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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10.17
한강의 선배들
▲ 붉은색 예복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 신라시대 문인 최치원의 초상화예요. 그는 6두품 출신이었기 때문에 출세에 한계가 있었어요. 일부 학자들은 그가 자기 자신을 주인공으로 계급 사회의 한계를 묘사한 한문 소설 '최치원'을 썼다고 주장한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지난 10일 한국 소설가 한강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어요.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인 동시에 아시아 여성으로 첫 번째입니다. K팝·K드라마에 이어 'K소설'에 큰 관심을 갖게 된 세계인은 이제 이런 생각을 가질 거예요. "한국 문학의 전통이 궁금해요. 한강의 선배들은 과연 누구였나요?" 오늘은 근대 이전 소설가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해요.
신라 최치원이 쓴 '최치원'?
한국 소설의 기원을 찾기 위해선 9세기 신라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문인으로 중국에까지 이름을 떨친 최치원(857~?)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수이전'이란 책이 있었는데, 이 책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 내용 중 일부는 여러 책에 흩어져 실려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한문 소설이라고 볼 수 있는 '최치원'이란 글이에요. 일부 학설대로 이 글이 최치원이 쓴 게 맞는다면 자기 자신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쓴 셈이죠.
최치원과 두 여인의 관계가 등장하는 이 소설은 민담과는 달리 구체적인 시간(서기 874년)과 인물이 나옵니다. 주인공 최치원이 무덤 앞에서 누가 묻혔는지 궁금해하는 시를 지었는데, 그날 밤 무덤의 주인인 두 여인이 나타납니다. 주인공은 여인들과 시를 주고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이후 삶의 허망함을 느꼈다는 줄거리입니다. 또 '인간 세상의 일이 사람을 근심하게 하는구나, 비로소 통하는 길 들었는데 또 나루를 잃었네'라는 문장에서 출셋길이 막힌 6두품의 한계 같은 시대상도 암시하고 있습니다. 신라의 신분 중 하나인 6두품 중에는 지식인이 많았지만 진골 귀족이 높은 등급의 벼슬을 독차지했기 때문에 좌절해야 했습니다. 6두품이었던 최치원은 당나라 과거에서 장원급제한 수재였으나 진성여왕에게 올린 '시무십여조'(일종의 사회 개혁안)는 실현되지 않았죠.
'금오신화' 김시습에서 '허생전' 박지원까지
조선 초인 15세기에 들어서면 김시습(1435~1493)의 '금오신화'가 나옵니다. 어려서 신동으로 유명했던 김시습은 세조가 조카 단종을 사실상 내쫓고 왕이 된 현실 앞에서 벼슬의 뜻을 접고 은둔 생활을 해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불립니다.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등 '금오신화'에 실린 단편소설에는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지만 끝내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주인공이 등장하죠.
이후 중종 때 신광한(1484~1555)의 '기재기이', 임제(1549~1587)가 쓴 것으로 보이는 '원생몽유록', 작가가 허균(1569~1618)으로 추정되는 '운영전' 같은 뛰어난 소설들이 나왔어요. 특히 '운영전'은 옛 소설에서 드문 비극적 결말과 여성 등장인물의 자아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에요.
조선 후기에는 서포 김만중(1637~1692)과 연암 박지원(1737~1805)이라는, 그야말로 문호(文豪·뛰어난 문학 작품을 많이 써서 알려진 사람)라고 할 수 있는 소설 작가들이 나타납니다. 김만중은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로 유명한데요. '구운몽'은 승려의 이야기와 여덟 여성을 아내로 삼는 영웅의 이야기가 액자 형태로 결합된 소설로, 인생의 덧없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사씨남정기'는 인현왕후를 내쫓고 희빈 장씨(장희빈)를 중전으로 세운 숙종이 그 잘못을 깨닫도록 하려는 목적에서 쓰였다고 합니다.
