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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리풀사진방 원문보기 글쓴이: 서리풀
이생진 시인과 함께 떠나는 섬 여행(3)
詩가 살아있는 섬 우이도
목포에서 세시간 반
우이도 돈목
갔다 오면 다시 가고싶은 곳
다시 가도 외로움은 여전히 남아 있고
발자국은 이미 지워지고 없는 데
그 사람이 그리운 거 있잖아요
다시 가서 발자국을 찾아보세요
그리움은 땅속에 묻혀도 보인다구요
대나무로 보이고
메꽃으로 보이고
순비기나무로 보이고
통보리사초로 보이다가
금방 모래밭에 파묻힌다구요
이생진 시인의 시집 <우이도로 가야지>에 실린 시중 <다시 가보세요>라는 제목의 시 전문이다.
지난 9월초 이생진 시인과 함께 다시 4박5일 일정으로 우이도-도초도-비금도를 다녀왔다. 7월 중순에 신안군 안좌도-팔금도-추포도-암태도-자은도를 다녀온 이래 연이은 섬여행 시리즈다. 이생진 시인은 이미 본지 '월간 오늘의 한국' 8,9월호에서도 소개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인 섬 시인이다. 이 생진 시인의 고향은 충남 서산이다. 섬에서 태어나지않았는데도 섬이 좋아 거의 평생동안 섬을 돌아다니고 섬에 관한 시집도 33권이나 낸 시인이다. 그래서 ‘섬 시인’이라 부른다.
이생진 시인은 우리나라 섬 1,000개 이상을 다녔지만 그중에서도 제주도와 우이도를 특히 좋아하는 것 같다.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아름답기 때문일 수도 있고 고향같은 아늑함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제주도는 자주 갈 뿐 아니라 <그리운 바다 성산포>, <서귀포 칠십리길> 등 제주도에 관한 시집도 여러권 냈다. 그런 저런 인연으로 이생진 시인은 제주도 명예도민으로 추대받기도 했다.
섬 지형이 소귀를 닮아서 이름붙여진 섬 우이도(牛耳島). 우이도는 조그만 섬이다. 기암괴석 등 볼꺼리도 제주도, 울릉도, 독도, 홍도, 소매물도, 사량도, 백령도 등 다른 유명 섬들에 비한다면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생진 시인은 우이도를 자주 찾는다. 23년 전인 1988년에 처음 우이도를 찾은 이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거의 매년 봄가을로 두 번씩 우이도를 찾아간다고 한다. 횟수로 따지면 40회가 넘는다니 고향 보다도 더 자주 가는 곳인지도 모른다.
이생진 시인은 우이도를 자주 찾는 이유에 대해 “우이도는 시인이 필요로 하는 자연적 여건이 잘 갖춰져 있죠. 우이도 섬 자체도 아름다울 뿐 아니라 목포에서 4시간 동안에 만나는 섬들, 안좌도, 팔금도, 암태도, 자은도를 지나 도초도, 비금도, 대야도를 거쳐 경치도, 동소우이도, 서소우이도, 화도, 어락도 등 주변 섬들 모두가 아름답죠. 우이도에서는 돈목마을 쪽으로 주로 가는 데 마을 앞 돈목해변과 성촌해변의 백사장이 정말 좋지요. 모래사막 형태인 ‘풍성사구(風成砂丘)’도 아름답구요. 돈목, 성촌해변 백사장을 맨발로 걷다보면 내 자신이 자연의 일부가 된 느낌이죠. 게, 도요새가 반기고 파도의 리듬소리에 맞춰 저절로 시가 나오고 운율이 나오죠. 내가 머무는 민박집을 비롯, 주민들의 인심도 참 좋죠. 우이도에 가면 마치 고향집에 간 기분이 듭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맨발로 걷고 싶은 곳. 그리고 시만 생각하고 생각한 시를 소리내어 읽으며 한없이 걸어가고싶은 곳. 그런 곳이 우이도에 있지요. 돈목과 성촌의 모래밭, 내 생의 종점에 이르러 이런 시공(時空)을 얻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봄 가을에 오면 빈 바다가 나를 반깁니다. 나는 그 바다가 좋아 시를 씁니다. 넓은 바다를 혼자 차지하는 기쁨. 그 기쁨을 시에서 오는 기쁨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우이도는 1988년 7월 25일부터 지금까지 그런 인연으로 이어집니다”라고 말한다.
