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연중 제 21주일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으로 소개하시며,
우리가 당신을 먹어야만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말씀을 듣고,
하나 둘 예수님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몸 을 ’물리적으로‘ ’먹는다‘는 것을
상상할 수조차 없고, 생각하는 것조차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는, 예수님의 몸을 ’먹는다‘는 표현 보다는,
‘모신다’라는 표현을 더 자주 사용하고,
미사를 위해 준비하는 제병 모양도,
실제 ‘살(고기)’를 연상시키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의 살과 피를 우리 안에 모시는 영성체가
거북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체를 ‘모신다‘라고 표현하고,
우리가 영하는 성체의 모습이, ’빵‘의 형상 이라고 하더라도,
성체가 곧 예수님의 몸 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모시는 성체가, 예수님의 몸 이고,
베드로의 고백처럼,
예수님 안에 생명의 말씀이 있다면,
우리가 성체를 모실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계신
생명의 말씀 역시 모시게 됩니다. 곧, 우리 안에 오신 예수님께서,
당신 생명의 말씀과 함께, 우리를 살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정성이 들어간 음식'과 '그렇지 못한 음식'을 구분합니다.
그 차이가, 단순히,
정성이 들어간 음식은,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그렇지 못한 음식은, 좋지 못한 재료를 사용해서일까요?
물론,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떠올릴 때,
그 정성은, 먹는 사람의 건강과 행복까지도 염두에 두기 때문에,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 조금이나마 더 좋은 재료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 상식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반찬 가지 수가, 반드시 정성의 정도를 나타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어머니가 순수 마련하는 음식만큼 정성이 가득한 음식은 없습니다.
어머니가 손수 마련한 음식을 우리는 흔히 ’집밥‘이라고 부르는데,
’집밥‘은, 한정식 식당처럼, 반찬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맛집 음식처럼, 반드시 입맛을 당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집밥’에만 있는 한 가지는, 바로 ‘정성’
‘가족들을 향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집밥’에는, 건강에 좋은 재료를 많이 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건강에 해로운 재료는 찾아볼 수 없고,
그 음식은
사랑을,
가족들이 이 음식을 먹고,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닮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음식을 통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영양분 뿐 아니라,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긍정적인 기운, 행복한 에너지를
함께 섭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당신 자신이 곧 음식인
성체 는 어떨까요?
우리는,
누군가 우리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힘을 얻게 되는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진리를 너머,
사랑 덩어리이신 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음식이 되어,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면,
우리가 얻는 힘은 또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요?
그 힘은, 언제나 우리의 상상 이상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우리 안에 오시기를,
단순히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갈망하십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오셨을 때, 당신께서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이
가장 잘 전달 될 수 있고, 그만큼 우리가 더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방법도
없기 때문입니다.
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듯,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행복을 위해,
당신 자신을 온전히 음식으로 내어주시면서까지,
최선을 다하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의 선택이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시고, 그렇게 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선택 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우리는,
나도 내 옆 사람을, 나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고,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부모는 자녀를, 자녀는 부모를,
사랑할 수 있는 그 사랑이
행복과 함께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 당신 자신을 음식으로 내어주시고,
지금도 애타게 우리 안에 오시기를 갈망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 안에 간직하도록 합시다.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