뻬루구비문학집에 나타난 해학에 대해서 쓴다는 것은, 역사적 일화모음집에서 해학은 매우 편재해 있기에, 바다에서 물에 대해서 쓰는 것과 유사하다. 리까르도 빨마에 대한 비평가가 적어도 여러 가지 국면들 중 하나에 대한 논쟁을 하는데 실패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 이다. “우리의 위대한 해학적 서사시요, 우리의 인간적 희극이다,” “우리 역사의 우스꽝스런 서사시다.”—이런 언급이, 빨마의 “재치 있고 세속적인 해학이다,” “반어법적 경묘(輕妙)이다,” “과거에 대한 그의 해학적 시각이다.”라는 인유와 함께, 산재한다. 벤뚜라 가르시아 깔데론 Ventura García Calderón은 “웃는 것과 우리를 웃기는 것은 연대기편찬자의 우선적 사명이다.”라고 주장한 반면에, 그의 전집의 아길라판을 준비했었던 빨마의 손녀는 지당한 감탄과 함께 그녀의 할아버지는 때때로 “가장 완전한 해학작가로서 행동하여, 당대 스페인문학에서 대등한 사람이 없다”고 천명한다. 이러한 분석에 전적으로 찬성하여, 구비문학작가 스스로가 고백한다: “나의 문학적 특질은 해학이고, 아마도 어떤 면에선 볼테르적이다.” (p. 4)
다음의 사항이 제안되어 왔다. “예술가로서의 해학작가는 그러한 선물과 함께 태어난다; 작가로서 엄격하게, 그는 자기 자신을 만들고, 빛을 내고, 그리고 동시에 태도를 ‘만든다’.” [산띠아고 빌라스 Santiago Vilas, <해학과 현대스페인소설 El humor y la novela española comtemporánea>] 빨마는 빌라스에 의한 이러한 고찰에서 명백하게 제외됐다. 비록 뻬루인적 악자기질(문학을 만드는 뻬루적 방법을 육성하는 “우아한 악의”)의 합법적 상속자로 태어났지만, 그리고 영리한 리마인의 기지를 위해 명백히 타고난 천재성과 함께, 그곳을 따라 길을 내는 적절한 미학적 통로를 발견하기 위해 그는 부지런하게 스스로를 전념하게 했다. 어휘와 언어의 정신에 자기 자신을 익숙하게 하고 몰두하면서, 특히 스페인고전작가들에서 표명한 것처럼, 그는 대단한 인내심을 가지고 이야기들을 쓰고 다시 썼다. 그의 성숙된 스타일의 전형적인 해학과 반어법의 자발성과 함께 수정하고 활기를 불어 넣으면서, 나중에 그는 자신의 첫 번째 구비문학으로 복귀했다.
그곳에 그의 성공의 열쇠 중 하나가 놓여 있다. 최대한의 효과를 얻기 위해, 특히 구어체에서, 해학은 남용되는 저술에서 종종 상실하는 자발성과 자연스러운 기지를 요구한다. 빨마의 일화들은, 비록 작가에 의해 지나치게 손질되고 재고됐지만, 꽉 찬 표현과 해학의 전달에 필수적인 대화적 어조의 자연스러움과 함께 활기가 있다.
