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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독단으로 name님의 글을 정리해서 올립니다. 편집에 대한 잘못은 저에게 있습니다. 앞으로 양심있는 증인분을 만나는 기쁨을 함께 누리면 좋겠습니다. 때가 무르익은 것 같아 희망이 솟아 오릅니다!
1[오랜 만입니다. 감춰진 이름입니다]
두어번 글을 올리고 사태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생각을 정리하고 모든 분들에게 제가 몸소 겪었던 얘기를 꺼내려고 합니다. 꺼내려고한 목적은 모두에게 도움을 드리려고 한 것입니다. 결코 배교자가 되라고 한 것도 아니며 또한 증인이 되라고 할 마음도 전혀 없습니다.
저의 한 평생을 들여다 보면 무언가 자신의 소중한 삶을 꾸려 나가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같은 경험을 하였거나 들은 얘기도 있을 것입니다. 듣다보면 공감하는 분들이 생길 것입니다.
저는 노아라는 사람이 협회장으로 있을 때 침례를 받고 지금까지 무사하게(?) 제명받지 않은 나이 먹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부모 친척들이 증인들이기 때문에 표면에 나서지 못하고 이제서야 과거를 살펴 보고자 나섰습니다. 중학교 2학년 무렵 특파 출신 선배에게 진리 공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물론 부모님의 강요에 의해서였습니다. 친척들은 교회의 목회자들이 대부분이였기 때문에 교회의 치부들을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한 것이지요.
학교에서는 장학생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중학교 3학년부터서는 국기경례를 하지 않는다고 동급생인 규율부원에게 엄청 얻어 터지는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의 표현으로보면 박해가 시작된 것이지요. 월요일 아침 조회때는 상 잘받는 학생이 화장실에 숨어서 국기 경례가 포함된 조회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학생 처지가 되었습니다. 자연히 놀림감이 되었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고서는 태권도와 합기도를 부모님과 동료들 모르게 배워서 중학교때부터 우습게 보고 놀리거나 때렸던 급우들을 제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1학년 무렵에 침례를 받고나서는 폭력쓰는 일을 중단하였습니다.
악명 높은 군사 교련이 이때 시작한 것입니다. 국기 경례는 화장실에서 해결을 보았지만 군인이 교련 선생이 되어 폭행을 하는 데는 당해 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결국 유신 정권의 학교 교련 때문에 장학생(?)신분인 저는 자퇴서를 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불어 닥친 1975년 세상 끝날의 교리는 저의 바램이었고 정규파이오니아로 일하는 구실이 되었습니다. 이때 부모님은 과거에도 종말 예언들이 있었지만 들어 맞지 않았다면서 대학교에 들어 가도록 설득하였습니다. 그러나 무활동에 들어 가시던 부모님은 제게 있어서는 배교자(?)였습니다. 훗날 부모님의 입장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나중에 언급할 것입니다.
1969년 장충동 국제대회부터 1975년까지의 지역대회에서의 마지막 멘트는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년에 다시 만납시다"였습니다. 1975년 가을에 하늘 정부가 드디어 업무를 시작하는 웅대한 절정을 강조하는 호소였습니다. 이때 부터 이중적인 협회의 모습을 보게 되고 저도 발톱을 감춘 맹수처럼 조용하게 조직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2[집사람이 참외 먹으라고 하는 바람에 이어서 씁니다 ]
부모님이 갑자기 대학 공부를 하라고 조직과 다른 목소리를 낸 이유를 말씀드리죠. 저의 아버지는 순회하는 목사였는데 부흥회나 예배가 끝난 후에 자주 신도들이 신발을 훔쳐 가는 것에 환멸을 느끼셨답니다. 그리고 "예장이다.기장이다"하며 장로교가 나뉘면서 정치 싸움화 되어가는 꼴이 좋지 않게 보이신 거죠. 그때 증인을 만났고 새로운 교리를 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침례받은지 몇 개월만에 부회중의 종이 되셨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풍덩 침례(대회만 참석했는데 공부를 안해도 권유에 의해 풍덩하면 침례 받은자가 됨)라는게 있었고 목사가 증인이 되었으니 특진인 셈이지요. 혹시 이 사실을 아시는 분은 침묵하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제 이야기가 진행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마 이런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은 거의 고인이 되셨습니다.
