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의 고장, 담양이 두 번째 여정입니다.
오후 늦게 도착해서 잠잘 곳부터 확인해야 했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대로 담양경찰서 뒤 편에 있는 <대나무 건강랜드>, 쉽게 말해 찜질방을 수색하기 시작했습니다.
5층 건물 위에 있는 <대나무 건강랜드>라는 간판을 보면서도 뒷길이라 두 바퀴를 돈 후에 무사히(?) 문 앞까지 갔고,
아내는 '담양' 하면 연결되는 '떡갈비'를 맛 있게 먹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정보를 수집,
"한 달 매상 10억"이라는 <덕인관>을 찾아 갔습니다.
* 서울에도 흔한 떡갈비, 원조 담양에서는 좀 색달라야 하겠습니다.
늙어서 치아가 좋지 않은 노인네들이 쉽게 먹을 수 있도록 갈비살을 다져서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이라 '효갈비'라고도 불리는 떡갈비.
한우 최상의 갈비를 사용해 입에서 살살 녹고 육즙이 살아 있어 최고라는 홍보, 1인분 22,000원. 공기밥도 1,000원.
그러나 "소문 난 잔치 먹을 게 없다."는 속담대로 입맛 까다로운 아내의 평가는 B-,
우선 양이 너무 적고, 맛도 밥반찬처럼 간장맛이 너무 진하고, 밑반찬도 그냥 구색을 맞추려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렇고 그런 종류.
우리가 단골로 다니는 <본수원갈비>에 비하면,
"갈비도 아니다"는 아내의 혹평에 담양의 또하나의 명물 '대통밥'을 시키려다 얼른 취소했습니다. ^^^
* 비수기에 잠은 찜질방이 좋습니다.
<대나무 건강랜드>는 5층 건물인데 찜질방만 한 백 평 정도, 컸습니다.
여름방학은 끝났고, 단풍철은 아직 멀었고, 비수기라서 그런지 이 큰 찜질방에 손님은 열 명도 안 돼 보였습니다.
대나무의 잎을 활용한 온천이라서 보통 죽엽탕이라 부른다는데, 노화방지, 심장질환, 중풍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실컷 했습니다.
1인당 6,000원. 여관의 이상한 냄새와 분위기를 못 견디는 아내는 찜질방이 넓고 시원하고 좋다고 떠날 때부터 숙소로 정했습니다.
옥냉방, 산소방, 황토방 등 이 방 저 방 순례하며 신랑신부는 아니지만, 첫날 밤 잘 치뤘습니다. ^^^
* 중국은 녹죽원, 조선은 죽녹원 - 대나무숲 서걱대는 잎, 호랑이는 없었습니다.^^^
9월 10일 목요일 아침 7시, 죽녹원에 도착했습니다.
담양군청에서 향교 뒷산인 성인산을 대나무숲으로 만들어 아기자기한 산책로와 인공폭포, 정자, 생태학습원 등을 꾸며 놓은 놓은 담양의 명소입니다. 산책로마다 운수대통 길, 죽마고우 길, 사랑이 변치 않는 길, 철학자의 길, 선비의 길, 성인산 오름길, 추억의 샛길, 샛길. 이렇게 8개의 길을 조성해 이름을 부쳤습니다.
새벽이라 입장료 내지 않고 무사통과, 입구에서 우리보다 먼저온 사람에게 기념사진 한 장 부탁해 찰칵.
그 다음부터는 대나무숲에서의 부부산책입니다.
대나무가 뿜어내는 진한 향기, 곧게 뻗어 올라간 대나무의 싱싱한 자태, 늘푸른 잎과 바람에 서걱대는 숲의 소리. 상쾌합니다.
* 가사 <면앙정가>의 무대 면앙정, '푸른 학' 도, 송순도 없어 나 홀로 앉았습니다.
그러다가 죽녹원 북쪽 산책로 끝에서 송순의 <면앙정>과 갑작스레 마주친 기쁨이 컸습니다.
넓고 편편한 바위 위에 소나무와 대나무를 헤치고 정자를 앉혀 놓았다.
마치 구름을 탄 푸른 학이 천 리를 가려고 두 날개를 벌린 듯하구나. <면앙정가 > - 송순
500여넌 전, 송순은 면앙정을 이렇게 노래했고, 나는 국어시간에 제자들에게 가르쳤고, 이제 그 정자에서 사진 몇 장 찍었습니다.
* 메타 세콰이어길에서,
담양의 또하나의 명소, 1970년대에 조성된 아름다운 길은 마지막 빙하기 시대의 나무였던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입니다.
소쇄원 가는 길목에 있어 지나치게 되었는데 서울에서도 많이 봐서 그런지, 잠깐 지나가는 여정이 바빠서 그런지,
키 큰 나무가 2차선 옆에 죽 늘어서 있다는 느낌만 받았지 '정말 아름답구나 !' 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 조선의 선비들은 현실과 뜻이 어긋나면 낙향하여 자연 속에 묻혔습니다.
한국 정원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소쇄원 가는 길은 산 밑 도로를 구불구불, 아기자기했습니다.
입구부터 서 있는 대나무숲을 지나자 왼쪽 외나무다리 건너편에 서 있는 두 채의 정자.
"비 갠 뒤 볕이 나서 부는 청량한 바람"이란 뜻의 현판이 걸린 광풍각과, "맑은 날의 달빛"이란 뜻의 제월당이 계곡의 바위와
나무와 물과 어울려 자연의 한 부분으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갑자기 아침에 죽녹원에서 따 온 곰취 몇 잎을 꺼내 계곡물에 씻기 시작한 것도 물이 너무 맑기 때문일까, 생각했습니다.
조광조의 제자인 양산보가 낙향하여 이곳에 정자를 짓고, "맑고 깨끗하다."라는 뜻의 '소쇄(瀟灑)'라는 이름을부친 것은,
조광조의 개혁 실패로 모질고 불합리한 세상과 단호하게 거리를 두려는 당시 그의 마음의 결기가 담겨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