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9.29.공감5시
제목: 방아다리약수
1. 오늘은 방아다리약수에 대해서 소개해 주신다고요. 방아다리, 그 이름이 참 한국적인데요. 어디에 있는 약수인가요?
방아다리는 오대산에 있는 아주 이름 난 약수입니다. 주소는 평창군 진부면 척천리입니다. 영동고속도로에서 진부톨게이트로 빠져 월정사방면으로 가다가 좌측으로 방아다리라는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면 됩니다. 이곳에서 이정표를 따라 한참을 가다보면 주차장이 있고, 주차장에서 산길을 따라 한참 걸으면 방아다리약수를 만날 수 있습니다.
2. 방아다리로 가는 길이, 방아다리라는 이름처럼 참 아름다울 것 같아요. 어떤 가요?
오대산 자락이니, 가보지 않아도 아름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곳은 대관령을 끼고 있는 곳이라 지대도 높고 눈도 많이 오는 곳입니다. 봄이면 철쭉이 특별히 눈에 띄고, 겨울이면 설경이 그야말로 끝내주는 곳이지요. 그런데 이곳에 가면 더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경관이 있습니다. 바로 길가로 길게 숲을 이루고 있는 전나무길입니다. 이 길에 접어들면 모두들 “와아 ~~”하고 감탄을 자아냅니다. 말이 필요 없고 설명을 할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니까요. 오대산 산자락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숲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숲길은 금방 누군가 나무를 심어놓은 것이란 느낌을 받게 됩니다.
3. 아니 그 산에 나무를 심어 숲길을 만들었다고요. 그럼 인공조림으로 생긴 전나무 숲길이잖아요?
방아다리약수로 접어드는 곳에 보면 산장으로 쓰였던 집이 있고 그 집을 지나면 녹색기념비라는 큰 돌을 올려놓은 돌비석을 만나게 됩니다. 그 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대산 국립공원 방아다리 약수터는 북한 삼방약수터와 더불어 우리나라 최고의 약수로서 그 진가가 인정된 곳입니다. 예로부터 만병통치 약수로 전국 약수 애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이곳은 특히 일제치하말기 불순분자로 수배된 애국지사들과 강제징병을 피하려던 사람들이 중병환자로 가장해서 은신했던 곳으로 우리민족의 식민지사와 더불어 수난의 한 시대를 증거하는 의사의 땅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해방전후를 거치며 국토개발에서 소외되어 천연자원으로서의 가치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낙후되어 있던 이곳을 독립운동가였던 고 김익로 옹이 선구자적인 자연애호 정신으로 현재와 같은 인공조림을 조성하여 우리나라 최고의 약수로서의 면면한 역사와 함께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수난을 거쳐 이제 본연의 자태를 되찾은 약수와 자연경관을 더욱 보호하여 아름다운 우리고장을 만들고자 조그만 정성을 모아 이 기념비를 세웁니다.”
김익로 씨는 1972년 전국 조림왕으로 선정되ㅣ도 했다고 합니다.
4. 한 사람의 정성이 지금의 아름다운 숲길을 만든 것이군요. 자연의 숲에 또 다른 인공숲길을 만들어 아름다움을 더한 그 마음이 전해오는 듯합니다. 그런데 왜 방아다리라 했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무슨 뜻인가요?
