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경(朴守卿)은 평주(平州 : 지금의 황해북도 평산군) 사람이며, 아버지는 대광위(大匡尉) 박지윤(朴遲胤)이다. 박수경은 품성이 용감하고 굳세며 즉각 대응하는 지략이 많은 사람으로, 태조를 섬겨 원윤(元尹)이 되었다.
후백제가 신라를 자주 침범하자 태조는 박수경을 장군으로 삼아 그 곳에 가 지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견훤이 재차 침범했지만, 박수경은 항상 기발한 작전으로 패배시켰다. 조물군(曹物郡 :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전투에서 태조가 전군을 삼군(三軍)으로 나누어 대상(大相) 제궁(帝弓)을 상군(上軍), 원윤(元尹) 왕충(王忠)을 중군(中軍), 박수경과 은영(殷寧)을 하군(下軍)으로 각각 삼았다. 전투가 벌어지자 상군과 중군은 패배했으나, 박수경 등의 하군만 승리했다. 태조가 기뻐하여 원보(元甫)로 승진시키자 박수경은, “신의 형 박수문(朴守文)이 지금 원윤으로 있는데, 신의 벼슬자리가 그 위에 올라가면 어찌 스스로 부끄럽지 않겠습니까?”라고 아뢰므로 형제를 함께 원보로 삼았다.
발성(勃城) 전투에서 태조가 포위되었으나 박수경이 힘껏 싸운 덕분에 탈출할 수 있었으며, 또한 태조를 따라 신검(神劒)을 토벌하였다. 뒤에 역분전(役分田)을 제정하면서 사람들의 성행(性行)의 선악과 공로의 대소를 살펴 차등 있게 나누어 주었는데, 특별히 박수경에게는 토지 2백결(結)을 내려주었다.
정종이 처음 즉위하여 내부의 어려움을 평정하는 일에도 박수경의 공로7)가 컸으며, 얼마 뒤 대광(大匡)으로 전임되었다. 광종 15년(964)에 아들인 좌승(佐丞) 박승위(朴承位)·박승경(朴承景)과 대상(大相) 박승례(朴承禮) 등이 참소를 당하여 옥에 갇히자, 박수경은 울화병으로 죽었다. 뒤에 여러 차례 추증되어 사도(司徒)·삼중대광(三重大匡)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