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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이 시인이다
윤동재(시인)
이오덕 선생님을 처음 뵙고 가르침을 받은 지 어언 마흔 해가 다 되어 갑니다. 제가 서울 잠실에 살고 있을 때, 이오덕 선생님이 경북 성주에서 과천으로 오시고 난 뒤에는 자주 찾아뵙고 선생님과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선생님 댁에서 자고 일터에 바로 출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혼 초였는데 집 사람이 화가 나서 이오덕 선생님이 당신 애인이냐고 따졌습니다. 그때, 제가 당신은 ‘부인’이고 이오덕 선생님은 ‘애인’이라고 했습니다. 덧붙여서 부인은 금방 싫증이 나지만 애인은 평생 싫증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중국말에 ‘人’은 부인을 가리키고 우리가 애인이라고 하는 말은 ‘心上人’이라고 합니다. 두 말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애인이라고 할 때 ‘ ’라는 중국어 간체자에는 마음 심이 빠져 있고 심상인이라고 할 때 ‘心’이라는 중국어 간체자에는 마음 심이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부인은 마음에 없지만 애인은 늘 마음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한참 뒤 생각해 보니 집사람은 애인이자 부인인데 그걸 모르고 깝죽댔으니 집사람에게 두고두고 아주 미안했습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저에게는 이오덕 선생님이 그만큼 소중한 분이시라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살아 계실 때 제 애인이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제 애인입니다. 요즘은 제 애인인 이오덕 선생님을 더 자주 만나 뵙습니다. 어떻게 자주 만나 뵐 수 있느냐고요. 이오덕 선생님이 쓰신 책속에 이오덕 선생님이 살아계십니다. 책만 펼치면 언제 어디서고 이오덕 선생님을 만나 뵐 수 있고, 무엇이든 여쭈어 볼 수도 있고, 이야기를 오래도록 주고받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제 애인 이오덕 선생님 자랑을 실컷 하고 싶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오덕 선생님은 사실 저 혼자만의 애인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애인이기도 하고 먼먼 뒷날 그 누구의 애인이 될 수도 있고, 만인의 애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게 더 자랑입니다. 애인 자랑은 팔불출에도 속하지 않으니 더욱 마음 놓고 자랑하려고 합니다. 제 애인 자랑이 혹 마음속으로 불편하게 여겨지시더라도 잠깐만 너그러이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오덕 문학관이 이오덕 선생님이 태어나고 자란 경북 청송군 현서면 덕계리에 지난해 세워지기 시작하여 곧 마무리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정말 기쁩니다. 청송군 현서면 덕계리는 경북 영천군과 청송군의 경계인 노귀재에서 조금 내려오면 있습니다. 노귀재가 어떤 재입니까. 저 임진란 때 일본군이 쳐들어왔다가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이 고개를 넘어서부터는 청송이다 했더니 이여송도 무서운데 청송은 더 무서울 것 아니냐며 일본군이 발길을 돌렸다고 해서 노귀재라고 하지 않습니까. 일본군도 쉽게 넘보지 못한 땅. 이곳 덕계리는 과연 이오덕 선생님처럼 훌륭하신 분이 태어나실 만한 곳이지요.
사실 저는 지난해 문학관을 짓기 시작할 때 미리 둘러보았습니다. 제가 평소 알고 지내는 서울대 교수님 두 분이 이오덕 선생님 생가를 한 번 찾아보고 싶다고 말씀하셔서 생가를 미리 알아두어야겠다고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오덕 선생님 생가 자리에 집을 짓고 사시는 김태근 선생님을 우연히 만나 뵈었습니다. 저로서는 대단한 행운이었습니다. 김태근 선생님이 그날 이오덕 선생님의 제자인 전 한국일보 편집국장 최상선 선생님이 땅을 내놓아 마을 어르신들이 쉴 수 있는 경로당을 짓고, 경로당 안에 문학관을 꾸민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아, 이제 우리나라도 문학관다운 문학관을 갖게 되는구나!’정말 기뻤습니다. 저는 바로 이오덕 선생님 아드님 이정우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덕계에 이오덕 선생님 문학관을 짓고 있더라고. 이정우 선생님 어릴 때 친구 김태근 선생님이 안내를 잘 해 주시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오덕 문학관을 마을 어른들이 쉴 수 있는 경로당 안에다 만들고 있어서 더욱 기뻤다고 말씀드렸습니다.