부회중의 종으로 열심히 일하시고 계셨는데 순회 방문때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습니다. 회중의 종으로 일하던 형제가 중립때문에 교도소에 갔는데 회계 검사때 돈이 없는 것입니다. 그때는 서적과 잡지대금이 일원 한장 틀리면 밤새워 원인을 알아야 되는 시대였습니다. 교도소에 들러서 돈의 출처를 물었더니 중립을 지키고 있는 그 형제가 모두 개인 용도로 썼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 사실이 들통나면서 6명의 자매와 간통한 사실도 드러난 것이지요.
아버지로써는 충격이었습니다. 신발이 없어진다고 목사직까지 그만뒀는데...이게 웬 날벼락인지 하셨겠지요. 어린 저한테는 그 사실을 말하기가 어려웠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제가 감독자가 된 후에야 그 사실을 알려 주신 거지요. 없어진 돈을 제명시켜 버린 그 탕아에게 돌려 받을 수는 없어서 새로 회중의 종으로 임명받은 형제와 아버지가 물어냈습니다.
협회는 절대 돈 문제에 대해선 관대하지 않다는 것을 이 점에서도 증명됩니다. 서적과 잡지의 종으로 발탁된 저는 순회 방문때마다 특파율과 정파율 임시 파이오니아 전도인 비율로 나눈 비용이 맞지 않으면 밤을 새워 원인을 분석해야하며 부족한 돈은 제가 채워야 하였으니까요. 지금은 무가이기 때문에 이런 일은 없습니다. 이 엄청난 일도 다른 사람에게 알리면 내밀을 유포한 죄로 근신처분이나 제명처분이 되니 일반 신도들이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는 그 고급(?)정보를 알게 되고 체험한 후부터는 모든 직책을 거부하는 입장이 되어 버린거지요. 이제 과거의 교회로 돌아 갈 수도 없고 증인 사회에서 침묵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더구나 아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종말론에 휩싸이는 것이 못내 불안하셔서 무활동에 들어가시게 되었습니다.
3[봉함된 첫째 인을 열어봅니다]
1973년! 신권전도학교에서나 봉사회 프로에서 새로운 모습이 등장합니다. 상의(上衣) 안과 겉이 모양이나 색깔이 다른 걸로 입고 와서 순식간에 바꿔 입는 실연을 하는 것이지요. 과거 독일에서도 케쉬타포의 추적이 있을 때 따돌리기 위해서 했는데 1975년이 되기 전에 세계적인 박해가 시작되기 때문에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973년인가 북방왕의 보물이 석유라고해서 석유파동이 처음 일어 나자 증인 사회는 바짝 긴장하기 시작한 겁니다. 더구나 중국과 미국이 탁구로 인하여 대화가 물꼬를 트자 "평안하다!안전하다!외치는 소리가 들릴 때 아마겟돈이 온다고 생각한 한국의 지부 지도부는 프로때마다 이런 모습으로 실연을 시켜 내부적으로 단합을 시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 이 분위기를 한껏 부추기는 잡지가 있었는데 샘터인지 여학생이란 잡지인지 이집트의 피라밋 계단으로 측량한 마지막 날이 1973년을 가르킨다고 하였고, 1975년을 계산한 협회의 도표가 실려있는 것으로 학생 신분으로 있는 형제 자매들은 학교 교육을 거부하고 파이오나아로 나서는 것이 그리스도인다운 것으로 생각케 한 것입니다.
믿지 않은 부모들을 둔 학생들은 집을 나오고 집을 가지고 있는 형제 자매들은 집을 팔고 얼마 남지 않은 세상의 끝을 생존하기 위해 파이오니아로 나서는 것이 유행한 것입니다. 또다시 이 방법 비슷하게 사용할 것입니다.
다가올 국제 대회에서 북방왕의 신분이 밝혀 질 거라는 풍문이 돌고 있는데...조심하십시요. 일본이 될거라고,중국이 될거라고,아니면 러시아가 다시 북방왕이 되든지 아랍권이 될거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점장이 보다도 더 확률이 낮은 점궤에 불과합니다.
1972년대에는 봉사회 프로때마다 원고를 검사하는 순회의 종 출신은 마지막 날을 심하게 강조하지 않으면 협박을 방불케하는 충고를 하였습니다. 봉사의 종 추천을 보류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1972년에 새로 탄생한 봉사의 종 직책에 임명되자 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로"라는 단어는 에스겔에 나와있는 심판 받을 늙은이들이라며 부정적인 면을 강조했는데 이제와서는 사모해야 할 직책이라며 180도 달라진 진리(?)를 따르라는 것이지요. 불과 몇 살 차이로 장로가 된 형제들과 봉사의 종들인 형제 사이에 계급 의식이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장로들은 다가 올 새질서에서 군왕으로 일하게 된다는 것 때문에 종의 신분보다 왕이되는 장로라는 직책을 갖기 위해 처신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감이 잡히십니까? 같은 나이 또래인데(20대 초반) 잘사는 집 형제는 같이 학교에서 잘렸는데 즉시 신권학교 감독자로 일하다 지부로 진출하고 야당파(?)는 충고 듣는 서적이나 잡지 대금을 계산하는 종이 된 것입니다. 29살까지도 종으로 일한 형제도 있었습니다.
