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 독립운동가, 진보적 사회사상가, 문인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여인. 그런가 하면 실천적 여권 운동가로서 참으로 극적인 삶을 살다간 예술가이기도 했다. 외교관 김우영과 결혼하여 장장 16개월에 걸친 구라파 여행을 하였던 그는 식민지 조선 여성으로는 선택받은 신데렐라 였지만 가부장적 사회구조의 질곡을 넘어서지 못한 채 황폐한 노년을 보냅니다.
나혜석은 구한 말 조선왕조의 마지막 영화를 누리던 명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당시의 여성으로는 드물게 동경 유학을 다녀온다.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수학하고 돌아온 나혜석은 첫 개인전을 1921년 3월에 경성일보사에서 여는데 당시의 신문이 보도한 바로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매일신보의 기사는 "…여성 서양화가로 우리 조선에 유일무이한 나혜석씨의 양화 전람회는… 인산인해를 이루도록 대성황이었으며… 제2일에는 더욱 많아, 3시까지 관람자가 무려 4,5천 명에 달하였더라.…" 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1927년 외교관이었던 남편과 함께 구라파 여행길에 오르면서 다시 한번 세인의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됩니다. 4개월의 여행, 1년여의 빠리 생활을 통해 그녀가 겪은 경험은 1933년부터 이듬해에 걸친 구미유기(歐美遊記)라는 삼천리 잡지 연재 글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빠리에서 그녀는 20세기 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보았으며, 여성의 당당한 실존과 자유를 보았습니다. 혼자 지내는 1년여 빠리 생활 속에서 그녀는 밤늦도록 삶과 미술을 이야기하며 조선과는 다른 세상을 보았습니다. 변변한 화랑하나 없던 조선을 생각하면 우울하기만 했습니다. 예술가라고는 하지만 한 남자의 아내로서, 며느리로, 어머니로의 사회적 쵻견에서 벗어 날 수 없었습니다.
빠리 생활 가운데 작은 사건이 일어났는데 당시의 언론사 사장을 지낸 최린과의 염문이었습니다. 세인의 관심 대상이었던 나혜석의 일거 일동이 언론의 표적이 된 것은 어무도 당연하였고 이 일로 그는 이혼을 당하게 됩니다.
선망의 대상이었던 나혜석은 하루아침에 저주의 대상이 되었고 그 의 인생도 절망의 나락으로 뭍혀 갔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굴하지 않고 삼천리 지에 그 유명한 이혼백서라는 글을 쓰며 당시의 사회적 편견과 관습에 대해 저항합니다. 그리곤 100여점이 넘는 작품으로 재기를 위한 전시회를 열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싸늘하였습니다.
그 이후 그녀는 급격히 몰락해 갔고 붓을 놓은 채 정처 없는 여행길에 오릅니다. 산사와 양로원을 떠돌던 그녀는 결국 행려병자가 되어 용산의 한 시립병원의 무연고자 병동에서 홀로 숨을 거둡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여류화가이자 폐허의 동인으로 활동했던 뛰어난 문인 나혜석은 세인들의 철저한 외면 속에 이토록 쓸쓸한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녀는 이혼 백서를 통해 "사남매 아이들아, 어미를 원망하지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어미는 과도기에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느니라."고 절규합니다.
자신의 예술과 사랑에 오만하도록 당당했던 그 조선 예술의 꽃은 그의 죽음을 지켜본 사람도, 시신을 거둬준 사람도 없이 단지 관보의 사망자 광고란에 한 줄 이름을 남기고 사라져갔지만 50여 년이 흐른 지금 다시 부활하고 있습니다.
한국 미술협회 수원지부는 그녀의 미술업적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해 1997년부터 나혜석 여성미술대전을 해마다 10월에 열고 있으며, 나혜석 기념사업회도 조직되어 그의 삶을 재 평가 하는 작업을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2. 한사람의 일에 대해 무려 42장이라는 규모로 성경이 보도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과 모세의 업적이 크다고는 하지만 단지 개인사에 대해 이처럼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기록되진 못하였습니다. 동방의 큰 의인 욥에 대한 기록은 의인의 고난과 행복한 결말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모진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잠시 하나님을 원망했지만 회개하고 돌이킴으로 처음보다 갑절이나 되는 물질적 축복을 누렸다는 것이죠. 7남 3녀가 다 죽고, 양 7천마리, 약대 3천마리, 소 5백겨리, 암나귀 5백마리, 수많았던 종들이 모두 죽거나 빼앗기고 아내마져 저주하며 떠났고, 자신의 몸 마저 병들어 버렸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던 의인 욥에게 주어진 갑절의 축복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죠.
