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노선이 없으면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 어려운 지역이 있어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을 받아가며 겨우 ‘연명’하고 있는 노선들이 그러하다. 이러한 노선은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에도 이용 승객들이 적어 속칭 ‘공기수송노선’으로 불리기도 한다.
특집 변두리
오라이 오라이~변두리버스는 온기를 싣고
글/사진·이준혁
변두리 풍경, 그 은근한 온기 집 근처로 오는 버스 가운데 6614번 노선이 있다. 양천 9번 마을버스로 시작해 ‘지역순환버스’ 도입 뒤 460번의 세월을 거쳐, 2004년 대중교통체계 개편 뒤 6614번의 번호를 받은 버스노선이다. 양천구 신정동에 살면서 인하대에 다니는 내게 6614번 노선은 경인선 오류동역으로 이동하기 위한 통학교통수단으로 특별하다. 하지만 그보다 일상생활에서 마음이 심란한 때 어딘가 훌쩍 떠나고픈 마음을 조금이나마 채워주는 노선으로 더 특별하다. 6614번 노선은 서울 버스노선과 시골 버스노선의 모습을 함께 갖고 있다. 이 노선의 회차지역은 서로 맞닿은 구로구 항동과 부천시 옥길동. 논밭과 저수지는 물론 하루 왕복 2회 화물열차가 운행될 뿐인 단선철로(경기화학선)도 있으며, 시골 버스를 탔을 때 쉽게 볼 수 있는 버스 안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 풍경을 종종 볼 수 있다. 목동역 가까이(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30분을 가는 동안 법원, 지하철역, 공원, 아파트촌, 시장 같은 풍경과 호젓한 시골 풍경까지 볼 수 있는 6614번 노선. 마음이 심란한 때면 차창 밖 풍경 끝, 시골 동네 철로를 걸으며 생각을 가다듬고 생활 속 작은 활력을 얻는다. 더군다나 옥길동종점(최종회차점)에서 걸어서 2분 거리에 남부수자원생태공원이 있다. 서울특별시와 부천시가 899억 원을 공동 투자해 아래는 역곡하수처리장을 놓고, 위에는 축구장, 풋살(간이축구)경기장, 공연장, 생태연못, 산책로를 갖췄다. 휑하다 싶을 정도로 사람이 드물어 명상하기도 좋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데다 워낙 외진 곳에 있어 사람의 발길이 뜸한 항동, 옥길동의 전체 풍경은 흔히 볼 수 있는 우리네 시골 분위기이다. 10~15분 배차간격의 6614번 노선만큼은 아니더라도, 자가용이나 택시를 이용하지 않는 한 쉽게 닿기 어려울 것 같은 수도권 구석구석까지도 왕복 2차선 도로가 있다면 버스는 닿는다. 결국 사람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장거리 시내버스는 추억을 싣고 서울 면허 시내버스노선 가운데 서울을 벗어나 도시풍경이 아닌 시골의 맛깔나는 풍경과 만나는 노선은 흔하지 않다. 하지만 경기 면허 시내버스노선으로 서울로 들어오는 노선을 더하면 결코 적지 않다. 이 가운데는 중간에 번화가를 지나기에 배차가 10~15분 정도로 잦은 경우도 있지만, 배차간격이 1시간 가량인 노선(경기도면허 노선에서 두드러진다)도 많다. 북한강변 아름다운 풍경과 멋진 갤러리로 여행 잡지에도 종종 나오는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이곳을 청량리에서 시내버스로 갈 수 있다고 얘기하면 보통 사람들은 잘 안 믿는다. 심지어 차량고장이 심해 ‘중정비 받으러 서울 온 차 탔냐’는 질문도 받았다. 하지만 하루 14회 운행하는 8번 노선(청량리~문호리, 1시간 40분 소요)으로 실제 존재한다. 8번 노선은 다채로운 차창 밖 풍경 변화를 보여준다. 철도역, 대형병원, 터미널, 공장, 고속도로, 농장, 백화점, 공동묘지, 팔당댐…. 