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출가한 다음 해 관정 큰스님과의 첫 만남
오대산 현해 스님을 은사로 득도하여 범어사를 비롯하여 여러 곳을 다니면서 2년 반 동안 남보다 많은 행자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4~5년간 사미생활을 하다가 1998년 34살에 통도사 계단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그 뒤 다른 수행자들과 마찬 가지로 화두를 받아 여러 선방을 돌아다니며 참선을 하였지만 나의 마음속에는 늘 아미타불이 자리 잡고 있었다. 20살에 「극락세계 유람기」를 보고 아미타불을 흠모하고 염불을 하였지만 당시 승가대 총장이셨던 종범 스님의 법문을 듣고 내가 왜 아미타불을 염해야 하는 지 확연하게 깨닫게 되었다.
1999년, 문경 대승사에서 하안거 기간 동안 스님들을 돕는 소임을 맡아서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선방에 법보시 책이 배달되었다. 나는 책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 내가 옛날 읽었던 「극락세계 유람기」하고 똑같은 내용인데!’
책 뒤를 보니 강진 백련사 토굴에 게시는 선용 스님의 연락처가 나와 있었다. 나는 안거 해제가 되자마자 그 길로 바로 선용 스님에게 연락하여 강진 백련사를 찾아갔다. 선용 스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선용 스님도 내가 20살 때 보았던 똑같은 책을 보고 발심하여 그 책을 복사하여 여러 선방에 법보시를 하고 계신다고 하였다. 나는 그 동안 내가 겪은 이야기를 다 한 뒤, 가능하다면 관정 스님을 한 번 꼭 뵙고 싶다는 말씀 드리고 혹시 관정 스님이 한국에 오시면 연락해 주십사하고 몇 번이고 부탁을 드렸다.
다음 해인 2000년 드디어 선용 스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6월 12일 분당 약사암으로 달려갔다. 약사암에는 작은 절이지만 참 많은 사람들이 와서 법회에 참석하였다. 나는 그동안 관정 스님의 책 「극락세계 유람기」를 많이 읽어 외우다시피 하였지만 간단하게나마 관정 스님 육성으로 그 이야기를 다시 듣는 감동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극락의 수행법인 정토선을 수행할 때 생기는 여러 가지 경계를 말씀해 주셨다. 이어서 마정수기를 하는데, 나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정수기를 받았다. 극락 가는 수기라고 하였다. 행사하기 전에 출가자들에게는 큰스님과 따로 만나는 시간이 주어졌다. 가까이 뵌 관정 큰스님은 너무 천진한 모습이라 내가 어린애처럼 그냥 큰스님에게 안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말 자비롭고 가깝고 편했다. 내 생전 태어나서 이런 느낌을 가진 것은 처음이었다. 어머니가 무남독녀였기 때문에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고, 나는 어머니보다 외할머니가 가장 편했고 가까웠다. 그런데 관정 큰스님을 만나고 보니 관정 큰스님이 외할머니보다 더 가깝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나는 큰스님께 삼배를 드리고 그 전날 꾸었던 아주 상서로운 꿈 이야기를 말씀드렸다.
“어제 꿈을 꾸었는데 아주 높은 산에 동굴이 하나 있고 그 동굴에서 아주 맑은 샘물이 흘렀습니다.”
“그대와 나는 전생부터 인연이 많았다.”
관정 큰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종이에 붓으로 나의 법명을 써 주셨다.
“동운종 48대 관정이 49대 굉행에게 정법안장을 부촉하노라.”
굉자는 임제종 돌림자로 관정의 관자 아래 항렬이라고 한다. 이어서 나는 20년 만에 직접 만나 뵙는 스승님께 여쭈었다.
“큰스님 수행하러 토굴에 가도 되겠습니까.”
“토굴에서 혼자 수행해도 된다. 하루 4시간 이상은 앉지 마라. 토굴에서 혼자 공부하다 보면 온몸이 움직이는 경계를 만날 것이다. 그것은 기운이 돌며 막힌 곳을 뚫어 풀리면서 생기는 현상이니 조금도 놀라지 말고 어떤 경계가 일어나더라도 그 경계에 끌려가지 말고 오로지 ‘나무아미타불’만 꽉 붙잡고 나가야 한다.”
나는 혼자서 수행할 때 뜨거운 기운이 단전에서 형성되어 임 . 독맥을 통해 엄청난 힘으로 위로 올라갈 때 놀랐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큰스님의 가르침 아주 실질적이고, 내 속을 빤히 들여다보며 말씀하신 것 같았다. 이처럼 아주 자상하게 수행지침을 내려주시고 마지막으로 토굴의 이름을 지어주셨다.
「연화굴」
정말 처음 만나는 제자에게 분에 넘치는 친절한 가르침을 주셨다. 이때 나는 「극락세계 유람기」의 두 단락이 생각났다.
① 못 한 가운데까지 가니 수많은 연꽃들이 찬란하게 피어 있고, 꽃 위에 사람이 염불을 하고 있었다. 몇몇 연꽃들은 꺾이거나 시든 것도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해 바로 못가로 헤엄쳐 나와 관음보살께 가르침을 청했다. 관음보살께서 대답하셨다.
“시들어 죽은 연꽃은 세상 사람들이 붇다를 처음 믿을 때 온힘을 다해 염불하면 연꽃이 연꽃 못 속에서 자라나오게 된다. 그러나 얼마 지난 뒤 마음이 변하면 염불만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는 10가지 나쁜 짓까지 저지르게 되고, 연꽃은 꺾어져 말라죽어 버린다.