우이도에 갈려면 목포에서 배를 탄다.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매일 11시 30분에 한번 떠난다. 소요시간은 약 4시간 정도.
그런데 이번 여행일정은 조금 특이하다. 8월 31에 KTX로 목포역에 도착. 첫날은 바로 함평으로 갔다. 함평은 목포에서 자동차로 1시간 미만 거리이다. 함평에는 이생진 시인이 잘 아는 김화성, 은희 부부가 사는 데 이들 부부의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은희 씨는 70년대 국민애창곡 ‘꽃반지 끼고’, ‘사랑해 당신을’, ‘연가’, ‘등대지기’ 등 주옥같은 노래로 유명한 가수이다. 은희 씨는 1970년 ‘사랑해’로 데뷔한 뒤 3년간 ‘꽃반지 끼고’ 등 히트곡과 30여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인기를 누리다가 1974년 홀연히 가요계를 떠났다. 결혼과 함께 미국유학길에 오른 그녀는 뉴욕주립대학에서 패션과 디자인을 배운 뒤 미국에서 10여년 살다가 귀국, 함평에 자리를 잡고 초등학교 폐교를 인수하여 ‘민예학당’을 설립, 우리나라 전통 ‘갈옷’ 디자인 및 생산에 전념하고 있다.
이번 섬 여행길에는 이생진 시인 이외에도 보성고 김갑철 전 교장, 통기타 가수 현승엽 씨, 개인사업을 하는 장상희 사장, 광주에서 내려온 오소후 시인, 이영란 시낭송가 등도 함께 했다. 현승엽 가수 역시 은희 씨 부부와는 막역한 사이여서 함평에서 허물없이 즐겁고 멋진 하룻밤을 보냈다.
둘쨋날. 오늘 일정은 오전에 신안군청에서 군청직원들을 대상으로 이생진 시인의 문학강연이 있고 강연 후 바로 우이도로 떠날 예정이다.
오늘 문학강연의 주 내용은 김환기 화가의 생애와 작품세계, 김환기 화가와 관련된 지자체의 문화컨텐츠 개발 가능성 등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생진 시인은 시인일 뿐 아니라 화가로서 그림에 관한 조예도 깊다. 네델란드 출신의 세계적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에 매료되어 2008년에는 ‘반 고흐, 너도 미쳐라’라는 제목의 단행본 시집을 낼 정도다. 섬여행을 할 때도 늘 스케치북을 옆에 끼고 틈날 때 마다 섬 풍경을 스케치북에 그려넣곤 한다.
김환기 화가에 대해서도 적지않은 지식과 이야기꺼리를 알고 있다. 김환기 화백이 한 때 이생진 시인이 23년간 영어교사로 봉직했던 보성중고등학교의 미술선생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생진 시인은 제주도 서귀포의 이중섭 화가 문화컨텐츠 개발, 일본 나오시마 섬의 문화컨텐츠 개발 등을 사례로 제시하며 신안군의 문화관광컨텐츠 개발을 통한 관광 활성화 가능성에 관한 의견을 1시간 정도 심도있게 이야기했다. 강연 중에는 김광섭 시인의 시를 소재로 그린 김환기 화가의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 관한 시와 그림에 얽힌 이야기, 이상 시인, 이중섭 화가와 김환기 화가 간의 인연과 숨은 이야기 등도 들려줘 강연 흥미를 더했다. 또한 청중들이 지루하지않도록 강연 중간 중간에 본인의 자작시를 낭송하고 현승엽 가수가 이생진 시인의 시를 통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하였다. 강연 마지막에는 이영란 시낭송가가 이생진 시인의 만재도에 관한 시 ‘보이지않는 섬’ 등을 낭송하여 강연의 대미를 장식하기도 하였다.
