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전』은 춘향전, 흥부전과 더불어 한국 고전소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며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들려진 이야기이다. 그런 만큼 고전문학 연구자들에게도 일찍부터 주목을 받아왔고, 그에 따른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연구되어왔다. 또한『심청전』에 많은 이본이 있다는 사실과 판소리로서〈심청가〉의 존재 등은『심청전』의 인기 정도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근거가 될 것이다.
어릴 적『심청전』이야기를 읽고 들으며 나는 몇 가지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그것은 심
청이 정말 효녀라면 눈 먼 아버지를 왜 혼자 남겨둘까, 그것이 정말 효(孝)일까하는 의문과
심봉사가 양반의 후예라면 왜 이야기 곳곳에서 그렇게 주책스럽고 어리석은 모습으로 그려
질까 하는 것, 마지막으로 심청이 왕후가 되었다면 아버지를 좀더 일찍, 그리고 좀 더 편하
게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이런 의문점들은 그것이 바로
고전소설의 한계인 지나치고 극단적인 과장과 개연성의 부족, 논리성의 결여 때문이라고 지
적되기도 한다. 그러나 고전이라는 것이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갖는다는 점, 그
리고 오랜 세월에 걸쳐 그 가치가 검증된 작품이라는 정의를 생각해 볼 때, 과거의 사람들
의 정신세계를 표현한 작품들이 지금의 사고체계로는 수용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해서 그
가치를 무시하고 그 작품의 가치를 깎아 내리려는 행동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에게 고전으로서 가치를 갖는『심청전』에
대해 지적되고 있는 문제점들을 어떻게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심청
전』의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한다.
『심청전』은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지만 아버지보다는 딸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야기 속의 딸의 모습은 出天地 孝女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칭송 받는 사람이다.
그러나 아버지 심봉사의 모습은 어떠한가? 양반의 후예라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무능력할
뿐만 아니라 미성숙한 존재이다. 부인 생전에는 전적으로 부인에게 의탁하여 살고 부인의
죽고 난 후 딸이 어려서는 동네사람들의 도움으로, 그리고 딸이 장성하여서는 딸의 도움으
로 살아간다. 물론 이런 현실적 무능력은 앞을 못 본다는 장애로 인함도 있으나 봉은사 화
주승에게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덥석 해버리는 모양이나, 딸이 상인들에게 팔려
가는 날 주책을 떠는 모습이나 또, 딸과 헤어진 후 얻은 뺑득어미와의 행동들은 심봉사의
미숙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장면들이다. 결국 아버지 심봉사는 지극히 자기 과시적이고 인간
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심봉사는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점차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심봉사
뿐만 아니라 주인공 심청도 변화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아버지 심봉사의 변화
양상을 살펴보면,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평생을 다른 사람의 도움만으로 지냈지만, 심청을
잃고 황성의 맹인잔치를 가는 동안 뺑득어미 마저 도주해서 혼자 험난한 여정을 겪게 되는
어려움을 통해 자신의 미숙함을 깨닫고 성숙한 인간으로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
이 겪는 어려움을 딸을 팔리게 한 자신의 욕심 탓으로 돌리는 모습은, 딸이 떠나던 날에 청
이를 사가는 선인들을 탓하며 그런 일이 있게된 근본적인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잘못을 돌리던 모습에서 변화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
다. 이러한 심봉사의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심청이 왕후가 된 이후에 아비를 좀더 쉽게 찾
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음에도 굳이 아비가 저를 찾으러 오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
으며 이는 심봉사 변화(성숙)의 주역이 바로 심청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주인공 심청의 변화는 어떠한가? 심청은 심봉사와는 달리 심리적, 인격적인 변화보다 심
청을 둘러싼 환경이 변화를 한다고 볼 수 있다. 심청은 한빈한 집안의 무남독녀로 출생하지
만, 그녀의 출생은 온통 결핍투성이인 출생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어머니가 없었다.
