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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보성 77코스
비봉마리나-선소마을-청포마을-객산마을-연동마을-금광마을-율포솔밭해수욕장
20220623
1.보성 득량만 해안의 운무 풍경의 비밀
남파랑길 77코스를 탐방하기 위해 보성군 득량면 비봉리 해안 비봉마리나 앞에 도착했다. 2주 전 남파랑길 76코스를 역방향으로 탐방할 때, 76코스 끝지점에 이르지 못한 비봉공룡공원에서 시작하였다. 그래서 77코스 시작지점에서 비봉공룡공원까지 거슬러올라갔다가 남파랑길 77코스 시작지점으로 되돌아와 77코스를 정방향으로 탐방하기 위해 출발한다.
곧 비가 내릴 듯 날씨는 잔뜩 찌푸려 있고, 운무가 짙게 바다에 덮여 있지만 가까운 해안은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미지의 길은 새로운 탐험의 길로서 무지의 상태로 모든 것이 깜깜한 상태다. 그 길을 확인하기 위해 표시된 지명과 표지판의 안내문, 거리의 도로명 등을 살피고 뒤돌아보고 두리번거린다. 그런데 이번 탐방길은 이미 탐방한 고흥반도의 고흥만 북쪽을 마주하며 걷는 길이다. 그렇지만 바다 건너편 고흥반도는 농무에 덮여 희끄무레한 형상으로만 나타나 위치 감각을 잡을 수 없다. 탐방한 길의 체험이 짙은 운무에 가려져 그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지만 어느 순간에 섬광처럼 빛나 운무를 걷어내며 그 탐방지의 위치와 현재의 위치를 연결시켜 줄 것이다.
아름다움은 어둠 속에서도 살아난다. 그런데 길손은 이 어둠 속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하고 한탄할 뿐이다. 득량만 보성 해안의 아름다움을 밝은 햇살 속에서도 제대로 알아차릴지 의문인데, 운무 속에서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오직 득량도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 뻘뻘 땀을 흘렸을 뿐이다. 그런데 운무 속에서 득량도인 줄 알았던 섬, 운무 속에서도 보였던 건물이 솟아 있는 그곳은, 섬이 아니라 고흥군 도덕면 용동리 고흥썬밸리리조트가 있는 고흥반도 북쪽 끝지점이었다. 그 추억을 왜 떠올리지 못했을까? 고흥썬밸리리조트 앞에서 고흥만방조제를 건너 풍류해안으로 탐방했던 그날의 추억을 왜 기억하지 못했을까? 고흥만방조제에서 팔영산, 천등산, 비봉산을 조망하며, 녹동항의 소록대교를 가늠하던 그날의 추억이 왜 지금에서야 선명히 기억되는가? 그것을 오직 날씨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무지의 소치다. 햇살 투명한 밝은 날의 남파랑길 77코스 탐방길은 아름다울 것이라고, 빛나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줄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길손은 77코스 탐방의 넋두리를 조금 풀어 놓는다.
남파랑길 77코스의 명품이 어디에 있을까? 명품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찾아지는 것, 발견해야 하는 것인데, 운무 속에서 숨은 그림 찾기는 길손에게는 너무나 벅찬 것이다.