제한 속에서 사람은 “각국의 해학을 표시하는 어떤 상이한 개인성”을 찾을 수 있다.” [스테픈 리칵 Stephen Leacock, <해학: 이론과 기교 Humor: Its Theory and Technique>] 빨마의 해학은 이 장 모두에서 제안했던 것처럼, 두개의 맥을—뻬루인의 악자기질과 어떤 특정적인 스페인적 색채를 보여준다. 미겔 데 쎄르반떼스 Miguel de Cervantes의 문하생으로서, 그는 께베도 Quevedo의 언어뿐만 아니라 후자의 언어형식에도 젖어 들게 됐다. 이러한 양식에서 이 위대한 대가들은 스타일의 확고화와 생의 해학적 전망에서 그를 안내했다. 사람들은 뻬루인의 풍자의 영향에 동등하게 의미심장하도록 밑줄을 그어야만 한다. 그것은 그의 게념을 알리고, 스페인고전작가들의 본보기에 안내를 받아, 그의 작품의 모든 국면에서 주장된다. (pp. 5-6)
진정한 해학작가는 생의 비평적 관중으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동시적 역할을 수행한다. 관중으로서, 그는 철학적 전망의 무대로부터 인간활동의 전 범위를 바라보고 해석한다. 인생을 관망하고 경험하면서, 그는 자신에게 있어서 “실존의 예술”을 구성하는 “인생에 대한 태도,” 즉 세계관을 받아들인다. 그의 전망의 댓 가로, 그는 인간성에서의 불완전성과 존재의 그럴듯한 역설을 식별하고 때때로 해결책(해학작가—도덕주의자)을 제시하고 때로는 자신을 순수한 미학적 기쁨(해학작가—예술가)을 제한하면서, 예술적으로 그것들에 대응한다.
빨마는 양쪽의 자세를 취한다. 그는 때로 비평하고 빈정대고 풍자하고 혹은 사소화하고 그의 해학이 제시해주기를 그가 바라는 스타일적 틀을 엄격하게 인식함으로써 그의 “우스꽝스런 명상”을 요구한다. 갈도스의 소설들을 평가하면서, 페데리꼬 데 오니스Federico de Onis는 또한 빨마의 일화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번역되지 않은 스페인어기사에서] 그가 말하기를, “일치의 영속적인 특성으로서 표현에서의 어조와 세상을 보는 방법과 확실히 해학적 인물과 어떤 다른 작가들보다도 더 쎄르반떼스의 그것들과 닮은 단순하고 자연스럽고 흥미진진한 인간적인 해학을 갖고 있는 삶을 느끼는 방법이 항상 제시된다.” 그래서, 구비문학작가의 눈을 통해 여과된, 식민지시대와 공화국, 그리고 효과적인 인간성은 일반적으로 빨마의 반어법적 분발 하에서 삶과 실체를 갖는다.
해학작가의 전망은 부분적으로 독립의 확고한 자세에서 파생한다. 다른 해학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빨마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옹호하였다. 반어법적 해학에 의해 초래된 표현을 위해 폭 넓은 기회에서 노력하면서, “고찰되지 않는 고찰자”로서 빨마는 삶의 게념에 의해 허용된 자유롭게 흐르는 영감에 따라서—뻬루사회의 과거와 현재의 가지각색의 활동을 자세히 살펴보고 예시했다. 게념의 정확한 기질 혹은 부왕직과 공화국 양쪽을 마주한 사상적 자세는 우리의 분석을 우리가 진행함으로써 명백해질 것이다. 진정한 해학작가인 빨마는 “존재의 실제적 전망을 통해서... 그것의 자유의지에서 인간정신의 고양”을 찾았다. 그렇지만, 부분적으로, 해학과 반어법에 대한 그의 의지는 또한 방어적 측정으로서 작용했다. “비평에 대한 특정한 민감성과 젊은 작가의 미늘은 해학에 의해 분투된다.”고 장 라모어 Jean Lamore가 지적하듯, 빨마는 비평과 그의 인기의 있음직한 부족에 민감했다.