20세 초반을 장로로 추천할 때는 디모데도 어린 나이에 장로로 추천되었다며 옹호한 일도 있었지요. 파수대에서 아무리 나이의 기준을 잡아줘도 장로와 봉사의 종의 구분은 성직 매매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1972년대에는 발버둥처도 티오가 없는 지부 진출은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 가는 것보다 어려웠습니다. 지극히 가난으로 생계가 어려운 시절에 지부에서 일하는 것은 꿈같은 특권이었습니다. 1970년대 지부 방문때 보았던 푸짐한 음식과 잠자리는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서대문에 위치한 지부의 모습은 그야말로 신세계였습니다. 지금이야 누구든지 어렵지 않게 초대될 수 있지만 그 당시때는 정말 어려웠지요.
40여 년이 흐른 지금 그 형제는 지역을 감독하는 그 이상의 감독자가 되어 특별 신분을 누리고 있고(중립도 돈으로 해결) 종으로 출발한 형제들은 무활동이나 해외 자비 파이오니아가 되어 있습니다. 그때 같이 믿었던 동료들은 거의 자녀때문에 해임되었거나 무활동이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 조직은 크든 작든 비슷하게 이런 체계들을 답습하고 있고 발전되어 오고 있습니다.
저는 4년 전에 극도로 부패한 성직 매매를 한 순감을 내쳐버리는 일에 앞장을 섰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회중의 귀중한 헌금을 교묘히 도둑질한 주임감독자를 해임시키고 그를 옹호한 순감을 땡감(?)으로 만드는 일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한 무리들을 살펴보고 있지요. 몇년 전에 순감출신이 주동이 되어 컴퓨터 광고 클릭을 이용해 형제 자매들을 사기친 일들이 있었습니다. 사당동에서 우유 배달하며 도시감독자까지 오른 출신이 거기에 연류되어 함께 등쳐 먹는 일이 발생하자 과감하게 폭로해서 정리하는 일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도시감독자는 야밤에 도망쳐서 정신지체자인 아들을 신용불량자로 만들어 놓고도 어느 한 목장에서 일하면서 장로로 일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와 같은 사기꾼들을 살피는 중이지요. 또한 도시감독자로 있었던 회중의 주임이 새로 임명되자 마자 회중의 헌금을 훔쳐서 도망가는 일이 최근에 발생하였습니다. 그도 감시의 대상입니다.
어린 시절 그나마 깨끗했던 조직이 다른 조직과 똑같이 변해가는 현실에서 참 많이도 싸웠습니다. 형제들을 사기치고 직책을 이용해서 이익을 취한 자들을 수십번이나 내치고 예방해 왔지만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합니다. 별반 다름 없는 조직이니까요.
제가 싸우는 방법은 조직에서 만든 천국전도학교책이나 편지들에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가능한 한 많은 편지들을 참고했더니 이길 수 있었습니다.
가능하지 않을 때는 발톱을 철저하게 감추면 됩니다. 그들의 피할 수 없는 증거가 나올 때까지는 참는 것입니다. 저 역시 모략도 당하고 일시적인 수모도 당했었지만 한번도 만만하게 당한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현역으로 대우받고 있습니다. 단지 지금부터는 내밀을 누설하는 죄로 고발당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양심을 창조하신 분은 너그럽게 지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어떤 위치에 있던지 간에 저의 경험을 듣고 참고하십시요. 1970년대의 분위기를 얘기하였고 내밀에 봉해있었던 한토막의 인을 벗겨 보았습니다. 배교자라고 비난받는 사람이나 조직의 이중성에 뛰쳐 나온 사람이나 조직을 옹호하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려고 열어 봤습니다. 둘째 토막의 인을 열어 보겠습니다.
4[아!봉사보고-둘째 인]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말들이 그때는 사실인양 받아들여졌다. 다다미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노래책이 없어서 적당히 옆사람의 목소리에 따라 웅얼거리며 집회를 보았다. 한 회중에 국방색 노래책이 턱없이 부족해서 이런 식의 집회를 보는 것이다.
