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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 역사와 문학, 풍습과 종교 속에 나타나는 꽃 이야기
목차
1. 역사에 나타나는 우리 꽃
2. 문학에 나타나는 우리 꽃
3. 풍습에 나타나는 우리 꽃
4. 종교의례에 나타나는 우리 꽃
1. 역사에 나타나는 우리 꽃
1) 꽃의 의미
꽃은 한국의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역사기록에 남겨진 꽃에 관한 기록이 이러한 사실을 잘 말한다.
백제를 고대국가 단계로 발전시킨 고이왕(古爾王)은 금꽃으로 오라관(烏羅冠)을 장식했다. 금화식오라관은 금화(金花)로 장식한 검은 비단의 관(冠)이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관을 꾸민 오라관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백제왕의 관모에 붙이던 꽃 모양의 장식은 납작한 금판(金板)에 구멍을 뚫어 화염형(火焰形)의 모양을 나타낸 것으로서 한 쌍으로 되어 있다. 무녕왕(武寧王)의 왕비의 것도 그와 비슷한 금화 한 쌍이 있다. 백제의 관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은으로 만든 꽃으로 관을 꾸몄다.
이런 전통은 고려시대에도 계승되었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왕성을 지키는 친위군장들은 금화(金花)로 장식한 모자를 썼다. 이것은 중앙군의 위엄을 상징하였을 것이다. 고려사(高麗史)는 금화장식이 된 모자를 과거에 급제한 사람에게 내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들도 임금이 하사한 어사화를 받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꽃이 상징하는 의미는 대부분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 많은데, 이는 우리문화가 중국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관상식물에 있어 중국에서 도입된 식물이 많았기 때문에 그 도입과 함께 꽃말이 전래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모친절로 알려진 5월 두 번째 일요일인 어머니날에는 카네이션 대신에 원추리 꽃을 선물하곤 한다. 이 꽃이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자애로운 어머니’라는 뜻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았던 우리나라에도 원추리가 가진 상징적 의미가 보인다. 원추리가 어머니를 상징한다는 것은 중종 31년(1536) 10월 28일 강원도 관찰사 윤풍형(尹豊亨)이
병든 어머니를 모시려 체직을 청하는 상소에서 잘 알 수 있다. 이 글에 “신(臣)의 어미는 지금 82세여서 북당(北堂)에 시드는 봄의 원추리요 서산(西山)에 지는 저녁 해와 같으니 신(臣)이 모시고 살 날이 얼마나 되겠습니까”라고 한 예로 알 수 있다.
양화소록은 “우리나라의 명화(名花)는 모두 본국의 소산이 아니고 고려 충숙왕(忠肅王)이 원나라에 들어갔다 돌아올 때 원의 황제가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양화소록의 화목(花木)에 대한 기록이 중국의 문헌에 있는 기록을 많이 인용하고 있는 것이나 산림경제(山林經濟)의 참고문헌 55권 가운데 35권이 중국문헌임을 볼 때 꽃 문화에 있어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으로 꽃은 우리나라에서 불교와 관련하여 그 의미가 드러나고 있다. 꽃은 불교에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공덕을 기원하는 불교의식에서 사용되었다. 불전헌공화는 삼국시대에 중국을 통해 불교와 함께 유입되었다고 보여진다.
이 밖에도 불전에 꽃을 바치는 방식에는 산화(散花)가 있었는데 이는 꽃을 그릇에 담아 손으로 뿌리는 방식을 말한다. 이러한 산화의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비천상(飛天像)이 있다. 고구려 벽화 가운데 안악(安岳)제2호분의 비천도 (飛天圖)는 가장 뛰어난 벽화로 평가받는데 천녀(天女)가 연꽃의 꽃잎을 둥근 쟁반에 가득 담아 하늘을 향해 가볍게 날리면서 매장자가 있는 방향으로 꽃을 뿌려 공양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처럼 꽃을 뿌리는 행위는 환영과 찬양을 나타내는 것이다.
다음에서는 대대로 내려온 꽃의 활용을 살펴보고, 역사에서 가지는 의미와 상징을 분류하여 소개하겠다.
(1) 약재로 쓰인 예
① 개나리
약재로 쓰인 예로 개나리가 있다. 개나리에 달린 열매인 연교(連翹)는 조선시대 임금님의 병을 다스리던 귀중한 약재로 쓰였다. 연교는 성질이 차고 종기의 고름을 빼거나 통증을 멎게 하고, 살충 및 이뇨 작용을 하는 내복약으로 쓴다고 알려져 있다.
② 나팔꽃, 맨드라미
다음으로 나팔꽃이 있다. 나팔꽃은 네팔, 히말라야가 원산지인 듯하며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 널리 퍼졌다. 나팔꽃은 원래 씨앗을 약으로 쓰기 위해서 들여온 것이라고 한다. 나팔꽃 씨앗은 견우자(牽牛子)라고 하며 하제(下劑)구실을 하는 가정상비약으로 써왔다. 나팔꽃씨(牽牛子)는 세종실록 지리지에 약재로 기록되어 있어, 조선초기에 이미 나팔꽃이 우리나라에 자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방에서는 푸르거나 붉은 나팔꽃 씨를 흑축(黑丑), 흰 나팔꽃 씨를 백축(白丑)이라고 한다. 견우자는 대소변을 통하게 하고 부종·적취·요통에 효과가 있다. 한편으로 조선시대에는 맨드라미꽃(鷄冠花)이 재배하는 약재로 사용되었음이 세종실록 지리지의 경기도, 경상도, 황해도 조에 보이고 있다.
③ 민들레
민들레꽃도 약재와 관련되어 쓰였다. 한방에서는 민들레의 뿌리와 꽃 피기 전의 전초(全草)를 포공영(蒲公英)이라 하며 해열·소염·이뇨·건위의 효능이 있다고 한다. 감모발열·인후염·기관지염과 임파선염·안질·유선염·간염·담낭염·소화불량·소변불리·변비의 치료제로 사용한다. 또 뿌리와 줄기를 자르면 하얀 젖 같은 물이 흘러서 민간에서는 최유제(催乳劑)로 이용하기도 한다. 민들레는 맛이 쓰면서 위의 소화기능을 강화하는 약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봄철에 어린잎은 나물로 이용하며 성인병 퇴치에 좋은 산채(山菜)로 알려져 있다.
④ 자갹
작약의 뿌리는 진통·복통·월경통, 무월경·토혈·빈혈·타박상 등의 약재로 쓰인다. 고려 문종(文宗) 때인 1079년에 중국 송나라에서 서경(西京)의 적작약(赤芍藥)을 고려에 약품으로 보낸 것으로 보아, 약재로 쓰인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기록인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작약이 경상도와 전라도, 강원도, 함길도의 약재로 기록되어 있다.
⑤ 제비꽃
제비꽃과에 속하는 다년생풀인 제비꽃과 호제비꽃의 전초를 말린 것을 자화지정(紫花地丁)이라 한다. 동의보감은 약초의 꽃이 자색이고 줄기가 마치 단단한 못과 같아서 자화지정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여름에 전초를 뜯어 그늘에서 말린다. 맛은 쓰고 매우며 성질은 차다. 약리실험에서 억균작용, 소염작용이 밝혀졌다. 부스럼, 단독, 헌데, 연주창, 유선염 등에 쓴다.
⑥ 창포
창포꽃도 약재로 쓰였음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창포(菖蒲) 또는 창포말(菖蒲末)은 세종실록 지리지에 경기도와 충청도, 경상도와 황해도, 함길도의 약재로 나오고 있다. 동의보감에는 창포가 심장의 구멍을 열고 오장을 보하며 이목을 밝히는 등의 효능이 있다고 한다. 거담(祛痰), 건위(健胃, 진경(鎭痙) 등에 효능이 있다 하여 한방에서 많이 사용된다.
⑦ 찔레꽃
찔레꽃 역시 약재와 관련된 꽃이다. 찔레는 어느 것 하나도 버릴 것이 없을 정도로 약으로 사용된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찔레씨가 약재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찔레나무는 한방에서 약으로 사용하며 꽃은 장미화(薔薇花)라 하여 이것을 잘 말려 달여 먹으면 갈증을 해소하고 말라리아에 효과를 볼 수 있다. 뿌리는 이질, 당뇨, 관절염 같은 증세에 복용할 수 있다. 열매는 불면증, 건망증 치료에 좋고 각기에도 효과가 있다.
⑧ 철쭉과 할미꽃
철쭉꽃 역시,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전라도와 황해도, 평안도의 약재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할미꽃(白頭翁)이 세종실록 지리지에 전라도와 황해도 평안도, 함길도(함경도)의 약재로 등장하고 있다.
(2) 상징으로 쓰인 예
① 계수나무
계수나무는 성품이 온화하고 고결한 사람을 상징한다. 그 잎이 윤나고 매끄러우며, 더러운 곳에서도 흙이나 먼지가 잘 붙지 않는 데서 생긴 상징성 때문이다. 이러한 계수나무는 과거시험의 합격과 연관하여 등장한다. 계수나무 가지를 꺾었다는 것은 문무과에 합격했음을 비유한 것이다. 한편으로 임금의 죽음을 슬퍼할 때에 계수나무 그림자라는 글귀를 쓰기도 하였다. 선조(宣祖)가 돌아간 후 왕의 애책문(哀冊文)에 “계수나무 그림자 요전(瑤殿)에 쓸쓸하니”라는 구절로 이를 알 수 있다.
② 나리꽃
나리는 백합(百合)의 순수한 우리말로 장미, 국화와 함께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꽃이다.
나리는 전통미술품인 책거리도에서 주로 찾아 볼 수 있다. 학문에 정진하여 관직에 오르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그렸던 책거리도에 나리꽃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나리꽃의 상징의미가 벼슬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라 추정된다.
