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막달레나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로 불리기도 한다.
성녀의 고향이 갈릴래아의 작은 도시 막달라이기 때문이다.
막달레나는 막달라를 라틴어로 표기한 것이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 가운데서 언제나 첫 자리에 언급되고 있다.
그만큼 예수님과 가까웠다.
신약성경에 총 13번 등장한다.
성녀는 초대교회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분이다.
예수님의 죽음을 현장에서 목격했으며 장례를 준비했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만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숨어 있던 사도들에게 부활소식을 확실하게전한 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세를 거치면서 전직 창녀로 낙인 찍힌다.
당시 성화 가운데는 막달레나 성녀를 관능적인 여인으로 그린 것이 많이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일차적인 원인은 6세기의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예수님의 발을 씻긴 '요한복음 12장의 여인'을 막달레나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약성경 어디에도 창녀였거나 죄인이었다는 기록은 없다.
그렇지만 한 번 선언된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러다 1969년 '막달레나는 요한복음 12장의 여인이 아니다.'라는 공식입장이 표명되었다.
성서학이 발전한 결과였다.
1988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사도들의 사도'라는 표현으로 성녀를 표현하기도 했다.
루카복음에 의하면 막달레나는 일곱 마귀에 사로잡혔던 여인이다.(루카 8.2)
이 표현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강력한 악의 세력에 사로잡혔다가 예수님을 만나 자유로워졌다는 것에는 일치하고 있다.
이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믿고 동행했으며, 그분의 일행을 재정적으로 도왔다.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막달레나는 마르타 등과 함께 프랑스 남부 지방에서 살았다고 한다.
지금도 이 지역의 한 마을에서는 성녀의 유해를 모시고 행진하는 의식이 전해지고 있다
한편 동방 교회에서는 성모 마리아와 사도 요한과 함께 에페소에서 살았다는 전승을 고수하고 있다.
축일은 7월 22일이며, 동방 정교회에서는 부활 후 제 2주일을 '회개한 여인의 주일'로 정해 막달레나 성녀를 기념하고 있다. 정원사와 미용사들의 수호 성녀이다
- 신은근 바오로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