 / 디모데후서 딤후 2:17-18
-분열을 조장하는 사람:디도서 딛 3:10-11
-생계를 위해 일하기를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데살로니가후서 살후 3:6-12
갑작스럽게 죄에 빠진 사람들에 대하여 우리는 사랑을 가지고 회복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갈 6:1)."
고전 5:9-13
3. 세상의 유익을 위하여(5:9-13)
교회가 만일 세상과 같다면,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 이 구절들을 조심스럽게 읽고 그리스도인의 죄와 불신자들의 죄 사이의 차이점을 바울이 어떻게 말하는지 유의해서 보자.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는 죄가 더 나쁘다 ! 바울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앞선 편지에서 간음하는 사람들, 탐심을 가진 사람들, 우상 숭배자들과 같이 죄인으로 평판이 난 교인들과는 교제를 하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런 종류의 죄인들 모두와 떨어져 지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려면 세상을 떠나야 할 것이다 !
우리는 불신자가 죄 중에서 살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세상은 그리스도인이면 어딘가 다를 것이라고 기대한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에서 그처럼 영향력이 적어진 까닭은 세상이 교회에서 훨씬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들은, 공개적인 죄로 간증을 잃고서도 교회와 주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지 않은 사람들과는 식사조차도 같이 하지 않는다. 이것은 5절에 요약된 징계의 일부이다. 만일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이 죄 중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과 교제를 한다면 그 사람은 그의 죄를 너그럽게 보아 주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우리가 교회 안에서 영적인 심판을 행사할 것을 기대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에 충격을 받는다. 우리는 외부인들을 심판하지는 않는다. 그 일은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그러나, 죄를 고백하지 않고 관계를 바르게 하지 않으려는 그리스도인을 교회의 교제에서 추방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일은 서둘러서 할 일이 아니다. 개입된 쌍방이 자신의 경우를 진술하도록 허용되어야 한다. 기도가 있어야만 하며 말씀의 사역이 있어야 한다. 또한 진지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있어야 한다. 교회에서의 권징은 세상에게는 간증이며 교회에 대해서는 경고이다. 특히 새로운 신자들은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이 세상과 다르기를 기대하신다는 사실을 경고받는다. 죄를 너그럽게 보아 준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행위이다.
▣ 부가적 연구
죄가 교회 안에 있는데도 처리되지 않으면 곧 모든 도시에 알려지게 된다. 이 죄는 “일반적으로 알려진다.“ 왜냐하면 나쁜 소식은 좋은 소식보다 훨씬 빨리 퍼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신을 징계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을 징계할 수 없다. 영적인 지도자들은 자신에게 엄격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을 다룰 때보다 훨씬 더 철저해야 한다.
권징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다. 왜냐하면 문제가 되는 것은 주님의 명예이기 때문이다. 징계는 은밀하게 “구석진 곳에서“ 행해질 수는 없다. 죄가 관련된 곳에 고백과 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개인적인 죄는 개인적으로 고백하고, 공적인 죄는 공적인 고백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