③ 맨드라미
맨드라미는 아시아, 아프리카, 열대아메리카 등 열대와 아열대에 걸쳐 자생하며 사랑 받은 역사가 오래된 꽃이다. 맨드라미는 동양과 서양이 한결같이 생김새를 닭의 벼슬로 연상하여 이름 붙였다. 영어명인 cocks은 수탉의 볏을 뜻하는 이름이며 중국명인 계관화(鷄冠花)도 닭의 볏 같은 꽃이란 이름이고 일본명 계두(鷄頭)도 같은 뜻이다. 맨드라미는 닭 벼슬처럼 생겨서 전쟁의 승리를 상징하기도 하며 출세나 진급을 의미하는 경사스런 꽃으로 여겨졌다.
④ 앵두꽃
동의보감에서는 앵두는 백과(百果)중에서 제일 먼저 익으므로, 옛사람들이 아주 귀하게 여겨 종묘의 제물로 바쳤다고 했다. 고려사의 길례대사라는 제사의식에 “4월 보름에는 보리와 앵두를 드린다”고 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이 전통이 이어져 세종실록 오례길례의식조에 앵두, 살구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한편으로 앵두는 세종의 아들 문종이 가진 효심과 관련되어 나타난다. 세자인 문종이 경복궁 후원(後苑)에 손수 앵두나무를 심어 익은 철을 기다려 세종께 드렸다. 세종은 앵두를 맛보고
기뻐하며 “바깥에서 올린 것이 어찌 세자가 손수 심은 것과 같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여 문종의 효심을 칭찬하였던 것이다.
⑤ 원추리
원추리(萱草)는 우리나라에서 오랜 옛날부터 사랑받아 온 아름다운 화초이다. 원추리는 가을이 지나면 마른 잎이 떨어지지 않고 겨울 동안 새싹이 자랄 때까지 싹을 덮어 거름 역할을 한다. 이런 모습을 엄마가 아기를 보호하는데 비유하여 모애초(母愛草)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부인들이 아이를 가졌을 때 원추리 꽃을 심거나 그 잎을 말려서 차고 다니면 반드시 아들을 낳으며 걱정을 잊을 수 있다는 속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러한 속설의 기원은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 시인 조식(曺植)이 宜南花訟(의남화송)에서 의남화를 사내아이가 태어날 좋은 징조, 부부화합, 자손번창으로 찬양하는 글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중국의 이러한 관념이 전해졌다. 조선의 회화작품인 화접도는 원추리와 바위, 나비를 그린 그림이다. 여기서 원추리는 의남(宜男)을 상징하고 나비와 바위는 익수(益壽)를 의미해 의남익수의 뜻으로 아들을 많이 낳고 오랫동안 장수한다는 길상적 의미를 담고 있다.
⑥ 자두꽃
자두의 순우리말은 오얏이다. 자두꽃(오얏꽃)은 삼국사기와 고려사, 조선왕조실록에 복숭아꽃과 같이 등장하는 유서 깊은 꽃이다. 자두꽃과 복숭아꽃은 이들 문헌에서 봄을 알려주는 상징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으로 자두꽃은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꽃으로 쓰였다. 1884년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우편업무를 시작한 우정국은 1905년 통신권을 일본에 빼앗길 때까지 보통우표 54종을 발행했다. 대한제국의 문장인 오얏문양이 주로 발행되었으므로 이화우표(李花郵票)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대한제국시기 백동으로 만든 화폐에도 표면의 위쪽에는 오얏꽃, 오른쪽에는 오얏나무 가지, 왼쪽에는 무궁화 무늬를 새겨 넣었다.
⑦ 창포꽃
창포꽃은 도랑가에서 자라며, 높이는 30cm 내외이다. 창포꽃은 단오와 관계가 깊다. 고려 가요 동동(動動)에는 단오를 수릿날이라 하였는데, 수리란
말은 상(上), 고(高), 신(神) 등을 의미하며 수릿날은 신일(神日)과 상일(上日)이란 뜻을 가진다. 여자들은 단옷날 단오비음이라 하여 나쁜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에서 창포를 삶은 물로 머리를 감고 얼굴도 씻으며, 붉고 푸른 새 옷을 입고 창포뿌리를 깎아 붉은 물을 들여서 비녀를 만들어 꽂았다. 남자들은 창포 뿌리를 허리춤에 차고 다녔는데 액을 물리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한편으로 창포 잎이 농사의 시작과 관련하여 등장하고 있다. 고종 8년(1871) 2월 11일에 권농을 위한 반교문(頒敎文)에 “창포 잎이 나고 살구꽃이 피어 농부가 바삐 서둘러야 할 철”이라는 구절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⑧ 철쭉꽃
삼국유사에는 철쭉꽃과 관련된 수로부인(水路夫人)의 이야기가 있다. 아름다운 용모의 수로부인이 연분홍빛 철쭉의 그윽한 향기와 어울려 있는 것이다. 철쭉꽃은 수로부인과 대비되어 미모의 여인을 상징하고 있다.
⑨ 찔레꽃
우리나라에서 자라고 있는 찔레나무는 장미나 야장미(野薔薇), 들장미 등으로 불린다. 찔레꽃은 귀(貴)함을 상징한다. 조선 중종 때에 공용경과 오희맹이 명나라 황제의 사신으로 조선에 왔다. 중종이 후원에서 거닐 때, 공용경과 오희맹이 손으로 홍도(紅桃)와 장미(薔薇) 두 가지를 중종의 어관(御冠)에다 꽂으면서 “전하의 양 쪽에 누른 빛과 분홍 빛이 어른거린다”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서 보듯이 장미는 임금과 관련된 귀한 꽃이었던 것이다.
⑩ 할미꽃
할미꽃은 삼국사기 신문왕대의 기록에 이미 등장하고 있어, 우리에게 낯익은 토종꽃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설총은 신문왕에게 꽃을 의인화하여 왕의 도리를 충고했다. 여기서 목단은 어진 임금으로 표현하고, 장미는 간신으로, 할미꽃(백두옹)은 충신으로 표현하여 왕의 갈등과 깨우침을 그려놓았다.
⑪ 해당화
조선시대에 해당화는 여인들의 옷 무늬로 많이 쓰였는데 화사한 색과 소담스러운 꽃송이는 젊음의 상징이어서 자수나 화조 병풍으로 그려졌다. 한편으로 해당화는 늙고 시듦을 비유하는 꽃으로 노래되기도 했다. 한국 민요에서 해당화가 제재로 사용된 작품은 총 40편으로 그 중에서 34편이나 되는 작품에 “명사십리 해당화야 네 꽃 진다 서러 마소”라는 관용구가 사용되었다.
2) 관상과 관련된 꽃
① 백일홍
백일홍은 그 이름과 같이 거의 백날을 두고 계속하여 피고 꽃이 붉기 때문에 백일홍(百日紅)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관상용으로 많이 심어졌다.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산실인 전남 담양의 소쇄원과 식영정·명옥헌, 그리고 경주의 서출지 등과 같은 원림에서 백일홍을 볼 수 있다. 강희안은 15세기 중엽에 쓴 양화소록에서 “비단 같은 꽃이 노을 빛에 곱게 물들어 정원 가에서 환하게 사람의 혼을 뺄 정도로 아름답게 피어 있으니 風格이 최고”라고 하였다. 그는 한양의 公侯의 저택에서는 백일홍을 뜰에 많이 심어 높이가 한 길이 넘는 것도 있다고 기술하였다.
② 벚꽃
봄소식을 알려주는 화사한 벚꽃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로 이주하여 벚나무를 심기 시작했는데, 이 무렵부터 벚꽃놀이를 즐기게 되었다.
③ 영산홍
영산홍은 일본철쭉화, 두견화(杜鵑花), 홍색두견화(紅色杜鵑花), 왜철쭉, 오월철쭉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조선시대에 관상용으로 영산홍을 좋아한 임금이 세종과 연산군이었다. 세종은 재위 23 년(1441)에, 뜰에서 영산홍을 기르도록 명했다. “임금께서 즐겁게 감상하시고 상림원(上林園)에 하사하시어 나누어 심도록 명하셨다”고 한다. 세종은 정무를 보는 틈틈이 영산홍을 감상하여 정서를 순화하고 어진 정치를 펼쳤다. 그런데 영산홍을 지나치게 좋아한 임금이 연산군이었다. 연산군 11년(1505) 1월 26일에 “영산홍 1만 그루를 후원(後苑)에 심으라”고 명했다. 같은 해 4월 9일에 영산홍을 비롯해 치자, 유자, 석류, 동백, 장미 등 여러 화초들을 모두 흙으로 붙여서 바치게 하였다. 감사(監司)들이 견책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종류마다 혹은 수십주(株)를 바치되 계속 날라 옮기니 백성이 지쳐서 길에서 죽는 자가 있기까지 하였다. 꽃에 지나치게 빠져 백성들을 괴롭힌 연산군은 폭군으로 기록되어 있다.
④ 자갹
작약은 꽃이 아름다워 우리나라에서 예로부터 관상용으로 길러왔다. 특히 궁궐에서 꽃을 피워 공주와 왕의 사랑을 받아왔다. 고려 충렬왕 때에 제국대장공주는 수녕궁(壽寧宮)의 작약꽃이 만발하자, 꽃 한 가지를 꺾어 오래 동안 손에 잡고 감상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고려의 뒤를 이은 조선의 궁궐에도 작약이 심어졌다. 태종 12년 4월 12일에 상왕(上王 정종)이 “명일에 광연루(廣延樓)에 가서 작약이 만개한 것을 보고 싶다”고 태종에게 전갈하게 한 기록이 나온다. 이와 같이 작약은 궁궐에서 기른 꽃이었다.
3) 실용과 관련된 꽃
① 목화
실용과 관련된 꽃으로 목화꽃을 들 수 있다. 목화를 원료로 한 무명을 입은 우리 민족은 백의민족으로 불려왔다. 목화를 우리나라에 들여온 사람은 문익점(文益漸)이었다. 문익점은 고려 공민왕 12년(1363년)에 원나라에서 돌아올 때 목화씨를 따서 붓대롱 속에 10알을 숨겨 국경에서의 검사를 통과하여 숨겨 들여왔다. 목화가 들어오면서 의복 재료에 혁명이 일어나 고려말기의 시험단계를 거쳐 조선조를 들어와 재배가 권장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삼베 대신 무명이 통화의 단위가 되었다. 세종대부터는 무명이 법적으로 통용되는 국폐로 인정되었다. 한편 무명은 공부 조세인 貢賦로서 국가가 징수하기도 했다.
