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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참불선원장 각산 스님
“봉암사 명상마을, 낭만·철학·자유 넘치는 세계 수행공동체 만들 터”
불교 사회역할 고민하다 미얀마로 발길돌려 ‘정진’
파욱 사야도로부터 인가 ‘부족’ 직시하고 구도지속
도반 뒤통수 보고 ‘번쩍’ 선어록·경전 핵심 ‘확연’
호주 아잔브람 센터서 선열 감동·환희 속 평온 찾아
집착 내려놓고 무심해야 자연스런 수행 가능 해
‘새는 두 날개만 소유’ 비움의 미학 체득해야
명상마을 국민선원 지향 수행점검 외 통제 안 해
개인 수행공간 ‘꾸띠’ 숲속 곳곳에 최대 조영
청년대상 단기출가·캠핑 삶에 대한 통찰 계기 마련
참불선원장 각산 스님은 “멀리 나는 새는 두 날개 외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며
“누리되 물들지 않는 중도를 체득하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고 전했다
희양산(曦陽山)은 높이 998m의 거대한 바위산이다.
당찬 기세에 신령함마저 깃든 영봉이기에 봉황(鳳凰)이라 했다.
산이 품은 30리 물길은 힘차게 몸짓하는 용을 닮았다. 하여
이 산에 든 사람들은 ‘봉황 닮은 바위산에 용과 같은 계곡이 흐른다(鳳巖龍谷)’고 했다.
‘하늘이 내린 땅’임을 직감한 지증도헌 국사가 1100년 전 봉암사를 창건(879)하며
구산선문 중 하나인 희양산문을 열었다.
한국 불교사에 한 획을 그은 ‘봉암사 결사’가 맺어진 곳도 희양산이다.(1947)
‘부처님 법대로 살자’ 했던 수좌들의 정진은 근현대의 수행가풍을 정초했다.
희양산 자락의 ‘봉암사 세계명상마을’ 전경.
4월20일 또 하나의 산문이 열린다. ‘봉암사 세계명상마을’이다.
의정(선원수좌복지회 이사장), 적명(봉암사 전 수좌) 스님의 원력에
수좌들의 힘이 더해져 조성된 수행공동체다.
초대 선원장에는 “선칠(禪七·명상7일) 정진하면 운명도 바꿀 수 있다”고 주창하며
서울 일대에 ‘명상 붐’을 일으킨 참불선원장 각산(覺山) 스님이 임명됐다.(2021)
한국 선원은 물론 미얀마, 태국, 스리랑카, 티베트, 호주, 인도, 영국, 프랑스 등의
수행센터에서만도 10년 동안 정진하며 간화선과 명상을 꿰뚫었다.
각산 스님은 해인사 강원을 졸업한 후 바랑 하나 메고 미얀마로 떠났다.(2003)
전국승가학인연합회(전승련) 의장으로서 불교의 대 사회역할, 승가교육·
수행환경 개선 등 굵직한 현안도 다뤄가고 있었는데 다소 의외다.
“당시 사회 이슈로 떠오른 ‘새만금·사패산 터널 반대운동’에 저도 공감했습니다.
전승련을 움직이려 제 나름의 당위성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이 사안에 찬성하는 분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사회에서의 참다운 불교 역할은 무엇인지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서암 스님이 후학들에게 전했다는 일언이 떠올랐다.
서암 홍근(西庵 鴻根·1917∼2003) 스님은 1980년 초반 봉암사 태고선원 조실로 주석했다.
조계종 8대 종정(1993∼1994)에도 오른 서암 스님은 2001년 하안거 결제 때
조실로 재추대 되어 납자들을 지도했고 2003년 3월 봉암사에서 입적했다.
“‘내가 힘이 있을 때 남을 도울 수 있다. 중의 힘은 수행이다.’
당시의 저는 공부 덜 된 어설픈 중이었습니다.”
미얀마 파욱승가수도원에서 정진했다.
처음엔 미얀마 양곤의 마하시 선원에 들었다.(2003)
가야산에서 정진한 각산 스님에게 도심 선원은 체질에 잘 맞지 않았다.
숲속에 수행처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는 300km 남쪽의 몰라민을 향해 떠났다.
새벽빛에 젖어있는 고요한 숲속 꾸띠(kuti·홀로 정진하는 수행처)는
각산 스님의 가슴에 통째로 박혔다.
“물욕을 완전히 여읜듯한 작은 판잣집. 그러나 그 누구도 침범 못하는 공간.
새의 노랫소리와 수행자의 호흡 소리만이 가득한 숲은 참으로 성스러웠습니다.”
한국의 간화선이 화두에 방점을 찍는다면 태국·미얀마의 수행법은 호흡에 찍는다.
