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가만 생각해 본다. 나의 15살은 어땠지?
마음으로는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세어 보니 31년이나 지났다. 강산이 3번이나 바뀌고도 남을 시간이니 참으로 까마득하다. 기억을 잊어버렸거나 미화되었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굳이 꺼내어 본다면 난 조용하면서 부산스럽고 특이한 구석이 있는 아이였다. 가령 중1 시절 방정식에서 x의 이항은 그렇게 가르쳐줘도 못하면서 도형은 100점을 맞으니 수학 선생님이 불러서 어떻게 된거냐 물어보는 게 이상하지 않은 식이었다. 국어 부장이면서 국어 숙제를 안 내어 찍히기도 했다. 아, 이것은 미화된 기억이 아니라 흑역사 아닌가? 그런 건 이제그만 잊어도 될 것 같은데.
중요한 건 나의 10대 초중반, 난 그때 가장 힘들고 우울했다. 인생 곡선을 그릴 때도 그 시기는 굴곡도 없이 바닥에 깔려 있다. 매일 밤 가위에 눌렸으며 불안함에 손을 가만 놔두지 못하고 늘 죽음을 생각했다. 부정적인 에너지가 내부에서 가득하여 출렁이는데 그 대상은 언제나 내 안을 향했다. 그 어린 나이에 자신의 가치 없음을 늘 묵상하며 살아있음을 구차하게 느끼고 있었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안쓰럽다.
그런 상황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말할 수 없었다. 말하는 방법도 몰랐고 말할 대상도 없었다. 우리 집은 언제나 전쟁터였고 난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전쟁터에서 나도 좀 봐달라고 하면 피 흘리고 있는 엄마가 질식해서 죽어 버릴까 무서웠고 오히려 위로자, 중재자가 되어야 했다. 아래 남동생들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겉으로 보면 참 착한 아이들이었다. 일어나라면 일어나고, 가라면 가고, 주는 대로 먹으며 반항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다. 아이들 간 싸웠던 경험이 없었다 하면 믿어줄까? 사람이 훗날 그 당시의 마음을 엄마에게 풀어 보인 적이 있으나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했냐며 역정을 내시기에 다시는 꺼내지 못했다. 그만큼 사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리라. 사춘기를 겪으며 드러낼 수 있음은 축복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 아이들의 사춘기는 쉽지 않다. 요즘 누구라도 나보다 먼저 아이를 양육한 분들에게 ‘우리 애가 달라졌어요. 이럴 줄 몰랐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소연한다.
15세, 한창 중2 시기를 보내고 있는 둘째 아이와 나는 밀당 중이다. 오늘 아침에는 5일째 열이 떨어지지 않고 앓고 있는 막내가 먹고 싶다는 봉지 쌀국수를 아침으로 주니 자기는 뭘 먹냐고 자기 쌀국수 싫어하는 것 모르냐며 쏘아 말한다. 동생이 좋아하는 해물이 들어간 부침개도 싫어한다. 차린 밥은 죄다 싫어하는 것뿐이고 자기 취향도 모르는 엄마 아래서 세상 불행한 사람이 된다. 덕분에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을 다 적어달라고 했는데, 그러면 집에서 먹을 게 없는 수준이다.
받은 용돈은 떨어졌고 친구 생일 선물은 사야 할 때도 세상을 다 잃어버린 모습이다. 방이 그렇게 어질러져 있는데도 뭐 하나 건드리면 자기 물건은 제 자리에 있어야 한다며 역정을 낸다. 한강에서 뺨 맞고 종로에서 화풀이한다는 속담처럼 분명 다른 이유로 기분이 나쁜데 엄마에게 쏟아낼 땐 정말 싸우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제 서서히 독립할 시기이니 나와 멀어지려고 그러나 싶기도 하다. 사춘기를 드러내는 것이 긍정적이라 생각하지만 그럴 때는 ‘사춘기가 그래서 뭐!’라고 하기도 한다.
