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TV란 썩 믿을 것이 못된다. TV는 이미지의 상자다. 실체를 과장하거나 축소하거나 왜곡하는, 믿을 수 없는 욕망의 매체다.
원철 소장은 MBC TV 프로그램 <일요일일요일밤에>의 '러브 하우스'를 통해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러브 하우스'는
소외되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집을 리모델링해주는 코너. 힘들지만 착하게 사는 그들이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멋진 집을 선물 받고 눈물 흘리는 모습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세상은 살만한
곳이고 가끔은 아름다운 일도 일어난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한다.
김원철 소장은 러브하우스에서 일명'흰머리 디자이너'로 불린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게 하는 그의 잿빛 머리칼 때문이다. 또 그는 출연자들의 상황에 동화되어 흘리던 눈물, 세심하게 배려한 인테리어와
마음에서 우러난 작은 선물, 수줍은 말투와 가식 없는 태도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인터넷사이트 '다음'의 카페에는 이제 그의
팬임을 자처하는 모임만 대 여섯 개를 넘어선다. 이런 그의 이미지와
실체 사이, 어떤 간극이 존재할까?
그는 말한다. "사실 순수한 동기로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사업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시작했죠."
그는 명지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1995년 귀국 후 건축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고, 작년 3월 독립해 자신의 사무실을 차렸다. 그러나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작은 건축 사무실이 살아남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던 그에게 러브하우스가 눈에
띈 것. 프로그램을 통해 회사 인지도를 높이고 브랜드 가치를 키우면
살아남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시작은 그러했지만 러브하우스를 통해 그는 뜻밖의 배움과 감동을 만났다. 물리적 여건은 궁핍하지만 마음으로는 결코 가난하지 않게 사는 사람들. 그들의 삶은 그의 가슴속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장 최근에 기억에 남는 집은 루게릭 병에 걸린 아버지를 둔 동희네 집. 눈을 깜빡이는 것, 한쪽 발의 발가락을 움직이는 것 외에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아버지와, 아버지를 간호하느라 늘 잠이
부족한 어머니, 그리고 어른스러운 두 딸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김원철 소장은 방안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아버지를 위해,
동네 풍경을 볼 수 있는 CCTV를 모니터로 연결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잠자는 두 딸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벽을 뚫어 작은 창을 만들었다. 건강한 사람에겐 사소한 것이겠지만 중병의 아버지에게는 마음의
창이 환히 열리는 선물이었다. 그 아버지는 의사표현이 어려운 가운데도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했다. 눈 깜박임을 통해 자음과 모음을 지정해가며'뼛속깊이 감사 드린다'는 말을 전했다. 중병의 아버지는 회한과 고마움으로, 그의 표현에 의하면 눈이 아니라 얼굴로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그 모습에 김원철 소장은 물론 촬영 스태프들도 한 사람씩 눈물을 흘렸다. 결국 그 날은 촬영이 잠시 중단되었다.
김원철 소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타인의 삶이 희망적으로 변하는 것이 즐겁고 보람되다. 이런 러브하우스의 일은 때로 행선지도 잊고 인테리어를 생각하게 할 만큼 그 자신을 집중하게 했다. 또 '건축물은 삶을 담는 틀'이라는, 상투적인 문구를 진실로 느끼게 한 경험이기도 했다. 선이나 컬러, 이런 추상적인 요소들보다도 그 사람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감동하는 이런 면만이 러브하우스의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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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은 두 형제만이 사는 집을 고친 적이 있었다. 처음 그 집에 갔을
때 그는 너무 놀랐다. 세상의 바퀴벌레들이 다 그곳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한쪽 귀퉁이에는 이웃들이 가져다준 반찬통이 쌓여 있었다. 수년동안
차곡차곡 쌓아둔, 저마다의 나이에 따라 먼지의 두께를 달리한 반찬통들이 마치 시간처럼 쌓여 있었다. 방송에선 그 형제가 집안에서 게으르고 지저분하게 사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전엔 러브하우스 출연자 중 한 어머니가 딸에게 히스테릭하게 신경질을 내는 것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제 그런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 같아요. 절대로 선한 것도, 절대로 악한 것도 없는
거겠죠."