② 나는 바로 애처롭게 빌었다.
“이곳 극락세계가 너무나 좋습니다. 붇다께서 크게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셔 저를 돌아가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미따불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건 안 된다. 네가 이곳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다. 네가 이곳에 머무르면 안 되는 것은, 네가 2겁 전에 이미 극락세계에 와서 태어났는데, 스스로 다시 인간세계로 돌아가 세상을 구하고 사람들을 제도하겠다고 발원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는 이제 다시 돌아가서 너의 마음 속 바람을 다 이루면서 극락세계의 사정과 형편을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전달해 주고, 책을 펴내 세상 사람들을 가르쳐 일깨워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틀림없이 전생에 염불을 하다가 욕망에 이끌려 염불을 중단하였기 때문에 극락의 연꽃이 시들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전생의 공덕이 조금 남아있어 다시 염불을 시작하게 되어 연꽃이 피기 시작하였고, 2겁 전에 왕생했던 관정 큰스님이 나를 극락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오셨을 것이다.
그날 저녁 보살 2명이 큰스님과 참석한 스님들을 저녁 공양에 초대하였다. 호텔처럼 아주 고급식당인데 채식식당이 아니기 때문에 반찬의 상당부분은 육류였다. 큰스님은 육류는 몰론 오신채도 절대 안 드신다고 하셨는데, 어쩐 일인지 그런 식당으로 초대한 보살들에게도 아무런 말씀을 하시지 않으시고, 참석한 다른 스님들에게도 육식을 먹지 말라는 말씀도 하시지 않았다. 나는 분위기가 좀 어색하여 큰스님이 왜 ‘고기는 먹지 말라’고 말씀도 안 하시는가 하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큰스님이 음식 들 때 받치고 먹는 빨간 냅킨으로 멋진 연꽃을 만들어 대중에게 들어보였다. 그 순간적인 큰스님의 재치에 모든 스님들이 웃었다. 그러나 나는 농담처럼 그렇게 간단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내내 혼자 생각했다.
‘고기로 쌓인 성찬 앞에서 큰스님이 빨간 연꽃을 들어 보이신 것은 무슨 뜻일까?’
큰스님을 만나고 나니 내가 어느 생에서 큰스님을 모시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중국을 가고 싶었다. 그래서 운동복을 맞출 때도 늘 나 혼자만 차이나 칼라를 했다. 그런데 큰스님을 만나고 난 뒤부터는 중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다. 내가 중국을 가고 싶었던 것은 중국이라는 나라 자체보다 관정 큰스님을 만나려는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5) 관정 큰스님과의 마지막 만남과 모친의 마정수기
관정 스님과의 약속대로 토굴에도 가고 선방에도 다니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수행하였다. 그리고 2004년 다시 선용 스님으로부터 10월 20일 전남 광주 원각사에서 관정 큰스님의 법회가 있다는 전갈을 받았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맨 먼저 어머님이 생각이 났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 나의 어머니다. 출가 전후를 막론하고 어머님의 실천은 늘 나를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어느 날 집에서 어머님이 나물을 데치시는데 나는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데친 나물을 건지신 어머님은 수돗물을 틀고 찬물로 두세 번 식히시고 그 물이 미지근해 지자, 그때서야 그 물을 하수구에 버리셨다. 나는 그 뜻을 알고 있었지만 여쭈었다.
“밑에는 많은 벌레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뜨거운 것을 버리면 안 되지!”
“언제부터 그렇게 하셨어요.”
“내가 뱃속에 처음으로 생명을 가졌을 때부터 내가 한 행동의 과보가 너희들에게 갈까봐서 그랬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식을 가졌을 때는 늘 안 좋은 것을 보지 않고, 험담도 듣기 싫어하셨다고 한다.
나의 출가를 흔쾌히 허락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마지막으로 철야기도를 하기 위해 남해 보리암을 갔다. 산길을 걸어서 올라가시던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오늘은 내 기도를 해야 하겠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나를 위한 기도를 해본 적이 없구나. 큰 바위를 보아도 그냥 간 적이 없고, 큰 나무를 보아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으며, 바다를 지나도 용왕님께 자식들의 건강과 성공을 빌었다. 이제 네가 출가를 하게 되었으니 나도 한 번 나를 되돌아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철야 정진을 하시던 어머님이 저녁 때 사라지시더니 새벽이 되어서야 법당에 들어오셨다.
“어머님 피곤하셔서 들어가 주무셨습니까?”
“아니다. 이 절 아래는 작은 동굴이 하나 있는데 그 곳에 촛불을 켜면 좋다고 해서 갔다. 그런데 그곳에 켜져 있던 수많은 촛불들이 모두 꺼져버렸다. 그래서 모든 불을 다 다시 켜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어두운데서 왜 그렇게 혼자 애쓰셨어요?”
“출가하는 사람이 그런 말하면 안 된다. 그 촛불 하나하나는 모두 불 켜는 사람들의 소원이 담겨져 있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갈 수가 있겠느냐?”
출가하고 3년 만에 집을 찾아갔다. 하룻밤 자고 나니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스님!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스님에게 배를 빌려주려고 온 것 같습니다. 삶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후회스러운데 스님이 출가한 것으로 모든 것을 보상 받았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어느 경전에서 본 것 같기도 한 놀라운 말씀이기 때문이다.
“어떤 경전에서 본 말씀입니까?”
“내가 본 경전은 천수경하고 아마타경뿐인데, 어디 그런 애기가 나옵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랬습니다.“
나모아미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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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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