"선소마을은 득량만에 접한 바닷가 마을인데, 해안가의 경사가 급하여 배가 조류에 관계없이 항상 드나들 수 있어 조선조 명종 때 이곳에다 관방(변방의 방비)의 선소(船所)를 두어 배를 짓고 병사를 주둔시켜 바다를 지켰다고 한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무기와 군량을 모으고 병선을 만든 곳이며, 병졸들이 주둔하여 훈련하였다"고 하는 득량면 비봉리 선소(船所) 마을이 77코스 첫 탐방지이다. 마리나 시설, 어촌체험장, 공룡알 화석지가 있는데, 특히 천연기념물 제418호로 지정된 공룡알 화석산지는 세계적 규모의 공룡알과 공룡알 둥지 화석지라고 한다. 그래서 도로 이름도 공룡로라고 명명한 곳이다. 선소 해안과 공룡로에서 건너편 고흥반도와 고흥만방조제를 투명한 햇살 속에서 볼 수 있었다면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회천면 객산리 객산마을에서 큰재를 넘어 무지개골과 서당항을 내려보고 뒤돌아서면 필봉이 바라보이는 풍경 또한 명품에 견줄 수 있다. 바다 건너편으로는 여전히 고흥반도가 희끄무레하게 모습을 드러내준다. 무지개골재를 내려서며 바라보는 활짝 펼쳐진 운무의 득량만 해안은 장엄하며 신비롭다. 이 수묵화 풍경은 햇살 밝은 날이라면 느끼지 못할 깊은 맛이 있다. 은밀한 깊이, 마을과 마을이 이어지는 듯 숨어 있는 듯, 끝내 밝혀지지 않을 비밀을 숨긴 풍경이다. 그 풍경을 더 비밀스럽게 하는 것은 득량도, 비밀을 간직한 득량도가 운무의 바다에서 사라지는 듯 나타나는 듯 가슴을 졸이게 한다.
회천면 서당리, 천포리, 화죽리, 군농리로 이어지는 활 모양의 득량만 해안선이 군농리 금광마을로 이어진다. 이 해안을 따라가는 길 또한 수수께끼를 풀어가고 스무고개를 넘어가듯 복잡하다. 멀리서 보기에는 활 모양의 단순한 해안이지만 그 해안선을 따라가기는 비밀의 문을 하나씩 열고 나아가는 길이다. 그 길을 복잡하게 하는 것은 득량만으로 흘러드는 화죽천이 화죽리와 천포리, 화죽리와 서당리 사이를 가르며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화죽천을 오르내리고 마을과는 멀리 떨어져, 화죽천 하구의 갈대습지를 거치고, 득량만 해안에 바짝 붙어서 운무에 덮인 고흥반도를 숨은 그림을 찾듯 걸어가는 득량만 해안길이 그날의 명품에 속할 것이다.
금광마을 뒤쪽 해안에 인상적인 두 그루 나무가 있다. 한 그루는 언덕에 위태롭게 비스듬하게 솟아 있는데, 팽나무일까, 분명한 수종을 알 수 없지만 소나무와 함께 자라고 있으며 조금 떨어진 곳에 그와 같은 수종의 나무는 고사하였다. 또 한 그루는 해안 끝에 푸른 잎을 무성히 달고 초록빛 열매들을 키우고 있는 팽나무다. 이 위풍당당한 두 그루의 나무가 해안의 풍경을 지배하는 듯 서당리-천포리-화죽리-군농리로 이어지는 득량만 해안 끝에서 운무의 잿빛 바다에 푸른 초록을 뿜어낸다. 그 초록빛을 받으면서 바다에 공기돌 같은 바위들이 옹기종기 펼쳐져 있다. 이 바위들은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서 육지로 걸어나올 듯한 모습이다. 이 풍경을 명품의 반열에 올리고 싶다.
금광마을로 들어서면 벽화가 눈길을 끈다. 빨간 석류꽃이 피어 마음을 설레게 하고 벽화의 그림은 길손의 마음을 풀어 놓는다. 금광마을은 원래 강변마을이라 불렸는데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때 부자마을로 잘 살아 보자는 주민들의 뜻을 모아 '바다에서 어장으로 빛을 보게 하자'는 뜻으로 金光이라 개명하였다고 한다. 금광마을을 안에서 본 뒤 밖으로 나가 언덕에서 바라보면 황금빛이 반짝인다. 금광선착장이 마을 안으로 들어와 있고, 언덕에는 펜션인 듯한 이국적 풍모의 건물이 솟아 있는 낭만적 풍경을 연출한다. 잿빛의 운무도 마을의 밝음을 덮지 못하는 듯 황금빛이 휘황찬란하게 느껴진다. 그 빛은 물질적 부유의 황금빛이 아니라 마음이 풍요한 황금빛 같다.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마을, 여름밤의 어둠을 밝히는 반딧불처럼 작은 마을이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금광마을 서쪽 득량만 해안으로 나갔다. 군농리 해안은 동율리 동율항까지 이어진다. 고흥반도와 소록도와 거금도를 조망하며 걸을 수 있는 득량만 군농리 해안, 플라밍고펜션 아래에는 바다로 나간 해상뎈이 조성되어 있다. 이 해상뎈에서 풍경을 조망하며 아련해진다. 걸어온 길은 그 길에서, 걸어갈 길 또한 그 길에서, 온전히 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는데, 그 길들은 운무 속에 숨어서 미동도 하지 않는다. 길손은 마음으로 그리고, 상상으로 그리는 풍경을 운무의 바다에 펼쳐놓았다. 흐릿하게 떠있는 득량도와 고흥반도가 그림 풍경에 들어와 허우적거리는 듯, 가슴이 탄다. 이럴 줄을 몰랐다는 말인가? 모든 것이 숨어 있고 오직 검푸른 잿빛으로만 그려지는 절정의 운무 바다 풍경을 득량만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군농리 해상뎈에서 완전한 잿빛 바다 풍경에 길손은 허물어지면서 일어섰다.
