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있는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민주노동당이죠. 처음에는 8천4십만 원이라고 하드만, 인자 9천6백만 원에 분양받으라네요.” 통화를 하다 보니 분양전환을 앞둔 공공임대아파트 입주민이다.
8천4십만 원은 아파트 계약당시 건설사에서 배포한 모집광고에 씌어져 있던 분양예시가(價) 또는 주택가격이고, 9천6백만 원은 분양전환가를 말한다. 그사이 1천4백여만 원이 오른 것이다. 5년 사이 1천4백만 원 집값이 오른 것이 무슨 대수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8천4십만 원을 분양가로 알고 살아온 입주민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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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양전환을 앞두고 건설사와 입주민 사이에 갈등을 빚고 있는 제일1차 아파트 @우리힘닷컴 | 왜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가? 바로 현행 임대주택법에 비밀이 숨어있다.
‘시가를 반영한 감정평가액’과 ‘건설원가’를 더해 이를 2로 나눈 금액이 바로 분양가이다. 초기 공공임대아파트가 들어서는 곳은 개발이 덜된 곳이 많다. 주변기반시설 등 제반조건이 도시화가 이미 진행된 지역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화는 빠르게 진행된다. 또한 주변에 질 좋은 분양아파트들이라도 들어설 지라면 집값은 꾸준히 상승한다. 이렇게 상승한 시세는 분양전환 시 분양가 산정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분양을 앞둔 공공임대아파트에서 끊임없이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선진국 대열 진입을 위한 생색내기, ‘공공임대아파트’
그렇다면 정부는 왜 이런 아파트를 지었을까?
김영삼 정부시절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내세우려 했다. 그 지표가 바로 OECD 가입이었다. 그러나 OECD 가입을 하려다 보니 공공주택에 대한 사회지수가 너무 낮았다. 그래서 추진한 것이 바로 ‘공공임대아파트’다.
본래 공공주택은 정부가 재정을 부담하는 사회주택이다. 주택공사가 건설해서 30년씩 임대해 주는 국민주택을 생각하면 쉽다. 그러나 민간건설사에게 국민주택기금을 저리로 융자해주고 5년 또는 10년의 임대의무기간을 거친 후 분양을 하는 지금의 공공임대아파트는 후(後) 분양주택이지 사회주택이라 할 수 없다.
결국 선진국 대열 진입을 위한 생색내기용으로 급하게 진행된 공공임대아파트 사업은 이후 많은 후유증을 낳게 된다.
유리할 땐 ‘공공’사업자, 불리할 땐 ‘민간’사업자
임대주택을 건설하는 민간건설사들은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는다. 총사업비 중 70%(세대 당 최고 5,500만원에서 7,50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고, 이율은 3~4%밖에 안 된다. 택지는 조성원가의 60~85% 정도에서 공급받는다. 법인세는 면제되고, 취․등록세,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 각종 세제혜택을 받는다. ‘공공임대아파트’에 왜 ‘공공’이란 이름이 붙여졌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분양가 산정 시 또 하나의 기준인 ‘건설원가’문제로 들어가면 ‘공공’이란 이름이 무색하다. 건설사들은 건설원가를 최초 입주자 모집공고 당시의 주택가격을 기준으로 한다. 위에서 말한 8천4십만 원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건설원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임의가격이다.
결국 현행 임대주택법은 건설사가 임의대로 제공하는 정보를 가지고 분양가를 계산하는 것이다. 이에 입주민들은 건설원가를 검증하기 위해 정보공개를 요청한다. 그러나 건설사들은 ‘경영ㆍ영업상의 비밀에 관한 사안’이란 이유로 거부한다. 법원 역시 공공기관인 주택공사에 대해서는 건설원가 정보가 공개대상이라고 판시 하면서도 유독 민간 건설사에 대해서는 건설사측 손을 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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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대주택을 건설할 때 정부가 민간건설사에 제공하는 각종 혜택들 | ‘공공’이란 이름으로 서민들을 기만하는 ‘임대아파트’
공적 혜택을 받을 땐 ‘공공사업자’, 건설원가 정보공개와 같이 불리할 땐 ‘민간사업자’인 것이 지금의 공공임대아파트다.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같기도’가 연상되어 실소가 머금어진 이유다.
목포에는 임대아파트 18개단지 8,729세대가 있다. 중간분양을 실시한 단지를 제외하고도, 2007년 한해에만 4개단지 1,800여세대가 분양전환을 앞두고 있다. 시세를 반영하는 감정평가액, 그리고 건설사에 의해 잔뜩 부풀려진 건설원가. 이렇게 산출된 분양가는 결코 공정한 가격이 될 수 없다.
‘공공’이란 이름으로 서민들을 기만하고 있는 임대아파트. 이제 그만 지을 때가 됐다. 또한 건설사들은 야누스의 가면 뒤에서 이윤만을 찾을 것이 아니라, 공적 은혜를 주민과 사회에 환원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민주노동당 사무국장/민생특별위원장, 목포시 임대주택 분쟁조정위원(제일1차) 박명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