② 벚꽃
벚나무의 껍질은 화피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활을 만드는데 꼭 필요한 군수물자였다. 화피(벚나무 껍질)는 평안도 강계도호부와 함길도 등에서는 공물(공물)로 국가에 바쳤음이 세종실록 지리지에 기록되어 있다. 한편 벚나무는 목판인쇄의 재료로 쓰였다. 고려시대에 몽골군의 침입을 부처님의 힘으로 막기 위해 만들었던 팔만대장경의 판은 60% 이상이 산벚나무로 만들어졌음이 전자현미경을 이용한 조사에서 밝혀졌다.
2. 문학에 나타나는 우리 꽃
1) 꽃으로 상징되는 문학
문학의 소재로서 꽃처럼 창작자의 영감을 자극하는 것은 드물다. 꽃은 색채와 형태와 향기 자체로도 즉물적 아름다움을 보여주지만, 계절마다 피어나 다양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벌과 나비와 햇빛과 비림 등의 주변적 요소들과 맺는 관계에 따라 수많은 표현이 가능하다. 물론 여기에 창작자가 지닌 경험까지 개입된다면 그야말로 표현상의 중복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에서 만큼 창작자들이 같은 소재를 사용하고 또 그것을 통해 유사한 상상력의 원천으로 삼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인간의 상상력이 일정한 단계를 거쳐 구상화된다는 추상적인 설명을 떠나서, 문화적 전통과 문학적 상징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문화적 전통은 인간이 지닌 지식이 오랫동안 누적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또한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과 경험들이 결합되는 동안 특정한 색과 맛이 발효되어 형성되는 것이다.
문학적 상징성도 문화적 전통의 일부로 볼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좀 더 특수한 표현방식과 경향성의 측면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학은 창작자와 수용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공감적 자장(磁場)을 전제로 이루어진다. 문자에 대한 이해가 있고 그것이 지닌 지시 대상과 규약, 그리고 이를 해독할 수 있는 약속이 필요하다. 이 가운데에서 단어에 대한 뜻풀이와 그것이 불러오는 배경적 이해가 함축된 것을 상징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표현상의 지시대상(원관념)과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수단(보조관념)이 응축 결합된 것이 상징인 것이다.
문학을 향유하는 사람들은 상징을 만들고, 만들어진 상징을 활용하는 동안 또 다른 상징을 파생시킨다. 뿐만 아니라 상징은 개별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유사하거나 비교되는 다른 개별 상징들과 관련되면서 복잡한 체계를 형성하게 된다.
우리 문학에 나타난 꽃 상징의 유형 개별적 상징이 지닌 의미를 파악하고, 더 나아가 그 상징과 관련한 상징체계의 스펙트럼을 이해하는 것은 문학 연구에서 중요한 관심사이다. 개별 상징과 상징체계의 연구를 통해 문학적 전통의 구체적인 실상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문학에 나타난 꽃의 상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특정 꽃의 상징을 예로 들고 그것과 관련한 체계를 설명하는 방식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한정된 지면에서는 개별 꽃 상징의 공통점을 중심으로 유형을 나누어 귀납적인 설명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얻어진 자료를 중심으로 우리 문학의 꽃상징을 다음처럼 유형 분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탈속성
우리의 전통 문화는 계급 사회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상층문화와 하층문화로 구분할 수 있다. 상층문화는 지도층의 문화로 세련되고 우아한 미적 특질을 지니고 있으며 심오한 사상성을
지향한다.
상층문화를 향유하는 지도층의 문학에서는 탈속성을 주제로 하는 꽃상징의 경향이 두드러진다. 탈속성은 현실에 충실한 세속적 취향을 벗어나려는 경향으로서, 지도 이념을 공고화하고 스스로를 차별화시키는 방향으로 뚜렷한 전통을 형성하고 있다.
탈속성을 지닌 꽃상징들은 매란국죽(梅蘭菊竹)의 사군자(四君子), 수석송죽월(水石松竹月)의 오우(五友), 매국(梅菊)의 세한이우(歲寒二友) 등처럼 정식화된 명칭으로 불리면서
동조적(同調的)인 상징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또한 바람 눈 서리 등은 탈속적 꽃상징을 억압하거나 가해하는 적대적(敵對的) 상징체계를 이룬다. 이들 유형에 속한 꽃상징들이 직접 결합하거나 간접적인 암시를 통해 상호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예들도 확인된다.
탈속성을 지닌 꽃상징의 예로는 사군자 외에 계수나무와 소나무꽃, 그리고 동백꽃을 들 수 있다.
① 국화
사군자 중에서 국화는 뭇꽃들이 다투어 피는 봄이나 여름을 피하여 황량한 늦가을에 고고하게 피어난다. 늦가을 찬바람이 몰아치는 벌판에서 외롭게 피어나는 모습은 이 세상의 모든 영화를 버리고 자연 속에 숨어사는 은사의 풍모나 기품이 높고 고결한 인간상으로 비유되었다. 또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국화는 봄이 아직 빠른 세한에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매화와
닮은 점이 있어서 함께 세한이우(歲寒二友)로 불렀다.
② 소나무
소나무는 탈속성을 지닌 꽃상징의 예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이다. 소나무는 우리 생활에 물질적·정신적으로 많은 영향을 준 나무이다. 오래 사는 나무로 여겨져 십장생(十長生)에
포함되었을 뿐만 아니라, 거대하게 자란 낙락장송은 장엄한 기상과 품격을 지녀 사군자와 대등하게 간주되었다. 또한 늘 푸른 모습은 눈서리를 이기는 곧은 절개와 굳은 의지를 상징하여 민족적 기상으로까지 인식되었다. 높이 피는 소나무꽃과 흩날리는 꽃가루는 계절감이나 황홀한 선경(仙境)을 상징한다.
③ 동백꽃
동백꽃은 사계절 진한 녹색 잎이 변하지 않고 겨울에 꽃이 피기 때문에 청수(淸秀)한 아름다움을 지닌 꽃으로 인식되었다. 약재와 화장품의 원료로 사용되었고 눈속에 피는 속성은 고고함을, 열매가 많이 열리는 것은 다산(多産)이나 다남(多男)을 상징한다.
탈속성을 지닌 꽃상징들은 일반적인 꽃들과 다른 계절에 피어나거나 인적이 드문 장소에 서식하는 등의 생태적인 특질을 바탕으로 이미지화된 것이다. 탈속적 꽃상징들은 고고함 고결함 또는 항상성이나 불변성 같은 품위 있는 자질을 지닌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2) 세속성
우리 전통 문화 중에서 민중층이 지닌 문화는 투박하지만 발랄한 미적 특질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낙관적이고 현실주의적인 경향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하층문화를 향유하는 민중층의 문학에서는 세속성을 주제로 하는 꽃상징의 경향이 두드러진다.
세속성은 현실을 떠나 형식화되려는 탈속성을 거부하고 현실에 충실한 감성과 애욕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뚜렷한 전통을 형성해 왔다.
세속성을 지닌 꽃상징들은 복숭화꽃, 자두꽃, 살구꽃 등으로 대개 봄꽃들인 경우가 많다. 소나무꽃과 매화, 국화 등과 반대적(反對的)인 상징체계를 이루고, 눈·바람·서리 등과는 동조적(同調的)인 상징체계를 이룬다. 세속성을 지닌 꽃상징들은 탈속성을 지닌 상징들과 한 작품에 동시에 등장하여 탈속성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① 복숭아꽃
복숭아꽃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과실의 맛이 좋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던 꽃이다. 대표적인 양목(陽木)으로 알려져 동쪽으로 난 가지가 귀신을 쫓는다는 속설이 있으며, 꽃과 열매가 선경(仙境)과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의미하는 신선들의 과일로 상징된다. 한편 복숭아꽃 자체가 화려하므로 시세에 아첨하는 무리들로 흔히 표상된다.
② 살구꽃
살구꽃은 복숭아꽃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다. 마을마다 가장 흔하게 피는 꽃이어서 고향을 상징하거나 과거 시점과 결부되어 급제화(及第花)로도 불렸다. 그러나 살구꽃은 화사한 색깔과 향기로 인해, 흔히 술집이나 술을 파는 아가씨가 있는 마을이란 뜻을 상징하여 사군자와는 대조적인 소인배를 암유하기도 한다.
세속성을 지닌 꽃상징들은 겨울에는 숨어 있다가 따뜻한 봄바람을 맞고 일시에 무리지어 피어나는 생태적 특질로 인해 시속에 아첨하는 소인배들을 비유하며, 화려한 원색으로 인해 남성의 마음을 유혹하는 기생이나 여색(女色)을 상징한다. 세속적 꽃상징들을 평하는 자질들로는 순간성, 덧없음, 애욕 등을 들 수 있다.
(3) 외래성
문화는 외래적인 영향을 육화(肉化)시키며 발전한다. 꽃상징의 유형에서 외래성이란 꽃상징의 원천이 외래적인 것을 가리킨다. 이 꽃상징 유형은 상층문화와의 친연성이 강하므로 탈속적인 꽃상징들과 관련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탈속적인 꽃상징들이 우리 문학에 뿌리내려 다양한 편폭으로 상징의 영역을 넓혀온 것과 비교하면, 외래성을 지닌 꽃상징은 외래적 원천에서 거의 그대로 머물고 있어 상징의 영역이 한정되어 있는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외래성의 꽃상징의 예로는 계수나무꽃과 모란, 백일홍, 연꽃 등을 들 수 있다.
① 계수나무
계수나무는 달에 산다는 중국의 전설로 인해 항아(姮娥)와 서왕모(西王母)의 고사(故事)와 관련되어 고결한 존재, 은사(隱士), 또는 은사의 거주처 등으로 상징되었다.
