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자 단체들이 공급자를 분열시키기 위해 종별계약 카드를 의도적으로 들고 나왔어요. 협상과정에서 가입자단체는 치과에 대해서는 노인틀니 가지고, 병원에는 MRI갖고, 약국에는 수가인하를 거론하면서 압박해 왔죠.”
약사회 실무대표로 요양급여비용협의회에 참가하면서 시민사회단체와 치열한 수가협상을 벌인 이은동 보험이사(서울약대졸, 51)는 올 수가협상과정에서 느낀 소감을 묻자 “가입자단체에서 교묘한 전략을 구사했다”고 평가했다.
실제 지난 11월9일 의약단체장과 공단 이사장과의 간담회 직후 가진 모임에서 요양급여비용협의회는 표결(4 대 1로) 끝에 단일한 환산지수로 가기로 결정했음에도 의협은 그 다음날인 10일 긴급상임이사회를 열어 종별계약을 의결한 반면, 병협은 11일 긴급병원장회의를 열어 단일계약으로 결정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당시 건강보험공단에서 꺼낸 협상카드는 약국의 경우 올해보다 오히려 6.06% 인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단과 가입자단체, 의협의 요구대로 종별계약이 성사된다면 약국은 조제수가 인하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된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는 공단의 연구용역에 대한 의약단체 연구자들의 반박이 제기되면서 극복되기 시작했다. 지옥에서 천당을 오간 셈이다.
“약국의 수가를 결정할 때는 의료물가지수의 약품비와 단위요소수익(투약일수당 증가율)의 약품비는 이윤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제외되고 조제행위료만 인용해야 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따라서 공단에 약품비가 포함된다면 약국의 수가가 인상될 경우 약값까지 올리게 된다는 문제점을 제기했습니다.”
이 보험이사는 “공단에서 약사회 주장을 수용했지만 결국 수가협상 과정에서는 보정된 수치를 들고나오지는 않았다”며 “약국의 개설초기 투자한 자본금에 대한 기회비용이 반영되지 않은 것도 큰 불만”이라며 이번 수가협상에서의 아쉬움을 드러냈다.
“공단의 연구용역을 수행한 김진현 교수는 연구에 주로 국세청 자료를 사용했어요. 하지만 약국의 경우 건강보험 조제수입은 물론 일반의약품 매출액까지 100%로 노출돼 있습니다. 하지만 비급여 분야가 많은 다른 요양기관은 비급여 수입이 완전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어요.”
이 보험이사는 건강보험공단과 시민사회단체가 주장하는 종별계약제에 대해 "원칙적으로 대하지는 않는다"고 말한 뒤 “종별(분야별) 계약으로 나가기 위해선 합리적인 기준이 제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별 수가계약이라는 좁은 틀에서 볼 것이 아니라 지불제도 전반에 걸치 문제로 크게 봐야 합니다. 내년에는 지불제도에 대한 공동의 연구를 진행시켜 현행 제도를 보완할 것인지 아니면 총액계약제나 종별계약제로 갈 필요가 있는지를 검토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합니다.”
약사회가 이번 수가협상에 투입한 인력은 의사협회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그러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번 수가와 보험료를 결정하면서 가장 눈에띠는 협상력을 발휘한 곳이 약사회”라고 평가했다.
아마 수가인하의 위기에서 탈출하면서 실리를 챙겼기 때문일 것이다.
시민단체의 이러한 평가 이면에는 약사회에서 4년째 보험업무만 담당해온 이은동 이사의 노하우가 큰 몫을 한 것만은 사실이다.
“시민단체는 올해 수가보다는 1조5,000억원을 보장성 강화에 투입하는 문제에 최우선을 둔 것 같아요. 보장성이 강화되면 수가 몇 퍼센트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가입자들도 보험료 일부를 올리면서 저수가라는 점을 일부 인정한 셈이다. 서로 윈윈한 겁니다.”
“이번 수가협상 과정에서 자다가도 대책이 떠오르면 일어나 메모지를 꺼내 들었다”는 이은동 보험이사. 서울대 약대 출신인 그는 현재 성대 임상약학대학원 사회약학과 5학기를 다니며 늦깍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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