심신(心身)의 적정(寂靜) 즉 깊은 선정을 목표로 한다.
한국과 미얀마를 오가며 6년여의 정진 끝에 파욱 사야도로부터 ‘인가’ 받았다.(2009)
그렇다면 열반·해탈의 전 단계인
선정삼매에서 경험한다는 오묘한 빛 니미따(nimitta·심월·心月)를 보았을까?
“선의 희열을 음식으로 삼는다(禪悅爲食)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기에는 부족했습니다. 대 자유를 느껴야 하지 않습니까?
답답했고 허전했습니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대가의 인정에도 자신의 점검을 잊지 않았던 각산 스님이다.
정진은 계속됐다. 송광사를 시작으로 범어사, 통도사 등의
제방 선원에 입방하여 가부좌를 틀었다.
행선을 나선 어느 날 한 도반이 앞에 섰다.
지대방에서도 도(道)와 법(法)만 나눠야 하는 각산 스님과 달리
그 도반은 ‘어느 사찰 음식, 어느 가게 국수가 맛있다’는 얘기까지 할 정도였다.
“맛있다, 맛없다는 말 그만하고 정진에 힘쓰라” 핀잔을 주곤 했는데
가만 보면 자신과는 달리 도반 주위에는 늘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행선 중 도반의 뒤통수를 마주한 순간 ‘번쩍’했다.
“‘수좌는 이러해야 한다’는 틀에 도반을 집어넣고 제멋대로 평가하는 저야말로
극단의 분별심에 사로잡혀 있던 겁니다.”
‘신심명(信心銘)’ 저자 승찬 스님도
분간하고 선택하는 것을 조심하면 큰 도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선사의 암자를 노파가 불태웠다는 파자소암(婆子燒庵) 공안이 봄눈 녹듯 스르르 풀렸다.
그 이후 선어록과 경전의 행간에 흐르는 핵심이 간파되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도 각산 스님의 구도여정은 태국과 스리랑카를 거쳐 호주에까지 닿았다.
그곳에는 달라이라마, 틱낫한 스님과 함께 세계적인 불교 지도자로 추앙받는 아잔 브람이 있었다.
각산 스님은 그곳 보디니야나 명상센터에서 그토록 갈망했던 선열을 경험하며 안심을 찾았다.(2011)
미얀마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니미따를 호주에서 체험한 ‘비결’은 무엇일까?
각산 스님은 간화선과 아잔브람의 호흡명상을 관통하는 키워드 ‘내려놓음’에 주목하라고 했다.
“선에서는 방하착(放下着) 하라 했습니다. 집착을 내려놓은 무심(無心)을 말합니다.
아잔 브람 스님은 놓아버림으로써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습니다.
세속적 욕심도, 깨닫겠다는 생각도 놓아야 합니다.
수행이라고 하면 엄청난 의지력으로 밀어붙여야만 하는,
그래야 뜻한 바를 성취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저는 달리 생각합니다.
‘선요(禪要)’에 나오는 대분심(大憤心)도 분발심(奮發心)으로 고쳐야 한다는 게 저의 판단입니다.
수행은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되어야’ 합니다.”
2018년의 ‘DMZ세계평화명상대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각산 스님은 참불선원에서 불자들의 근기에 따라 적확한 수행법을 제시·지도한다.
일반적으로는 ‘부처님의 호흡법’이라 명명된 호흡명상(안반선·安般禪)을 권한다.
또한 각산 스님이 창안한 ‘손가락이라고 말해도 틀리고, 손가락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틀린다.
이뭣고?’ 화두를 주기도 한다.
그리고 간화선의 이뭣고와 안반선의 호흡을 통섭한
‘숨 쉬는 것을 아는 놈(마음), 이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도 준다.
간화선과 안반선의 접목으로 인한 혼란은 발생하지 않을까?
“두 선법 모두 정혜쌍수에 근간을 두고 있기에 문제 될 게 없습니다.
숨 쉬는 것을 마음으로 알면서 그 호흡을 중심축으로 삼아
‘숨 쉬는 것을 아는 마음이 무엇인고?’ 하면 됩니다. 핵심은 숨 쉬고 있음을 자각하는 데 있습니다.”
들숨과 날숨에만 집중해도 “육신과 정신이 시원해지고 고결해진다”고 확언했다.
“호흡은 감각의 대상이 아니고 마음의 대상입니다.
그냥 숨 쉬고 있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아차리는 ‘아는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반복된 알아차림에 의해 호흡을 명확히 인식하다 보면 집중도가 높아집니다.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절대 심연 속으로 들어가 니미따를 증험(證驗)합니다.
호흡이 텅 빈 우주와 하나가 될 때 호흡은 사라지고 허공 속에서 쏟아지는 빛만 남게 됩니다.