② 모란
모란은 화려한 색채와 풍성한 모습 때문에 부귀와 영화를 상징한다. 문학적 전통으로는 꽃 중의 왕으로, 인간 중에서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상징되며 무속신화에도 등장하지만 역시 중국 문화에 원천을 둔 이미지가 지배적이다.
③ 백일홍
백일홍은 당나라 때 중서성에 많이 심은 자미화에서 한자명이 유래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중서성 또는 조선시대의 사간원을 상징했다. 오랫동안 꽃이 피므로 시간의 지속성과 기다림을 상징한다.
④ 연꽃
연꽃은 아름다운 꽃빛깔과 그윽한 향기, 그리고 좋은 열매까지 갖추고 있어 완전무결한 꽃으로 인식되었다. 흙탕물에 자라면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연이 지닌 불염성(不染性)은 비오는 날의 청신(淸新)한 풍경과 연밥 따는 처녀들을 연상시키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은자와 군자로 의인화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불교의 이치를 상징하는 종교화(宗敎花)의 이미지로 고정화되어 왔다.
(4) 향토성
향토성은 외래성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문화의 원천을 자생적인 측면에 두고 명명한 꽃상징 유형이다. 엄밀하게 외래성과 향토성을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문학상징의 상대적인 범위에서 어떻게 육화되었는가를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향토성을 지닌 꽃상징은 하층문화와 친연성이 강하므로 세속성을 지닌 꽃상징과 관련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향토성을 지닌 꽃상징은 자생적인 원천에 중심이 있어서 하층문화뿐만 아니라 상층문화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차이가 있다. 외래적 꽃상징이 하층문화에 거의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은 점과 달리, 이 유형은 탈속적 꽃상징 유형에도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 것이다.
향토성 꽃상징의 예로는 목화와 진달래를 들 수 있다.
① 목화
목화는 의복을 만드는 주원료로서 백성들의 삶과 밀접한 꽃이다. 통화의 단위로 쓰였을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는 약재로도 이용되었다. 백성들의 삶 자체를 상징하는 동시에 따뜻한 촉감은 효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② 진달래
진달래는 봄철의 산야에 무리를 지어 일시에 붉게 피어나므로 봄소식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꽃으로 인식되어왔다. 또한 메마르고 각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며 사람들의 의해 꺾이거나 잘려나가도 억세게 다시 피어나기 때문에 수없는 전란과 재난에 시달리면서도 이를 극복하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며 끈질기게 살아온 우리 겨레의 기질과 동일시되었다. 고전 작품에서는 두견새 설화와 관련해서 종종 죽음을 상징하는 꽃으로 인식되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꽃상징의 유형은 꽃들이 지닌 공통적 경향을 중심으로 분류한 것이다. 그러므로 위의 네 가지 유형은 특정 꽃이 지닌 지배적 상징의 내용을 가리킨다. 어떤 꽃도 한 가지 의미만을 지닌 것은 없으므로, 다른 유형의 속성을 지닐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2) 우리 문학에 나타난 꽃 상징의 형상화 단계
우리 꽃상징을 형상화 단계에 따라 설명하면 문학적 형상화의 구체적인 변화과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도 개별적인 꽃을 모두 검토한 후에 연역적인 설명을 해야할 것이나, 편의상 진달래꽃만을 대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1) 즉물적 단계 아름다움의 시화(詩化)
이 단계는 꽃이 지닌 색채와 향기, 그리고 서식하는 생태를 통해 즉물적으로 문학작품의 소재로 활용하는 단계이다.
진달래는 전국 어느 곳에서나 이른 봄이면 어김없이 피어나 산을 붉게 물들이며 봄의 서장을 장식한다. 그래서 진달래는, 그보다 먼저 피는 꽃도 있지만 봄꽃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이 경우에 진달래는 봄의 시작을 말해주는 봄의 전령으로 상징된다.
진달래꽃이 만발할 때는 “산에 불이 붙은 것 같다”는 표현처럼 주홍빛이 산 전체에 퍼져 나가는 듯한 광경을 연출한다. 이때 진달래는 강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비유된다.
진달래의 이와 같은 생명력은 죽음의 계절인 겨울을 이기고 봄기운을 타고 새로이 살아가는 힘과 어둡고 황량했던 겨울을 떨치고 일어서는 벅찬 생명의 환희를 함축한다.
(2) 의인화 단계 인간적 면모의 은유
진달래꽃은 그 붉은 색채와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대개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연상시킨다.
고려가요인 동동은 진달래꽃이 의인화 단계에 근접한 예이다. 작품의 화자는 진달래꽃을 보면서 곧바로 남이 부러워할 님의 모습을 연상한다. 여기에서 남성의 아름다운 자태를 꽃으로 비유한 상상력은 매우 독창적이다. 대개는 꽃을 여성의 얼굴로 비유해왔기 때문이다.
봉화지방에서 전승되는 민요에서 진달래꽃은 여인의 육체적인 형상뿐만 아니라 행동과 사고, 그리고 전형적인 인습의 틈바구니 속에서 고통 받는 모습으로까지 생동감 있게 형상화되었다.
그윽한 산골에 피어있는 진달래는 자식을 낳지 못해 남편에게 소박맞은 불행한 여인의 표상이다. 화자는 진달래를 위로하는 과정에서 여인의 현실을 이해하고, 이제는 다른 사람 마음대로 못할 것이라는 주체적인 인식에 도달한다. 진달래꽃은 이 단계에서 단순한 미적 상징을 넘어 주체적인 삶을 인도해주는 새로운 상징의 차원으로 상승된다.
(3) 상징화 단계 사물 사건 관념 등의 추상화
이 단계는 이전의 단계에서 유지되었던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거리가 거의 사라지고 보조관념만이 강조된다. 특정한 꽃의 원관념보다 보조관념이었던 사물, 사건, 관념 또는 사람이 중심이 되면 설명성은 약해지지만 개별적 상징의 힘은 더욱 강력해진다.
진달래꽃이 척박한 환경에서 붉게 피어나는 모습은 슬픔의 정서를 환기한다. 그것은 김억의 작품에 나타난 것처럼 개인적인 정황에 따른 슬픔이거나, 이흥렬의 가곡처럼 숱한 슬픔과 서러움을 간직해왔던 민족적인 서러움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흥렬의 바위고개는 연가가 아닌 조국의 비운(悲運)을 노래한 저항곡이다. 여기에서 ‘바위고개’라는 공간은 우리의 삼천리 금수강산이고, 진달래는 우리의 겨레이다. “임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의 구절은 조국인 임은 없어도 우리 겨레는 결코 꺾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른 봄부터 산골짜기에 메아리치는 한 맺힌 두견새의 울음소리가 연분홍빛 진달래꽃잎에 스며들 듯 이 땅에서 살아온 백성들은 얼룩진 강산에 피어난 진달래꽃을 붙들고 이와 같이 하소연하였다.
진달래는 색깔이 피를 연상케 할 뿐만 아니라, 전국시대 말기 촉(蜀)의 망제(望帝)인 두우(杜宇)와 관련되어 죽음을 뜻하는 꽃으로 상징되어 왔다. 억울하게 죽은 두우의 넋이 두견새가 되었고, 이 두견새가 울어서 토한 피가 물들어 두견화, 즉 진달래가 되었다는 것이다. 진달래꽃의 시각적 이미지는 두견새(소쩍새, 귀촉도, 접동새)의 울음이라는 청각적 이미지와 종종 결합하여 죽은 제왕, 죽음의 다짐, 죽음의 비애 등으로 다양하게 용사(用事)되었다.
단종의 작품으로 전하는 시는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영월 땅으로 유배되었을 때 그 유배지에서 두견새의 슬피 우는 소리를 듣고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여 지은 시이다. 한이 맺힌 두견새는 울다 지쳐 새벽에야 소리가 그친다. 여기에서 두견새는 “원통한 새 한 마리”로 화자와 동일시되어 있다. 그 배경에는 말할 것도 없이 두우의 넋이라는 고사(故事)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진달래꽃이 민족적 비애, 죽음, 두우의 넋 등으로 인식되는 것은 상징화의 마지막 단계인 추상화 단계이다. 삼나무를 깎아 만들었던 인광노(引光奴)를 본땄던 데에서 벚나무가 성냥이나
초를 뜻하게 된 것, 맨드라미가 주인을 위해 희생된 닭의 죽음에서 충성심이나 용기를 뜻하게 된 것, 자미화를 중서성에 심었던 데서 백일홍이 중서성과 사간원을 뜻하게 된 것 등은 각각 사물, 관념, 사건 등을 상징화시킨 예들이다.
3. 풍습에 나타나는 우리 꽃
1) 우리 생활에 녹아든 꽃
우리 땅에 자라는 꽃들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따라서 이들은 우리 민족의 삶과 문화, 생활 현장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들 꽃은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식용의 대상이 되어 배고픔을 해결해주며, 질병을 치료하는 약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꽃들은 계절을 달리하여 피기 때문에 각 계절의 징표가 되고, 계절 제의에서 건강과 풍흉(豊凶)의 징조로
작용하였다. 주목되는 것은 이들 꽃이 우리 삶의 현장에 부대끼면서, 아동과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들의 놀이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이들 꽃을 통해 자연의 지혜를 터득하고, 성장기 건강한 놀이 문화를 구축할 수 있었다. 한편, 우리의 꽃들은 각각의 꽃들이 가지는 특성, 색채에 따라 주술적인 의미가 부여되면서, 액(厄)을 물리치고 사악함을 막는 역할을 하였다.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 꽃은 그 특성에 따라 추상적인 상징성을 부여받아 문학작품에서 절개, 아름다움, 소인배, 계절 등의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게
되었다.