2.걸은 과정
비봉공룡알화석지와 오봉산은 남파랑길 탐방에서는 갈 수 없고, 율포솔밭해수욕장은 남파랑길 77코스 종점이다.
앞쪽 바다에 선소항의 바다낚시공원의 시설물이 보인다.
앞에 보이는 해안의 시설물은 보성군 득량면 비봉리 선소항의 바다낚시공원, 건너편의 운무에 덮인 곳은 고흥반도의 도덕면 용동리 용동해안이며, 끝에 보이는 건물은 고흥썬밸리리조트, 그 앞으로 고흥만 방조제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선소마을은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병졸들을 준둔시켜 훈련하고, 무기와 군량을 모으고 병선을 만들던 곳에서 연유가 되어 선소(船所)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 청정해역 득량만을 배경으로 각종 어패류가 풍부하여 갯벌체험 활동이 적합할 뿐 아니라 공룡알 화석지까지 발견되어 자연생태학습장으로 각광받고 있는 곳이다.
바로 아래 해안이 공룡알 화석지일까? 동글동글한 것이 공룡알일까? 희미하지만 바다 오른쪽에 길게 이어지는 고흥반도의 끝은 고흥군 두원면 대전리 대전해수욕장 해송림과 용등산일 것이라 가늠한다.
마을 지명은 1592년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무기와 군량을 모으고 병선을 만든 곳이며, 병졸들이 주둔하여 훈련하였다고 하여 예로부터 선소(船所)라고 불려오고 있다. 선소마을은 득량만에 접한 바닷가 마을인데, 해안가의 경사가 급하여 배가 조류에 관계없이 항상 드나들 수 있어 조선조 명종 때 이곳에다 관방(변방의 방비)의 선소(船所)를 두어 배를 짓고 병사를 주둔시켜 바다를 지켰다고 한다.
뒤쪽에 보이는 건물은 청풍 김씨 제각이다.
공룡알 화석지와 바다낚시공원으로 가는 길이다.
이곳은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한 세계적 규모의 공룡알과 공룡알 둥지 화석지이다. 중생대 백악기의 퇴적층으로 3km 해안선 내에 10여 개의 둥지와 직경 9~15cm 공룡알 100여 개가 관찰(2001년까지 발굴조사 결과)되고 있다. 약 5~6종에 이른 초식공룡의 집단 산란지로 추정된다. 두께 1.5~2.5m의 공룡알 껍질은 8겹으로 중첩되어 있다. 공룡알 내부에서 공룡 태아의 골격구조가 발견되지 않아 부화된 후 화석이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공룡의 부화습성 및 산란지의 환경을 밝힐 수 있는 귀중한 학술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보성군 득량면 비봉리에서 보성군 회천면 객산리로 넘어간다.
남파랑길은 이곳으로 들어가지 않고 공룡로를 따라 객산마을 방향으로 직진한다.
바위들이 특이하다.
정자 앞 해송이 멋지다.
이 고개를 넘어 보성군 회천면 객산리에서 회천면 서당리로 들어간다.
득량만의 보성군 회천면 화죽리와 군농리 해안길을 걸을 때 붓 모양을 한 필봉이 기준이 되어 준다.