‘아는 마음’만 존재할 뿐, 바깥의 모든 소리도 차단되어 들리지 않습니다.”
선정삼매 경험 후에 삼법인을 명확히 관철하면 지혜가 발현된다고 한다.
각산 스님은 자신의 저서 ‘멈춤의 여행’에서 ‘인생은 고통의 여행이며 명상은 그것의 멈춤’이라고 했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마음의 소리가 들립니다.
그것은 생사의 비밀과 삶의 안목을 여는 지혜의 소리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욕망의 전차에서 뛰어내리게 합니다.
너무 많이 갖고자 하면 도리어 갖지 못합니다.
비우면 재물도, 명예도, 사랑도 채워집니다. 비움의 미학입니다.
재물을 갖되 재물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누리되 물들지 않는 중도를 체득하면 세상이 달리 보입니다. 온 세상이 극락입니다.
멀리 나는 새는 날개 외엔 아무것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봉암사 세계명상마을은 ‘국민선원’을 지향한다.
간화선과 명상을 수행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개방한다. 수행 인프라는 치밀하게 구축돼 있다.
“한국 최대의 명상관을 비롯해 숙소, 웰컴센터 등이 건립됐습니다.
수행승과 일반인을 위한 개인 수행처 ‘숲속 꾸띠’도 형편 닿는 대로 더 지어가려 합니다.
주말 2박3일 집중수행은 한국 대표 53선지식이 직접 지도합니다.
평일에는 수행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꾸띠에서 정진하는 수행인들을 통제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침 공양 후 1시간∼1시간30분 정도의 공동운력을 제외하면 무엇을 하든 자유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공양하겠지요. 누워만 있다가 허리 아프면 앉겠지요.
수행한다고 들어앉았으니 잠깐이라도 방석을 펼치겠지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 번의 수행점검은 받아야 합니다.
봉암사 세계명상마을의 청규는 두 문장에 압축할 수 있습니다.
‘여기는 자유와 평등만 있다. 우리의 목표는 견성성불이다.’”
깃털처럼 가벼우면서도 태산처럼 무거운 ‘수행의 자유’를 허락했음이다.
청년을 대상으로 한 단기출가 프로그램도 가동할 계획이다.
올해는 ‘200명 대상 1주일 출가’이지만 내년부터는 ‘1000명 대상 3주 출가’를 실행하려 한다.
야외수련장도 확보해 캠핑하며 명상을 체험하는 캠프도 준비하고 있다.
“명상은 내가 무엇에 집착해 있는지, 왜 붙잡고 있는지를 바라보게 합니다.
붙잡고 있는 그것을 놓으면 죽는 줄 알았는데 놓는 순간 자유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깨우쳐줍니다.
가정, 학교, 장래희망을 포함한 삶에 대한 나름의 통찰이 시작됩니다.
학교는 이것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신선한 공기와 청량한 바람과 꽃향기, 별빛이 어우러진 천혜의 절경도 안을 수 있습니다.
낭만이 가득하고 철학이 숨 쉬는 공간에 젖었던
그 청년이 희양산을 다시 찾아와 가부좌를 틀 것입니다. 아니면 어떻습니까?
적어도 갈등·전쟁보다는 상생·평화에 마음을 쓰리라 믿습니다.”
명상마을은 선 건축물의 단아함을 모델로 설계됐다.
지구촌 명상센터에서 체험한 각산 스님의 노하우가 농축된 ‘봉암사 세계명상마을’이다.
여기에 한국 대표 선지식들이 체득한 선의 정수가 채워지고 있으니
머지않아 세계적인 수행공동체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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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산 스님은
미얀마, 태국의 밀림과 호주, 인도, 유럽, 미국의 국제명상센터와
송광사, 범어사, 통도사 제방선원에서 정진했다.
세계명상대전 조직위원장을 맡아 ‘세계명상힐링캠프’,
‘2014∼2016 세계명상대전’, ‘DMZ세계평화명상대전’ 등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저서로 ‘멈춤의 여행’,
역서· 편저로는 ‘법화삼매참법’이 있다.
2022년 3월 23일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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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안반선 (安般禪)
부처님의 오정심관(五停心觀)에 안반선(安般禪)이 있습니다.
안반선은 수식관(數息觀)으로도 불리며 호흡(呼吸)에 집중하여
그것을 헤아린다는 의미입니다.
안반선(安般禪), 즉 수식관은 호흡(呼吸)을 주시하는 명상법입니다.
내보내는 숨인 호(呼)와 들어 마시는 숨인 흡(吸),
즉 호흡의 수를 세어 어지러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명상법입니다.
수식관의 목적은 집중에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어떠한 감정이나 생각에 매달려서 요동치는 순간에
수식관을 하면 다시 지금 본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