(1) 식용으로 쓰인 예
풍속에 나타난 꽃의 상징성을 살펴볼 때, 가장 먼저 지적될 것이 바로 이들 꽃이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게 식용의 대상이 되어 제철 음식이 되거나 술(酒) 또는 차(茶)로서 건강음료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① 제사와 잔치, 계수나무
계수나무 꽃의 경우, 계피 가루는 제사상이나 잔칫상에 오르는 약과, 단자(團子), 주악, 편류 등을 만드는 데 쓰이며, 곶감과 함께 더위를 쫓아내는 시절음식(時節飮食)인 수정과의 재료로도 쓰인다. 그리고 산림경제에서 “사슴고기국(鹿羹)을 삶을 때 붉은 팥과 함께 계피 가루를 넣는다”는 것으로 볼 때, 계피는 아마도 고기 냄새를 없애주는 향신료로 사용된 듯하다.
② 잔치와 효성, 앵두
앵두꽃이 져서 익은 앵두 열매로는 앵두편을 만든다. 이것은 앵두를 삶아 걸러 만든 과즙에
설탕이나 꿀을 넣고 조려 엉기게 한 뒤, 이를 네모지게 썰어 놓은 한과인데, 오래전부터 가장 많이 애용되어 오던 과편 중 하나였다. 이것은 주로 편의 웃기나 생실과의 웃기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색상이 아름다워 잔치 때 행사용 음식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앵두에는 유기산과 팬틴 성분이 많아서 건강에 좋은 편이다. 또한 앵두에 꿀물을 넣어 앵두화채를 만들어 먹었는데, 이것은 단오절의 절식으로 맛은 달콤하고 새콤하다.
③ 나물 반찬, 원추리
원추리[萱草]는 황화채(黃花菜)로 불렸는데, 6~7월 꽃이 한창 필 무렵 꽃술을 딴 뒤 이를 깨끗한 물에 끓여 내어 초를 쳐서 먹으면, 맛이 신선 음식 같아 보드랍고 담박함이 송이보다 나아서 나물 가운데 으뜸으로 쳤다는 사실이 이정구의 월사선생문집에 나온다.
④ 특별한 날의 나물, 제비꽃
제비꽃도 나물로 해 먹었다. 그런데 이 나물은 일상적으로 쉽게 먹는 음식이 아닌 모양이다. 곧 여자가 시집 간 뒤 시댁의 사당을 뵙는 의식을 거치게 되는데, 시부모가 돌아가셨을 때는 신부가 그 집에 들어간 지 석 달 만에 제사 때 채소 바치기, 즉 전채를 하며 이때 제비꽃나물을 바치기 때문이다.
⑤ 으뜸 식용, 창포
제철음식으로서 식용의 대상이 된 꽃으로 단연 으뜸인 것은 창포(菖蒲)일 것이다. 창포는 그 색깔 때문에 단옷날의 상징으로 여겨질 정도로 중요한 꽃이기도 하다. 이 날에는 창포떡을 만들어 먹거나, 창포김치를 담가 먹는다. 먹은 후 100일 후면 인색에 광채가 나고 수족(手足)에 기운이 생기며 이목이 밝아지고 백발이 검어지며 빠진 이가 다시 돋아난다고 한다.
⑥ 진달래 등 개절별 화전
계절음식 가운데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화전(花煎)이다. 이는 계절별로 진달래, 개나리, 국화 등의 꽃을 붙여 만든 부꾸미를 말한다. 찹쌀가루를 물에 개어 둥글고 납작하게 만든 뒤, 기름을 두른 번철에 지진다. 그 위에 계절에 따라 봄에는 진달래꽃과 개나리를, 가을에는 장미와 국화를 얹기도 한다. 개나리꽃으로 만든 화전은 삼짇날 놀이에 가지고 가기에 알맞은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7, 8월에는 맨드라미꽃을 찹쌀반죽에 올려서 지진, 맨드라미화전을 먹는다. 특히 맨드라미는 꽃의 모양이 화려하여 화전을 만들면 시각적으로나 미각적으로 더욱 돋보인다.
⑦ 술, 개나리와 목화, 민들레
우리 꽃들 가운데 많은 것들을 술로 담가 먹는다. 봄철에 개나리꽃을 소주에 넣고 술을 만들거나, 가을에는 그 열매를 소주에 넣은 뒤 술을 만든다. 후자를 특히 연교주(連翹酒)라 하였다. 개나리주를 빚어 마시면 여성의 미용이나 건강에 좋다고 하였다. 또한 약술을 만들 때는 목화꽃의 꽃송이를 따거나 어린 열매로 담근다. 이 목화주는 부인들의 혈액순환을
도와주며 젖이 부족한 산모가 먹으면 젖이 많아지고 신경통이 있는 사람에게 좋은 술이라 하며, 남성이 먹으면 원기가 솟아나고 양기가 강해진다고 알려져 있다. 민들레꽃을 소주에 2∼3개월 정도 숙성시키면 민들레주가 된다. 이 술은 약용주로서 위장의 운동을 돕는 효능이 있어 위가 약하거나 설사와 변비의 치료에 효과가 있고, 특히 허약한 체질을 개선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앵두 역시 설탕과 함께 소주에 넣은 뒤 3개월 정도 숙성시키면, 앵두주를 먹을 수 있다. 이 앵두주는 이뇨 , 보음, 보양, 변비, 피부미용에 효능이 있다. 왕가나 상류사회에서는 예부터 창포로 술을 빚어 약주로 쓰는 습관이 있었다. 고려 이색의 목은집에 실린 단오라는 시 중 “배금 술잔에 창포꽃이
떠 있네”라는 구절로 보아, 창포주는 고려시대 단오의 절식(節食)인 것으로 보인다. 단옷날에 술을 창포에 띄워 마시는 풍속은 상류사회뿐만 아니라 일반 민가에서도 널리 퍼졌는데, 오늘날에는 민속주로도 애용된다. 그 외, 해당화의 꽃을 말려서 술에 넣고 만든 매괴주도 있다. 이 술은 붉은 빛이 아름다운데, 향기 또한 좋아 풍류가 넘치는 술로 여겨졌다. 그래서 매괴주는 상류집안 사대부들이 애용하는 귀한 술이기도 하다.
⑧ 화차, 계수나무와 벚꽃
우리 꽃 가운데는 꽃을 따서 차(茶)를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계화차(桂花茶)는 계수나무의 꽃잎을 말려 만든 화차다. 계화차는 향이 진하고 오래 남는 특징이 있거니와, 과식(過食)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벚꽃차는 한방에서 약이 되는 차로 알려진다. 벚꽃을 따서 이를 소금물에 담가 숙성시킨 뒤 병에 넣어 보관하는데, 벚꽃의 색과 향기, 모양을 그대로 담고 있으므로 축하모임이나 접대용으로 적합하다. 벚꽃은 예로부터 숙취나 식중독의 해독제로 사용되었다.
2) 약재로 쓰인 예
우리의 꽃과 그 열매는 한방에서 혹은 민간에서 약용으로 사용되었다. 각 꽃들이 가지는 약리적 특징에 따른 것으로 이는 오랜 기간 민간에서 축적해온 자연에 대한 지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① 개나리나무
먼저 개나리나무의 경우 열매[連翹]는 독을 제거하거나, 열을 내리는 데 사용하였다. 두진(痘疹)으로 독이 생기거나 열이 많아지면 연교승마탕(連翹升麻湯)을 쓰거나, 연교(連翹)를 갈아서 탕에 넣기도 한 것이 산림경제에 나온다.
② 계피
계피(桂皮)의 경우 졸복통(猝腹痛)에 이를 달여 먹이며, 모든 과실을 먹고 중독이 되었을 때에도 계피를 진하게 달여 먹인다고 하였다. 산림경제에 따르면, 계피는 땀이 나게 하고 식은땀을 거두게 하므로 계지탕이나 갈근탕에 배합하며, 감기와 순환기질환, 급성 열병 및 노인병에 쓰인다. 잎을 증류시켜 채취한 계엽수는 진통제로 쓰인다.
③ 나리꽃
한의학에서 나리는 마음을 안정시키면서 정신을 가라앉히고, 폐를 부드럽게 하며, 기침을 멈추게 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참나리는 다리 밴 데와 종기, 거담(祛痰), 쇠붙이로 인한 창상(創傷)의 치료에 쓰인다. 다리 삔 데는 참나리의 뿌리를 쓰고, 종기가 곪기 시작하는 시초에는 뿌리와 함께 줄기를 쓰기도 한다.
④ 나팔꽃
나팔꽃의 씨(牽牛子)는 맛이 쓰고 성질이 차며 독이 있는 성질이 있어서, 사하(瀉下作用)과 이뇨작용(利尿作用)이 강하고 기를 잘 내리게 한다. 이 때문에 몸이 부을 때, 만성신우신염, 간경화 등으로 복수가 찰 때 이것을
사용한다. 그리고 해수, 천식에 유효하며 완고한 변비, 기생충제거에도 사용한다.
⑤ 맨드라미
맨드라미꽃의 씨(靑箱子)는 안과질환에 특효가 있고, 간장기능이 악화되면서 고혈압 증상을 일으키는 사람에게는 혈압을 내려주는 효과가 있다. 이는 맨드라미 씨가 성질이 차고, 또한 그 속에 지방유가 풍부하며 니코틴산 등이 함유되어 있는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⑥ 민들레
민들레 전체를 캐서 말린 포공영(蒲公英)은 소화를 돕는 데 쓰고, 위궤양에는 민들레의 새로 난 잎을 씹어 먹기도 하며, 뱀에 물렸을 때 뿌리를 다져서 바르기도 한다. 꽃만을 따서 그늘에 말렸다가 피가 부족하거나 결핵에 걸렸을 때 먹기도 한다.
⑦ 자갹
한방에서는 작약의 뿌리를 약재로 사용한다. 위장염과 위장의 경련성동통에 진통효과를 나타내고, 소화 장애로 복통·설사, 복명(腹鳴)이 있을 때에 유효하며, 이질로 복통과 후중증이 있을 때에도 효과가 빠르다. 부인의 월경불순과 자궁출혈에 보혈·진통·통경의 효력을 나타낸다. 만성간염에도 사용되고 간장 부위의 동통에도 긴요하게 쓰인다. 또 빈혈로 인한 팔과 다리의 근육경련, 특히 복근 경련에 진경과 진통 효과가 있다.
