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원의 시집 『오르골 정원』이 시작시인선 0278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1996년 『시문학時文學』으로 등단한 이후 『슬픔이 익어, 투명한 핏줄이 보일 때까지』 『달빛 손가락』 『사랑을 견디다』 등의 시집을 출간하였고 문단으로부터 작품성을 인정받아 노천명문학상, 성균문학상, 시와시학상 젊은시인상, 한국시인정신작가상, 대전시인협회상 등을 수상하였다.
이번 시집에는 어머니의 죽음에서 기인한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가 존재론적 성찰로 이어지는 시편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시인은 죽은 어머니 혹은 타자의 모습에서 현재의 ‘나’를 발견함으로써 죽은 이들과의 연대를 가능케 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시인이 애도의 방법으로 택한 ‘연대 의식’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의지에서 출발한다. 시인은 존재를 통해 부재를 환기하고 부재 속에서 존재를 현현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시를 통해 죽은 이들 삶의 한 갈피를 ‘계승’하고자 한다.
시인은 시집에 수록된 시인의 산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죽음을 어떻게 하면 내면화할 수 있을까요. 죽음의 날개 뼈들을 만지작거리며 죽음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감각적으로 핥고 맛보고 느끼고 만질 수는 없는 것일까요. 살아있는 동안 내 인생에 죽음이 충분히, 그리고 완전히 개입할 수 있도록 저는 죽음을 맞은 사람들의 목록을 열심히 들여다봅니다”. 이처럼 시인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우는 동시에 죽음과의 적극적 교류를 통해 자신의 시학을 완성시키고자 한다. 김명원의 시집 『오르골 정원』의 묘미는 시인이 감각적 언어와 사유로 촘촘히 엮고 짜낸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 삶의 영역 안으로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확인하는 일일 것이다.
시인의 말
제1부 오르골이 있는 풍경
첫사랑 15
오르골 1 16
오르골 2 18
오르골 3 20
오르골 4 22
오르골 5 24
백설공주百說公主 26
거짓말 사탕 28
김소월 여인숙 30
우체통 32
제2부 저녁에 부는 감정
저녁의 색채 37
저녁의 노래 38
저녁의 무늬 40
저녁의 사막 41
오장환을 얻다 42
윌리엄 언솔드의 난다 데비Nanda Devi 일지 50
고통을 말하다 53
증언 54
[싹 난] 감자를 삶는 시간 56
제3부 작별의 숲
모친상 61
엄마라는 호명의 바깥 62
10원 동전 64
번데기 집 66
20년 전, 엄마의 그 봄 68
맹골수도 72
뻐꾸기시계 74
틈, 기다리다 75
몸 감옥으로부터의 편지 76
고립자 79
제4부 시詩, 그 서늘한 계절
국가시인고시國家詩人考試 85
시 건강검진 88
이상한 상징을 죽이다 92
지루한 본질도 죽이다 94
시 빵을 굽다 96
수박 98
오래된 질문 100
초시모스의 환상 102
고백의 방 104
제5부 처음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줌마 분식집 109
나의 하나님 112
비정년 114
소심주의자의 하루 117
반성문 119
오자誤字에게 감사함 122
평화로운 밤, 슬픈 124
구름 경전 126
세모의 얼굴 128
남는다 130
시인의 산문
오르골,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사라지고 살아나는 노래들 131
시라는 욕망의 몸, 혹은 가없는 허무의 속살 141