욥에게 주어진 고통은 사탄의 시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배신하나 안 하나 보자는 것이죠. 하나님은 사탄의 요구에 응하여 그의 목숨만 건드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곤 이해 할 수 업는 고통이 욥에게 들이닥칩니다.
자녀가 죽어도, 소유물이 다 약탈당해도, 아내가 그의 곁을 떠나도 욥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지만 그의 몸에까지 사탄의 시험이 미쳐 온갖 부스럼과 종기로 고통 속에 처하게 되자 욥의 태도가 다소간 달라집니다. 어떤 시련이 주어져도 욥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였다고 기록하던 던 성경이 이 대목에 와서는 단지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다(2: 10)는 기록으로만 욥의 태도를 보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았다'는 욥기의 당당한 묘사가 '입술로 범죄치 아니했다.'로 후퇴하고 있습니다. '입술로'란 표현은 유대인에게 있어 '마음으로'와 대조되는 어법입니다. 그러니 이 표현이 의미하는 바가 비록 입술로는 욕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는 간접적이나마 하나님을 원망했을 거라는 추정을 가능케 합니다. 실제로 욥은 자신의 생명이 시작된 날, '자기의 생일을 저주'(3:1) 했습니다.
3.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은 욥이 하나님과 최후의 담판을 벌이고 난 후 저자의 마지막 평이 들어있는 장면입니다.
욥기의 결론 부분이죠. 저자의 의도가 여실히 들어나는 곳입니다. 38장부터 42장에 걸친 하나님과 욥의 대화는 욥이 스스로를 꺽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42: 6)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리곤 이전에 누렸던 물질적 풍요의 갑절을 선물로 받게 되죠. 새로 얻은 아내와 7남 3녀, 수많은 재산, 그의 딸들은 전국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웠다고 하며, 욥은 일백사십년을 살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해피 엔딩입니다. 하지만 욥기의 저자는 뭔가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를 남깁니다. 마지막 절에 욥이 '기한이 차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행복에 겨워 살다 죽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의미를 정확히 번역한다면 '세월에 흡수된 채', '세월에 파뭍혀' 살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럭저럭 살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욥의 고난의 의미가 그가 보상으로 받은 물질적 축복보다 훨씬 무게가 있었다는 것 아닐까요. 욥은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단지 침묵할 뿐이었죠. 아무리 백발을 양보한다고 해도 이해 할 수 업는 구석이 욥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과 싸워 보았자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는 말도 됩니다. 그래서 욥은 죽을 때까지 그 고난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게 살았습니다.
왜 욥기의 저자는 이런 암시를 남겨 놓았을 까요? 저는 2가지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인과율에 매이지 않는 하나님의 대 자유입니다.
인연과의 지평을 훌쩍 넘어버린 그래서 인간의 판단이나 생각을 뛰어넘어 일하시는 하나님의 자유를 봅니다. 승물이유심(乘物以遊心)이란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물, 사건이라도 그 속에 매이지 말고, 끄달리지 말고 그걸 타고 노닐라는 말입니다. 고난을 이기면 축복이라는 도식 위에 계신 하나님의 자유 함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인간의 생각과 욕심 속에 하나님을 가둘 수 없다는 말도 되겠습니다.
둘째, 축복은 물질적 풍요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란 점입니다.
종교의 목적은 고통의 원인을 깨달아 고통을 멸하고 행복을 얻자는 것입니다. 물질적 풍요는 행복과 별로 관계가 없습니다. 반대로 물질적으로 궁핍하다는 것도 행복과 별 상관이 없습니다. 행복은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객관적 기준으로 행, 불행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욥이 끝내 행복할 수 없었던 것은 그 자신이 경험한 극악한 고통의 참된 의미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해탈한 자로, 참 자유한 자로 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을 통해 추구할 바는 참다운 자유를 획득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선망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스스로는 절망일 수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겠죠. 세상적 가치로 자신의 인생을 견주는 사람은 결국 절망을 향해 가게 될 뿐입니다. 자신의 자유한 마음으로 세상을 견줄 수 있는 지혜를 얻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