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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윤씨(醴泉尹氏) 종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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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문구 등 스크랩 예천객사
윤재호 22세 (장수골) 추천 0 조회 49 16.03.22 10:06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예천객사 동헌 중창기(醴泉客舍 東軒 重創記) [記事] : 별동 윤상(尹祥)의 기사로, 1749년, 1900년에 발행된 <별동선생집(別洞先生集)> 2권 기(記)에 수록되어 있다.(韓國歷史情報綜合시스템 2004)

  예천 객사동헌중창기(醴泉 客舍東軒重創記) [古文獻] : 제작자 : 윤상(尹祥)/ 날짜 : 2005년 02월 07일/ 원문형태 : DOC/ 출처 : 민족문화추진회(國家知識情報統合檢索시스템 2005)

  객사(客舍), 객관(客館), 예천객사(醴泉客舍) [建物] : 1) 예천읍 노상리 1번지 대창중고등학교(大昌中高等學校)의 행정실(行政室), 교장실(校長室), 송대실(松臺室)로 사용되고 있는 120평의 건물로, 원래 노하리 74번지 예천읍사무소 부근에 있던 조선 시대의 객관(客館)이다. 이 건물은 1907년 융명학교(隆明學校, 只今 醴泉初等學校의 前身) 교실로 쓰다가 1911년부터는 예천공립보통학교(醴泉公立普通學校)의 교실로 쓰였다. 1927년 노상리 1번지인 지금의 자리로 이건(移建)하여 대창학원(大昌學院)의 교실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 객관은 목조 와가 단층 팔작(木造瓦家單層八作) 지붕으로 규모가 우람하고 거대하다. [尹祥의 記] : 무릇 주군(州郡)에 관사(館舍)를 설치하는 것은, 사신(使臣)이 왕화(王化)를 선포하는 때를 기다려, 행례(行禮)할 곳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아주 작은 고을이라도 없앨 수 없는 것이다. 예천군은 동쪽과 서쪽에서 죽령(竹嶺)과 초령(草嶺) 두 재 사이에 끼어있다. 죽령으로부터 상주 낙동(洛東)으로 가는 자, 초령으로부터 화산(花山)에 가는 자는 반드시 이 고을을 경유하게 된다. 그래서 사신의 순시(巡視)와 길가는 나그네의 오고감이 거의 없는 날이 없다. 그런데, 객관이 좁고 누추하여서 고을과 더불어 서로 걸맞지 않았다. 1439년(세종 21)에 완산 이지명(完山李知命)이 이 고을의 수령으로 나왔다. 정사(政事)를 본 지 3년에 정사는 형통하고 사람들은 화합하게 되었다. 이에 고을 사람들에게 모의하고 감사(監司)에게 보고하여, 농부나 공장(工匠)들을 수고롭게 하지 않고, 놀고 있는 사람들을 일 시키었다. <집이 이루어지니> 뜰 층계가 높고 커서 심한 더위의 무더움을 제거할 수 있고, 마루의 간살이 넓고 시원하여서, <예(禮)를 행할 때에> 읍양(揖讓)할 위치를 마련하기에 넉넉하다. 서늘한 곳과 더운 방을 따로 만들었고, 외관(外觀)과 실질(實質)은 알맞게 되었으니, 이 군수(李郡守)의 정사(政事)하는 것이 급소(急所)를 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또한 한도를 넘지 아니하였다. 공사를 일으켰으나 백성의 힘을 수고롭게 하지 않았으니, 어짐을 베풂이요, 사신을 우대하고 왕명을 존중하니 공경함이 크다. 어짐과 공경함을 갖추었으니 수령의 직책은 다한 것이다. 예천은 나의 누대(累代)의 고향 땅이다. 이 군수의 정사(政事)하는 것은 내가 잘 아는 바이다. 그러므로 대강 일의 경과를 적을 뿐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 1530). 그리고 윤상(尹祥)의 기문(記文) 중에 초령(草嶺)은 문경의 조령(鳥嶺)이고, 화산(花山)은 안동의 옛이름이다. 예천군수 이지명(醴泉郡守李知命)이 1441년(세종 22) 10월에 기공(起工)하여 섣달에 일을 마쳤다... 1442년(세종 24) 음력 5월 상순(上旬)에 통정대부 첨지중추원사 겸 성균관 사성 윤상(通政大夫僉知中樞院事兼成均館司成尹祥)이 썼다.

  [客舍의 東軒 韻에 대한 尹祥의 次韻] : 시냇물 돌아 돌고 산이 둘러 쌌는데, 무르녹은 나무 그늘/ 예로부터 경승지로 그 이름 아름다웠네/ 높디 높은 묘우(廟宇, 官衙)는 험준한 고개 뒤에 했고/ 곱게 치장한 누대(樓臺) 평평한 수풀 속에 보일 듯 말 듯/ 천 길 산곽(山郭)에는 구름 안개 얄포롬하고/ 십리 상마(桑麻) 들에는 비 이슬이 짙구나/ 치하(致賀)하오 사군(使君)이여 그대 치적 으뜸임을/ 황화(皇華, 王命을 받은 使臣)가 붓 휘둘러 꽃다운 시(詩) 읊었구려/(別洞先生文集). 그 외 관찰사 권맹손(觀察使權孟孫), 관찰사 김정국(觀察使金正國), 강원 감사 홍귀달(江原監司洪貴達), 서거정(徐居正)의 시가 있고(군지 1780 1895 1939), 구질(舊秩) 및 객관 현판(客館懸板)이 있다(군지 1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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