⑧ 찔레꽃
찔레꽃의 경우, 그 열매(營實)는 노인이 소변을 잘 보지 못할 때, 전신이 부었을 때 쓴다. 그리고 불면증, 건망증 및 꿈이 많고, 피로하고 성기능이 감퇴되었을 때, 그리고 종기, 악창(惡瘡) 등이 있을 때도 사용된다.
⑨ 창포
창포 역시 이를 달인 물을 먹으면, 눈병을 낫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의서(醫書)에는 “그 약성(藥性)이 능히 화기(火氣)를 내려 정신(精神)을 맑게 하며 기맥을 통창하게 하여 총명(聰明)하게 한다”고 하였다.
⑩ 철쭉
철쭉도 약으로 사용되어졌다. 두통, 발열이 있을 때, 재채기를 심하게 할 때 등에는 철쭉 가루를 입에 넣게 하면 효과가 있다고 한다.
⑪ 할미꽃
한방에서는 할미꽃도 약재로 이용한다. 곧 신경통, 혈리(血痢), 치질출혈(痔疾出血), 임파선염, 월경 곤란 등의 증상에 쓰이고 있다.
⑫ 해당화
해당화 꽃잎에는 수렴작용(收斂作用)이 있어서 지사제(止瀉劑) 역할을 한다고 알려졌는데, 이 꽃을 따서 말린 뒤 간위기통(肝胃氣痛), 협통(脇痛), 풍습비(風濕痺), 월경 부조, 대하, 질타손상(跌打損傷) 등에 사용하면 효과가 있다.
3) 농사의 풍흉을 가늠하는 징표로 쓰인 예
우리 꽃들은 우리 삶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다 그 소출(所出)의 다과(多寡)가 사람들의 생존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게다가 이들은 계절마다 피는 것이 다르다. 이런 이유에서 각 꽃들은 계절 제의 때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가늠하는 징표로 작용하기도 한다.
① 한 해 시작, 목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목화이다. 목화는 의복과 침구에 중요하기 때문에 전통시대에는 한해의 목화의 풍흉(豊凶)이 대단히 중요하였다. 이런 이유로 목화의 풍년을 기원하고, 그것을 짐작하기 위한 다양한 의례가 벌어졌다. 볏가릿대 세우기는 풍농을 기원하는 농민들의 염원이 잘 반영되어 있거니와, 농가에서는 정월 열 사흗날 마당에 소나무를 세워 그 위에 짚을 묶어 쌓아서 기장(旗杖)을 만들고, 벼 나 조, 기장 등의 이삭을 꽂아놓고 목화를 매달기도 한다. 이는 벼농사도 중요하지만, 목화의 농사도 중요함을 의미한다. 평안남도 성천, 순천, 강동에서는 음력 이월 초하룻날, 뒤뜰에 면화(棉花)가 만발한 모양의 나뭇가지를 세우는 목화풍년(木花豊年)놀이를 거행한다. 가지에 면화송이를 풍성하게 매달고, 여인상 인형을 몇 개 매달아 마치 여인들이 풍성한 목화밭에서 목화를 수확하는 듯 한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다. 한편 전라도와 경남 지방의 풍속으로 삼묘일(三卯日) 보기가 있다. 음력 2월에 묘일(卯日)이 세 번 들면 목화 농사가 잘 된다고 믿는다. 면화(棉花)를 하는 농가(農家)에서는 2월에 묘일이 몇 번 드는가 보는데, 토끼는 털이 있는 동물 중에서도 목화의 색깔처럼 흰 털을 가진 동물이어서 토끼와 목화 농사를 연관시키는 것이다. 또한 겨울에 눈이 많이 오는 해는 목화가 풍년 든다는 뜻으로 “입하 일진이 털 있는 짐승날이면 그 해 목화가 풍년 든다”는 말도 있다. 또한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소에게 밥과 나물을 함께 차려 주어 소가 먹는 것을 보고 그해 농사의 풍년을 점치는 소밥주기 풍속이 있다. 전남에서는 여러 가지 음식을 갖추어 놓고 소가 어느 것을 먼저 먹느냐를 본다. 이때 고사리, 무나물을 비롯하여 밥과 함께 목화씨를 놓아 소가 먹도록 하는데, 목화씨를 먼저 먹으면 목화가 풍년이 든다고 믿는다.
② 단호, 영산홍
다음으로 우리 민족의 중요 명절의 하나인 단오에도 우리 꽃으로 농사의 풍흉을 기원하는 풍습이 남아있다. 강릉지방에서는 5월 단오(端午)에 단오굿을 거행할 때, 행렬이 산을 내려오면서 영산홍이라는 산유화가(山有花歌)를 부르며, 또한 대관령 국사성황신 행차가 구정면 학산리에 이르면 이곳 주민들은 횃대에 불을 붙여 영산홍꽃을 바치며 신을 맞는 의식을 거행한다. 이는 불교의 산화공덕과 같은 의미로서, 횃대의 불꽃과 상상 속의 꽃이 신격을 영접하는 민요로 불린 것이라 할 수 있다.
③ 농사의 길흉, 나리꽃
나리꽃은 풍요의 상징이었다. 이 꽃이 많이 피는 해는 풍년이 든다고 했다. 해마다 봄이면, 나리꽃이 피는 것으로써 그 해의 기상을 점쳤다. 곧 산나리꽃이 활짝 필 때면 조를 뿌리는 시기로 어림했으며, 감자를 심기도 했다. 산나리꽃이 피면 장맛비는 오지 않는다고 했다.
④ 풍요 점치기, 민들레와 백일홍
“민들레꽃을 꺾으면 어머니의 젖이 준다”는 속담이 있다. 민들레의 꽃대를 꺾으면 젖과 같이 즙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 속담은 식물의 특성과 인간의 삶을 동일시하는 주술적 관념에서 나온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백일홍꽃이 핀 후 100일째에는 서리가 내리므로 일찍 피는 것이 좋다”는 풍습이 있다. 그리하여 이 꽃이 빨리 피면 조상(早霜),
늦게 피면 만상(晩霜)이라고 하였다. 이는 꽃의 개화를 통해 농사의 풍흉을 짐작하는 삶의 지혜의 소산이라 할 것이다.
⑤ 기상예보, 찔레꽃
찔레꽃과 관련하여, “찔레꽃이 입하(立夏) 전에 피면 비가 많이 내린다”는 속담이 전한다. 이는 찔레꽃이 피는 것을 통해 그 해의 일기를 짐작하는 것으로, 찔레꽃의 다과(多寡)를 통해 그 해의 풍흉을 짐작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5월 단옷날 아침에 부녀자들이 일찍 일어나 밤새 상추잎 혹은 찔레꽃잎 등에 떨어진 이슬을 모아 얼굴에 바르는 풍속이 있다. 이를 ‘상추이슬 분바르기’라 부르는데, 특히 부산지방에서는 밤이슬을 맞은 찔레꽃을 따서 먹거나 찔레꽃잎을 넣고 잘게 떡을 빚어 나이 수만큼 먹으면 여름에 버짐이 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⑥ 무병장쑤, 할미꽃
“어릴 때 할미꽃을 따 먹으면 오래 산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식물의 특성과 인간의 삶을 동일시하는 주술적 관념의 소산일 것이다.
4) 놀이감으로 쓰인 예
우리의 꽃은 아이들이나 어른들의 놀이감이 되기도 하였다. 그뿐 아니라 여인들의 단장을 위한 도구로 쓰였다. 추측에 불과하지만 ‘꽃단장’이란 표현이 여기서 유래되지 않았나 싶다.
① 고운 단장, 꽃물들이기
봉숭아, 분꽃과 함께 나리꽃이 피면, 아이들은 그 화분(花粉)을 따 모아서 손톱에 물을 들이거나, 종이나 천에 무늬를 그렸다. ‘꽃물들이기’는 아이들의 놀이이면서, 식물 꽃잎의 특징을 감안하여 색깔을 조합하는 그림을 그리는 지적 훈련장이기도 하였다.
② 풍선껌 대신, 나팔꽃
나팔꽃으로는 풍선을 만들었다. 시든 꽃송이를 따서 꽃이 붙어 있던 자리에 있는 둥근 구멍에 입을 대고 불면, 꽃 부분이 부풀어서 풍선 모양이 되는 것이다.
③ 돌아라, 민들레 물레방아
민들레로는 꽃대로 물레방아를 만들어 놀았다. 이는 꽃대의 양쪽 끝이 밖으로 말려들어 꽃송이처럼 벌어지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어서, 아이들의 성장기 지적 능력을 계발하는 효과가 있었다. 또한 민들레꽃이 지고 씨가 생겨 하얀 솜뭉치와 같이 부풀게 되면, 어린이들은 이것을 꺾어 입에 대고 불어서 ‘민들레씨 날리기’를 하였다. 이것 역시 식물의 특성을 감안한 아이들의 건전한 놀이라 할 것이다.
④ 누가 이기나, 제빛꽃
아이들의 놀이로 ‘제비꽃 싸움’이 있다. 이른 봄에 보랏빛 제비꽃이 피면, 이것으로 꽃싸움을 하는 것이다. 제비꽃싸움은 이른 봄에 아이들이 풀잎이나 화초를 꺾어서 승부를 겨루는 놀이의 하나로서, 자연 식물의 특성을 이용한 정겨운 놀이다. 또한 제비꽃 씨주머니를 터뜨려서 흰색은 쌀밥이 되고 갈색은 보리밥으로 간주한 뒤, 두 아이가 서로 씨를 터뜨려 쌀밥이 많이 나온 아이가 승리하는 놀이를 한다. 그리고 제비꽃의 씨는 여자 어린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할 때도 사금파리나 풀잎 그릇에 올려져 쌀밥과 보리밥 역할을 한다.
