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디테와 바람꽃 1
음력으로 설날이 다가오면 산에는 봄의 전령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제 경험상으로 그 첫째 전령은 생강꽃이다. 마른 낙엽이 발목까지 차오르는 작은 오솔길을 걷다보면 산비탈에 미풍에 실려오는 꽃바람을 만난다. 그 숨결의 속삮임에 고개를 돌리면 연노랑빛 고운 얼굴이 수줍은듯 고개를 내밀고 웃고있다.
그 싱그럽고 설레는 유혹에 그냥 지나치는 사람은 없으리라. 저절로 발걸음을 멈추고 그 가지사이로 파아란 하늘과 구름을 보게 된다. 그럼 고향의 란이며, 자야며 순이의 어린 얼굴들이 생강꽃에 오버럽된다
두 번째 전령은 바람꽃이다. 이 꽃은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바위틈이나 나무둥치 밑에 숨어서 피기에 산을 사랑하고 그것에 집중하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바람꽃의 학명은 아네모네이고, 그리스어의 아네모스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리고 이 바람꽃의 원산지는 그리스이고 세계적으로 150 여종이 번식하고 있다. 아네모네 라는 낱말의 어원에서 보면 우리가 번역한 바람꽃의 바람의 뜻는 자연현상의 바람의 의미보다 바람 피우다의 바람, 사랑의 바이러스를 의미한다. 그래서 봄 바람처럼 사랑의 바이러스가 곳곳에 펴져 150 여종의 바람꽃이 번식하듯이 이 지구에는 이미 80 억이 넘은 사람이 살고 있고, 앞으로 150 억까지 번식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최근에는 생강꽃이나 바람꽃도 봄의 전령의 자리를 내려놓아야 될지도 모른다. 그 이름은 평양공주와 오색제비꽃이라고들 하는데, 시간의 신 크로노스의 총애를 받고 태어 났는지, 소한 대한의 추위에도 벌써 움트기 시작하고 대한이 지나면 보무도 당당하게 활동을 개시한다.
사람들은 이들을 이렇게 찬양하며 노래한다.
평양공주와 오색 꽂제비
ㅡ신화를 꿈꾸다
영남 알프스 깊은 골에 청학이 날아드는 작은 나라가 있었네. 그 때 가야는 막 국운이 피어오르고 있었지. 산 좋고 물 좋은 그 땅 탐도 나고, 또 신라를 견제하는 계책도 되었지. 마침 궁성에 허왕후가 대양에서 데려온 공주들 중 하나 뽑아, 청도 이서국에 시집보냈지. 그 나라는 그녀에겐 쓸쓸한 노을이었네. 청도 반시에 씨가 없는 건, 공주의 한(恨) 때문이라나 뭐라나.
청도 대궐 앞엔 남산과 화악산이 우뚝 솟아있네. 그 두 산을 잇는 고갯마루 한재, 거기에 평양리 마을이 있지. 그곳은 온천수가 거울 같은 명당이지, 공주가 옮겨온 후 옥수로 목욕하고, 그 한재 바람으로 빗질하여, 아름답고 고와 평양공주라 불렸네. 산 너머 구곡리 대숲엔 재주와 인기가 많아 오색꽃(五花肉)*이란 별명을 가진 총각이 살었지. 우연히 정말 우연히, 그 총각 한재 사량길에서 공주와 마주쳤네. 그 사랑 번개, 찌릿찌릿 눈 맞춤, 사람들은 이렇게 찬양했네.
공주는 봄을 품고 남국에서
숨어온 이국의 처녀
허리는 명창 품은 가야금줄
머리의 관은 긴 뎅기머리
오색의 꽃술*로 금줄을 안고
한 바탕 춤을 추니
그 향기, 봄내음 안개처럼
입 안에 가득 피어나고
그 맛깔, 갈증에 수박 깨물 듯
통쾌하고 황홀하며
그 여운, 불뚝 하늘로
솟구치고 산하가 넘실거리네
고개넘어 가자
탐랑성*이 빛나네
봄 찾아 푸른 섬에 오는 이는
동천에 파란 별을 보며
숨어사는 즐거움을 노래하네
초승달 비슬산에 걸려 있네
남산의 성벽을 뛰어넘어
우리 별 찾아 알프스로 가자
붉은 해 문복산에 솟아오르네
팔조령 구비 구비 돌아
거북이 쫓아 동해로 달려가자
*오색꽃五花肉ㅡ 중국는 삼겹살을 오색꽃이라고 부른다.
* 탐랑성: 북두칠성중, 도화의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