100분 동안의 풍경은 수도권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 생활상을 엮는다. 집과 반대편 지역이라 탈 기회는 적지만 탈 때마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이유이다. 8번 노선이 서울 동북부 자연과 맞닿는다면 13-2번 노선은 서울 동남부 자연과 맞닿는다. 13-2번 노선은 경기도 광주시 퇴촌에서 출발해 하남시, 서울시 강동구 명일, 천호동을 지나 강변역에서 되돌아온다. 광주가 최근 급속하게 발전하지만 아직 중부면과 퇴촌면은 한강변 개발제한구역으로 13-2번의 면 지역 차창 밖 풍경은 8번 노선의 양평 서종면 풍경과 비슷하다. 8번 노선에 양수교가 있다면 13-2번 노선에는 광동교가 있다. 두 다리는 아름다운 풍경이 함께하고, 만약 두 다리가 없다면 다리 양쪽 사람들이 반대로 가기 위해 상당히 멀리 돌아가야 했을 것이다. 광동교를 지나는 13-2번 노선은 8천 명 인구의 퇴촌면 주민들에게는 매우 소중하다. 행여나 이 노선이 없어진다면 퇴촌 주민들은 광주 시내까지 우회하여야 하고 이동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사라지는 버스노선, 멀어지는 마을 8번 노선과 13-2번 노선은 어찌 보면 행복한 편이다. 도시지역 안에 구간수요가 많고, 시골지역 도로상태도 양호하며, 두 노선 모두 종점 가까이에 유명 관광지가 있다. 노선 전체로도 흑자상태로 노선을 줄이거나 없앤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도 서울과 서울 외곽지역을 운행하는 노선 혹은 시내와 작은 시골마을을 운행하는 노선 상당수는 단축이나 폐선 위기에 맞닥뜨리고 있다. 긴 구간을 운행하지만 1인당 수송원가에도 못 미치는 운임을 받고 있어 반드시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노선이거나, 해당 노선이 없으면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 어려운 지역이 있어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을 받아가며 겨우 ‘연명’하고 있는 노선들이 그러하다. 이러한 노선은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에도 이용 승객들이 적어 속칭 ‘공기수송노선’으로 불리기도 한다. 송추 인근 부곡리에서 출발하여 송추, 장흥, 일영, 구파발을 거쳐 의주로를 통해 서울도심까지 들어오는 7023번 노선은 단축과 복원을 반복한 대표 노선이다. 과거 156-1번이었던 이 노선은 지난해 12월 1일자로 기자촌~서울역 구간 노선으로 단축됐다가, 양주 시민의 극심한 민원과 양주시의 지속된 요청으로 올해 4월 23일에 원래 노선으로 복원됐다. 7023번 노선 단축으로 서울 도심을 오가는 일영 주민들과 일영유원지 이용객들은 별도 비용을 지불하고(서울-경기 통합환승제 시행 전) 이동해야 했고, 서울 도심에서 장흥으로 가는 사람들은 704번(장흥~구파발 부분이 7023번과 틀림)에 의존해야 했다. 하지만 서울 면허로 서울 구간보다 경기 구간이 배 정도 길며, 대체로 경기 구간은 낙후된 시골이라 운행거리와 비교해 이용객이 매우 적어, 만년 적자 상태로 704번 노선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7023번 노선의 단축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개인 일로 장흥아트파크와 송암천문대에 갈 일이 몇 번 있었다. 일영이 아닌 장흥이 목적지인 내게 7023번 노선 단축은 솔직히 ‘통합 배차간격이 느네’ 정도 불평뿐이었다. 그러나 지난 3월에 장흥에 가며 704번 노선을 탔을 때 구파발에서 내려 360번 노선(구파발~장흥 구간이 7023번과 동일, 경기 면허)으로 갈아타는 승객들-특히 노인-을 보며 ‘내가 저 입장이라면’ 생각을 해 봤다. 이해는 가도 힘들어 화는 났을 듯.