"낙원을 잃을 때부터 찾을 때"라는 책은 양장본으로 되어 있어 소유하는 것 만이라도 큰 자랑이었다. "참되시다 할지어다" 책은 정말 소중한 책이었다. 어깨너머로 살짝 살짝 읽는 것만이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같았다. 신권학교에서 연설을 하려면 참고 서적이 있어야 되는데 없었다. 파수대 깰때이다 잡지는 돈을 주지 않으면 받을 수가 없었다.
순회의 종 출신인 회중의 종이 처음 나를 끌고 호별 방문을 시켰다. 중학생인 내가 주인에게 잡지를 전해야 되는데 나중에 돈을 달라고 하기가 너무도 어려웠다. 꼭 책장사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고학생인 줄 알고 받는 사람들이 그 돈 이상 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제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같은 또래가 한달에 수십부를 전하는데 나는 고작 2부나 3부였다.
항상 충고를 들었다. 나중에는 따로 잡지 잘 전하는 비결을 전수하시겠단다. 회종이(회중의 종)... 우선 잡지 2부를 집주인 손에 넘겨주고 재빨리 또 2부를 꺼내서 손에 들고 있으란다. 그러면 집주인이 거절하기가 어려워서 결국 돈을 줄거란다. 그런데도 이번에는 한술 더 떠 1년 예약까지 맡으란다. 정말 난감할 따름이었다.
더욱 힘들었던 것은 집주인이 돈이 없다고 할 때였다. 그러자 회종이 즉시 껴들어서 쓰지 않은 연필이나 공책을 주면 잡지를 주겠다고 한다. 정말 "나는 천산의 금이 다 내 것이다.나는 너희에게 요구하지 않았다"하면서 럿셀 형제가 파수대를 창간했다는데 쓰지 않은 연필이나 공책을 억지로 받아내야 하는 현실에서 어린 마음에 자꾸 의심을 싹트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목사이셨던 아버지가 선택하고 선배인 형제가 이끌고 나중에 군왕이 되실 순종(순회의 종)출신 회종이 나를 끄는데... 나의 어린 시절은 봉사 보고 용지에 시간과 더불어 잡지 전한 숫자, 재방문 횟수가 기록되어 비교당하는 시절이었다. 청소년기에 정규파이오니아 100시간에서 한 시간이라도 모자라면 이유서를 뒷면에 써야 하였고, 대회장에서 사용될 무료 식권을 받느냐 마느냐의 잣대가 된 그 모든 순간들이 나를 지금도 짓누르고 있다.
봉사훈련학교에 지부초대를 받고 있는 지금의 청소년 형제들은 그 때를 알고 있을까? 헌금통에서 돈을 훔치고 있는 장로들은 그때를 알아야 한다. 추천을 빙자로 돈봉투를 받고 있는 순감이나 지감들! 이런 때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고생을하며 이루어 놓은 조직을 큰 바벨론이라고 적대시하는 교회 조직과 똑같이 걸어가는 모습을 볼 때 가슴이 미여진다. 순회 방문때 고생하며 살아 온 우리 늙은 장로들을 모아 놓고 필기하라고 할 때는 눈에 불이 켜진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성서 구절을 읽으라고 할 때는 이가 갈리는 기분이다. 흰머리 앞에 일어서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조직의 기본 가르침은 어디로 실종하였는가? 지금 이곳을 출입하는 자들 중에 아직도 그때를 모르고서 지금의 협회를 변호하고자 한다. 너무도 어린 마음들이다.
하나님의 조직은 내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윗왕을 보라! 아무리 권세있는 왕이라도 밧세바와의 간음은 전국적으로 알리셨다. 베드로가 아무리 열쇠 3개를 받았더라도 새까만 후배인 바울 앞에 공개적으로 폭로가 되었다. 이것이 참 숭배의 방식이다. 거짓 숭배는 모두가 내밀이다.사탄도 그룹의 천사장으로 있으면서 뱀을 사용하여 비밀에 붙이려고 했지만 계시록에서 들통이 났다. 그가 옛뱀이고 용이며 사탄이라는 것을...
1960년대의 우리는 잡지를 팔고 서적을 팔아 이렇게 성장시킨거다. 우리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내밀 속에 있는 가여운 자들이여 회개하라! 돌들이 소리칠 것이다.
