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 시절이다 보니 2015년 시작과 함께 또다시 백조 대열에 합류한 나로서는 별로 밖에 나갈 일이 없다. 그래서 하루 온 종일 방바닥에서 전신 엑스레이를 찍는 일이 하루 일과가 돼 버렸다.
그래도 한때는 열정적으로 시를 쓰던 시인이었다고 시집도 한 권 발간한 이력이 있다고 말할 수 조차 없는 일상속에서 가슴 저 깊은 갱도에서 흐르고 있을 시심이나 캐 볼 요량으로 논산 양촌에 있는 쌍계사를 찾았다.
▲ 봉황루
조금더 솔직하자면 내가 알고 있는 쌍계사라 함은 구례에 있는 쌍계사가 전부였다. 그런데 친구로부터 논산에도 쌍계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한 낮의 더위가 한 여름의 절정을 뿜어내는 날이고 보니 고즈넉한 사찰을 찼기에는 딱 좋은 날씨가 아니겠는가. 하긴 개인적으로 시끌벅적한 바닷가보다는 조용한 산사를 더 좋아하는 취향이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대전에서 출발해서 약 한시간쯤을 달려서 쌍계사에 도착했다. 그런데 요즘 뉴스에서 몇십년만에 찾아온 가뭄으로 인해 농작물이 말라죽는 상황이라는데 쌍계사 입구에 있는 저수지에는 맑은 물이 가득차 있는 것이 아닌가?
방문객을 맞아주는 첫 느낌부터 꽤 좋은 사찰이라는 부푼 기대를 안고 쌍계사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본격적으로 쌍계사 감상에 들어가본다.
쌍계사는 논산 8경의 하나로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지금의 대웅전은 영조 14년(1738년)에 재건했다고 한다. 경내는 정면5칸, 측면 3칸의 다포양식으로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이고 돌을 쌓은 기단 위에 덤벙 초석을 놓고 큰 원기둥을 세웠다고 한다.
논산 쌍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서 쌍계사 대웅전에는 보물 제1851호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이 모셔져 있고 세 번을 껴안으면 서운치 않게 딱 3일만 앓다 간다는 칡나무 기둥이 보물 제 408호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별도의 일주문은 없고 사천왕상도 없다. 법고가 있는 누각이 일주문과 사천왕상 자리를 대신하며 고즈넉히 서서 방문객을 맞아준다.
▲ 산으로 둘러쌓인 고즈넉한 경내
쌍계사의 옛 모습을 유추해볼 수 있는 다양한 전설들이 전해오고 있는데 절에서 흘려보낸 쌀뜨물이 마을의 큰길까지 흘러내려갔다는 내용으로 보아 이 절의 규모를 감히 짐작해 볼만하다.
그런가하면 이곳으로 피신해 있던 고관을 관군이 잡으러 왔는데 스님의 독경소리에 감히 침입을 못했다는 전설과 이 절의 신령이 공주 갑부 김갑순의 자제를 위기에서 구해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또 대웅전 탱화를 파랑새가 입에 붓을 물고 그려줬다는 내용을 비롯하여 대웅전 문에 새겨진 꽃무늬 문양에 도력이 있어서 빛을 법당 안쪽으로 잘 투과한다는 전설과 북소리가 너무 웅장하여 한쪽 가죽을 찢어냈다는 이야기 등이 쌍계사의 옛 모습을 한 층 더 넉넉하게 전해준다.
다양한 이야기와 전설을 가득 품고 있는 쌍계사 대웅전을 향해서 몇 발짝을 옮기다 보면 이 계절의 녹음을 대표하는 아름드리 나무 한 그루가 벤취 아래 풍경속으로 나그네를 불러들인다.
나그네의 발자국 소리에
황급히 대웅전 처마끝 바람 한 자락 걸쳐입고 나온 풍경소리가
나뭇잎 건반을 두드려 환호하는 바람에
큰스님의 독경소리도 잠시 고요를 허락하는 한 낮
뿌리가 붙어 자라난 연리근에 마음을 빼앗긴다.
얼마나 사랑했으면 뿌리가 붙어서 자랄 수 있을까?
