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입구 주차장엔 가이드로 보이는 여성들이 소수민족의 전통의상을 입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한 선생은 표를 끊으러 가고 우리는 물을 빼러간다.
작년 계림의 한 동굴에서 호된 경험을 한 나는 특히나 확실하게 빼야했다.
동굴 내부엔 화장실이 없기 때문이다.
입구의 표 검사 하는 곳에서 한 아가씨가 우리에게 광천수 한 병씩을 나누어 준다.
한 선생 말로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구향처럼 공짜로 물을 나누어 주는 곳은 없을 거라 했는데
물을 나누어 주지 말고 입장료를 깎아 주었으면 하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한 선생은 배를 타고 볼 거 라고해서 집사람은 기대가 대단했는데
요즈음 대책 없이 오는 비로 인하여 동굴내의 수위가 불어 배 타는 것이 전면 중지가 되었단다.
그 얘길 들은 집사람 무척이나 아쉬워하면서 그래도 어떻게 얘기해서 타보자고 한 선생 눈치를 살피지만
그게 얼마나 무모한 생각인지 밝혀지는데 일초도 채 안 걸렸다.
구향동굴의 입구는 동굴이라기보단 협곡이라고 해야 옳을 정도였다.
좁게 갈라진 틈으로 하늘은 보일동말동 하고 노도와 같이 바닥을 쓸고 지나는 물을 우리는 절벽에 난 조그만 길에서 아슬아슬하게 감상을 한다.
원래 저렇게 붉은 흙탕물인지 아니면 요즘 물이 불어나 주변의 흙을 다 쓸어모아서 그리 된건지
어쨌든 옆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아랫도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힘차게 쏟아져 내린다.
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하늘은 막히고 바야흐로 동굴탐험이 시작되었다.
수백만년에 걸쳐서 생성된 종유석과 석순이 주변에 어지러이 널려있다.
이미 몇 차례 동굴을 본 적이 있지만 이 위대한 조물주의 걸작은 언제 봐도 경이롭고 새롭다.
구향의 첫 인상은 무척 남자다운 모습이라는 거 였다.
계림의 많은 동굴들이 이쁘고 단아한데 비해 구향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힘이 느껴졌다.
축축한 길을 따라 내려가니 탁 트인 넓은 대청이 보인다.
동굴내부에 이렇게 크고 넓은 곳이 있다니
이 곳이 바로 熊獅大廳(웅사대청) 이다.
웅사 대청을 돌아가며 구향에서 채집한 기석들이 전시되어 있다.
별의별 모양을 가진 것, 기이한 색조를 띤 것, 돌과돌이 어울려 아름다운 무늬를 만든 것, 등등
시간만 많으면 하나하나 음미를 해도 좋으련만...
웅사대청 초입엔 구향에서 발굴된 원시인의 유적이 전시되어있다
170 만년 전부터 신석기 시대에 이르기 까지 대리의 이해와 곤명의 띠앤츠 주위에 살았다는 元謀(위앤모)인의 유적이 이곳 구향에서 발굴된 모양이다.
유리상자 내부에 원시인의 뼈와 치아가 내 눈길을 끈다.
치과의사인 입장으로 소홀히 지나갈 수가 없지 인간의 몸에서 제일 오래까지 남아있는 송곳니가 주로 보인다.
설명을 복잡하게 적어놓았지만 黑字白紙 까만 건 글자요 하얀 건 종이다.
발굴 현장과 발굴 팀의 면모를 찍은 사진을 대충 훑으며 내려가니 수족관이 보인다.
구향동굴에 살고 있는 눈먼 물고기 들이다.
깜깜한 동굴 속에서 오랜 세월 살아 그만 눈이 퇴화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층계를 따라서 조심조심 내려간다.
자웅폭포를 보러가는 것이다 동굴의 낙차가 워낙 커서 동굴을 흐르는 물줄기가 거대한 폭포로 변신을 했다.
폭포의 곁으로 가니 우렁차게 내려 꽂는 기세가 과연 명불허전이다.
이렇게 힘차고 맹렬한 폭포는 난생 처음이다.
의진이 에게 몇 년 전에 가본 나이아가라 폭포와 비교를 해보라니까 거기는 거기대로 좋고 여기는 여기대로 좋다는 현답을 한다.
여행 전에 하도 안 따라가겠다고 난리를 쳐서 여행 와서도 꼬장을 부리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는데 기우에 불과했다.
그래 구향동굴을 본 소감이 어떠셔 물으니
학교 친구들에게 잘난척하며 자랑할게 생겼다고 싱글벙글이다.
구향이 이렇게 웅장하고 장쾌한 것만은 아니다.
기기묘묘 천자백태의 종유석들은 또한 여성다운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다음에 우리를 놀라게 한건 신들의 밭 神田 이다.
마치 계단식 논과도 같이 층층이 물을 담고 있는 모습은 자연의 걸작중의 걸작이다.
의진이가 내 허리를 쿡 찌른다.
“아빠, 사진 안 찍어?”
그래 찍어야지 잠시 사진 찍는 거조차 잊고 있었다.
이곳 神女宮을 벗어나니 거꾸로 선 석림 이라는 倒石林 이 보인다.
동굴 천정에서부터 빽빽이 자라난 종유석 수 천개가 또 한번 우리를 감탄시킨다.
구향을 보고 나서 가게 될 석림을 이곳에서 미리 보는구나.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다시 웅사 대청으로 돌아온다.
아쉽지만 이걸로 구향의 관광은 끝이다.
대청 안에서 이족 여인들이 호객을 하고 있다.
중국 관광지에서 제일 아쉬운 게 이거다.