언제든 역사는 어느 한 사람의 공과로 기록됩니다. 아마도 방아다리약수의 주변경관도 그렇게 또 비석에 새겨져 새로운 역사로 전하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 방아다리라는 유래는 두 가지로 전하고 있더라고요. 하나는 지형 때문이고요. 또 하나는 생활에 얽힌 것입니다. 지형에 얽힌 것은 방아다리로 올라가는 길은 두일리에서 갈라지는 척천리와 탑동리라는 갈림길을 만나게 됩니다. 두일리에서 척천리와 탑동리로 갈라지는 지형이 디딜방아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이곳을 방아다리라 했다는 유래입니다. 실제로 그곳에 가보면 마치 방아다리 모양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생활에 의한 것은 화전이라는 특별한 우리 조상들의 생활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비료가 없어 화전을 많이 했습니다. 산에 불을 놓아 재가 생기면 그 재가 비료의 역할을 했던 것이지요. 이곳 오대산도 화전민이 살았습니다. 온 산이 밭으로 일궈지던 시절이었습니다. 현재 방아다리가 있는 곳은 옛날 화전민이 살던 곳인데, 화전민이 곡식을 찧기 위해 디딜방아를 이곳 암반에 설치했답니다. 그런데 디딜방아의 확으로 사용했던 암반이 닳으면서 극소에서 갑자기 물이 솟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물이 바로 약수였답니다. 그래서 약수 이름을 방아다리를 놓았을 때 확에서 솟은 약수라 해서 방아다리약수라 했다는 것입니다.
5. 그러니까 방아다리는 디딜방아의 다리에서 유래한 것이군요. 지금은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인데요. 그렇게 지명으로 남아 있어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이곳에 가면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듯한 데요?
숲이 사방으로 우거진 산속에 아주 오래전에 지어진 듯한 두 채의 사당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용신을 보시는 곳이고 또 하나는 산신을 모시는 곳입니다.
6. 용신과 산신, 참 재미있는 두 신의 조화인 것 같아요?
그렇지요. 용신은 약수를 관장하는 신입니다. 용은 물을 다스리기 때문이지요. 아무래도 용신과 산신을 모신 것은 오대산을 관장하는 신이 산신이고 약수를 관장하는 신이 용신이라고 생각한 것이겠지요. 아무래도 음양의 조화를 생각한 것이기도 할 터인데, 특별하게 드러나는 것은 없습니다. 게다가 오대산신은 여신이라 하는데, 이곳의 산신각에도 흰 수염을 한 신과 여신이 두 명의 동자를 거느리고 호랑이를 뒤에 두고 있는 탱화가 있답니다. 또 그들 사이에는 폭포가 장엄하게 쏟아지고 있다니 그 뜻을 알 것 같습니다. 바로 우리가 바라는 풍요를 상징한 것이지요.
또 용신각에는 용신할머니라 해서 할머니 신의 화상을 그려 놓았는데, 지금은 두 폭짜리 병풍이 있다고 합니다. 그 병풍에는 ‘北斗七星七元星君’이라고 붉은 글씨로 써 있고, 다른 폭에는 용을 타고 있는 보살이 두 동자를 뒤에 두고 있다고 합니다. 불교와 도교의 혼합양상이라 하는데, 원래는 음성인 물의 특성을 살려 할머니 모습의 탱화였다고 합니다.
7. 참 재미있는 탱화에다가 사람들의 인식도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약수에는 꼭 발견한 유래가 있잖아요?
없을 수 없겠지요. 옛날, 문헌에는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이라고 꼭 나옵니다. 경상도 출신의 이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신병으로 각처의 명의를 찾아 다녀도 효험이 없어 삶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명산이나 편력하다가 마치리라고 생각하고서는 두루 다니던 중에 산수가 좋은 오대산의 이곳에 이르러 아늑한 나무 밑에 잠자리를 정하고 노숙하는데, 꿈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나타나 “어인 사람이 이 산중에 홀로 있는고?”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꿈속이지만 이분이 산신령이 틀림없으리라고 믿고, “신령님께서는 얼마 남지 않은 이 목숨을 가련히 여겨 병을 고칠 수 있는 비방을 가르쳐 주소서.”하고 간청하자, “그렇다면 네가 누워있는 자리를 석자만 파 보아라.”하면서 사라졌습니다. 깜짝 놀라 깨어난 그가 급히 땅을 파헤치니 약수가 솟아났습니다. 그리하여 그 물을 며칠 동안 열심히 복용하자 병이 씻은 듯이 나은지라, 이곳에 산신당을 모시고 크게 제사하였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