⑤ 꽃족두리, 할미꽃
4월 산과 들의 풀밭에 할미꽃이 필 때, 어린이들은 할미꽃으로 족두리를 만들며 논다. 할미꽃의 꽃자루를 떼고 노란 꽃술을 위로 하고 자줏빛 꽃잎을 밑으로 말아 돌려서 조그마한 가시 같은 것으로 꽃잎을 고정시켜 꽃족두리를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아이들의 꽃과 관련된 아이들의 놀이는 자연 식물의 특성을 이용하는 지혜를 기를 수 있으며, 오늘의 아이들과 다른 건전한 여가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좋은 역할을 담당하였다 할 것이다.
⑥ 노세노세, 벚꽃 필 때, 철쭉 필 때
꽃과 관련된 어른들의 놀이로 빠질 수 없는 것이 벚꽃놀이와 철쭉맞이 놀이일 것이다. 먼저 매년 4월이 되면, 전국적으로 벚꽃으로 이름난 곳에서는 벚꽃 구경과 놀이가 벌어진다. 대표적인 곳으로 화개~쌍계사 ‘십리벚꽃길’이며, 전주~군산 ‘전군가도’, 그리고 진해, 사천, 경주, 공주 마곡사, 부산 달맞이고개, 서울 남산과 윤중로 등은 벚꽃 천지다. 벚꽃이 피면, 관광객은 벚꽃 열차나 벚꽃 관광버스를 타고 벚꽃의 명소로 향한다. 그리고 5월 경 산에 철쭉이 만개하는데, 이때 철쭉으로 이름난 산에서는 철쭉맞이 행사가 벌어진다. 소백산 철쭉제와 한라산 철쭉제 등이 유명하다. 이들 두 꽃맞이놀이는 궁극적으로 지역축제로서 외부에 지역의 특성과 이미지를 드높이고 지역민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며, 관광 수입을 올리는 데도 일정한 역할을 한다.
⑦ 해당화 필 무렵, 해산물 캐기
특이한 것이 음력 4월을 전후한 시기에 서해안 도서 지역을 중심으로 전해져 오던 여성들의 놀이인 ‘등바루놀이’이다. 해당화가 만발한 해변에서 15세 이상의 처녀(지금은 부녀자까지)가 모여 하루 동안 해산물을 누가 가장 많이 채취하는지를 시합하는 것인데, 이는 일종의 성년식(成年式)의 성격의 놀이이면서 아울러 섬마을의 풍어와 평안을 염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다.
5) 주술적인 의미
우리의 꽃들은 각각의 꽃들이 가지는 특성, 색채에 따라 주술적인 의미가 부여되면서, 액(厄)을 물리치고 사악함을 막는 역할을 하였다.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 꽃은 그 특성에 따라 추상적인 상징성을 부여받아 문학작품에서 절개, 아름다움, 소인배, 계절 등의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게 되었다.
① 벽사, 계피
계수나무의 껍질을 벗겨 말린 계피(桂皮)는 붉은색으로, 제액과 벽사의 기능을 가진다. 계피 가루는 제사상이나 잔칫상에 오르는 약과, 단자(團子), 주악, 편류 등을 만드는 데 쓰인다.
② 정성 어린 봉양, 제비꽃
혼인의 육례 가운데 ‘신부의 사당뵙기’에서 시부모가 사망 때 신부가 제비꽃나물(菫菜)을
바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제비꽃이 근(菫), 미나리의 근(芹)과 상통한 데서 연유한 것으로, 헌근(獻芹)의 고사, 곧 “옛날에 미나리를 임금에게 바치는 풍습”을 차용한 것이다. 이로써 “정성을 다하여 죽은 부모에게 선물을 바친다”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③ 부귀 번영, 원추리
원추리꽃은 그 색이 노란색의 하나인 등황색(橙黃色)인데, 이 색은 오방(五方)의 정중앙을 나타내며, 부귀와 번영, 영화의 상징이자 황제의 색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이 색은 각 방향에서 들어오는 잡귀를 막는 벽사의 주력을 가진 색으로 인식되었다. 원추리꽃을 집안에 심으면 집의 부귀영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원추리의 꽃봉오리 모양이 사내아이의 ‘고추’를 닮은 탓에 집안에 심기도 한다. 옛날 어머니들은 임신하면 이 봉오리를 머리에 꽂고 다니는 풍습이 있어, 이 꽃을 의남초(宜男草)라고 부른다. 또한 꽃봉오리의 생김새 때문에 이 꽃을 합환화(合歡花)라고 불렀는데, 원추리꽃이나 순을 삶아 먹고 합방하면 아들을 가진다고 하는 습속이 있었다.
④ 건강을 위해, 창포
창포 역시 대단히 주술적인 의미를 지녔다. 단오에는 여자들이 창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한다. 그러면 머리카락이 윤기가 흐르고 빠지지 않으며, 잘 자란다. 또 피부가 고와지고 예뻐지며, 사귀(邪鬼)를 쫓고 일 년 내내 무병하다는 속설이 있다. 또한 부녀자들은 창포뿌리를 깎아 비녀를 만들어 수(壽)자나 복(福)자를 새기고, 끝에 연지나 인주를 발라 머리에 꽂고 단오옷을 입었는데, 이를 단오장(端午粧)이라고 했다. 또 나무를 깎아 끝을 뾰족하게 하여 비녀로 삼아 머리에 꽂고, 그 윗부분 양쪽에 싹이 돋아나오는 모습처럼 창포잎을 붙였다. 붉은색을 비녀 끝에 칠하는 이유는 붉은색이 귀신을 쫓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옷날에 창포뿌리와 창포잎을 이용하여 비녀를 꽂는 것은 액운을 물리치기 위함이다. 또한 창포 화분을 방에 들여놓고 글을 읽으면, 눈이 밝아지고 총명해진다고 한다. 그리고 단옷날 창포꽃을 따서 말려 창포요를 만들어 깔고 자면, 모기, 빈대, 벼룩 등 온갖 곤충들이 접근하지 못하고 병마나 액귀(厄鬼)도 침범하지 못한다고 한다. 창포줄기로 엮은 방석도 그와 같은 벽사의 효과가 있었다.
4. 종교의례에 나타나는 우리 꽃
1) 삶의 마디마다 녹아든 꽃
우리는 삶을 살며 닥치는 어떤 마디마다 특별한 행위를 한다. 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사람의 한 평생이다. 태어나 살다 죽고 후인에게 기려지는 일회적이고 직선적인 삶이 그 하나다. 이는 대개 일생의례, 혹은 평생의례로 불린다. 보통 이는 유교적 예제가 보급된 이후 관혼상제(冠婚喪祭, 家禮)로 통칭되어왔으나, 이외에 기자속이나 돌, 백일, 회혼잔치, 천도재 등이 포함된다. 다른 하나는 일 년 열두 달의 순환 반복의 삶이다. 이는 세시풍속(의례)이라 할 수 있다. 이외에 특별한 계기에 행해지는 부정기적인 의례가 있다. 이들 의례는 개인(가정), 마을(지역), 국가(왕실)이라는 단위에서 행해진다. 이들 의식을 집전하는 전문가들은 가정이나 마을에 있기도 하고, 국가(왕실)의 관리들이 행하기도 하고, 승려나 무당들처럼 전문가들이 집전하기도 한다.
이들 의례는 개인이나 공동체의 삶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에 매우 다양한 의례가 발달했고, 이들 의례에는 필수적으로 꽃이 등장한다. 꽃은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기도 하고, 의미 있는 상징이기도 하고, 때로는 신의 위엄과 권능을 보여주는 대행자(매개체)이기도 하다. 꽃은 생화가 사용되기도 하였고, 가화(假花, 지화)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최근처럼 사철 꽃이 없었기에 생화의 사용은 제한적이었다. 대신 가화가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에는 공작의 전문가가 필요하였다. 전문가는 마을과 지방의 관아, 궁중에 존재했고, 승려나 무당, 광대들도 가화의 전문 제작자였다. 가화는 갈수록 발달하여 불교나 무속에서처럼 각종 의미를 품고 있는 상상의 꽃이 만들어졌다. 이하에서는 민간의 평생의례(혼례, 회혼례,
상례), 왕실의 궁중의례(주로 가례), 불교, 대동굿(세시풍속, 무속) 등에서 꽃이 사용되는 방식과 그 의미를 개관해보고자 한다.
2) 민간의례
평생의례, 즉 관혼상제에서는 대개의 경우 꽃이 필수적인 물목으로 사용되었다. 그 중 혼례와 회혼례 등의 잔치, 상례의 일부에서 꽃이 사용되었다.
① 혼례, 솔과 대나무
혼례에서는 솔가지와 대가 사용되었다. 신부 집에서 진행하는 대례 시에 초례상, 행례상, 대례상 등에 각종 물목과 더불어 꽃이 필수로 진설되었다. 소나무는 장수를, 대나무는 자손번성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송죽 대신 봄에는 사철나무나 동백꽃, 늦가을에는 국화 등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들 꽃은 백자 항아리에 꽂아 놓는다. 겨울인 경우 더러 지화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여유 있는 사대부가에서는 대례의 음식상을 각종 꽃으로 장식하기도 하였고, 부녀자들의 머리에 꽃을 꽂아 분위기를 돋우기도 하였다. 대례상의 꽃으로는 신방을 장식하였다.
② 잔치 병풍, 모란
잔치의 병풍으로는 모란병풍이 많이 사용되었다. 모란병풍은 보통 괴석과 모란이 같이 그려졌는데, 남녀화합과 부귀를 상징한다. 신랑 집에서 시부모님께 인사하는 현구례
때에도 신랑, 신부가 받는 상의 끝에는 어김없이 꽃이 등장한다.
③ 만수무강, 국화
어르신의 회갑이나 축수연 등에서는 만수무강을 비는 의미에서 국화가 사용되었다. 국화에 기국연년(杞菊延年) 등의 문구를 부쳐 헌화하였다. 국화는 백자화병에 꽂아 놓는 것이 일반적이며, 더러 하객들 중 주로 부인들의 머리에 꽃을 꽂기도 하였다. 큰 잔치의 경우 하객들의 음식상에도 꽃병을 놓는데, 이를 상화(床花)라 한다.
