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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6장 어느 민족 누구게나 (521장)
수 24:15,2020.09.06.늘찬양교회
링컨 대통령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1845년 미국 의회가 영토 확장을 위하여 멕시코와의 전쟁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이에 작시자인 제임스 로우웰(J.R.Lowell 1819-1891) 목사님이 전쟁에 항거하는 표시로써 1845년 12월에 5행시 18절의 시를 '현재의 위기'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습니다. 이 시를 회중교회의 찬송가 학자인 ‘가렛 호더’(Gorrett Hoder)가 임의로 32행을 뽑고 적당히 배열하여 8행시 4절의 찬송시로 개작한 것이 바로 "어느 민족 누구게나" (586장)의 찬송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어 많은 은택과 사랑을 받으며 살아갈 때에도 수시로 애굽과 앗수르를 의지하며, 우상을 섬기며 세상을 쫓아 살아갈 때가 많았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사 1:3)며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앞에도 참과 거짓, 빛과 어둠, 선과 악, 육과 영이 불가불 싸움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둘 중에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죄를 따르면, 죄의 종이요, 은혜에 순종하면 주의 종이 되는 것이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수 24:15) 선포했던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선과 진리를 선택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에 하나님은 그의 말씀과 약속을 통하여 우리를 붙들어 주실 것이며, 그의 풍성한 계획과 일치된 삶을 살도록 성령님께서 힘을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1절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 건가
주가 주신 새 목표가 우리 앞에 보이니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하며 살리라
1절,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 건가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하며 살리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위기와 아픔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럴 때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와 행복이 판가름 납니다. 수년전 유행하던 텔레비전 드라마 “야인시대”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보면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남북한이 무정부 시대로 접어들면서 큰 위기를 당하고 있을 때, 주인공 김두한의 절친한 친구 정진영이란 자가 공산당 박헌영에 포섭되어 공산당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고 있을 때 백두회의 한 남자가 나타나 그의 아버지 김좌진 장군의 죽음이 공산당에 의해 살해당한 것임을 알리며 공산당에서 손을 떼라는 주문을 할 때에 친구를 택할 것이냐 정의를 택할 것이냐는 갈등을 겪게 됩니다. 저의 아버님도 6.25 동란 때 남북한 포로교환이 있을 때 북한으로 돌아가느냐 아니면 부모와 형제를 버리고 자유 남한에 남아 있느냐는 선택의 위기를 맞았을 때 남한에 남기로 결단하여 대한민국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여호수아 24장 14-15절에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 땅에 모으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그 두령들과 재판장들과 유사들 앞에서 “이제 여러분들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기십시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4-15)며 선언합니다. 세겜 땅은 복의 근원이 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갈대아 우르에서 나와 처음 장막을 치고 제단을 쌓은 곳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세겜 땅에서 이러한 맹세를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어 믿음 안에 살아가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세겜의 서원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고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을 결단코 하지 않겠다.”(수 24:16)고 고백을 하며 여호수아의 뒤를 좇았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결단이 이스라엘 백성의 전 마음을 움직였듯이 하나님께 헌신하는 한 사람의 모습으로 인하여 많은 성도들이 본을 받고 하나님 앞에 충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베드로가 밤새껏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려고 애를 써보았지만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채 심한 허탈감과 피곤함으로 낙심감속에 빠져있을 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배를 띄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때 나면서부터 고기 잡는 어부로 잔뼈가 굵은 시몬 베드로는 선택의 기로에 빠졌을 것입니다. “아니! 고기잡이에는 내가 도사인데 저분은 목수의 아들이 아니었느냐?”하며 무시하고 불순종 하였으면 끝났을 텐데 놀랍게도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졌더니 그물에 너무 많은 고기가 잡혀 그물이 찢어져 가는지라 얼른 다른 배에 손짓하며 “와서 도와 달라.”(7절)고 소리쳤습니다. 좋은 선택이 기적을 낳습니다. 순종이 기적을 낳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꿈에라도 좋으니 이런 ‘만선의 기쁨’을 한번이라도 누리고 싶은 것이 솔직히 저와 여러분의 심정일 것입니다. 이 어려운 때에 여러분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그 분을 온전히 섬기며 주와 동행하는 자로 살아갈 때 베드로처럼 ‘만선의 기쁨’ 이상으로 큰 축복을 누리며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제 저는 여호수아가 외친 본문 말씀을 다시 한 번 증거하며 1절 강해를 마치고자 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기십시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4-15)
2절 고상하고 아름답다 진리 편에 서는 일
진리 위해 억압 받고 명예 이익 잃어도
비겁한 자 물러서나 용감한 자 굳세게
낙심한 자 돌아오는 그 날까지 서리라
2절, 진리 위해 억압 받고 명예 이익 잃어도 고상하고 아름답다 진리 편에 서는 일
성경에 보면 ‘고상하고 아름다운 믿음의 편에 서서 생명을 내걸고 일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물질 앞에 비겁한 자가 되어 주님을 떠나간 사람들의 모습도 나옵니다.