첨언하여, 다른 동요스런 경험과 더불어 1872년 호세 발따 José Balta대통령의 암살과 같은 70년대의 산체스 까리온-몬떼아구도 Sánchez Carrión-Monteagudo사건과 1881년 그의 집과 도서관의 상실이 그로 하여금 과거에서 해학적 반어법과 풍자의 가벼운 회의에서 도피처를 모색하게 했다. 각각의 방향이 동시대인들의 미늘로부터 그리고 삶의 모순과 상반성의 보다 더 심각한 평가를 수반하게 됐을 철학적 불안으로부터 각각 자유로운, 독립된 관중으로서의 역할을 고양시켰다. 물론, 그의 스타일과 어조의 주된 의지 물로서의 해학의 채택에서 또 다른 동기는 그의 동포들 사이에서 뻬루역사를 퍼트리려는 그의 욕망과 관련 있다; 환약을 달콤하게 하는 그의 방법, 그가 칭찬한 데로, 그래서 국민들은 과거의 흔적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pp. 6-7)
그러면, 뻬루구비문학의 해학과 관련하여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빨마는 하나의 기호를 제시하기 보다는, 색조의 완전한 분광을 제공한다. 그에게서 모든 사물에서 “삶의 우스운 면”을 지속적으로 찾아내는 경향을 산출해내는 중심적인 태도로부터, 그의 “익살맞은 명상”은 다방면으로 빛을 발한다. 비평가들의 병기고에서 거의 모든 형용사는 그의 해학에 적용되어 왔고 될 수 있다. 한편으로, [비평가들이 어디에선가 “일반적이고 실체적 해학의 국면”이라고 성격을 규정하는] 해학의 구비문학적 풍미, 상당량의 익살과 농담과 천박한 방백과 함께, 그리고 정규적 경묘함은 태양아래의 모든 것에 빛을 주는 경향을 조롱한다. 에스메랄다 히혼 사빠따 Esmeralda gijon Zapata가 띠르소 데 몰리나 Tirso de Molina에 대해 말한 것처럼, 그의 해학은 “웃음을 따르게 하는 것에 대해 다룰 수 있는 것으로 어떤 것도 도피를 허용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미묘하고 파고드는 해학”이라는 환 레모스 Juan Remos의 용어와 함께 거의 모두를 주입시키는 반어법의 베일을 구비문학이 방황한다. 이 스며드는 반어법은 순수한 빈정거림과 신랄한 풍자 사이에서 진동되고 자발적 기지와 실제적 전망 양쪽을 자주 명확하게 한다. 아마도 다른 국면 이상일 빨마의 반어법적 구조물에 대한 통달함은 상이적 자질과 함께 그의 저술 물에 부여된다. (p. 10)
해학은 모든 사물에 잠재적으로 놓여 있다. 그러나 그속에 우스꽝스런 잠재력을 일깨우는 유일한 해학적 태도의 번득임을 수반한다. 친근함과 뻬루역사의 기층인물들에 대해 빨마가 자기 자신의 축제적이고 미소 짓는 스페인후손적 전망에 초점을 맞추고, 익살 또는 익살[상대성과 전망과 회의에서 파생하는]의 정도로 활기를 불어 넣었고 그것들은 자연적으로 그에게서부터 도출됐다. 그의 논평의 대다수는, 그렇지만, 종종 그의 미늘의 무 독성을 양도하는 인정 있는 동정과 인내의 정신에서 도사리고 있다. 빨마의 해학은 다른 한편으로 사건이었을 것보다 일반적으로 덜 신랄하게 하면서, 근본적인 인간의 이해의 전조에서 숨쉬고 있다. 구비문학은 “학대하지 않는 농담과, 색채를 시험하면서 그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폭포가운데에서 미끄러지는 반어법의 행복한 원칙”을 연마하면서, 부드러움과 독설을 병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자유주의적 웃음 혹은 장난기 어린 환기는 아니다. 뻬루구비문학집의 해학은 가르치고 강의하고 동기를 주고 여러 가지 차원에서 비평하도록 설계됐다. 가장 명백하게, 빨마는 뻬루역사를 통독하도록 동포들을 끌어들이는 미끼로서 해학을 집필한다. 다른 차원에서, 동정적인 맥을 지닌 반어법적 학자 겸 풍자작가로서, 그는 유쾌함과 미소와 혹은 질책을 불러 일으키는 수 많은 결핍과 어리석음과 부정에 대해 관심을 끌도록 모색한다 그것은 전복적이고 반제도적이라는 빨마에 대한 증거 또는 개념의 정당화로서의 어떤 점이라는 그런 차원이다. (p. 11)