문학강연이 끝난 후 우이도로 떠날 시간. 오늘 우이도 행에는 특별히 박우량 신안군수도 관내 섬 순시 겸 함께 가기로 했다. 여객선을 타는 대신 20톤 규모의 신안군 행정선에 편승하게 된 것이다.
신안군은 관내 섬 개수가 1004개. 그래서 신안군의 별명도 ‘천사의 섬’이다. 신안군청도 관내 섬 중 하나인 압해도에 위치해 있다. 섬 만으로 이루어진 군이니 당연히 군수의 면‧리 단위 순시는 섬여행이 될 수 밖에 없다. 섬여행이 우리들에게는 관광여행인데 신안군수에게는 업무차 순시가 되는 셈이다.
거센 파도를 헤치며 돌아봐야 하는 관내 순시. 여행객에게는 낭만적일지 모르지만 군수를 비롯한 군청 공무원들의 일상업무로서는 쉽지않은 뱃길일 것 같다. 선내에서 박우량 군수는 “남들은 이곳을 바다로 보는 데 저희들은 늘상 다니는 ‘벌판’으로 보지요. 저희 군민들이 농사짓는 곳이니까요. 파도가 센 날은 비포장도로를 가는 기분으로, 날씨 좋은 날은 포장도로를 가는 기분으로 섬들을 돌아보지요”라고 말한다.
행정선은 우이도 가는 길에 먼저 안좌도에 들렀다. 안좌도의 김환기 생가와 미술관 건립현장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읍동리 김환기 생가를 지나 고개를 넘으면 아름다운 호수 하나가 보인다. 신촌저수지다. 박우량 군수는 이곳 저수지 주변에 김환기미술관과 공원을 건립할 예정이라고 설명한다. 약 140억 원을 투자, 저수지 4만5천평과 주변 산기슭을 매입, 10만 평 규모의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준공 목표는 김환기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13년이다.
박 군수는 “김환기미술관은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에 그치지않고, 매화공원 등 주변 산책로도 조성하여 ‘쉬어가는 곳, 사색할 수 있는 곳, 시가 흐르는 미술관’ 등 ‘의미가 있는 미술관’으로 조성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건축설계를 공모할 계획”이라고 설명한다. 이 공원이 완공되면 섬미술관으로서는 제주도의 이중섭미술관에 이어 국내에서는 두 번째 섬미술관이 되며, 규모면에서는 국내 최대의 섬미술관이 될 것 같다.
안좌도에서 1시간 쯤 걸려 우이도에 도착했다.
목포에서 우이도까지 거리는 64km. 도초도에서 17km이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전남 신안군 도초면 우이도리이다. 팔금도-안좌도를 지나고 도초도-비금도 해협을 지나가는 먼 뱃길. 숨겨진 천혜의 비경(秘景)이다.
우이도는 면적 10.7㎢, 해안선길이 21㎞, 최고점은 상산봉 361m이다. 소구섬 또는 우개도라고도 한다. 섬의 서쪽 양단에 돌출한 2개의 반도가 소의 귀 모양과 비슷하여 우이(牛耳)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27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우이군도의 주도(主島)이다. 부속도서로는 동소우이도(東小牛耳島), 서소우이도(西小牛耳島), 화도(花島), 항도(項島), 승도(僧島), 송도(松島), 가도(駕島), 어락도(漁洛島) 등이 있다.
우리 일행이 내린 곳은 돈목선착장. 어항 모양의 둥근 해안에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는 선착장이다. 선착장 좌우로 도리산과 성촌 상산이 보이고 성촌마을 옆에 우이도의 명물인 ‘풍성사구’도 보인다. 돈목마을을 중심으로 도리산과 성촌 상산이 소귀처럼 뻗어 있다. 섬 이름이 왜 우이도인지 이해가 간다.