이 골짜기는 무지개골이라 이르는 듯. 건너편 고흥반도가 길게 누워 있는데, 왼쪽 끝에 고흥썬밸리리조트 건물이 보인다. 그 왼쪽으로 길게 고흥만방조제가 가늠되며 그 왼쪽으로 풍류해변도 그려진다.
공룡로를 따라 서당리 연동마을로 내려간다.
필봉이 우뚝하고, 오른쪽 아래 서당항과 무지개골이 있다. 오른쪽 고흥반도 고흥만의 증표가 되는 하얀 건물 고흥썬밸리리조트가 희미하지만 보이고, 그 왼쪽으로 고흥만방조제가 길게 이어지며 그 왼쪽의 풍류해변이 그려진다.
서당리, 천포리, 화죽리, 군농리로 이어지는 활 모양의 해안선을 내려보며 서당리 연동마을로 내려간다.
득량만의 중심이 되는 섬 득량도가 희미하지만 중앙에 드디어 모습을 보인다.
남파랑길은 해안선을 따라 맨 끝의 회천면 군농리 금광마을 방파제로 이어진다.
토양 개량을 위하여 정무가 무상공급하는 비료인 석회고토가 검은 비닐에 덮여 있다. 앞에 보이는 마을은 서당리 원산마을이며 원산마을 표석 앞에서 남파랑길은 왼쪽으로 꺾어 해안선을 따라간다.
77코스 종점까지 전체 12.9km 중 아직도 7.6km가 남아 있다.
공룡로를 따라서 회천면 서당리로 넘어와 연동마을을 거쳐 원산마을 입구에서 해안길로 들어왔다.
원산마을 입구에서 해안길로 들어오지 않고 공룡로를 따라가는 길은 다향길 2코스로서 화죽천의 진정교 입구에서 남파랑길과 만나게 된다. 왼쪽에 보이는 마을은 회천면 화죽리 묵산마을, 오른쪽은 천포리 천포마을이다.
득량만으로 흘러드는 화죽천을 따라 오른다. 화죽천 왼쪽 위는 화죽리 묵산마을, 오른쪽은 천포리 천포마을이다.
공룡로 건너편 왼쪽에 천포리 천포마을, 맨 오른쪽은 서당리 원서당마을로 천포교회가 보인다.
오른쪽 위에 화죽천의 선정교가 보이며 남파랑길은 선정교를 건너 화죽천 맞은편 천변길을 따라 내려온다. 건너편 왼쪽에 성천교회가 보이는데 그 오른쪽 아래는 화죽리 묵산마을, 그 왼쪽은 화당마을, 맨 왼쪽은 마산마을이라고 추정한다.
선정교를 건너 화죽천변을 따라 내려온다.
물 속에 산소를 공급하는 수차가 돌아가고 있다. 남파랑길은 화죽천 하구를 거쳐 득량만 해안을 따라 이어진다.
왼쪽 산봉 아래 서당항 방파제와 연동마을이 보인다. 건너편 중앙에 고흥반도가 길게 누워 있다. 반도의 동쪽(왼쪽) 끝은 고흥만방조제의 끝인 도덕면 용동리 고흥썬밸리리조트가 있는 곳이며 서쪽(오른쪽) 끝은 소록도와 이어지는 녹동항이 있는 곳이다. 자세히 살피면 흐릿하지만 소록도와 거금도가 들어온다.
공룡로의 중앙 오른쪽 연동마을을 거쳐 원산마을 입구에서 해안으로 들어와 해안길을 따라온 길이다. 해안가 왼쪽에 세워져 있는 건물은 회천면 서당리 마을의 하수처리 시설물이다.
화죽천 오른쪽 천변길을 따라 올라갔다가 선정교를 건너 왕새우양식장을 거쳐 화죽천 하구로 내려왔다. 앞에 보이는 쉼터시설에서 요기를 하고 출발했다. 화죽천 건너편의 마을은 회천면 천포리 천포마을이다.
남파랑길은 맨 끝에 보이는 회천면 군농리 금광마을 방파제까지 해안길을 따라 이어진다. 오른쪽 산봉은 봉화산인 듯.