2001년 여름 서울대학교 교수님 일행이 러시아 문학관을 탐방하러 갈 때 저도 함께 갔습니다. 그때 뿌시낀, 톨스토이, 체호프의 문학관을 탐방했습니다. 이들 문학관의 공통점은 요란하게 새로 지은 건물이 아니고 그분들이 태어나서 살면서 잠자고, 먹고, 마시고, 쉬고, 글 쓰던 곳이었습니다. 그분들이 평소 쓰시던 방을 문학관으로 꾸며놓았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위압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고 오히려 포근하고 살갑게 느껴졌습니다. 러시아어나 독일어로 설명해 주는 분 말고는 관리하는 사람도 눈에 띄지 않고 특별히 성역화하지도 않았습니다. 특히 체호프 문학관은 사과밭 가운데 있는 단층집이었습니다. 이오덕 문학관이 생가에서 가깝고 둘레에 사과밭도 많고 해서 체호프 문학관과 여러 모로 비슷합니다.
몇 해 전 우리나라에서 서원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고 힘쓴 적이 있습니다. 많은 애를 썼지만 서원이 등재되지 못했습니다. 그때 앞장서서 애쓰신 분한테 직접 들었는데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 위해서는 문화유산이 인류공유의 자산으로서 지금도 인류가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인가를 면밀히 따진다고 했습니다. 서원이 선현에 대한 존숭과 하나의 교육기관 구실을 한 것은 틀림없지만 인류 공유의 자산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받지 못해 등재되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마무리를 앞두고 있는 이오덕 문학관은 먼저 덕계리 주민들의 쉼터입니다. 마을에서 살고 계시는 분은 누구나 쓸 수 있는 쉼터입니다. 여기에 방 한 칸을 이오덕 문학관으로 꾸며 누구나 이오덕 선생님의 귀한 문학 정신을 떠올리며 함께 쓸 수 있도록 지어지고 있습니다. 방안에 들어서면 누구라도 편한 마음으로 마치 살아계시는 이오덕 선생님을 모시고 이오덕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귀한 말씀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도록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덕계리 주민들이나 이곳을 찾아오는 누구라도 관리자이자 이용자가 되어 쓸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떠받들고 보여주기만을 위한 문학관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유하여 함께 쓸 수 있는 문학관으로 지어지는 것이 참으로 반갑고 기쁩니다. 우리도 이제 이런 문학관 하나쯤은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우리 청송이 이런 문학관을 먼저 갖게 될 수 있다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기쁩니다.
사실 문학관은 땅위에다 짓는 것보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 짓는 것이 더욱 좋습니다. 좋은 문학관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지어져야 합니다. 이런 뜻으로 본다면 이오덕 문학관은 오래전에 이미 지어졌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의 삶과 글을 보고 흠모하면서 이오덕 선생님의 가르침을 삶속에서 실천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이미 튼실하게 지어져 있습니다. 유형의 문학관보다 이런 무형의 문학관이 더 오래 갑니다. 돌에 새긴 글(石碑)보다 입으로 전하는 말(口碑)이 더 오래간다는 이치와 같습니다.
한 사람의 일생을 평가할 때 일대기를 따라 평가하는 방법이 있고, 생애 가운데 가장 빛나는 업적을 골라내어 그것을 중심에다 놓고 집중적으로 평가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의 문학과 사상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오늘 이 자리는 이오덕 선생님의 일대기를 차근차근 짚어가면서 말씀드리는 것보다는 이오덕 선생님의 업적 가운데 가장 빛나고 도드라지는 부분을 드러내어 집중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이 더 낫습니다.
막스 뮐러라는 종교학자는 한 가지만 아는 사람은 그 한 가지도 제대로 모른다고 했습니다. 서로 견주어 볼 만한 다른 것과 견주어 보아야 무엇이든 제대로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맹자>>에도 “權然後에 知輕重하며 度(도)然後에 知長短”이라고 했습니다 “저울로 달아보아야 가볍고 무거움을 알 수 있으며 재어 보아야 길고 짧음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의 빛나는 업적을 제대로 알려면 대표작을 들어서 다른 분과 견주어 보아야 합니다. 이오덕 선생님의 책 가운데 어떤 것이 대표작인가 저는 단연 <<일하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과 견주어 보는 것이 좋은가. 저는 공자님과 견주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이오덕 선생님을 우상화하거나 신격화하거나 절대시하거나 과대평가하기 위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공자님과 이오덕 선생님을 견주어 보면 이오덕 선생님의 훌륭한 점이 더욱 잘 드러납니다.