돈목선착장은 의외로 초라하다. 외딴 섬이다 보니 여행객들이 그리 많지않아서인가 보다. 다른 큰 섬들의 선착장처럼 거창한 표지판도 없다. 가건물같은 조그만 매표소와 정자 만 외롭게 선착장을 지키고 있다. 우이도의 대표적 선착장은 돈목선착장과 진리선착장이다. 규모는 진리선착장이 크지만 여행객들은 주로 돈목선착에서 내린다. 돈목에는 돈목해수욕장, 성촌해수욕장과 풍성사구 등이 있기 때문이다.
선착장 우측으로 언덕을 넘으면 바로 돈목마을이다. 13가구 정도가 사는 조그만 마을이다. 교회도 보이고 여기저기 민박집 간판도 눈에 띈다. 돈목마을은 4선 국회의원을 지내고 평화민주당 대표인 한화갑 씨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민박집 바로 옆에 한화갑 씨 부모가 살던 집이 보인다. 우이도 본도에는 진리, 돈목, 성촌 등 마을이 세 개 있다. 전에는 대초리, 예리 등에도 주민이 살았는데 지금은 모두 떠나고 폐촌이 되었다. 돈목 성촌 이장 박동철(41) 씨에게 물어보니 주민은 진리 30호 내외, 돈목 13호, 성촌 8호에 인구 100명 정도. 동소우이도, 서소우이도 등 주변 부속섬 주민까지 합치면 약 200명 정도가 산다고 한다. 우이도에서는 자동차가 필요없다. 마을과 마을 사이는 걸어서 이동하거나 목포-우이도를 오가는 정기여객선, 또는 고깃배를 이용하여 왕래한다. 마을과 선착장 간의 짐 운반을 위해서는 경운기가 주로 이용된다.
이생진 시인과 필자 등은 먼저 예약해 놓은 슈퍼민박(061-261-1863)에 짐을 풀고 점심식사 후 박우량 군수 일행과 함께 바로 풍성사구로 갔다.
‘풍성사구’는 돈목선착장 바로 뒤 돈목마을에서 돈목해수욕장을 지나면 성촌마을 우측에 위치해 있다. '섬 속의 사막'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이 '사구(沙丘)‘는 이름 그대로 모래언덕이다.
돈목해수욕장은 길이가 약 1,5km로 우이도에서 가장 큰 해수욕장이다. 밀물 때는 바닷물이 가득하여 모래사장을 통해서는 풍성사구로 건너갈 수 없고 우측 산 비탈을 넘어가야 하지만, 썰물 때는 해수욕장이 마치 유리를 깔아놓은 듯 광활하고 평평한 모래사장으로 바뀐다.
'사구'는 보통 해수면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바다 북쪽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모래를 밀어올려 만들어지는 언덕이다. 우이도 주민 박칠성 씨의 말에 의하면 성촌마을에서 북쪽 성촌해변으로 넘어가는 언덕길(풍성사구 좌측 길)이 지난 50년간 약 10m 정도 높아졌다고 한다. 이곳 풍성사구는 높이가 한 때 80m 정도였다고 하는데 그동안 사람들이 오르내리면서 모래가 밀려내려 현재는 50여m로 낮아졌다고 한다. 경사면 길이는 100m로 순수 사구 만으로는 국내 최대규모이다. 충남 태안 신두해수욕장과 접해있는 신두리사구가 길이 약 3.4km, 너비 500m-1.3km로 전체 규모면에서는 이보다 헐씬 큰 국내최대규모 사구이기는 하나 주변 개발 등으로 인해 사구가 훼손되고 사구의 대부분이 풀밭으로 변해서 사구로서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성촌마을에서 북쪽으로 언덕을 넘으면 성촌해수욕장이다. 성촌해변 역시 1km나 되는 넓고 긴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성촌해변 끝에는 ‘큰산’이라고 부르는 웅장한 바위산이 위치해 있고 큰산 너머에는 다시 ‘띠밭너머해수욕장’이 있다.