변두리 버스, 오~ 라이~ 현재 수도권에는 시내버스(광역·좌석 포함) 노선임에도 서울과 서울 밖 구간을 운행하는 노선이 많다. 그 범위만 해도 김포 대명항, 인천 연안부두, 북으로 파주 문산, 연천 전곡, 동으로 가평 목동, 양평, 남으로 평택 하북, 용인시청까지 매우 넓다. 이 가운데 인천, 성남, 수원, 화성, 용인 지역에서 출발하는 원거리 노선은 고속도로를 통과하며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용인 면허의 5개 노선(5002번)은 주민 편의를 위해 죽전휴게소 인근 고속도로변 정류장에서 정차한다. 산악지형의 경춘가도를 지나며 대성리, 청평, 남이섬을 지나 ‘MTB’(원래 뜻인 ‘산악자전거’와 ‘MT Bus’라는 의미가 이중으로 쓰임)라는 별명이 있는 1330-2번 노선(가평면허, 청량리~구리~마석~가평읍)은 가평읍에서 내려 다리(경강교) 하나 건너면 강원도(춘천시 남산면)이다. 또한, 모든 일반시내버스 요금함에 다람쥐 스티커를 붙여 ‘다람쥐’라는 별명이 붙은 신성교통 760번 노선(서울면허, 금촌~벽제~구파발~합정~영등포)은 왕복운행거리가 서울~천안 왕복구간과 유사한 156.2킬로미터나 나온다. 시외 노선의 전환, 여러 노선의 합병, 업체 차고지 변경처럼 탄생 이유는 모두 다르지만 최근 몇몇 호황 노선을 제외한 서울과 외곽을 잇는 노선은 단축 혹은 변경됐다. 운영적자, 굴곡노선, 기사피로라는 이유 때문이다. 남양주 마석에서 서울 종로까지 운행하던 9205번 광역 노선이 노선 활성화 정책으로 203번 간선노선 시절을 거쳤지만, 전환 뒤에도 1회 왕복운행(속칭 ‘한 탕’)하며 41.5명이라는 몹시 적은 승하차인원 때문에 결국 폐선처리된 것은 운영적자와 기사피로의 두 이유가 겹쳐서이다. 물론 모든 버스 노선을 남겨두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 적자가 심해 아무도 운행하지 않으려 하고 관의 보조금을 받아 연명해도 그 상태가 심각하다면, 다양한 노선 활성화정책을 거쳐도 가망이 없다면 폐선이 나을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 물류 교통의 상식 개념인 ‘허브 앤 스포크’(주 - 모인 사람이나 화물을 중심 터미널에서 개별 노선을 통해 지역 중심지로 이동하는 체계. 자전거 바퀴 살대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불리는 교통, 물류에서 쓰이는 용어) 형태의 노선구축이 더 이로울 수도 있다. 교통평론가 한우진 님은 “현재 서울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지간선 노선체제에서는 간선 지선 기능을 전문화해 전체 노선망의 효율성을 높이도록 하고 있다. 말하자면 두가지 기능이 어설프게 결합된 겸용제품을 사용하는 것보다 저마다 기능이 하나라도 제대로 된 제품을 따로 사용하자는 것이다.”라고 지간선제를 칭찬한다. 사실 이 취지는 나 또한 크게 동감한다.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을 받아도 적자인 노선을 힘겹게 유지하는 운수업체의 어려운 사정을 모르지는 않다. 심지어 흑자를 내는 몇 노선 이익금과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으로 적자를 내는 다수 노선을 유지하는 몇몇 업체는 적자노선을 유지하기 위해 흑자 노선을 새벽까지 운행하여 막차 운행기사가 새벽 3시 넘어 퇴근할 정도로 ‘이 악물고’ 운영하기도 한다.
발, 자전거, 버스로 찾아가는 다른 세상 그러나 도시 버스안내표지판 노선도에 ‘앵두나무골’, ‘아랫도마리’, ‘싸리마을’, ‘소돌마을’, ‘샛터삼거리’ 같은 토속 정류장 이름이 점차 줄어드는 모습에, 시내버스이지만 하루 2회만 운행하는 32-2번 노선(청평~설악~유명~양평, 현재 운행)과 같은 노선이 점차 사라지는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도 있다. 버스안내표지판을 보며 ‘저 노선을 타면 시골길로 훌쩍 떠날 수 있다’라는 기대를 더 이상 못 한다는 아쉬움, 비록 자가용이 없어도 ‘큰 차’를 타면 푸근한 인심과 아름다운 자연을 쉽게 볼 수 있던 시절은 이젠 과거라는 그리움 때문일 거다. 수도권에는 오지 노선도 아직 많다. 오지여행을 좋아해 지금껏 면 단위를 기준으로 전국 곳곳을 누빈 한 지인은 “3B만 있으면 어디든 간다.”라고 말한다. 3B는 ‘버스(Bus)’, ‘자전거(Bicycle)’, ‘발(Bal)’로, 억지스러운 묶음의 조어이지만 그래도 동감이 간다. 버스는 편도 1차선 이상이면 어디든 닿는다. 철도에는 없는 버스의 가장 큰 장점으로 변두리에도 대중교통이 닿을 수 있게 한다. 이런 변두리를 운행하는 버스 노선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수록 남아있을 것이며, 대중교통으로 어디든 이동 가능한 세상이 좀 더 빨리 올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이준혁 님은 토목공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 어릴 때부터 여행을 좋아해 버스를 비롯해 교통에 대한 관심이 높다. 오마이뉴스 교통전문 객원기자로, 서울메트로 시민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그이는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즐겁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