여러 해를 통해 빨마의 작품은 양쪽에서의 수 많은 등급과 함께 반국가적에서 반 스페인적이라는데 이르기까지의 범위를 가지면서 웃음을 끌어냈다. 1890년 비쎈떼 바란떼스 Vicente Barrantes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빨마는 그의 “반 스페인주의”라는 바란떼스의 고집적인 언급에 주의를 기울였고 도중에 끼어 들었다. “하느님 맙소사, 비쎈떼선생! 나의 조국에서 그들이 나를 반대자로 비난합니다.” 후자에 대한 비난자중에 중요한 사람은 마누엘 곤살레스 쁘라다 Manuel González Prada였는데 1886년에 시작하여, 빨마를 포함하여 수 많은 방면으로 이전세대들을 혹평하는 캠페인을 개시했다. 후자의 스타일을 흠잡으면서, 그는 구비문학이 반동주의자에 의한 역사에 대한 흉물스런 위조라고 결정적으로 규정하면서, 구비문학에서 현재와 미래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의 부재에 맹공을 가했다. 루피노 블랑꼬 폼보나 Rufino Blanco Fombona는 이런 시각을 1915년 <자유로운 페이지 Paginas libres>의 서문에 그리고 2년후 <라틴아메리카의 위대한 작가들 Grandes escritores de America>라는 그의 책에 영구화시켰다. 쇠사슬과 채찍에 대한 동경에서 지배의 기억을 보전하려고 모색하는 “친 스페인주의자, 지체자, 노예근성의 식민주의자가 빨마다.” (물론, 국립도서관의 블랑꼬 폼보나의 책 중 하나에 수록된 빨마의 자극하는 방주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했다.) 추의 반대편 끝 쪽에 아야 데 라 또레 Haya de la Torre, 마리아떼기 Mariategui, 루이스 알베르또 산체스 Luis Alberto Sánchez, 구비문학작가에 의한 부왕 직과 공화국 양쪽의 비평적 묘사에 중점을 두는 그 밖의 사람들이 서있다. 마리아떼기는 “그의 조롱은 쾌활하게 부왕 직과 귀족의 특권을 꼬집는다. 그는 끄레올레 데마스 Creole demas(스페인계 후손 대중)의 우스꽝스런 불만족을 옮겨 놓는다. 빨마는 옛날의 반동적인 귀족계급에 대항하는 잠재적인 원한을 품었다”라고 말한다.
이 두 가지 전망에 더하여, 조국에 대한 그의 고양을 찬양하면서, 빨마의 민족주의에 굉장한 강조를 부여하는 수 많은 비평가들이 있다. 이들 비평가들은 때로는 고의적으로 때로는 그들이 충분히 조심스럽게 분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자유주의와 회의주의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의 자유사상을 무시하는 사람들과 강조하는 사람들과의 이 불화는 빨마의 자유주의적 경향에 대한 호르헤 기예르모 레기아 Jorge Guillermo Leguia가 행한 강의가 그 당시에 빨마에게 보내는 찬사로서 출간됐던 기사의 모음집에서 삭제됐을 때인 1933년 그의 탄생100주년 기념식을 맞이하여 그 불을 당겼다.
사건의 진실은 자연스럽게 초점에 대한 그들 각자의 독단을 포기하면서, 양쪽 편으로부터의 주장이 철수되고 혼합된다. 진정한 혼혈인 빨마는 약간의 태도로 인해 후원을 얻었고 영향을 받았다. 한편으로, 그는 현재의 국민성에 대한 주된 선례로써 역사적이고 인간적인 차원인 연유로 식민지시대를 사랑했다. 다른 한편으로, 부왕 직에서와 그와 동시대인들 사이의 양쪽에서, 그는 우둔함과 부정을 꾸짖고 공격하는데 구비문학을 이용했다. 빨마는 여러 경우에서 진실로 인해 급격한 동요를 겪었다. 공공연한 악의에 찬 공격과 “뜬 소문 부러움, 그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경계”의 희생자로서 그리고 “국민생활의 빈약함, 대중의 부도덕성, 배은망덕, 그리고 사람들의 오해,”의 목격자로서, 뻬루작가는 그의 민감성에서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러한 경험이 그의 스타일과 어조의 그렇게도 중대한 성분을 구성하는 반어법과 빈정대는 풍자에서 스스로가 표명했던 각성으로 이끌어 갔다.