5[봉사 보고의 함정-3째인 ]
1970년대 초 소설가 이름을 달고 온 순종(순회의 종)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집주인들이 원할 때만 잡지나 서적을 꺼내는 것을 보고 지금까지의 모든 방식을 뒤엎는 칭찬을 해 줬다. "지금까지 많은 형제 자매들이 땅을 산성으로만 만들고 있는데 형제는 알칼리성으로 만들고 있어 참 좋다는 거였다"
지금까지 모든 실연과 충고는 서론 본론에서 "언급한 성서 내용이 이 잡지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2십원의 기부로 읽어 볼 수 있습니다"였다. 이 잡지라고 말할 때 바로 잡지를 집주인에게 건내주고 내 손에도 잡지를 들고 있어야 하였다. 그런데 나는 "방금 살펴 본 흥미있는 내용을 서적이나 잡지에서 설명하고 있다면 받아 보시겠습니까?"였다.
그당시 토요일 잡지 배부때는 아예 성서도 보여 주지 않고 30초나 1분이내에 잡지만 꺼내주고 바로 돈을 요구하는 방식이였는데 나의 방식은 조직의 상술(?)을 뒤엎는 것인데도 칭찬을 한거다. 이후로 나는 깨닫는 것이 있었다. 조직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아도 칭찬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나의 삶에 획기적인 일이었다.
봉사회에 임명되면 때를 강조하라고 군왕되실 회종이 지시를 하면 "협회에서는 공식적으로 지시하지 않았는데요. 그리고 그 날과 그 시는 예수그리스도나 천사도 모른다고 했는데 그냥 언급한 내용만 하면 안될까요?" 나는 이런 식으로 변해갔다. 그러면 종말론자 형제들은 "그 당시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1914년 이후 왕이시니까 안다"는 식으로 몰아 부쳤다. 그 결과는 나는 15분이나 20분짜리 프로에서 쫓껴나 광고나 언급하는 5분짜리로 전락되는 신세가 되었다.
또한 정파 시간은 한달 100시간이었는데 나를 사회하였던 특파형제 시간은 150시간이었다. 나는 시간을 못 채우면 이유서를 쓰고 그것이 반복되면 대회에서의 무료 식권을 받지 못하면 되지만 이 특파형제는 이유서와 그 달치 수당을 못 받는 것이다. 그러니 한달 끝에 이르르면 저녁 12시까지 (나까지) 끌려 다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달 마지막 날 밤12시까지만 봉사 시간으로 기록할 수 있기에 그런 것이다.
봉사 시간도 협회의 공식 입장은 첫 집을 두드릴 때부터 마지막 집을 마칠 때까지만이었다. 점심도 먹는 시간을 빼야한다. 공개 강연 역시 관심자가 참석하지 않더라도 노래 기도시간 빼고 45분을 허용한다. 들을 관심자가 없는데도 봉사시간으로 기록할 수 있다? 격지 회중에 강연을 가보라. 달랑 2명인 침례받은 형제 자매앞에서 연설해 놓고도 기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봉사 보고의 헛점과 불합리한 점때문에 어떤 부부 특파는 봉사 나가는 시간외에는 누워만 있다가 봉사 집회때만 일어나는 휘귀한 일이 벌어진다. 왜냐구? 수당으로도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없고 먹는 것이 부실하니 힘이 있겠는가? 더구나 누워 있는 시간이 많으니 생리적인 현상 때문에 에로스적인 행위가 많을 수 밖에... 그러다가 덜컥 2세가 생긴 부부들! 난리가 벌어진다. 애를 가지면 바로 특파의 지위는 날아가기 때문이다. 어느 지역에서는 애를 낳고 죽였다. 특파 특권을 뺏기지 않으려고 거짓 보고를 한 것이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바뀌는 순종(?)마다 새로운 제안을 한다. 임파?나 보파?들을 정파들이 모이는 파이오니아 모임에 초대하는 해 놓고서는 쉽게 봉사 시간을 달성하는 비법을 보여준다. 졸면서도 봉사 시간을 넣는 방법, 점심을 먹으면서도 봉사 시간을 넉넉히 채우는 비법을 몸소 가르친다. 재방문 기록 횟수도 얼마든지 부풀릴 수 있는 방법을 터득시킨다. 이렇게해서 엄청난 수가 정규파이오니아 신청을 한다.
그러다 보니 너무 너무 쉽게 봉사 아닌 봉사를 하면서 엄청난 봉사보고를 한다. 하루 종일 관심자나 집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짝끼리 떠들고 와서는 하루의 보낸 시간을 기록하는 것이다. 지금도 어느 회중에서는 아침봉사에 커피타임을 만들어 놓고 그 시간 전부를 봉사 시간에 기입한다.