충분한 사랑을 받지도 못하였고 또 가난한 집안의, 그것도 장님 아버지를 둔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어릴 적엔 젖조차도 동냥젖을 먹어야
했고, 자라서는 아비를 위해 양식을 구걸해야 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아비의 철없는 약속을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몸까지 팔아야 했다. 그런 그녀가 나중에는 왕후가 되니 이는 가히
놀랄만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그녀의 환경 변화의 주역은 뭐니뭐니 해도 심봉사의
철없음과 무능력함이라 할 수 있다. 즉, 그녀에게 주어진 모든 결핍의 상황이 주인공을 가장
주인공답게 만든 것이며, 이렇게 따진다면 심봉사가 심청이를 심청답게(출천지 효녀) 만들었
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심청전』은 판소리계 소설로, 단일한 작가에 의해 단시일 내에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고
대로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전승되는 민간의 설화들을 근원으로 하여 수세기에 걸쳐 형성된
작품이다. 즉, 이 말은『춘향전』이나『흥부전』과 마찬가지로 流動의 문학이고 積層의 문학
이라는 것이다. 또한 판소리의 창본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문학적인 완성도나 사
건의 논리성보다는 당시 판소리 향유계층에게 즐거움을 주거나 욕구를 풀어줄 수 있도록 하
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였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게 한다. 즉,『심청전』은 현대소설처럼
완벽한 구성과 논리적 일관성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당시대 사람들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었을 거라는 이야기이다. 그렇다고『심청전』이 전혀 막무가내 식의 이야기
라고만 할 수도 없는 것이 인물들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장치와 환경들이 충분히 납득이
가도록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신들과 다를 바 없는 처지의 주인공이 하늘을 감동시킬
만한 효행을 통해 행복을 누리게 되고, 그러한 효행을 가능하게 하고 또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로서 아비를 봉사로 설정하고, 아버지는 딸이 몸을 팔아야 지킬 수 있을 만한 주
책스런 약속도 마구하는 미성숙하고 자기 과시적인 인물로 설정한 것은 분명 그 나름의 논
리와 장치를 갖춘 체계적인 이야기라는 반증이 아닐까?
『심청전』의 가장 핵심적 사건은 바로 심청의 '희생과 그에 대한 보상'이므로『심청전』의
주제는 '심청의 (선한 행위로서)희생효'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심청의 '희생
효'는 인간의 '보편적 심성으로서의 효'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희생효'라는 것은 시대
와 장소 및 상황에 따라 그 '양상'은 다르게 나타날 수는 있지만, 그것을 통한 감동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든지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심청전』은 시대와 장소를 초
월하는 고전으로서 그 가치가 분명히 드러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작품 속 사건의 비
논리성, 과장, 문학적 완성도의 떨어짐 등(이러한 모든 판단이 현대문학이 기준이 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을 이유로 고전의 대열에서 제외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
판소리계 소설은 시대에 따른 변화와, 원래의 주제를 벗어나지 않는 부분적인 창작을 인
정하는 형태의 예술이기에, 옛날의『심청전』이 오늘날의『심청전』이 되기도 하며, 또한 새
롭게 현 시대의 민중들의 의식과 요구에 따라 창조되어진『심청전』이 초기의『심청전』도
될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에 의해 창작되어진 산물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전승하고 구
전하는 사람의 특성과 성격에 따라서 또한 그 이야기를 향유하고 전하는 사람들의 취향과
특성에 따라, 이야기의 기본 주제를 바꾸지 않으면서 다양한 형태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사람들은 과거에 쓰여진 다양한 이본들 중 한 두 개 이본의 비논리성과
과장, 문학적 완성도 등을 탓하며 따지고 들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요
구와 구미에 맞는 새로운 이본으로서의 『심청전』을 창작하여도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점이 바로 판소리계 소설로서 그리고 오랜동안 많은 이들에 의해 그 가치가 검증된 고전
으로서의 『심청전』을 대하는 옳은 태도일 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