몇 명의 비평가들이 가볍게 다루었듯이... 뻬루구비문학집은 세심한 독자에게 부왕 직의 사적이자 공적인 결손과 19세기의 그것 사이에서의 반어법적이고 혹은 풍자적인 비교를 끌어내는 상당수의 글에 나타난 것 이외의 언급을 밝힌다. 이러한 천명에 근거하여 빨마에게 전복적이라는 꼬리표를 부치는 것은 지나치게 엄하고 부당하게 내포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빨마의 자유주의적, 개혁론자적, 애국적, 자유를 사랑하는 자세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민주주의와 공화국의 독립은 확실히 포기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리마의 다양한 힘있는 엘리트들은 여러 가지 점에서, 비난을 받았다. 그 대부분은 과거식민지시대의 부정의 메아리였다. 빨마의 반어법과 풍자는 해학적으로 그러나 명백하게 이러한 결점을 탄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반어법은 전복의 의미에서의 파괴를 제안하지는 않는다; 그 보다는, 후회와 기본적 도덕성과 지혜로의 집착과 진정한 민주적 진보를 권고한다.
부가적으로, 옳고 그름에 대한 그의 근본적 개념의 진보된 표명에 따라, 그리고 그의 향락주의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뻬루작가는 거의 배타적으로 그의 일화에서 악덕에 대한 미덕의 승리 또는 적어도 악한의 행위와 관련 있는 벌과 가책에 중점을 둔다. (pp. 11-13)
앞에서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빨마의 해학은 스페인 후손 기질, 특히 해안적, 리마인적 다양성에서, 과 정상적으로 관련된 수 많은 등장인물들의 기미를 보인다. 변화하는 등급과 그늘에서 양측이 해학으로 접근한다—스페인계 후손과 리마인—구체화된 악자기질, 풍자, 반어법, 교활함, 그리고 불경이 모조적이고 장난기 어린 어조에 제시됐다. 마누엘 벨뜨로이 Manuel Beltroy는, 구비문학작가의 죽음을 맞이하여 이런 식으로 관계를 개설한다: “뻬루인의 스페인 후손 기질, 희롱, 행복, 교활하고 천박하고, 향락적이고 광적이고, 흥겹고 다재다능한, 빨마의 성질에서 완료되고 완성된 구어체와 뻬루구비문학집에서 가장 신실한 표현을 찾았다.” 이 모든 것은, 그렇지만, 발달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원래의 번역문에서) 초기구비문학들은 소량의 미묘한 반어법과 일화의 대부분이 경묘의 모의웃음을 보여준다. 전망과 능력에서 성숙하게 되자, 빨마는 보다 더 익살적이고 신랄한 맥에서 저술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정신을 주입하면서, 초기의 구비문학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내가 하이라이트로 찾아놓았던 마지막 결과는 해학의 4가지 중점사항인, “기지. 진실, 선, 시,”가 빨마에게서 병합됐다는 것이었다.
차제에 우리는 두개의 중요한 영역을 가깝게 볼 수 있다: 그 안에 빨마의 해학과 반어법이 작용하는 인간존재의 기본 체와 기교는 그 기본 체의 우스꽝스러운 잠재성을 가장 적절하게 뽑아내도록 채태됐다. 전자의 구성체들은 카톨릭교와 영적 삶; 결혼; 성생활; 문학; 특히 식민지시대의 시; 여성들; 공공생활, 공직자와 전문직업인들의 과도와 함께; 사회적 경제적 현상; 사람들, 재간 있는 인디언에서부터 탐욕스럽고 욕심많은 부왕에 이르기 까지 끊임없는 현 에서; 그리고 언어를 포함한다.