화죽리는 한때 장흥군 편포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마산리, 화당리, 지등리, 서동리, 천동리, 두곡리, 용산리, 회동리를 병합하여 화죽봉(꽃대봉) 밑이 되므로 화죽리라 하여 회천면에 편입되었다. 마산마을은 조선 철종 때 수원인 백창수씨와 마영권이란 분이 이곳에 터를 잡았고 후에 청풍 한씨가 입촌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의 이름은 마을 옆에 마산골이란 골짜기가 있어서 마산이라 했다고 한다.
마산마을은 화죽천변에서 성천교회를 중심으로 하여 묵산마을, 화당마을과 함께 살펴 보았다.
남파랑길 77코스는 보성 다향길 2코스+3코스와 동행한다. 득량만 갯벌 갈대습지가 펼쳐져 있고, 건너편 충의로 옆 솔숲은 칠산공원이며 그 뒤쪽에 낙지조성사업지구와 석간마을이 있다.
앞에 보이는 뎈 다리를 건너 회천면 화죽리에서 군농리로 넘어온 듯. 뎈 다리 뒤쪽에 보이는 마을이 화죽리 마산마을이다.
고흥반도의 도덕면 용동리 고흥썬밸리리조트 건물이 중앙에 보이며, 그 앞에 고흥만방조제가 이어지고 풍류해변이 보인다.
오른쪽 충의로 옆 솔숲은 칠산공원이고 그 뒤에 낙지조성사업지구와 석간마을이 있다.
석간어촌계에서 낙지산란장을 조성하고 낙지생산량효과를 조사하는 등 낙지조성사업을 하는 곳임을 밝히고 있다. 왼쪽 뒤의 비봉산이 분명한 증표가 되어 준다.
석간마을 앞 바다가 낙지조성사업지구인 듯하다.
군농교회가 있는 마을은 회천면 군농리 동백마을인 듯.
석간마을은 약 700여 년 전 김해 김씨 후손이 들어와 터를 잡았고, 그후 여러 성씨들이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 이름은 마을 앞 바다에 바위가 옹기종기 모여 있어 석간(돌틈)이라 했는데, 전에는 이곳에서 기와를 구운 곳이라 하여 와리라고도 했다.
석간마을 안내판이 마을과 동떨어진 곳에 있는 것 같다.
비봉산 아래로부터 걸어온 득량만 해안이 운무와 미세먼지에 부옇다. 칠산공원과 낙지조성사업지구, 왼쪽에 석간마을이 모두 확인된다. 맨 오른쪽에 비봉산이 우뚝 솟아 증표가 된다.
바위들이 공깃돌 같은 모양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어 특색이 있다.
입구의 기와집들이 권세 있는 집인 듯하다.
금광길 해안에 앞의 팽나무와 언덕 위의 위태로운 나무가 아주 인상적이다.
득량만 금광마을 해안의 팽나무가 멋지고 바다의 돌들이 운치 있다. 그 돌들은 보존의 필요가 있을 듯.
오른쪽 서당리 원산마을에서부터 걸어온 길이 운무 때문에 명확하지 않다. 중앙의 칠산공원과 석간마을, 낙지조성사업지구를 거쳐온 길은 희미하지만 가늠된다. 바다의 돌들이 옹기종기 모여 멋있다. 잘 보존되기를 바란다.
금광마을은 주택 벽에 벽화들을 조성하였다.
집 안 마당에 석류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다.
금광마을은 보성의 명산 봉화산 줄기가 굽이치며 남쪽으로 내려오다 보성만에 이르러 멈춘 자리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해변을 따라 茶鄕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고, 다도해 푸른 바다 저편에는 고흥반도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여름이면 아름드리 노거수 배롱나무가 분홍색 꽃을 곱게 피우는 풍광이 참 좋은 마을이다. 마을 유래를 살펴보면 김해 김씨 후손이 고려 초기에 郡池에서 살다가 고려 중엽 이곳으로 이거해 와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지형이 거북이 형국으로, 등 부분은 장등, 바닷가 부분은 강변이라 하였고, 머리 부분은 또멧등, 꼬리 부분을 사장등이라 하였으며 이곳에는 500년 된 큰 정자나무가 있었으나 지금은 고사되어 없어지고 터만 남아 있다.