이 해변에는 늘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탓에 파도에 밀려오는 쓰레기가 널려 있다. 우이도 풍성사구는 이곳 성촌해변 쪽에서 밀어올리는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모래언덕이다. 그런데 근년에는 북쪽 해안 쪽에 풀과 숲이 우거지면서 바람을 막아 사구가 점점 축소되거나 허물어지고 있다고 한다. 박우량 군수는 “이곳 바람길의 풀과 숲을 없애는 등 생태를 복원할 경우 4-5년 이내 모래가 다시 채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박우량 군수는 업무순시 중 잠시 틈을 내어 우이도 주민들과 함께 성촌해변에 둘러앉아 이생진 시인의 시집 '우이도로 가야지'에 실려 있는 시들을 중심으로 신안군의 아름다운 섬들에 관한 즉석 '섬시 낭송회'를 갖기도 하였다.
셋째날, 아침 일찍 돈목해변 모래사장을 걸어봤다. 물 빠진 해변은 마치 넓은 운동장 같다. 이곳 모래는 특히 밀가루처럼 가늘고 부드러우면서 달라붙지 않고, 물에 젖으면 시멘트처럼 단단해져 맨발로 걸어도 발이 전혀 빠지지않는다. 맨발로 걸으니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부드럽고 촉촉한 감촉에 온몸이 자연 속으로 녹아드는 것 같다. 짜릿하다고 할까 아니면 황홀하다고 표현해야 하나.
풍성사구는 모래언덕 훼손을 막기 위해 현재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필자는 취재목적으로 별도허가를 받아 모래언덕에도 올라가 봤다. 사구를 훼손하지않도록 좌측 풀밭을 통해 조심스럽게 올랐다. 사구의 물결이 부드럽기 그지없다. 물결처럼 잔잔하게 출렁이는 모래언덕.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사구 정상에는 모래가 뭉쳐 만들어진 젖꼭지모양의 모래봉우리도 보인다. 모래언덕의 출렁임이 환상적이다. 사구능선의 선(線). 마치 젊은 여인의 누드곡선을 보는 것 같다.
사구 오르는 언덕 여기저기에 순비기꽃들이 보인다. 사구 주변에는 순비기나무, 통보리사초, 갯메꽃 등이 자란다. 바닷가에 사는 식물들은 강한 바람과 짜지않은 곳의 물을 빨아들이기 위해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리고 있고, 수분을 잃지않도록 두껍고 단단한 잎을 가지고 있다.
우이도 풍성사구는 2006년 10월 25일 개봉된 김대승 감동의 영화 '가을로'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유지태(최현우), 김지수(서민주), 엄지원(윤세진) 출연의 이 영화는 1995년 6월 29일에 일어났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배경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10년 전, 그 날.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마침내 고대하던 검사가 된 현우(유지태).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여인 민주(김지수)를 낯선 아파트로 초대한다. 장미꽃 한 다발과 함께한 수줍은 고백. "사랑해. 나랑.. 결혼해줄래?"
1995년 6월 29일. 결혼준비를 위해 함께 쇼핑을 하기로 약속을 한 현우와 민주. 현우가 일하는 곳에 찾아온 민주에게 현우는 일이 남았다며, 혼자 가기 싫다고 기다리겠다던 그녀의 등을 떠밀어 억지로 백화점을 보낸다. “민주야, 금방 갈게!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일을 끝낸 현우가 급한 걸음으로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백화점 앞에 도착한 순간. 민주가 지금 현우를 기다리고 있는, 그 백화점이 처절한 굉음과 함께 그의 눈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십년 후, 지금. 누구보다 소중했던 민주를 잃어버린 지울 수 없는 아픔. 그리고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 자신이라는 자책감으로 현우는 지난 십 년을 보냈다. 항상 웃는 얼굴의 해맑은 청년이었던 현우는, 이젠 그 웃음을 잃어버린 차갑고 냉정한 검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여론과 압력에 밀려 휴직처분을 받고 상실감에 젖어있던 현우에게 한 권의 다이어리가 전달된다. "민주와 현우의 신혼여행"이란 글이 쓰여있는 다이어리. 민주가 죽기 전 현우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었다. 현우는 민주가 준비한 마지막 선물, 다이어리의 지도를 따라, 가을로, 여행을 떠난다.