공자님과 이오덕 선생님은 제자를 가르칠 때 무엇보다도 시를 첫머리로 삼았습니다. <<논어>> 제17편 <양화편>에 공자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어찌하여 시를 배우지 않느냐?”고 나무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러고는 “시詩는 가이흥可以興이며 가이관可以觀이며 가이군可以群이며 가이원可以怨이며 이지사부邇之事父며 원지사군遠之事君이요 다식어조수초목지명多識於鳥獸草木之名이니라”고 했습니다. “시는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동을 표출할 수 있으며 정치의 득실을 관찰할 수 있으며, 서로 이해하여 마음을 하나로 하는 무리가 될 수 있으며, 세상의 잘잘못에 대해서 비판하고 원망할 수 있으며, 가까이로는 부모를 섬기고 멀리로는 군주를 섬길 수 있고,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해 준다” 이러니 시 공부를 절대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또, 공자님은 아들 백어에게 “너는 시를 공부했느냐? 시를 공부하지 않으면 마치 담벼락을 마주하고 서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시 공부의 중요성을 제자와 아들에게 이와 같이 나란히 일러주었지요.
공자님은 모두에게 읽힐 만한 시를 모아서 엮었습니다. 시를 부지런히 읽게 되면 사람의 마음도 시의 마음과 같이 되어 착하고 순하고 따뜻하고 바르게 될 것이라고 믿었지요. 공자님이 엮은 책이 바로 <<시경>>이지요. <<시경>>의 원래 제목은 <<시>>입니다. 300여 편의 시가 실려 있어 <<시삼백>>이라고도 불렸지요. 기원전 2세기쯤 한나라 무제 때부터 <<시>>에다 경經자를 붙여 <<시경>>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경經’자는 원래 베를 짤 때 베틀에 세로로 걸어 놓은 실, 즉 날줄을 뜻합니다. 날줄은 씨줄과 달리 움직이지 않습니다. 씨줄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날줄은 걸어놓기만 합니다. 그래서 ‘경’이라는 말에는 ‘영원불변’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시경>>은 공자님 당시 널리 불린 것 가운데 모아서 엮은 것이지만, 이오덕 선생님이 엮은 <<일하는 아이들>>은 이오덕 선생님과 어린이들이 서로 함께한 교학상장의 결과물입니다. 교육의 주체와 객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주체입니다. 주체와 주체가 서로 만나 가르침을 주고받은 결과물입니다. 인격의 교호작용 결과물입니다. 부버가 말하고 있는 만남의 교육 결과물입니다.
<<일하는 아이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이 책은 이오덕 선생님이 시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직접 지도한 결과물 가운데 280편을 가려내어 엮은 어린이 시 작품집입니다. 1952년에 지도 한 작품이 한 편 실려 있고 죄다 1958년에서 1977년까지 20년 동안 지도한 결과물입니다. 특별히 안동 임동 동부초등학교 대곡분교 어린이의 작품이 151편, 상주 청리초등학교 어린이 작품이 71편으로 작품수가 많습니다. 이렇게 된 까닭은, 대곡분교에서는 3년 동안 교사로 있었고, 청리는 2년 반 교사로 있으면서 시 교육에 온몸을 던질 수 있었던 덕분이라고 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동시집, 동화집, 문학평론집, 우리글 우리말 바로 쓰기 책을 비롯한 교육수상집, 일기를 책으로 냈지요. 그래서 이오덕 선생님을 사람들은 시인, 동화작가, 아동문학평론가, 수필가, 교육사상가, 교육운동가, 국어학자 등 여럿으로 부릅니다. 그런데 이오덕 선생님은 스스로 <<일하는 아이들>>이 선생님의 이력서라고 하셨습니다. 이 책이 선생님의 처음과 끝이라는 말씀이겠지요. 이오덕 선생님이 평생 온힘을 쏟으신 것이 이 책에 다 있다는 말씀이겠지요. 그러고 보면 이오덕 선생님 스스로도 이 책에 대한 긍지와 자부가 대단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일하는 아이들>>은 1977년 초판이 나왔습니다. 이 책은 공자님이 엮은 <<시>>가 나중에 ‘경經’자가 붙어서 <<시경>이라고 불리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이곳’, 우리나라 학교 교육 현장에서 시를 읽히고 가르치는 많은 선생님들에게‘경經’이 되었습니다. 이 책 속에도 <<시경>>과 마찬가지로, “영원불변”의 가르침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 속에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기 생각 ·자기 느낌”을 “자기 말”로 쓸 때 참시가 된다는 ‘영원불변’의 가르침이 들어 있습니다. 