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영님의 "제주도우다"를 가슴에 피멍으로 안았습니다,
41년생인 작가 현기영님은 80이 넘은 나이입니다,
죽기전에 기록을 남기고 싶어 혼신을 다한 그의 기록입니다,
내가 제주도 4.3 사건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것은 1982년입니다,
당시 제주도 30만명중 8만명이 죽었다는 기록을 처음 읽었을때 온 몸에 전율이 일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 역사에서 손꼽히는 비극중의 하나인 4.3은 철저히 은폐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주 4,3사건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4.3사건은 왜 일어났는지,
어떻게해서 제주도 사람들은 모두 빨갱이가 되어 죽어가야 했는지,
제주진압부대로 제주로 향하던 14연대가 왜 여수에서 총을 거꾸로 들게 되었는지,
아직도 역사는 물음표로 남아 있습니다,
일본군이 마지막 저항을 위해 관동군을 불러들여 7만이 머물렀던 피울음의 제주가 해방을 맞이하고,
해방공간에서 새나라의 건국을 꿈꾸던
"좌"도 "우"도 아닌 그냥 "제주도우다(제주도입니다)"였을뿐인 제주도 사람들,
47년 3.1절 기념식에서 경찰의 발포로 시작되어
항의에 가해진 무차별적인 폭력과 총격,
모든 젊은이를 죄인으로 취급하는 폭력과 검거와 총격,
1년동안의 저항과정과
마침내 48년 4월 3일 폭압과 폭행에 저항해 일어선 제주도 사람들,
그리고 8개월에 걸친 서북청년단(서청)에 의한 학살과 처형,
젊은이에 이어
마침내는 노인과 아이까지 죽이고, 마을을 불태운 만행,
제주출신아라는 이유로 제주경찰과 제주군인들,
학살을 보도한 기자들을 처형하고,
관대한 형량을 내렸다고 검사와 판사까지
제주출신이라면 무조건 살상했던 무자비한 세월,
"제주도우다"는
일제강점기 말기의 일본군 7만의 폭압에서 시작해
해방공간에서 서북청년단과
서북청년단 출신이거나 친일파였던 경찰, 군인에 의해
제주도민들이 학살당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서북청년단(서청)의 무자비한 폭력과 살상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서북청년단의 뒤에는
"섬 전체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태워야 한다"고 말한 조병옥이 있었고,
조병옥의 뒤에는
미군대령 브라운이 있었고,
한반도의 분할을 위한 시범케이스가 필요했던 미국과 이승만이 있었습니다,
제주도 4.3사건은 제주도의 피울음이면서
75년의 세월동안 은폐된 아픈 역사입니다,
역사는 지난 과거이야기가 아닙니다,
과거의 역사위에 오늘이 있고,
오늘 만들어가는 역사가 미래의 기반이 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의 미래가 밝을수 없습니다,
아픈 역사일수록 되새기고 가슴에 안아야 역사를 반복시키지 않을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도우다는 대한민국 사람이 반드시 읽어야할 필수 교과서라고 생각됩니다,
어쩌면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닌지도 모릅니다,
내가 모르고 잘 살고있는 영광의 우산공원에도 이런 탑이 있습니다,
아무런 영문도 모른채 이념의 제물이 되어 사라졌던
사람들의 아픔을 돌아봐야 합니다,
이곳 영광에서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었네요,
인민군이 남하하기전에 후퇴했던 국군,
국군이 진격하기전에 후퇴했던 인민군,
치열한 전투조차 없었던 6.25기간동안 이곳 지역에서 희생된 사람은 21,225명,
영광사람만 5,498명이네요,
제주4.3 사건에서 죽은 사람을 어떤 사람은 8만이라고하고,
어떤 사람은 3만이라고하고,
제주 평화공원의 위패는 15,000정도가 됩니다,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곳 영광도 마찬가지일것이고,
다른 지역도 비슷하리라 생각됩니다,
유태인이 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히틀러를 욕하기전에,
우리 역사에서 일어났던 과거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왜 그들은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죽어가야 했는지,
그들을 죽인 자들은 누구이며,
그들이 얻은 이득이 무엇이었는지,
그 학살자를 계승한 사람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배우고 알아야 합니다.
그들을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역사를 되풀이하지않기 위하여,,
제주 4.3을 역사에서 제대로 배우지않아
광주의 5.18이라는 역사를 반복했습니다,
이제는 다시는 그런 역사를 만들어 내지않기위해
우리는 그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하여,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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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