그러다가 협회의 지침이 무섭게 내려진다. 하나님께 밥상을 차려주는데 좋은 쌀로된 밥이아니라 돌이나 음식찌꺼기가 든 식은 밥으로 할 것이냐? 과거의 성서의 예를 들면서 상한 것, 저는 것으로 제사 희생물을 바친 못된 이스라엘 백성을 언급한다. 그들은 결국 멸망 당했지 않은가?
이때부터는 여러 종류의 봉사 보고를 접하게 된다. 서기와 봉감은 죽을 맛이다. 봉사 한번도 참석치 않은 사람이 엄청난 봉사 시간을 기록하는가 하면 지금껏 100시간 가까이 보고한 사람이 겨우 15시간 정도다. 협회 지시는 정파가 15시간 정도는 전도인 시간이나 마찬가지니 정파의 특권을 해임 시키라는 것이다. 오히려 거짓 보고를 하는 사람을 추려야 하는데 정직한 자가 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을 만나 해임시키면 과연 무사할까요? 조금있다가 다시 열겠습니다
[요절한 친구가 학창시절 동료였기에 흥분한 것 같습니다. ]
죄송합니다. 요점은 봉사 보고 때문에 많은 형제 자매들이 헛된 삶을 보내고 귀중한 목숨들을 잃는다는 것입니다. 계속 이어지는 내용이기에 요점은 전체적으로 판단하십시요.
그리고 식구들이 보면 안되기에 저에게 댓글 요청은 자제해 주십시요. 독수리 타법 아시지요. 이 나이에 꽤 힘듭니다.
공감된 내용들이 있다면 많은 댓글들로 상처 받은 우리 형제 자매들께 힘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들이 이번 국제대회 전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붉은 빛 짐승과 간음을 벌인 자들에게 꼬리에서 나오는 독침으로 쓰여지길 바랍니다
보충설명:
수당타내기 위해 낙태를 하였다니까 믿지 못하시는 분들을 위해 처음으로 답글을 합니다. 지금은 수술을 허용해 정관 수술을 양심상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정관 수술하는 사람은 과거의 율법을 들먹이며 하나님의 전에 들어 오지 못하는 고자 취급을 당하였지요. 빽이 있거나 고백하면 근신처분(지금의 공개책망),그리고 제명처분을 당했지요.
정관 수술이 허용 안 되니 자매들 중의 많은 수가 낙태 수술을 받고 제명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먹고 살기 힘드니 실수해서 임신을 하면 믿지 않은 남편의 의해 낙태를 할 수 밖에요. 몰래 낙태 수술하다가 1975년 종말론의 강조때문에 무서워서 고백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설명드리면 납득할 수 있을까요? 그보다 더한 일들도 있지만 카페의 품위를 위해서 이만....
[6-봉사 보고는 살인을 부른다 ]
마태 6:6 “사람들에게 주목받기 위하여 그들 앞에서 여러분의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2008년에 지혜롭고 충성된 종들이 만든 성서연구 보고가 드디어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까지 똑같이 반복되는 것- 봉사보고도 사라질 수 있다?
왜 내가 이런 희망을 갖고 있는 줄 아는가? 시간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형제 자매들을 협회는 지시한다. 10시간 이하는 약한 자 방문을 통하여 격려하라고 한다. 장로들은 3개월에 한번이라도 보조파이오니아를 하라고 권유한다. 정규파이오니아는 1년 동안 집계해서 목표시간을 채우지 못하면 삭탈 관직(?)을 당할 수 있다.
왜 당한다라고 하지 않고 당할 수 있다고 하는가? 만약 시간 목표를 채우지 못한 사람이 장로이거나 봉사훈련학교 출신이거나 장로들 가족이라면 문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잘못 건드리면 춘추 전국 시대를 겪은 옛 중국의 피바람이 불어 닥치기 때문이다.
몇년 전에 불광동 근처에서 젊은 장로형제가 부동산하는 나이 먹은 장로를 친선 방문했다가 칼을 맞은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구두닦이하는 신분이라 몸 여러군데에 동전들이 있었기에 칼이 뚫지를 못해서 목숨을 건진 것이다. 이 봉사보고로 인하여 의를 판단하다가는 하늘의 상이 아니라 반목과 질시 심지어 선의의 제 3자까지의 소중한 생명까지도 잃을 수가 있다.