시인은 누구인가. “일하는 사람이 시인이다.” “일하는 사람이 진짜 시인이다”는 가르침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읽어낼 수 있는 이러한 가르침은 남의 이야기를 옮겨 온 것이 아니고, 이오덕 선생님이 경북 북부 지역의 교육현장에서 직접 시 교육을 하면서 일궈낸 실천의 결과물이기에 생동감이 넘칩니다. ‘아하, 그렇구나!’하고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이제 <<일하는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이 책에서 우리는 이오덕 선생님의 시 교육, 시 쓰기와 관련한 세 가지 가르침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첫째 시는 누가 쓰는가? 시는 일하는 사람이 쓴다. “일하는 사람이 시인이다.”, “일하는 사람이 진짜 시인이다”라는 점입니다. 전통시대 시는 일하지 않는 사람의 전유물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한시는 일하지 않으면서 공부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만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일하는 사람은 일하느라 도무지 익히고 배울 틈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하는 사람은 시를 읽고 쓰는 일이 남의 일이라고만 여겼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이 시 교육을 실천하면서 얻어낸 깨달음은 이와는 달리, 일을 하면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일하는 사람들이 일을 하면서 우러난 감정을 쓰는 것이 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일부러 시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시가 잘 써지지 않을 때 걱정하지 말라. 일을 하라. 일을 하면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그때그때 감동이 식기 전에 자기 말로 쓰는 것이 시다. 일을 하면 시가 절로 써진다. 그러니 ‘책상물림’은 절대 시인이 될 수 없고 일하는 사람만이 시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담배 심기
-안동 대곡분교 3년 김태운
담배를 심는데
구덩이를 잘못 파서
엉덩이를 얻어맞았다.
내가 하하 허허 웃었다.
일월산 보고 웃었다.
여기서 일이 고달픈가? 일이 고달프지 않은가?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구덩이를 잘못 파서/엉덩이를 얻어맞아’도, ‘하하 허허’하고 웃어넘기는 대범함, 늠름함을 볼 수 있습니다. ‘일월산 보고 웃었다’고 말하는 어린이의 웅숭깊은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어떤 열등의식도 없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힘들고 고달프고 짜증이 났던 사람들도 이 시를 읽으면 시 속의 어린이를 따라 절로 웃게 됩니다. 이 시를 읽는 사람은 누구든지 일의 고달픔, 힘듦을 너그러이 받아들일 줄 알게 됩니다.
아기 업기
-이후분 경북 문경 김룡 초등학교 6학년
아기를 업고
골목을 다니고 있다니까
아기가 잠이 들었다.
아기가 잠이 들고는
내 등때기에 엎드렸다.
그래서 나는 아기를
방에 재워 놓고 나니까
등때기가 없는 것 같다
이 작품은 아기를 업어 본 사람만이 실감할 수 있습니다. 아기를 업어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시입니다. “등때기가 없는 것 같다”는 마지막 구절은 한시에서 쓰는 말로 하면 경책과 같은 구절입니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구절이고 이 작품에서 가장 빛나는 구절입니다. 아기를 업어 보지 않은 사람이 이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아기를 업어본 사람은 누구든 ‘그래 맞아!’하고 단숨에 공감할 수 있는 시입니다.
일을 하면 시는 절로 쏟아진다는 것을 방금 말씀드린 두 작품에서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 한시를 쓰던 사람들도 한시의 폐단이 진실한 느낌, 진실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있지 않다고 보고 진실한 느낌, 진실한 감정을 나타내는 시를 쓰자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일을 하면 진짜 느낌, 진실한 느낌이, 진실한 감정이 절로 나옵니다. 시를 쓰기 위해서도 일해야 합니다. 일을 하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습니다. 일도 하고 시도 쓰고 말입니다.