먼저 물질 앞에 비겁한 자가 되어 주님을 떠나간 사람들의 모습에 대하여 한번 살펴봅니다.
사람은 동물과는 달리 영혼을 가지고 있는 영적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적인 풍요로움만 가지고는 완전한 만족감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잘 알고 있던 한 젊은 청년이 예수님께 찾아와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마 19:16)하고 물었습니다. 이 청년의 사고방식에는 내가 물질을 많이 가지고 구제와 같은 갖가지 선한 행위를 보여줌으로써 착한 사람, 선한 사람, 좋은 사람이라는 인정과 존경을 한 몸에 얻었으니까 예수님께서도 나를 선한 사람으로 인정해주시고 또 영생에 이르는 축복까지 해주실 것이야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청년에게 선한 행위에 대하여 칭찬하기보다는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마 19:21)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청년은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빈손으로 주님을 따라가야 하는가? 아니면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처럼 인간적인 구제와 선한 행위를 통해 사람들에게 칭찬과 존경을 받으며 겉치레의 삶을 살아가느냐? 하는 두 가지 길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岐路)에 서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부자 청년은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 나머지 멸망의 길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세상의 재물과 겸하여 나를 섬길 수 없다.”(눅 16:13)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푯대 되시는 주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참 만족과 기쁨 속에 살아가는 성령의 사람들이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빌 3:14)
3절 순교자의 빛을 따라 주의 뒤를 좇아서
십자가를 등에 지고 앞만 향해 가리라
새 시대는 새 의무를 우리에게 주나니
진리 따라 사는 자는 전진하리 언제나
3절, 순교자의 빛을 따라 십자가를 등에 지고 앞만 향해 가리라.
다니엘서 1장 8절과 3장 16-18절에 보면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왕이 내려주는 호화로운 진미(珍味)와 포도주를 마심으로 하나님 앞에 자기를 더럽히는 일을 하지 않기로 뜻을 정하고 환관장(宦官將)에게 알립니다. 이때 환관장은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 “만일 너희들이 왕이 베풀어 주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므로 일어나는 영양부족으로 인해 얼굴색이 초췌하게 되어 왕으로부터 너희들을 잘 보살피지 못하고 먹이지 못하였다는 질책을 받고 내 목이 잘리면 어떻게 하겠느냐?”며 회유(回遊)하였습니다. 하지만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끝까지 뜻을 정하고 “열흘 후에 왕의 진미를 먹은 자와 저희 얼굴들을 비교해 보십시오.”하고 회유책을 고사(枯死)하였습니다. 결국 열흘 후에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얼굴이 왕의 진미를 먹은 자들보다 더 건강하고 윤기가 흐르므로 끝까지 신앙의 절개와 지조를 지킬 수가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다니엘과 세 친구는 ‘느부갓네살’ 왕이 세워놓은 금신상에 절하지 아니하므로 왕 앞으로 끌려 나갔습니다. 이때 왕은 아끼며 사랑하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인고로 정중하게 회유책을 씁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혹시나 너희가 나팔소리를 들지 못해 그리한 것이 아니더냐? 그러나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디 있겠느냐?”(단 3: 14-15)
느부갓네살 왕의 자상하고 엄위 있는 회유의 말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뜻을 돌이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고도 분명하게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러나 만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6-18) 이 놀라운 고백을 들은 느부갓네살 왕은 심히 노하여 분을 발하며 “저들을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어라. 던져 넣되 평일보다 칠 배나 더 뜨겁게 하라.”(단 3:19)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뜨거운 풀무불 속에 던져졌습니다. 하지만 살아계신 능력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께서 세 친구들을 보호하사 풀무불 가운데서 건져내 주시고 오히려 왕으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받으며 더 높은 방백의 자리에 올라가게 하였음은 물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단 3:28-29)을 찬양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일사각오의 정신과 믿음의 결단을 본받아 빛과 진리이시며 참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주가 주신 새 목표인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까지 용감하게 앞으로 달려 나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4절 악이 비록 성하여도 진리 더욱 강하다