바로 무분별하게 난립한 상점과 노점이다. 이 큰 웅사대청의 반 이상을 상점들이 차지하고 있다.
밖은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고 있다.
리프트를 타고 입구 쪽으로 다시 나간다는데 꼼짝없이 오는 비 다 맞고 가게 생겼다고 푸념을 하는데
고맙게도 동굴 측에서 우산을 빌려준다.
내려오는 리프트를 보니 빌려주었던 우산이 리프트 에 하나씩 하나씩 걸려서 되돌아오고 있다.
그 모습이 참으로 희화적이다.
의량현으로 되돌아가는 길은 상당히 지루하다.
배도 고프기도 하고 이미 지나쳐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라 별 재미가 없다.
빨리 도착해서 맛난 오리구이를 먹었으면 하는 생각 뿐이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麗人園(리런위앤)이라는 오리구이 전문점이다.
다소 늦은 시각인지 아니면 중국 사람들 점심 먹는 시간이 이른건지 한차례 손님치레를 한 흔적이 보인다.
홀 바닥에 솔잎을 깔아놓은 것이 아주 이채롭다.
그윽히 풍겨오는 솔 향이 마음을 싹 가라앉혀 주고 있다.
솔잎 깔린 이곳에서 식사를 했으면 좋으련만 복무원 아가씨는 우리를 별실로 안내한다.
한 선생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우리와 함께 안 하고 기사와 따로 식사를 하겠단다.
그 편이 마음이 더 편한건지 아니면 기사에 대한 배려인지...
오리구이를 먹으려면 질 좋은 백주가 있어야한다.
중국의 음식점은 크던 적던 술파는 곳이 따로 있다.
워낙 많은 종류의 술이 있기에 그럴테지, 샤오제에게 어떤 바이주가 있느냐고 물으니 술파는 곳에서 직접 사라고 한다.
만만한 북경의 이과두주를 찾으니 이런 없다.
술파는 친구가 火爆 (후어바오) 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가진 술을 권한다.
난생처음 보는 이름의 바이주라 이름도 없는 술을 권하는구나 싶어 자세히 뜯어보니
중국 십대 명주중의 하나인 ‘우량예’를 만드는 곳에서 만든 술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선호하는 마오타이주와 쌍벽을 이루는 술인지라 적이 안심하고 술값 30위앤을 지불한다.
오리구이 집이라고 달랑 오리만 주는 것이 아니었다.
예의 치꿔지와 탕수로우, 냉채, 홍소 잉어 등 역시 열가지 의 요리가 오리 한접시와 함께 우리 테이블을 가득 채운다.
그러나 의량의 오리구이는 불행히도 북경 전취덕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솔 향이 배어있다는 고기는 느끼하기만 할뿐 가족 모두는 나와 한진이 빼놓고는 한 점 먹고는 손을 대질 않는다.
나야 가장의 책임을 완수하기위해 또 오리 먹으러 가자고 말을 꺼낸 장본인답게 후어바오주로 목을 행구며 부지런히 오리를 뜯는다.
경란과 미숙은 기름진 중국요리를 질려하지도 않고 잘 먹는다.
잘 적응 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사실 오리란 놈은 기름이 많아서 몇 점 먹으면 질려서 먹기가 힘들다.
의량현은 오리고기로 유명한 만큼 烤鴨美食節 이란 날을 만들었단다.
맛있는 오리고기 먹는 날이란 의미일까?
이날 먹기 대회가 벌어지는데 2005년 9월 15일 장소광 이란 농부가 오리 한 마리 먹는데 5분 8초 걸리는 신기록을 세우고 우승을 했다한다.
그래서 영예롭게도 食神 이란 칭호를 얻었다나...
춘택이 네가 방앗간 할 때 일하던 어린 친구가 하나 있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우리 또래 앤데 정말 무지무지 먹어댔다.
추석 날 용돈을 주면 얘가 마서방네 가서 짜장면 곱빼기 네 그릇을 먹는다. 그리고 슬그머니 일어나 곡서방네 신생루에 가서 다시 짜장면 곱빼기 네 그릇을 시켜 먹었다.
예전에 못 살 때는 남자들 주량 자랑하듯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자랑도 꽤 했던 모양이다.
남자들의 자랑거리는 주량자랑 뿐 아니라 물건 크기 자랑도 빼놀 수 없다.
사내들 몇이 모여서 자기 물건 크기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한 친구가 자기 물건을 꺼내 보이며 자기는 물건이 어찌나 큰지 거기다 문신을 새겼다며 ‘차카게 살자’ 라고 문신 새긴 자기 물건을 보여 주었다.
다른 친구가 코 웃음 치더니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고 새긴 자기 것을 꺼냈다.
또 다른 친구 역시 콧 방귀를 뀌더니 자기 것을 꺼내는데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무려 12자를 새긴 것이다.
마지막 친구가 꺼냈다.
그런데 거기엔 ‘우’자 하나만 보이는게 아닌가.
다른 친구들이 깔깔대고 웃다가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물건이 화가 나면서 주욱 커지더니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 국민교육헌장 전문이 새겨져 있더라나.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 우리는 웃지못할 장면을 보게된다.
식탁위에 깔려있는 일회용 비닐을 열심히 비누칠해서 빨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한번 쓰고 버리자고 깔아논 비닐을 빨다니 그래서 비닐 표면이 이상하게 꼬질꼬질 했구나.
그럴바에야 식탁보를 빨래하지 그 위에 비닐은 왜 깔고 있담.
사실 우리 모두는 에이프론을 주질 않아 알게 모르게 식탁보에 손을 닦았는데 말이다.
중국이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일이라고 웃으며 우리는 차에 오른다
첫댓글 정말 책 한권 내라....재미있게 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