그 사건 이후에도 장로들 사이에 극심한 권력 다툼으로 방문했던 순감이 뇌사에 빠져 요절한 것은 그 지긋 지긋한 봉사 보고로 인한 것임을 기억해야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협회 지시에 따라 제안이나 권유하려고 하는가? 아서라... 삼국지를 읽어 봐라. 당사자가 누구인지 잘 판단하라! 적이 아닌 형제 자매라지만 잘 알고 행동하라. 흔히들 하나님이 도우시는 줄 알고 설쳤다간 배수의 진을 치고 있는 병법의 달인이 당신의 목을 노릴 것이다.
왜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마태 6:6에서 경고하고 있지 않은가? 당신이 얼마나 많은 의를 위해 시간을 바쳤다고 종이 조각에 기록해 살벌한 사람들에게 주목받으려고 하는가? 그냥 그 회중의 평균을 알고 적당히 써라! 목숨 부지하려면....
이웃의 사마리아같은 사람들의 고아나 과부들을 주목받지 않게 돌보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라. 왜 증인 고아나 과부를 돌보라는 얘기는 안 하느냐고? 장로 가족들에게 혹여 들키는 날엔 무사하지는 못할 것 같아 조심스럽게 제안하는 것이다. 그 장로 가족들이 먼저 누구와 교제하는 것에 따라 당신의 입지가 정해진다는 것을 명심하라.
농담과 유머로 연설을 꾸미는 한 지역 감독자의 마지막 코멘트! 사실이다. "오늘 침례받으신 여러분, 혹시 형제 자매들을 보고 천사같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이 순간부터 그 잘못된 생각을 아예 버리십시요!" 나는 그 말을 진실로 믿고 모든 정규파이오나아를 모이게 해서 협회의 지침을 적당히 처리하고 유명한 순감과 지감들의 기발한 봉사 방식을 전수해 준다. 그리고 목숨을 보존하기위해 절대 미달자를 개인적으로 방문하지 않는다. 그리고 3년의 경험없고 융통성 없는 순감의 임기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7-전도인은 봉사 보고 기록을 부풀리고 장로들은 회중의 봉사 구역 기록를 조작한다. ]
무슨 말인지 아는가? 지금 외국어 회중 봉사 방식을 보라 캐나다쪽 한국어 회중은 승용차에 4-7명씩 전도인들이 동승해 한국 사람을 찿아 다닌다. 한 사람이 집주인을 만나든지 못 만나든지 전원 모두가 밥을 먹든 커피를 마시든 잡담으로 시간을 떼우든 하루의 시간이 모두 봉사 시간으로 들어간다.
중국에서는 실제 백화점을 쇼핑하면서 적당한 중국인을 만날 때까지 모든 시간이 기록된다. 또한 중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든지 영어 수학을 가르치든지 모든 교제 시간까지 재방문과 함께 보고된다.
한국은 어떠한가? 어떤 회중은 9시 30분까지 모여서 15분간 토론하고 9시 45분에 봉사나가면서 전도지를 전해야한다. 만약 그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고립된다- 이것은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미리 구역을 알고 있다면 가까스로 합류할 수가 있었다. 믿지 않은 남편이 집에 조금 늦게 나가면 항상 혼자 봉사해야한다.
어느 회중은 격지 봉사를 만들어 놓고 한달에 몇번만 참석하면 정파 시간까지도 무난히 달성된다. 격지는 새벽에 출발해 늦은 밤에 도착하니 전도지를 전할 수가 없다.
전도지는 15분의 효력만이 있으 뿐이다. 지금도 터미날 봉사에 나가 보라! 한참 동안 서로 잡담하다가 15분 정도되면 받든지 안 받든지 주는 척하다가 또 잡담이 시작되는 것을...
그래서 회중을 자주 옮겨 다니는 증인들은 표준 없는 회중 관습법을 익히고 적당히 부풀린다. 이 봉사 보고로 인해 자신이 판단받기에 특히 오래된 증인들은 그 심각성을 잘 안다. 아무리 오래된 장로라도 회중을 옮기면 6개월 면밀한 대접을 받으면서 판단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감의 추천서를 받은 사람은 통과다. 요즈음은 많은 편법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니 세계적으로 얼마나 충실한 봉사 보고를 만날 수 있을까?