실학자로 유명한 박지원은 '양반전' '호질' '허생전' 등 아홉 편의 소설에서 지배 세력의 무능함과 허약한 조선의 경제구조를 비판했습니다. '허생전'에 대해 백성이 국가의 억압에서 벗어나는 아나키즘(무정부주의)을 꿈꾼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무명작가의 한글 소설
18세기 후반에 가면 아주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 나타난답니다. 사대부가 자기 이름을 드러내고 쓴 한문 소설이 아니라, 서민층을 중심으로 쓰이고 읽힌 한글 소설입니다. 한문 소설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한글 소설이 출현했고, 일종의 도서 대여점인 세책점(貰冊店)을 중심으로 민간에 확산됐습니다. 어? 그런데 최초의 한글 소설은 허균의 '홍길동전'이라고 알려지지 않았나요? 허균은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 사람인데 말이죠. 허균이 아마도 한문으로 '홍길동전'을 쓴 것은 맞지만 그것이 현재 전해지는 한글 소설 '홍길동전'과 같은 작품인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 최근의 학설입니다.
한글로 쓰여 널리 퍼진 작품은 '유충렬전' '전우치전' 같은 영웅소설, '숙영낭자전' 같은 애정소설, '배비장전' '이춘풍전'처럼 일상의 자질구레한 문제를 소설로 부각한 세태소설처럼 장르가 다양했습니다.
19세기엔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같은 판소리계 소설이 빛을 발했어요. 이 소설들은 일상어를 사용하고 현실주의적 세계관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엔 소설을 쓰는 것이 명예롭게 여겨지지 않았던 데다 저작권 같은 것도 없어, 아쉽게도 한글 소설 대부분은 작가 이름을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인간의 내면과 세상의 본질을 깊숙하게 들여다보는 뛰어난 작가들이 분명히 여럿 존재했을 것입니다.
100책 넘는 스케일로 상상력 발휘하기도
우리는 과연 조선 후기의 한글 소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일부 유명 작품 말고는 여전히 수백 종의 소설 대부분이 잘 알려지지 않았답니다. 그중엔 작품 규모가 방대한 것도 있어요. '완월회맹연'이란 소설은 무려 180책 분량이고, 100책 분량의 '명주보월빙'은 세계관이 같은 다른 작품까지 합치면 235책에 이른다고 합니다. 105책 분량 '윤하정삼문취록'은 복잡한 인물 관계도를 종이에 그려가며 읽어야 이해가 된다고 해요. 당시 소설들은 상상력의 스케일 또한 엄청납니다.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는 온갖 요괴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남성 중심 사회였던 현실과 달리 여성 영웅들이 등장해 종횡무진 활약하기도 합니다.
1906년 이인직의 소설 '혈의 누'가 '신소설'이란 이름을 달고 나오면서 근대소설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문체와 전개 방식 등이 이전과 달라진 건데요. 이전 소설은 '고(古)소설'이라 부르게 됐습니다. 그러나 고소설의 시대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1910년대 새로운 활자로 인쇄된 고소설이 200여 종 출간됐고 그 중엔 신작 고소설도 있었다고 합니다. 고소설은 20세기에도 여전히 명맥을 이었던 것이죠.
▲ 국립한글박물관에 소장된 한글 소설 '홍길동전'의 필사본이에요. 서얼로 태어나 천대받던 홍길동이 활빈당을 결성해 빈민들을 도와주다가, 이상 사회인 율도국을 건설한다는 내용의 사회 소설이랍니다. /국립한글박물관
▲ 1906년 신문 '만세보'에 연재됐던 이인직의 소설 '혈의 누'표지예요. 1894년 청일전쟁 발발 이후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이전과 다른 문체와 전개 방식으로 쓰였기 때문에 한국 문학사 최초의 '신소설'로 평가받는답니다. /코베이옥션
▲ 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박지원의 초상화. 그의 후손이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는 '양반전' '허생전' 등 소설을 써서 당시 조선의 지배 세력을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실학박물관
유석재 기자 기획·구성=윤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