이곳은 한때 장흥군 천포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군지리, 강변리, 신촌리, 동백리, 당산리, 분매리, 농소리, 화동리를 병합하여 군지와 농소의 이름을 따서 군농리라 하여 보성군 회천면에 편입되었다. 마을 이름은 본래 강변이라 하였으나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5년 부자마을로 잘 살아 보자는 주민들의 뜻을 모아 당시 김종출씨가 한학에 능통한 이장문씨에게 건의하여 바다에서 어장으로 빛을 보게 하자는 뜻으로 金光이라 개명하였다. 금광마을은 현재 35가구 60여 명의 주민 대부분이 농어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다. 그간 숙원사업이던 마으로히관 준공을 자축하며 도움 주신 분들의 고마움을 새기고 마을의 무궁한 발전과 주민들의 행복한 삶을 기원하며 이 기념비를 세운다. 이윤섭 撰
2012년 10월 16일 마을주민 일동
금광마을 위쪽 충의로 위에 있다.
금광마을에서 충의로로 올라와 잠시 충의로를 따라가다가 펜션이 보이는 곳에서 왼쪽 길로 들어가 해안으로 나간다.
남파랑길은 금광마을 뒤쪽 득량만 해안을 따라오다가 금광마을로 들어와 마을을 빙 돌아왔다.
햇살펜션 앞에서 플라밍고펜션 앞으로 이어지는 회천면 군농리 득량만 해안을 따라간다.
중앙에 득량도, 건너편 왼쪽으로 고흥반도가 희미하게 보인다.
남파랑길은 해안의 백사장에서 우암길로 나가서 바다로 길게 나간 방파제 앞으로 이어진다.
평강교회 수련장과 그 옆 평강 재가노인 복지센터 앞을 거쳐 방파제 방향으로 진행한다. 여기서부터 동율선착장 입구까지 지압길이 조성되어 있고 해안 쪽에 방호 목책이 설치되어 있는데, 목책 중간중간에 보성 지역의 가보고 싶은 곳들에 대한 안내판을 만들어 동율항 입구까지 설치하여 놓았다.
평강 재가노인 복지센터에서 정수기의 시원한 냉수를 얻어 마시고 페트병에 물을 채워 출발한다. 아주머니께 감사드린다.
플라밍고펜션 앞에서 걸어온 해안길과 군농리 백사장이 길게 펼쳐져 있다.
한국차박물관은 천혜의 차밭경관과 인접하여 지어진 건물로, 한국의 차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올바른 차 문화의 정립과 보급, 그리고 한국 차를 알리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제공하는, 대한민국 차의 미래를 여는 시대정신을 구축하는 뜻깊은 곳이다.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으로 보성차와 더불어 한국차에 대한 모든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차 문화 교류의 공간이다.
동율항 배후부지 확장 및 접안시설 확충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동율항 끝에서 군농리에서 동율리로 넘어가며 율포솔밭해수욕장이 펼쳐진다.
뒤쪽에 득량도가 보인다.
회천면 군농리에서 동율리로 넘어왔다. 우뚝 솟은 흰 건물은 동율리 율포솔밭해수욕장 뒤의 다빈치콘도이다.
왼쪽에 득량도가 보인다.
율포솔밭해수욕장의 명품 해송림이 길게 이어진다.
득량도가 포토존 안에 들어온다.
동율리는 고려말 여러 성씨가 이주하여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황무지였던 이곳을 220여 년 전 해주 오씨 표은이 이곳에 소나무를 심어 울창하게 만들었다. 일제시대 때 장흥읍에 살던 일본인 송정봉치가 매수하여 해수욕장으로 개발하였다. 도내 유일한 백사청송으로 유명한 곳으로 여름철 관광 휴양객의 휴식 공간과 지역 주민들의 보안림 및 방풍림 역할을 하는 중요한 숲이다.
남파랑길 77코스의 끝지점이며 78코스의 시작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