기교 또는 스타일적 진보는 넓은 어떤 것과 명확한 많은 것을 포함한다. 일반적 기질의 그런 것들 사이에서 우리는 전체적 어조 또는 뻬루구비문학집의 주변상황을 표시함으로써 최고의 시작을 할 수 있었다. 이스트만 Eastman은 “어떤 명성도 더 안전하지는 못하다, 일단 얻게 되면, 그때는 국민적 해학작가 혹은 코미디언의 명성”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그가 알려지면, 사람들은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고, 단지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 만으로도 그들을 사전에 웃게 할 것이다. 같은 것이 빨마와 그의 작품에 적용된다. 그들의 인게에 대한 확인이 된 이래로, 구비문학에 대한 단지 암시만으로 독자들에게 리까르도씨의 농담의 피할 수 없는 포복절도에 대한 예상 또는 준비를 유발시키는데 충분하였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들의 일반적 주변상황들은 그 점에서 환희의 효율성을 강화한다.
해학의 부수적 아아치를 놓는 촉진은 종종 불명확한 진실의 예견되지 않고 간접적인 밝힘의 효과와 관련 있다. 호라티우스 Horace는 웃음과 익살로 진실을 말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풍자가 들은 수세기에 걸쳐 이 예술을 실행에 옮겼다. 두려움 없이 진실을 밝힌다는 것은 “일반적 농담에서 기쁨의 동기의 주된 원천”을 구성하는 아주 즐거운 경험이다. 구비문학을 통해서, 빨마는 정상적 사회접촉에서 잠잠해졌던 반어법적 확산을 통해 조명하면서 독자들의 척골을 들볶으면서, 자기 스스로 이런 사실을 이용했다. 명목상으로, 돌연적이고 놀라운 일탈의 이용 혹은 논리적 흐름에서의 동요 그리고 사상의 질서가 이것과 가깝게 연결되어 구비문학작가에 의해 실행된 또 다른 일반적 접근이다. (pp. 14-5)
[빨마의] 해학의 상당 부분이 언어의 가능한 책략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이 우리를 놀랍게 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른 해학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구비문학에서의 해학의 최대한의 실현은 반어법에 고취된 스타일에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다: “마지막으로, 구비문학의 스타일은 빨마의 해학의 최고의 시험이다... 이 지나치게 풍부한 산문은... 그 스스로에 의해 기쁨으로의 초대다.” [뽀라스 바레네체아 Porras Barrenechea, <치마입은 3인 Tres en saya>] 해학과 관련된 빨마의 기교의 전경적 개관은 이러한 주장을 명백히 표명한다. 이런 검사는 대담하게 부각되는 비교, 은유, 완곡표현, 재담, 놓여진 구의 수식과 진부함, 풍자만화, 인물유형의 제시, 과장, 단어의 조화롭지 못한 만남 또는 상황적 요소와 등장인물적 요소, 대화, 일상용어의 삽입, 신성화된 물체의 일상화, 완곡어법을 통한 거칠고 비극적 광경의 순화, 그리고 이름으로 장난하기에 위치한다. 빨마의 해학에 친근하고 불가피하게 결속됐던 사람은 또한 계속해서 반어법과 풍자, 그리고 서술자의 결코 멀지 않은 주관적 현존을 발견한다. 상호적이고 밀접한 관계에서 서로 보충하는 뻬루구비문학집의 미학적 핵심의 주위를 도는 유리된 궤도를 회전하기 보다는 우스움을 참는 자 들이 단지 명단에 올랐다는 사실은 즉각적으로 명백하다. 예를 들어, 타고난 해학적 비교에서 우리는 종종 말장난, 풍자만화, 은유, 과장, 반어법, 풍자와 완곡 법을 고찰한다. 유사하게, 말장난에 기초를 둥 해학은 풍자만화, 풍자, 반어법, 직유, 은유, 과장, 종교적 암시와 놀라움과 종종 교배된다. 상호독립성은 무수하다. 마술사처럼, 우리가 현재 “뻬루구비문학집”이라고 상상하는 것을 전형화한 명성 있는 뜨게를 진행과정에서 얻어내면서, 빨마는 그것을 계획하고 엮어낸다.” (pp. 15-6)
* 로이 L. 테너, “서문,” “뻬루구비문학집”에 나타난 반어법과 풍자의 해학 / 미주리대학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