연리근이 주는 사랑이라는 화두 앞에서
바람처럼 찾아드는 우리네 인생이야기
처음에는 서로 떨어지기 싫어 같이 살자고 졸라대더니만
어느새 서로 다른 가지를 만들어 제각각의 품을 넓혀가고 있었으니
어쩜 사랑에는 아름다운 거리가 필요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뿌리가 붙었으니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꿈을 꾸고 같은 곳을 바라봐야 한다는
정형화된 생각에서 조금만 벗어날 수만 있다면
각자의 꿈을 키우면서 저토록 넓은 품과 밝은 그늘을 가질 수 있을테니
사랑은 결코 하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생각을 존중해주는 것이 아닐까싶은
아주 평범한 깨달음이 대웅전 풍경소리가 되어 되돌아온다
아무리 마음을 다 잡아도 연리근의 사랑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저렇듯 넓은 품과 깊이를 가졌으니
너무 가볍게 스쳐 보낸 내 사랑에 죽을만큼 미안한 마음이 스친다.
아니 옛사랑이 사뭇치게 그립다.
그러고 보니 재들이 저렇게 대웅전 앞 마당에서 뿌리까지 붙어 자라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동안
오로지 구도의 길에 정념해야 했을 스님네들은
대웅전을 떠 받치고 서 있는 칡나무 기둥처럼
세속으로 달려나가는 마음가지들을 얼마나 아프고 쓰라리게 잘라냈을까?
이 또한 뭇 중생의 부질없는 사념이려니.......
내소사에도 있지만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논산 쌍계사에도 있는 꽃살무늬 문살이다. 어떻게 저렇듯 정교한 꽃을 피울 수 있었을까? 꽃은 있는데 벌은 날아들지 않는 대웅전 문틀에 핀 꽃이라니......
문이라 하면 안과 밖을 이어주는 매개체인 동시에 또 한편으론 안과 밖을 나눠주는 경계가 되는 것인데 불교의 화두가 '경계를 없애라'인데 이와도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작약, 목단, 무궁화 등 6개의 무늬를 새겨 색을 칠하였는데 섬세하고 정교한 꽃살문으로서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현재 '갑사'에 보관중인 '월인석보각'은 원래 쌍계사에서 보관하던 것을 옮겨갔다고 전해진다.
대웅전 주련에도 선시 한 편이 붙어있다.
청정함이 지극하면 광명이 통달하여
고요한 비추임은 허공을 머금도다
돌이켜 세간을 관하니
마치 꿈속의 일과 같도다
비록 여러 감각 기관의 움직임이 있지만
핵심은 하나의 중심을 잡는데 있다.
핵심은 하나의 중심을 잡는데 있다. 이번 쌍계사 방문의 화두는 오로지 하나의 중심을 잡는 것으로 해도 좋을성 싶다. 그러고 보니 최근 이래 저래 중심을 잃어버리고 온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대웅전 내부에는 석가여래를 주불로 좌우에 아미타 여래와 약사여래를 모셨으며, 불상 위에는 화려하게 꾸며진 운궁 형식의 닫집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신도 한분이 부처님 전에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다. 혹여라도 방해가 될까 싶어 살그머니 합장하고 돌아나온다. 어떤 간절함이 저이를 이곳으로 이끌었나 알 수는 없느나 부처님께서 저이의 기도를 꼭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면서
대웅전 앞에 놓여있는 흰 고무신 한 켤레
누군지 모를 이 고무신 주인에게 마음이 쏠린다.
저 고무신에 세상의 욕망과 덧없음을 다 구겨 넣고 구도의 길을 걸어왔을 것을 떠올리니
하이힐 신고 경내를 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 오래된 문고리를 열고 들어가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괜시리 문고리에 마음을 걸어두고 싶어지는 이 심사는 어디에서 연유되는 것인지.......
대웅전을 한 바퀴를 돌다보니 이런 보물도 다 있다. 대웅전 나무 기둥 하나가 칡넝쿨로 되어 있는데 윤달이 드는 해에 이 칡넝쿨을 세번 껴안으면 3일을 앓다간다는 이야기가 써 있다.
난 그냥 3일도 너무 길고 딱 반나절만 앓다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나무 기둥을 끓어 안아본다.
그런데 울 엄니가 보시면 참으로 좋아할것 같은 이야기다. 시골에 홀로 계신 울엄니 소원은 딱 하루만 앓다가 조용히 가시는 거라는디..... 언제 기회봐서 엄니 한번 모시고 와야 쓰것다.
경내 한 바퀴 돌아보고 다시금 대웅전 앞에 서서 사찰 경내를 한 눈에 담아본다. 평화롭기한 풍경속에 내 삶을 입양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면서 흔들리는 마음에 쌍계사의 독경소리를 가득 채워 넣는다.
쌍계사 041) 741-2251
충남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