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별 수가제도', 검사·수술 많이 할수록 병원 진료수입↑↑
일부 병원서 진료수입에 따라 의사에게 인센티브 차등 지급
【서울=뉴시스】장성주 기자 = "물리치료나 운동요법으로 호전될 수 있는 상태였는데 불필요한 검사와 보조기구까지 강권하는 병원의 행태는 납득할 수 없어요."
취업준비생인 황모(24·여)씨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황씨는 지난달 8일 서울 마포구 합정역 부근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황씨가 타고 있던 버스를 승합차가 들이받는 사고였다.
사고 당시 황씨는 별다른 통증을 없었지만 다음날이 되자 무릎과 어깨에 통증을 느꼈다. 황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둘러 A병원을 찾았다.
황씨는 의사에게 통증 부위와 증상 등을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자 의사는 X선을 찍고 연달아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었다. 이어 근전도와
컴퓨터 단층촬영(CT) 검사 등을 했다.
검사를 마친 의사는 황씨에게 무릎에 피가 많이 고인 상태로 관절이 심하게 부은 '골좌상'이라고 진단했다. 생소한 병명에 놀란 황씨에게 의사는 무릎 깁스와 25만원짜리 보조기구를 구입해 사용해야 된다고 말했다.
황씨는 의사에게 일단 깁스만 하고 물리치료부터 받겠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병원은 물리치료만으로 힘들고 보조기구를 착용하는 것이 최선이라면서 물리치료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어쩔수 없이 황씨는 깁스를 하고 보조기구를 구입했다. 하지만 X선부터 CT까지 과잉진료를 받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황씨는 다음날 B병원을 찾아갔다.
B병원에서 황씨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황씨가 구입한 보조기구는 십자인대가 파열된 환자용이라는 것. 깁스를 하고 물리치료 등으로 충분히 호전될 수 있는 상태인데도 불필요한 보조기구를 왜 구입했는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화가 난 황씨는 곧장 A병원에 직접 찾아가 자초지종을 따져 물었다. 이에 황씨를 진료했던 의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환불 조치해주겠다는 말만 연발했다. 황씨는 서둘러 사태를 무마하려는 듯한 의사의 말투에 다시금 화가 나 병원장에게 항의했다.
하지만 과잉진료와 불필요한 보조기구를 강매한 것에 대한 책임있는 답변은 듣지 못한 채 환불조치해 주겠다는 말만 듣고 병원 문을 나서야 했다.
황씨는 "환자 진료에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위해를 줄 수 있는 검사나 시술을 시행하기 전에 환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고 선택할 기회를 줘야 한다"며 "겁을 잔뜩 주고 불필요한 검사와 보조기구를 강매한 병원을 생각할 때 마다 화가 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잉진료를 물론 불필요한 보조기구 구입와 비급여 부재료를 사용하는 수술 등의 고가치료 행위를 부추기는 의사들이 적지 않다. 결국 의사 말은 전적으로 믿을 수 밖에 없는 애꿎은 환자들만이 피해를 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0년 병원들의 과잉진료 판정건수는 1800여만건, 2007년부터 2010년까지 3년간 과잉진료 판정건수가 60%나 증가했다. 지난해 상반기에 판정된 과잉진료 금액만 1062억원에 달한다.
양심과 전문적 판단에 따라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는 것은 의무가 있는 의사들이 과잉진료와 의도적으로 비급여 고가치료행위를 부추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병원 소속 의사에 따르면 의사의 치료 횟수에 따라 한 건씩 진료비를 청구하는 방식 '행위별 수가제도'가 불필요한 검사나 시술을 부추긴다. 이 제도하에서는 검사와 수술, 투약 등을 많이 할수록 병원의 수입이 늘어나게 된다.
특히 일부 병원에서는 이를 악용해 의사가 일정기간 벌어들인 수입과 환자 수에 따라 인센티브를 차등 지급한다. 결국 의사들이 의학적으로 꼭 필요하지 않은 진료나 수술 등을 통해 수입을 늘리고 있는 것이다.
이 의사는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CT, MRI 같은 고가장비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 중의 하나"라면서 "환자에게 꼭 필요하지 않은 진료나 수술 등을 많이 할수록 진료비는 올라가고 덩달아 의사들의 인센티브도 올라간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의사들은 더 많은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서라도 환자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과잉진료나 안정성과 부작용 등이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비급여 수술 재료 등을 사용하는 수술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병원에서 영리목적으로 과잉진료나 수술 등을 강요할 경우 의료법 27조 '환자유인행위'에 해당돼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자격정지 2개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영리목적으로 과잉진료나 수술을 강요할 경우에는 환자유인행위에 해당될 소지가 있다"며 "병원에서 원하지 않는 진료나 수술 등을 강요받았을 때 의사표현을 명확하게 하고 가까운 보건소나 보건당국에 신고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mufpiw@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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