둘째, 시는 무엇을 쓰는가? 이오덕 선생님은 시는 자기 생각, 자기 느낌, 자기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면 된다고 했습니다. 시를 쓸 때 절대로 남의 장단에 춤추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시는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고, 흉내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 시는 재주를 가지고 쓸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고, 다만 순진한 마음으로, 가슴으로, 진정으로만 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청개구리
-백석현 안동 대곡분교 3년
청개구리가 나무에 앉아서 운다.
내가 큰 돌로 나무를 때리니
뒷다리 두 개를 펴고 발발 떨었다.
얼마나 아파서 저럴까?
나는 죄 될까 봐 하늘 보고 절을 하였다.
청개구리가 나무에 앉아 우는 것을 보고 청개구리를 때린 것이 아니라 나무를 때렸습니다. 그런데도 청개구리가 뒷다리 두 개를 펴고 발발 떨었습니다. 무심코 한 자신의 행동이 청개구리에게는 무서운 위해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나는 죄 될까 봐 하늘 보고 절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늘 보고 절하는 마음’, 이런 마음이 ‘아이의 마음’이며 ‘시의 마음’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천진스런 자기 생각, 순진한 자기 느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또한 시라는 것입니다.
비와 아가시아
-상주 청리 3년 박훈상
비 오다 개인 날
맑기도 하다
멀리
아가시아나무 하나
온몸을 움직인다
비가 오다 갠 날의 청명감이란 누구나 느낄 수 있습니다. 비올 때는 멀리 있는 아가시아 나무가 잘 안 보이다가도 비가 갠 뒤에는 아주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가시아 나무도 비가 개어 기쁜지 ‘온몸을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그걸 따라 내 마음도 흥겹게 따라 움직이고 내 몸도 절로 움직입니다. 나무와 내가 완전히 하나가 되었습니다. 자연 친화, 자연합일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얼 따라 하고 흉내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자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시가 절로 쓰여 진다는 것입니다.
셋째, 시는 어떻게 쓰는가? 이오덕 선생님은 시는 남의 말로 쓰는 게 아니라 자기 말로 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땀이 배어 있고 숨결이 스며있는 말로 쓰라는 것이지요. 이오덕 선생님은 자기가 쓰는 사투리를 그대로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투리를 억지로 표준말로 바꿀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사투리에는 시를 쓰는 사람이 처해 있는 환경, 나이, 정서, 지방색 같은 것이 두루 짙게 배어 있고 이것을 표준말로 바꾸어 버리면 사투리가 갖고 있는 그것대로의 섬세한 말뜻이나 말맛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사투리는 대체 불가능한 언어라고 했습니다.
강냉이죽
-김성환 경북 상주 청리초 3학년
강냉이죽 끼리는 데 가 보니
맛있는 내금이 졸졸 난다
죽 끼리는 아이가 숟가락으로
또독또독 긁어 먹는다
난도 먹고 싶다
그걸 보니 춤이 그냥 꿀떡
넘어간다
참 먹고 싶었다
저도 학교에서 주는 강냉이죽을 먹고 자란 세대입니다. 이 시는 학교에서 강냉이가루로 죽을 끓여서 주던 시절에 쓴 시입니다.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끼리는(끓이는)”, “내금(냄새)”, “난도(나도)”와 같은 사투리를 표준말로 바꾸어 버리면 시의 맛이 확 줄어버리게 됩니다. “졸졸” “또독또독” “꿀떡” 같은 시늉말과 사투리가 어울려 시가 생동감이 넘치고 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이런 말들은 모두 이 어린이 자신의 말이 되어 있”고, “이런 자기 말은 자기 생활과 생각을 귀하게 여겨서 그것을 그대로 솔직하게 나타내는 데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 것을 보잘것없게 여기고 덮어 두려고 하면 자기 말이 나올 수 없고 언제나 남 따라 하는 죽은 말만 쓰게 된다”고 했습니다. 죽은 말을 쓰면 죽은 시가 되고, 살아 있는 말을 쓰면 살아 있는 시가 된다는 것이지요. 평소 입으로 하는 말이 살아 있는 말입니다. 입으로 하는 말을 그대로 살려 쓰는 것이 시 쓰기에서도 중요하다는 것을 이오덕 선생님은 아주 강조하셨습니다.