④ 금락왕생과 애도, 연꽃
상이 났을 때나 제사에서는 꽃은 당연히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출상 시의 영여(靈輿)와 상여는 예외다. 영여는 망자의 혼을 싣고 가는 가마인데, 가마 지붕에 녹색 바탕에 붉은 색의 연봉을 달아 놓고 가마 옆에는 연꽃을 그려 놓았다. 상여는 망자의 시신을 싣고 가는 가마인데, 용마루 위에는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상여 옆에는 십이지상 등 각종 장식이 배치되는데, 이를 꼭두라 한다. 영여와 상여를 연꽃으로 장식하는 것은 극락왕생을 비는 불교적 신앙의 흔적이다. 상여는 비용이 많이 들므로 대개 마을 공동의 소유다. 꽃상여는 흰색 지화로 장식하는데, 상이 끝나면 모두 태워버린다.
3) 궁중의례
궁중의례는 다섯 가지 의례로 나뉜다. 소위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가 그것이다. 오례는 길례(吉禮), 가례(嘉禮), 빈례(賓禮), 군례(軍禮), 흉례(凶禮)의 다섯이다. 조선조에 주자 성리학과 주자가례가 유입되었지만, 주자가례는 말 그대로 가례만을 중시했을 뿐, 국가(궁중)의례에 대한 규범은 정해 놓지 않았다. 이에 조선은 고려의 예제와 중국의 고례를 참고하여 나름의 궁중의례를 정형화시켰다. 세종 때 시작하여 성종 때 완성하였고, 조선 후기에 재정비하였다.
궁중의례는 나라에서 가장 화려한 의식이다. 당연히 각종 장식이나 상징물들도 최고급이었다. 필수품이었던 꽃도 최고급의 절화(제철 생화)나 가화가 사용되었다. 오례 중 꽃이 가장 많이 사용된 예제는 가례, 즉 잔치였다. 이외 빈례(사신 접대)나 흉례(상례) 등에서도 일부 사용되었다. 이하에서는 고려시기 궁중의례 중 꽃의 사용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고, 조선시기의
가례를 중심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1) 고려의 궁중의례
고려시기 궁중의례 중 꽃이 많이 사용된 경우는 대부분 가례다. 고려사 예지에는 왕비나 왕태자를 정하고 잔치를 벌이는 경우, 신하들을 위한 연회 등에서 임금에게 꽃을 올리고, 신하들에게 꽃을 하사하고, 꽃을 머리에 꽂는(戴花) 기록이 여럿 발견된다. 이외, 정월의 연등회나 11월의 팔관회는 해마다 열리는 가장 큰 국가의례였는데, 왕이 머리에 꽃을 꽂는 법도가 엄정하였고, 태자와 군신에게 꽃을 하사하는 절차가 있었다. 강감찬장군은 거란병을 물리치고 돌아와 금으로 만든 여덟 가지의 꽃을 하사받았고, 노인잔치인 기로연에서도 꽃의 하사가 있었다. 대화의 풍속은 고구려 등 사신도에 보이는 깃털 꼽는 풍속의 유풍으로 보이며, 이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진다. 대화는 아마도 고대 이래로 조선을 상징하는 특이한 장식문화였던 것으로 여겨진 듯하다. 꽃은 대개 가화였고, 베나 비단, 심지어는 금으로 제작하기도 하여 낭비라는 건의도 있었다.
꽃과 관련한 관리도 따로 있었는데, 왕이 하사하는 꽃과 술을 전달하는 선화주사(宣花酒使), 꽃을 꽂아주는 권화사(勸花使), 운반을 감독하는 압화주사(押花酒使), 꽃 가진 이를 영솔하고 꽃을 거두는 인화담원(引花擔員) 등이 있었다.
(2) 조선의 궁중의례
조선시기 꽃이 많이 사용되는 경우는 고려와 마찬가지로 가례다. 조선의 궁중 잔치는 큰 연회를 진연(進宴), 작은 잔치를 진찬(進饌)이라 했다. 이러한 잔치에서 사용되는 꽃은 대부분 가화였고, 그 종류와 수량도 엄격히 정해져 있었다. 또한 가화를 만드는 전문 장인인 화장(花匠)이 있었다. 꽃을 꼽는 각종 도구(花樽, 花案, 花壺, 進花卓, 供花卓 등)도 정교하게 준비되었다. 이들 잔치는 궁중 도화원의 전문 화공들이 상세한 칼라 그림으로 그려 놓았는데, 이를 왕실의궤(王室儀軌)라 한다. 이 의궤에는 각종 꽃장식들, 가화들이 자세히 그려져 있어 오늘날 꽃꽂이 하는 이들이 참고하여 재현하고 있다.
잔치상에는 음식마다 꽃을 꽂았고(床花), 후기로 오면서 꽃의 종류가 20여 가지를 상회하였다. 고종 때 조대비의 육순잔치 때는 29가지의 꽃이 등장한다. 삼층대수파련(三層大水波蓮), 중수파련, 소수파련의 연꽃, 절화(節花), 삼지건화(三枝建花), 삼색별건화(三色別建花), 홍도건화(紅桃建花) 등 모두 29가지가 잔치 음식 중앙에 꽂혀졌다.
일반적인 가례에서는 왕에게는 진화(進花)하고, 왕세자 등에는 공화(供花)하고, 신하들에게는 산화(散花)하였다. 이외, 임금이 내리는 특별한 사화(賜花)가 있었는데, 어사화(御賜花)가 그것이다. 어사화는 두 개의 대오리 밑 부분을 종이로 함께 싸서 묶고, 위로는 대오리가 각각 벌어지도록 한 다음 아래에는 커다란 종이(꽃받침)를, 위에는 여러 색의 종이꽃을 붙인 것이다.
고려에 이어 조선에서도 머리에 꽃을 꽂는 것(戴花)은 일반적이었다. 왕과 신하, 궁녀, 악공, 기녀, 무희 등이 모두 대화를 하였다. 머리 위의 관에 꽂는 꽃은 사화(絲花, 絲圈花)라 하는데, 오색 비단실을 감아 만든 가화였다. 사권화는 한 줄기에 네 송이의 꽃과 잎을 붙이고, 두 마리의 나비와 벌 네 마리를 붙여 놓은 형상이었다.
한편 임금의 초상 때에도 많은 가화를 사용하여 그 낭비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국상 때 가화는 비단으로 여러 꽃과 열매를 만들어 유밀과에 꽂았다고 한다. 꽃은 매화, 배, 진달래, 해당화, 복숭아, 살구, 연화, 모란, 감귤, 홍시 등이었다. 가화는 비단, 모시, 기름종이 등으로 만들어졌기에 논란이 많았고, 생화의 경우도 민간에 헌납을 강요하여 민폐가 많았다.
4) 불교의 꽃
불교에서 꽃은 기본적으로 불보살에게 바치는 공양물이다. 또한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주는 상징물이거나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장엄물이기도 하다.
꽃이 깨달음의 상징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염화미소(拈花微笑)가 있다. “부처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다 꽃을 들어 보이니, 가섭만이 미소 지었다”는 얘기인데, 꽃이 바로 깨달음의 경지를 상징하는 매개가 된 것이다.
불전에 바치는 공양물임을 보여주는 기록으로는 석가여래십지행록(十地行錄)의 제8지 선혜선인품이 있다. 이는 석가모니의 본생담(전생담)이다. 선혜라는 보살이 부처님께 꽃을 공양하고자 구리라는 여인이 갖고 있던 칠경화(七莖花)를 내생의 결혼 약속 끝에 얻어 각각 다섯 송이와 두 송이를 부처님께 공양하고 미래의 성불을 수기받았다는 설화다. 이 선혜보살은 석가모니가 되었고, 구리는 석가의 아내가 되었다. 일제 시기 이후 불교의 신식 화혼례(華婚禮)에서는 이 칠경화 설화에 따라 신랑, 신부가 헌화한다.
불전에 공양하는 꽃다발을 화만이라 한다. 이는 인도인들이 꽃을 실로 꿰거나 묶어서 몸을 치장하는 방법이었는데, 불교에서 이를 불보살에 드리는 공양법으로 채택한 것이다. 이는 이후 불전 공양구로 전용되거나 불화 상단의 장엄용으로도 활용되었다.
불교에서 꽃은 극락세계의 상징이기도 하다. 특히 연꽃은 깨달은 이를 나타내기도 한다. 부처가 태어나 칠보를 걸을 때마다 연꽃이 피어났다는 설화는 그 첫 사례다. 또한 모든 불상은 법당에서 연화대 위에 앉아 있다. 화엄경에서는 연화장(蓮華藏) 세계를 설하는데, 이는 부처의 깨달음과 함께 바른 눈이 열리는 장엄 세계라는 의미이다. 정토 관련 경전에서는 극락세계 중 최상위인 9품연화대에 왕생하는 것이 으뜸임을 설하고 있다. 불교에서 연꽃은 다섯 가지(백련, 홍련, 청련, 황련, 청백련)가 있는데, 이중 백련을 으뜸으로 친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도 그 청정함을 잃지 않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하여 처염상정(處染常淨)이라 한다.
한편 불교의식의 정수인 영산재(靈山齋)에서는 각 단을 지화로 장엄한다. 불교의 천도재는 대개 상단(불보살단), 중단(신중단), 영단(영가단)의 삼단 체계를 기본으로 하는데, 이 각 단을 지화로 장엄한다. 상단을 야외 마당에 걸고, 掛佛壇에는 작약과 모란을, 중단에는 국화와 다리화를, 영단에는 연화(연지화)를 놓아 장엄한다. 또한 재를 지내는 중 가장 장엄한 상단불공에서는 불교의식의 무용인 작법을 추는데, 이때 모란과 작약을 들고 춤공양을 올리기도 한다. 연꽃, 모란과 작약 외에도 불교 전각에는 외부나 실내 벽화에 다양한
꽃이 그려지는데, 어송화, 수초, 맨드라미, 치자, 들국화 등이 자주 등장한다.
* 원고 출처: kocca 문화콘텐츠닷컴
* 자료 편집 및 첨삭: 카페 주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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