몇 시간 후 나는 아직 감정이 정리되지 않아 복잡한데,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 상냥하게 말을 건넨다. “엄마 있잖아, 대박 사건!” 하면서 말이다. 그럴 땐 진심으로, "넌 괜찮니? 엄마는 아직 맘이 복잡한데, 그 말이 지금 엄마한테 하고 싶니?" 하고 물어본다. 혹시라도 어색할까 오히려 호들갑을 떨며 바싹 다가오는 게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그러면 “왜 내가 기분이 안좋이야 돼? 괜찮은데?”라고 답한다. 여러 차례 그런 상황을 겪으며 아이는 진심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는 게 뭐냐며 나는 누구냐고 우울하고 진지한 질문에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나온다. 당사자야 때론 힘들겠지만 좋을 땐 마치 구름위를 날 듯 좋고 슬플 땐 세상이 무너져라 슬프고 화날 땐 세상을 때려 뿌실 기세를 보이는 모습은 너무 솔직하고 순수하다. 때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다가도 때론 불완전함을 각성하고 의지해온다. 그 사이에서 엄마의 주름은 늘어난다.
윤다옥 선생님의 2017년 저서 <어느 날, 갑자기, 사춘기>의 내용이 딱 맞다. “아직은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 “아이들은 경계를 알고 싶어 한다.” “아이들은 절대로 부모를 포기하지 않는다.” “아이 마음의 주파수를 찾는 법” 챕터의 제목부터 내 이야기다. 아이는 밖으로 튀어 나갔다가 이내 돌아오며 자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실험한다. 저만치 갔다 돌아온 후에는 순한 양이 되기도 하는데 사실 그 모습이 얄밉기도 하다. 그래도 언제든지 엄마한테 오렴. 밀당 15세.
첫댓글 아, 이 폭풍같은 삶, 삶, 삶
아..아직은 봐 줄만한 저희 집 13세도 15세가 되면 곧 저리 되겠지요...힘내세요...ㅠㅠ
저희 집 세 놈들도 어찌 이리도 다른지, 비위 맞추기가 너무 어려워요..ㅠㅠ
저 역시 책 목차부터 너무 와 닿아서, 발제문에 목차를 싹 다 붙여놨답니다. ^^;;
저희집 14살도 마찬가지에요.ㅜㅜ 저도 애가 이럴 줄 몰랐고 저도 덩달아 감정이 널 뛸줄 몰랐어요. 폭풍 공감하는 글을 읽으며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위로를 받습니다.
와~ 나의 사춘기부터 아이의 사춘기까지 너무 잘 연결하셨네요!
저도 사춘기를 부려본 적 없어 제 이야기 같았어요^^ 그리고 사춘기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건강하다는 말씀 공감합니다^^
엄마의 사춘기와 아이의 사춘기가 완전 다르네요.. 현명하게 잘 대처 중이신거 같아 흐뭇하면서도 곧 닥칠 나의 미래에 아찔해 집니다.
남편이 출장으로 집을 비운지 6일째인데 어제 못 볼 카톡을 봤습니다. "아빠 언제와? 엄마랑 둘이 있기 싫어" 나름 잘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머리가 복잡합니다. 아직도 나아갈 길이 너무 머네요...ㅠ
어흑, 너무 서운하다, 소윤 ㅠㅠㅠㅠ
근데, 6일째니까...
미선 샘도 쫌 힘들지 않으세요 -.-;;
당사자야 때론 힘들겠지만 좋을 땐 마치 구름위를 날 듯 좋고 슬플 땐 세상이 무너져라 슬프고 화날 땐 세상을 때려 뿌실 기세를 보이는 모습은 너무 솔직하고 순수하다. 때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다가도 때론 불완전함을 각성하고 의지해온다. 그 사이에서 엄마의 주름은 늘어난다.
이 문단 너무 와 닿고 좋아요~ ㅎㅎ 북마크 하고싶은 마음입니다 . 곧 이해해야할 아이들과 저의 상황일것 같아서요 ! 잘읽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noworry21/223202519568
맥락에서 좀 튀는 어휘까지 몇 군데 고쳤지만, (묵상 같은 단어들) 정말 좋은 글이에요.
경험 공유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