눈물
-남경자 경북 안동 대곡분교 3학년
아침을 먹다가
동생이 날 보고 머라 해서
눈물이 나온다
어머니가
“눈물도 썩어 빠졌다.
고마 눈을 콱 쑤셔 불라”
하니 할머니가
“눈을 쑤시면 눈물이
더 나오라고?”하신다.
나는 눈물이 썩어 빠졌다
이 작품에 보면 남을 흉내 내려고 한 것도 없고, 머리로 억지로 꾸며낸 것도 없습니다. 자기 어머니가 남자인 동생만을 귀여워하고 여자인 저를 구박한다고 생각하여 이 작품을 쓴 사람은 걸핏하면 눈물을 흘립니다. 그래도 이 작품을 쓴 사람에게는 할머니가 같은 편이 되어 줍니다. 어머니가 “눈물도 썩어 빠졌다/고마 눈을 콱 쑤셔 불라”라고 하니 할머니는 “눈을 쑤시면 눈물이/더 나오라고?”하며 편을 들어줍니다. 이 작품에도 “머라 해서”(무슨 말을 해서), “쑤셔 불라”(쑤셔 버릴까) 같은 시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자기 말이 나옵니다. 자기 말을 떠오르는 대로 곧바로 토해냈습니다. 그래서 시가 더욱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살아있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이오덕 선생님의 <<일하는 아이들>>이라는 대표작을 통해서 읽을 수 있는 이 세 가지의 귀한 가르침은, 오늘 우리나라 초중등학교 교육 현장에서 시 교육을 열심히 하는 모든 선생님들에게 귀한 가르침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영원불변”의 가르침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시대 시 교육의“經”이 되었습니다. <<일하는 아이들>>이 없었다면 이오덕 선생님의 뒷날 책들도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책이 미리 있었기 때문에 뒷날 이어진 이오덕 선생님의 주장과 외침은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뜨거운 공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일하는 아이들>>에서 읽을 수 있는 “일하는 사람이 시인이다”는 귀한 가르침이, “삶을 가꾸는 글쓰기”와 “참교육”으로 이어졌고, 자기 생각, 자기 느낌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이, “열등의식을 극복”하고 “시정신과 유희정신” 가운데 “시정신”은 귀히 여기고, “유희정신”은 버리자는 거침없는 주장으로 나아갔습니다. 시정신이 ‘참됨’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유희정신은 ‘거짓’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에는 시정신이 들어 있어야 참시가 된다는 것이지요. 자기의 삶과 숨결이 배어 있는 자기 말로 시를 쓰자는 것이, 우리말 우리글 바로 쓰기 운동으로 깊이와 넓이를 더해 갔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한 마디로 줄이면 “일하는 사람이 시인이다”입니다. 일하는 사람의 마음이 시인의 마음입니다. 일하는 사람의 마음, 시인의 마음으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세상이 더욱 따뜻해지고 세상이 더욱 넉넉해집니다. 일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살아갈 때, 시인의 마음으로 살아 갈 때, 우리 모두 다함께 손잡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오덕 선생님을 늘 우리 안에 큰 스승으로 모시고 일하는 사람의 마음, 시인의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이오덕 선생님과의 추억이 담긴 부족한 제 시 한편 들려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기꺼이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일과 시
-윤동재
벌써 여러 해 전 일이지요
과천 이오덕 선생 댁에 갔더니
일흔이 넘은 분이
손수 밥을 짓고 빨래도 하고
방 청소도 했지요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어
걸레 이리주세요 하니
괜찮다며
일이 운동이고
일이 시라고 했지요
그러면서 아무개 시인은
시골에서 자랐는데
어릴 때 자기 집 마당 한 번
안 쓸었다며
그러니 시가 형편없다고 했지요
내가 시를 쓰니까
한 소식 깨우쳐 주려고
그러셨는지
여쭈어 보지도 않았는데
걸레로 방 먼지를 훔치면서
시는 일에서 나온다고
일이 시라고 했지요.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8년 11월 10일 제3회 청송군 이오덕 문학 축제 강연원고)
<<어린이문학>> 2018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