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대선개입과 국기 문란의 사태에 관한
천주교 전주교구 사제 151명 시국선언 전문>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마태 10.26)
민주 정부란 무엇보다도 국민들이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과 관련하여 국민을 위하여 행사되는 권한과 역할을 얼마나 부여받는지에 따라 규정된다. 따라서 모든 민주주의가 참여 민주주의여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간추린 사회교리, 참여와 민주주의 190...항)
최근 정국은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과 2007년 남북한 정상회담 회의록 불법유출에 관하여 국민적인 저항이 연일 높아져가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청소년에서부터 대학생, 교수, 시민단체, 종교계 등이 시국선언을 연일 발표하며 촛불을 들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와 정치권은 국민들의 외침을 수용하여 국정에 반영해야 하는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하는 파렴치한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공동선을 향한 시민사회의 열망과 민주주의를 후퇴 시키는 악습입니다.
또한 국민의 알권리와 민주주의 수호의 보루인 언론은 국민들의 강력한 호소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국민들의 여론을 왜곡하는 치졸한 행태는 가히 정언유착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중매체는 인간 공동체의 여러 분야, 곧 경제, 정치, 문화, 교육, 종교에서 인간 공동체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에 이용되어야 한다. 대중매체를 통한 정보전달은 공동선을 위한 것이다. 사회는 진실과 자유와 정의와 연대 의식에 근거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간추린 사회교리, 정보와 민주주의 415항)
정치권과 언론이 국민의 소리를 외면하자 천주교계는 전국적으로 시국선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천주교 마산교구를 시작으로 부산교구, 광주교구, 수원교구, 인천교구 등 전 교구가 연일 현 정국의 문제해결을 위해 시국선언을 통해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에 천주교 전주교구 사제 151명은 신앙의 양심과 사회정의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최근 국가정보원의 대통령 선거 불법 개입과 공작정치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정국현안과 관련하여 우리의 입장을 밝힙니다.
교회는 민주주의를 높이 긍정합니다. 왜냐하면 이 체제가 인간 존엄을 보장하고자하며 독재를 반대하고 국민에게는 정치 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주어 통치자들을 선택하거나 통제하며, 필요한 경우엔 통치자를 평화롭게 교체할 가능성을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민주주의 체제 그 자체가 도덕적일 수는 없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정당성과 도덕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목적들과 동원하는 수단들이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국가 권력의 성실하고 책임 있는 봉사를 강조합니다.
그런데 작금의 사태는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정보원이 지난 대통령 선거에 불법적으로 개입하였고, 이를 수사한 서울 경찰청의 발표가 허위였다는 것이 검찰 수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정보원은 이러한 국기문란 행위를 덮기 위해 국가기밀문서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불법적으로 공개하여 또 다른 국기문란 행위를 자행하였습니다. 더구나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과 권영세 주중대사의 발언을 통하여 새누리당은 이미 지난 12월에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불법적으로 입수하고 그것을 대통령 선거와 이후의 정치에 이용했다는 사실에 하느님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제로서 경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우리가 소중히 지켜온 민주주의와 국가의 정체성을 뿌리에서부터 뒤흔드는 중대한 범죄행위이며, 수많은 이들이 피와 희생으로 이루어낸 민주주의의 역사와 가치를 후퇴시키는 것이고 우리 사회의 신뢰와 합의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는 민주주의를 위해 언제나 역사와 함께 했던 교회에 대한 도전이며, 교회와 세상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죄악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사태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진실 규명과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끝이 보이지 않는 침묵과 소모적 논쟁 그리고 온갖 핑계로 발뺌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 정부의 행태가 과거 군사독재의 악행을 답습하는 것이며 민주주의의 후퇴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부도덕한 행태입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마태 10.26)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박근혜 정부는 귀를 열고 들으십시오! 박근혜 정부는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고 하느님을 두려워 하십시오 ! 만약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는다면 4.19 혁명, 5월 광주항쟁, 6월 국민대항쟁과 같은 민주 시민의 항거에 부딪히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전국에서 촛불을 들고 외치는 국민들과 함께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행동에 연대하며 부도덕한 정부에 저항할 것입니다.
우리 전주교구 사제 151명은 신앙의 양심으로 박근혜 정부에 다음과 같이 촉구합니다.
1. 국정원의 대통령 선거 불법 개입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관련자를 문책하라.
2. 국정원의 남북정상 대화록 불법공개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관련자를 문책하라.
3. 국정원의 불법적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국정원을 개혁하라.
4. 박근혜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후퇴와 국기문란 행위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라.
2013년 8월 8일
천주교 전주교구 신부 151명(가나다 순)
강명구, 강승훈, 강 호, 경규봉, 권완성, 권순호, 고봉호, 고장원, 공현식, 김경수, 김경훈, 김관우, 김기곤, 김기수, 김교동, 김광태(동산동), 김광태(신풍), 김남기, 김동준, 김병운, 김병조, 김병환, 김병희, 김봉술, 김상용, 김선태, 김성봉, 김순태, 김영수, 김영태, 김원중, 김요안, 김윤섭, 김의철, 김정현, 김정훈, 김종성, 김주형, 김준호, 김진소, 김진철, 김진화, 김철희, 김창신, 김태윤, 김태환, 김혁태, 김형수, 김회인, 김 훈, 김희남, 김희태, 길성환, 나궁열, 나춘성, 남종기, 두성균, 리수현, 문규현, 문선구, 문정현, 박기준, 박병준, 박상운, 박성팔, 박성환, 박인근, 박인호, 박종근, 박종상, 박종충, 박종탁, 박중신, 박찬길, 박찬희, 박창신, 박현웅, 범선배, 범영배, 백승운, 백승호, 서광석, 서동원, 서정현, 서철승, 성태수, 송광섭, 송년홍, 송현석, 송호석, 신원철, 안봉환, 안철문, 양석현, 양승욱, 왕수해, 엄기봉, 여혁구, 연규영, 오성기, 유승현, 유종환, 윤양호, 원종훈, 이가진, 이국환, 이금재, 이덕근, 이 동, 이명재, 이상섭, 이상용, 이상욱, 이사정, 이상훈, 이성우, 이선홍, 이수현, 이원철, 이영우, 이영춘, 이용재, 이재후, 이정석, 이정현, 이종원, 이태신, 이태주, 이 훈, 장상원, 전우진, 전종복, 정광철, 정동수, 정삼권, 정성만, 정세진, 정승현, 정식수, 정천봉, 정태현, 조민철, 조정오, 지봉규, 최요왕, 최용준, 최종수, 하태진, 한기호, 한병헌, 현유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