김원철 소장이 러브하우스를 시작한 동기는 이익을 위해서였지만 지금은 감동과 배움을 선물 받고 더욱 노력하는 것처럼, 인테리어 회사들이 자사의 홍보를 위해 제품을 협찬하지만 그것이 또한 러브하우스
가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양면을 가졌다. 절대로 선한 것도, 절대로 악한 것도 없다.
"사업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처음의 바람은 지금도 변함 없어요. 내
일에 성공한 후에,
금전적 힘이든, 정치적 힘이든 뭐든 있어야 좋은 일도 할 수 있는 거겠죠."
리모델링이란 어쩌면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사치'일지도 모른다.
한번도 리모델링을 생각해보지 못했을 가진 것 없는 사람들,그러나
누구보다
공간의 리모델링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방송의 힘으로나마 혜택을 줄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 출연자 가족을 처음 만나면서, 필요한 것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리고 집이 완성된 뒤의 그들을 보면서 김원철 소장은
공간의 변화가 사람의 마음을 환하게 바꿔놓는 마술을 목격한다.
"협찬 받은 자재들과, 비좁은 공간으로 모든 것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제약 조건입니다. 하지만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때로 제한된 조건 속에 집을 완성하고 보면 '예견되지
않는 그림들'이 나오기도 하고, 그것이 기대 이상 훌륭하기도 해요.
때로 어떤 사람들은 인테리어를 하고 싶다고 사무실로 찾아와
나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려운 말들을 늘어놓죠. 미니멀이니
젠이니 이런 단어들이 무색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거든요."
송을 통해 그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부각되곤 하지만
실은 자신을 건축가로 생각한다. 그가 공부한 것도,
앞으로 하고 싶은 것도 건축이다. 러브하우스를 통해 영세한
집들을 다니면서 그는 건축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책임감을 느낀다. 어떻게 집을 그렇게 날림으로 지어놓았는지,
그것도 현대의 기술과 현대의 재료로 지은 것이라 더욱
기가 막힌다. 그는 앞으로 상식적인 기준을 지키는 건축인이
되려고 한다.
"눈에 확 튀고, 아름다운 건물은 앞으로 나올 다른 많은 사람들이 지을
수 있겠죠. 저는 다만 기본이 제대로 된 건축을 하고 싶습니다. 가장
평범한 일 같지만, 시간도 많이 걸리겠지만 그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또 불합리한 관행에 지치지 않고 부딪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의 사무실 이름은 '포디움(PODIUM)'이다. 포디움은 기둥을 지지하는 연속적인 기초나 주초를 뜻하는 용어. 기본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의 철학이 묻어있는 이름이다.
그는 한때 건축을 그만둘까도 생각했었다. 5년 간의 회사 생활은 그를
매너리즘에 빠지게 했다. 그래서 독립했지만 불합리한 건축 시장의
현실은 또 다시 그를 답답하게 했다. 여러 가지 인허가를 위해 관계자에게 굽실거려야 하고, '줄을 잘 서야' 일을 따낼 수 있는 등 기존 관행에 회의를 느꼈다. "건축을 하려는 후배들에게 기회가 되면 꼭 그런 말을 해주고 싶어요. 겉보기에 멋있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결코 화려한 일이 아니라고. 치장을 버리고 체계를 잡아나가는 건축을 공부하라고 말이에요." 그에게 이제는 매너리즘을 극복하고 일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느냐고 물었다.
"재미? 재미라… 러브하우스의 일은 즐겁게, 보람을 느끼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 CF도 찍어요. 아이스크림인데… 또 염색약도
하고, 인테리어 자재까지 한번 해 볼까 하구요(웃음). 그냥 이런 것들이 재미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 아닐까요?"
중3 때부터 나기 시작했다는 그의 흰머리는 나이 서른 아홉에 접어들어도
여전히 변함 없다. 어린 시절에는 그 머리가 부끄러워 염색을
하고 다녔다.
이제 그의 남다른 머리색은 그를 기억하는 트레이드마크가 된다.
완전히 희지도 검지도 않은 잿빛의 머리칼. 그 머리색이 완전히
희망적이지도 절망적이지도 않는, 빛과 어둠이 섞인 인생의 느낌
을 닮았다. 그의 삶에, 이왕이면 빛이 더욱 커지기를 기원한다.
하긴 그는 이미 쉽사리 만나기 힘든 큰 빛을 하나 발견한
것 같지만 말이다."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다른 사람의
생을 활기차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지금이 나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