Si vis vitam, para mortem.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 152
그림자는 늘 누워있죠, 일으켜 세우려 할 때마다 바람은 무겁죠, 겹겹이 어둠은 흘러 쌓이는데, 쌓여서 고요히 소리 무덤을 붕긋 세우는데, 최면술을 달여 마신 보름달은 붉죠, 추위에 딱딱해진 달빛이 조금씩 풀어지면 가 닿는 곳은 추억의 산간 마을, 가파른 유년, 입구에는 눈동자 커다란 정자가 서있고, 상처를 티 내는 느티나무 가지 끝에선 잠자던 먹구름이 뭉텅 딸려오죠
어쭙잖은 현기증도 함께 오죠, 불안, 한, 가, 요, 과거가 생생하게 몸부림치듯 일어서려 할 때마다, 근육질의 파도 물결로 불끈 일어서 한 다리로 온 생을 버티고 있을 때마다, 가벼워지는 것이 힘들기도 하겠죠, 혼곤한 무게로 지탱해 온 시간의 후면에는, 내가 내가 아닌 듯, 그래요, 꽃을 든 환영의 사람이 살아나죠, 밤새 쓴 목격담의 시 속에, 시어詩語들이 수백 수천 치어가 되어 날아가는 동안, 나는 사라지죠, 없는 내가 떠난 후, 길쭉이 남은 야윈 그림자가 비로소 서서 노래가 되죠
어쩜 내일 또 이렇게 숨바꼭질, 숨바, 꼭, 질, 되감기 될까요, 되겠지요, 감아놓은 슬픔은 음계를 잃어버리고 쩔쩔매며 그림자 근처를 헤맬 테죠, 나는 어디 있나요, 꽃을 딴 환영의 사람이 살찌는 동안 나는 다시 사라지고, 내 그림자는 태엽에 감긴 채 쪼그라들겠죠. 주름 흔적만 지평선으로 우두커니, 홀로 남겠죠
죽음을 어떻게 하면 내면화할 수 있을까요. 죽음의 날개 뼈들을 만지작거리며 죽음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감각적으로 핥고 맛보고 느끼고 만질 수는 없는 것일까요. 살아있는 동안 내 인생에 죽음이 충분히, 그리고 완전히 개입할 수 있도록 저는 죽음을 맞은 사람들의 목록을 열심히 들여다봅니다. 기원전부터 글을 쓰고, 사유하고, 고민하고, 고통받고, 희열과 좌절을 동시에 체험하며 전쟁 속에서 사랑의 깃발을 부여잡고 예술과 고투하여 탐미한 흔적들을 읽습니다. 운명이라는 배경에 신음하면서, 신에게 구원을 외치면서 죽을 때까지 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 어둠과 온 생애 내내 자신만의 미학으로 옮기지 않고는 살지 못한 시간을 기억해 냅니다.
요즘 저는 한용운을 기립니다. 에밀리 브론테를 연민합니다. 니체를 다시 고민합니다. 저는 반 고흐와 산책하고, 박인환과 식사합니다. 윌리엄 언솔드와 대화하고 키에르케고르에게 타전합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길 건너편에 서있는 오장환에게 손을 들고, 백야를 등진 도스토옙스키에게 편지를 씁니다. 보부아르의 거실을 드나들고, 벤야민과 커피를 마십니다. 고정희와 등반하고, 존 레논과 팔씨름을 하고, 고트프리트 벤의 진료실 앞에서 기다립니다.
저는 제 시를 통해 그들 삶의 한 갈피를 ‘계승’합니다. 그들의 죽음을 찬란한 명예로 잇고, 탄식을 새로운 서사로 환치하며, 그들의 ‘부재/재존재’를 제 시에 영감으로 작동시킵니다. 그들의 죽음과 죽음 이후는 제 시에 당당히 진입해 들어와, 망각의 순환을 물리치는 에포스의 질서로 자리잡습니다. 이렇게 요즘 저는 제 삶에, 제 시에 뜨겁게 입 맞추는 중입니다.
- 시인의 산문 중에서
안녕, 내 사랑
부러진 노을 깃털로 날아올라
찬연하게 서녘이 되는 내 사랑
밤 깊은 이역만리 타국에서 부르다 만 후렴구로
끝끝내 남는 내 사랑
동짓달 새벽, 물끄러미 창문에 와 서있는
반쪽 얼굴 하현달 내 사랑
배고파, 추워, 안아줘, 칭얼대는 내 사랑
맨발 들꽃으로 비 맞는 내 사랑
오늘도 안녕,
수시로 안부를 물어야 하는
내 사랑, 내 시여!
- 시인의 말 중에서
첫댓글 축하드립니다!
오르골에서 어떤 노래가 나올지요,
축하드려요 ~^^
축하드립니다.
축하축하요~~
축하드립니다
축하합니다^^
축하드립니당
축하합니다~!^^
저도 이 참에 발레리나 오르골 하나 사려고요,,소리의 향기가 날 듯...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