민주가 현우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 길을 따라 걷는 현우의 여행길에 가는 곳마다 마주치는 세진(엄지원)이 있다. 자꾸 마주치는 우연으로 동행을 하게 된 그들은 서로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현우가 민주가 사랑하는 그 ‘현우’ 라는 것을. 그리고 세진은 백화점이 무너진 그때, 민주와 같은 곳에 매몰되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현우와 민주의 가을로의 동행이 시작된다.
영화속 민주가 하는 대사는 마치 우리에게 속삭이듯 전해준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사막처럼 황량하다. 하지만 이 여행이 끝날 때는 마음 속에 나무 숲이 가득할 것이다”. "산에 오르고, 바다 보고, 해돋이도 보고… .그러다 보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 들거야. 그게 여행이 주는 힘이니까”
아침에 돈목해변 산책과 풍성사구를 둘러본 후 필자는 우이도 최고봉인 상산봉(361m) 및 도리산 종주산행에 나섰다.
우이도는 섬 전체가 산악지대로서 해안가 평지에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서쪽 해안에는 해식애가 발달하였고 북쪽 해안에는 길게 모래해안이 형성되었다. 돈목해변 좌우에는 도리산(251.6m)과 성촌 상산이 자리잡고 있고 성촌 상산 뒤로 길게 반도모양의 소래산이 뻗어있다. 성촌해변 우측에는 큰산이라고 부르는 바위산이 해변을 가로막고 있고, 섬 중앙에는 우이도의 최고봉인 상산봉이 중심을 잡고 있다. 또 진리 뒤쪽에는 굴봉이라고 부르는 산봉우리도 솟아 있다.
상산봉은 돈목해변 중간 우측에 들머리가 있으며, 진리방향으로 폐촌된 대초리마을을 지나고 고개를 두 개 넘어 두 번째 고개 우측 바위능선을 탄다. 약 3시간 남짓이면 다녀올 수 있다. 그리고 도리산은 돈목선착장 좌측 산허릿길을 따라 오르며, 왕복 1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는 가벼운 산책길이다. 도리산 정상에는 통신탑이 세워져 있으며, 도리산 오르는 초입길목 좌측에는 무인도 바위섬인 어락도가 보인다.
우이도의 관광명소로는 풍성사구와 돈목, 성촌, 띠밭너머 등 3개 해수욕장이 유명하다. 그리고 진리 옛 선착장 및 공적비(전남도 기념물 제 243호)와 국내 3대 표류기 중 하나인 ‘표해시말’이 기록된 ‘유암총서와 운곡잡저(전남도 문화재 자료 제 275호)’의 문화재가 있으며, 조선시대 신유박해로 우이도에 유배온 손암 정약전의 적거지 및 서당터와, 상산봉 정상 아래 고운 최치원 선생이 다녀갔다는 바둑바위 등이 현존하고 있다.
넷째날. 이제 우이도를 떠나 도초도-비금도로 가는 날이다. 돈목선착장에서 도초도로 가는 배는 아침 7시에 출발한다.
여객선은 도리산 모퉁이를 돌아 어락도 사이를 빠져나간다. 우이도 상산봉 정상이 구름 위를 떠다닌다. 멀리 예리해변과 폐촌된 예리마을도 보인다. 이생진 시인은 배 난간에 서서 스케치북에 뭔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다. 그렇게 자주 우이도에 오면서도 아직도 우이도를 그릴 게 있는가 보다.
화도, 동소우이도, 서소우이도를 지나 진리선착장이 가까워진다. 진리에서 잠시 기착한 후 다시 떠나가는 배. 우이도가 점점 멀어져 간다. 이틀간 머문 우이도. 벌써 꿈 만 같다. 한편의 아름다운 시처럼 우이도는 그렇게 잔잔한 여운을 남겨주고 여행객들을 떠나보낸다. 과객들의 아쉬움을 읽은 듯 파도가 하얀 포말을 뿌리며 뒤쫒아온다.(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