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의 사자성어(82)>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 순(脣), 망할 망(亡), ‘순망’이라함은 ‘입술이 망한다’라는 뜻이고, 이 치(齒), 추울 한(寒), ‘치한’ 이라함은 ‘이가 시리다’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순망치한 이라함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라는 의미이다.
입술과 이의 관계처럼 이가 아무리 중요한 역할을 해도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려 그 기능을 상실할 수 밖에 없다. 평소에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느껴지는 것도 없어지고 나면, 다른 한 쪽에서도 피해를 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필요하지 않는 존재는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순망치한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말이다.
춘추시대 강대국인 진(晉)나라 헌공(獻公)은 괵(虢)이라는 약소국을 치려고 많은 뇌물을 바치며 길목에 있는 우(虞)나라에게 길을 빌려줄 것을 요청했다. 우공은 그 청을 받아들이려고 했으나, 현명한 신하 궁지기(宮之奇)가 이를 말렸다.
“괵나라와 우나라는 한 몸과 다름없는 사이이므로 괵이 망하면 우도 망할 것입니다. 속담에 덧방나무와 수레는 서로가 의지하고,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입니다. 바로 우와 괵을 두고 한말입니다. 진나라 군사를 통과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진상품에 눈이 어두웠던 우공은 진나라에게 침공의 길을 터주었다.
진은 공격을 개시해서 괵나라를 정벌했다. 그리고나서 돌아오는 도중에 우나라를 기습하여 멸망시켰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은 명(明)나라를 치기 위하여 조선 땅을 빌려달라고 했다. 이를 가도정명(假道征明)이라고 한다.가도(假道)란 길을 빌린다는 뜻이고,정명(征明)이란 명나라를 정벌하겠다는 뜻이가. 그러한 명분을 내세운 일본은 임진란 7년간 조선반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간교(奸巧)하기는 춘추시대 진나라의 침략행위와 흡사하다.
무릇 삼라만상(森羅萬象)은 공존공생(共存共生)의 관계에 있다. 숲이 없으면 새가 살아갈 수가 없다. 물이 없는 연못에서 고기가 존재할 수 없다. 협력업체가 흔들리면 주력업체도 어렵게 된다. 농부의 흘린 땀과 어부의 힘든 고생으로 음식과 반찬을 온전하게 들 수 있는 것과 같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단지에 있는 목욕탕의 목욕료가 종전에 7,000원하다가 코로나 물가 탓으로 9,000원으로 올랐다. 목욕료가 다소 올랐어도 나는 목욕을 하면서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이러한 목욕장시설을 만들어 관리하고 목욕한다면 엄청난 돈이 들 것이다. 그런데 고맙게도 목욕장 업주가 있어 단돈 9,000원 받고, 시설을 마음껏 이용하게 한다. 그러니 이 얼마나 내가 득을 보는지 모르겠다. 만약 이러한 목욕탕이 없다면 제대로 땀내면서 목욕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따라서 목욕탕 업주가 입술(盾)이라면 목욕을 하는 나는 이(齒)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가 생각해 본다.
부부관계 역시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아내나 남편 중에 누가 입술(盾)이고 누가 이(齒) 인지는 따질 필요가 없다. 부부 모두가 입술이 되기도 하고, 이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아내의 공덕을 모르던 자도 아내가 집을 몇 일만 비우면, 아내의 수고로움과 고마움을 알게 된다. 아내가 없으면 인생은 추울 것이다. 아내가 내 옆에 있기에 내 인생이 따뜻한 것이다. 평소에 남편을 비판하면서, ‘그 인간 만나서 이런 고생을 한다’라고 푸념하던 여자도 막상 남편이 없어지고 나면 얼마나 쓸쓸하고 황량(荒涼)할 것인가, 그래서 홀로된 여자를 미망인(未亡人)이라고 부르기도 했던 것이다.
주위에 가족이 없으면 누구나 외롭고 쓸쓸하게 된다. 맹자가 왕도정치(王道政治)는 환과고독(鰥寡孤獨)을 잘 보살피는 것이라고 했다. 환과고독이란 ①늙고 아내가 없는 사람(환:鰥)과 ②늙고 남편이 없는 사람(과:寡)과 ③ 어리고 부모가 없는 사람(고:孤)과 ➃ 늙어서 자식이 없는 사람(독:獨)을 가리킨다. 이처럼 외롭고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들을 잘 보살피는 것이 왕도정치의 주요한 통치원리로 여겼다. 21세기의 복지국가론과 흡사하다
인간만사 따지고 보면, 세상에 나 혼자 잘나서 되는 일은 없다. 누군가가 옆에서 도와주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잘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가족에게 감사하고, 스승에게 감사하고, 상사에게 감사하고, 동료와 부하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인간 세상이 모두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이기 때문이다.(2023.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