진리 따라 살아갈 때 어려움도 당하리
우리 가는 그 앞길에 어둔 장막 덮쳐도
하나님이 함께 계셔 항상 지켜 주시리
4절, 진리 따라 살아갈 때에 어둔 장막 덮쳐도 하나님이 항상 지켜 주시리
마지막 4절에서는 악이 아무리 활개를 치고 성하여도 끝내는 진리 앞에 하나님의 능력과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앞길에 여러 가지 어둔 장막과 어려움이 닥쳐도 하나님이 함께하여 주사 승리하여 주실 것을 믿고 푯대 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달려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자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합니다. 여호수아는 본문 14절에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오직 여호와만 섬기라"고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성별된 삶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애굽적인 것, 즉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것은 그 모양이라도 다 버려야 할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이런 결단의 촉구는 백성들에게 맹목적으로 종교적 굴레를 씌우려는 것이 아니라 지난 역사를 통해 생생하게 역사하신 하나님을 깨닫게 하고 감사함으로 섬기도록 촉구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확신에 찬 설교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나이다."(18절)라고 응답했습니다. 백성들의 이런 고백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는 저들이 쉽게 죄에 빠지는 연약성이 있음을 감지하고 19절에 “너희가 여호와를 섬기지 못할 것”이라고 하자 “우리가 정녕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21절),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24절)며 거듭 반복하며 고백하였습니다.
위대한 지도자의, 하나님을 향한 확신에 찬 신앙고백이 모든 백성에게 놀라운 영향을 주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신앙의 위력과 화목과 사랑을 전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엘리야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중립을 지키고 있었을 때 엘리야는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왕상 18:21)고 책망했습니다. 하나님이냐? 우상이냐? 그리스도냐? 벨리알이냐? 천국이냐? 지옥이냐? 여기에서 우리는 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위 환경에 좌우되거나 감정에 따라 움직이지 말고 자신의 이성과 신앙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민중의 소리에 겁을 먹어 그리스도를 죽이도록 내어 준 빌라도처럼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우상의 제물인 왕의 진미를 거절하고 왕의 금신상에 절하지 아니한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처럼 되기를 원하십니까? 모든 유혹에서 세상의 것을 버리고 하나님 편에 설 수 있는 성도는 분명 복이 있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참된 신앙을 소유하기를 원합니다.
※ 말씀 관주
1절
결단할 때 *수 24:14-16, 왕상 18:21, 겔 20:39, 단 3:14-15
참과 거짓 싸울 때 *출 1:15-22, 에 4:4-17, 마 27:16-26,
주님 주신 새 목표 *창 12:1-5, 신 1:19-31, 마 4:18-22, 빌 3:12-14
빛과 어둠 *사 9:1-7, 요 1:5-14, 3:19-21, 요일 1:5-10
2절
진리 편에 서는 일 *룻 1:15-17, 시 1:1-6, 단 3:16-18, 엡 6:14
명예 이익 일어도 *단 1:8-16, 히 11:24-26, 벧전 3:13-17
용감하고 굳세게 *고전 15:57-58, 16:13, 골 2:6-7, 살후 2:16-17
3절
순교자 *행 7:59-60, 12:1-2, 계 2:9-10, 20:4-6
십자가를 지고 감 *눅 9:23-27, 갈 2:20-21, 6:14, 벧전 4:14,
새 시대 새 의무 *마 9:16-17, 빌 3:12-16, 딤후 1:7-14
4절
어둔 장막 덮쳐도 *욥 1:21, 시 23:4, 사38:1-8, 고전 9:24-27
항상 지켜주시리 *출 20:6, 왕상 17:8-16, 고전 10:13, 빌 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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