이제 봉사 구역 기록으로 시선을 돌려 보자. 순회 방문 통고장(?)이 오면 2개월 전부터 진귀한 일들이 벌어진다. 나태한 봉사감독자와 봉사의 종이 구역 카드 방문 날자를 매일 매일 기록해야 하는데 먹고 살기 바빠서 일주일에 한번이나 카드 찾느라고 매번 광고한다. 그러다가 제 풀에 지친다. 전도인들이 카드를 제 때에 주지 않기 때문이다.
방문 일주일 전부터는 초비상이다. 아직 기록하지 않은 카드와 기록 용지의 기록이 맞아 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임은 모든 봉사의 종을 출동시켜 기록을 조작한다. 혼자하면 필체가 같기 때문에 여러 사람을 시켜 날자를 조작하는 것이다. 정규파이오니아가 많으면 한달에 두번씩 구역을 방문하는 것으로 조작하는 것이다. 구역이 많고 전도인이 적으면 6개월 안에 한번씩을 방문했다고 기록해야한다. 노란 구역 카드에 흰 칠을 하고 그 위에 날자를 고쳐서 화요일날 주임은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순감에게 서류검사를 마칠 것이다.
이런 일에 한번이라도 동원된 사람이 있다면 이 성구를 기억하라!
(에스겔 13:14) 너희가 흰 칠을 한 그 벽을 내가 허물어뜨려서 땅에 닿게 하리니, 그 기초가 드러나고 말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무너질 것이며, 너희는 그 가운데서 끝에 이르고 말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반드시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될 것이다.’
[8-봉사 보고는 착취하는 노예 문서다. ]
1960년대부터 1970년대의 대회 모습을 보자. 미리 임명장이 날아 온다. 식당부,연단 설치부,확성부,경비등등 학생 신분인데도 3일 전부터 연단 설치부로 임명되어 무단 결석을 단행하여야 한다. 3일 동안 실컷 페인트 칠하고 나면 대회 당일날 식당부로 가야한다. 마늘까고 쌀 나르고 리어카로 정신 없이 일하고 나서는 작업복으로 갈아입는다. 무슨 작업복일 것 같습니까? 지금 같으면 기가 막힐 일이지요. 바로 대회장 입구에서 들어오고 있는 형제들의 구두를 닦는 일이지요. 헌금통을 옆에 두고 정신없이 구두를 닦지요. 반강제로 구두를 닦이신 분들은 헌금을 해야하지요.
그리고 골목으로 붙이러 다니는 일도 합니다. 대회를 알리는 포스터를 붙이러 다니는 것이지요. 이제 그런 일이 끝나면 편안하게 대회 연설을 들을 수 있을까요? 천만에요! 대회 연설 도중에도 쓰레기 치우러 다녀야 합니다. 1969년도 장충체육관의 쓰레기는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가뜩이나 청소년이 부족한데 국제 대회가 아니었습니까? 죽어 났습니다.
이런 일을 하고 나서도 무료로 밥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식권을 사던지 정규파이오니아 시간을 충실하게 매달 100시간씩 해야만 나오는 무료 식권이 있어야 하였지요. 1972년부터는 반대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참 가난하게도 이 무료 식권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대회가 끝나는 날 연단 해체를 하여야 합니다. 밤늦게 집으로 오는 날 항상 눈가에는 눈물이 글썽하였습니다. 이상하게도 거의 일주일간 죽어라 노동만 했는데...
그리고 그 다음날 부터 교무실로 불려가서 얻어 터지고 무릎 꿇고 손들고 있다가 방과 후에 변소 청소하러 갑니다. 왜냐구요? 그렇지 않아도 국기경례, 집총 거부한 녀석이 간 크게도 무단 결석을 일주일이나 했으니 자비를 바란다면 외계인(?)이지요.
그런데도 봉사 시간에 혜택은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 보십시요! RBC에서 건축일하면 봉사 시간 팍팍 줍니다. 공도 지부 공사,하자 보수에도 봉사 시간 팍팍 빼줍니다. 예수께서 목수 일은 전문이었지요. 건축 일을 전수하셔서 회관도 짓도록 하셨어야하는데... 제자들 연수시켜서 회관 짓고 대회를 볼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텐데... 그리고 바울처럼 천막짓는 사람 제자 만들고 비싼 성서 두루마리 만들어서 보급했다면 태양신 숭배자 콘스탄틴이 따로 성서 편찬 안했을텐데... 지금의 워치타워식으로 생각한다면 그 때가 건축일과 성서 보급의 절호의 기회였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지부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책만들면 봉사시간에 들어갑니다. 1975년 이후에 대회에서 밥하는 일이 없어지기 시작했지요. 영적인 일에 몰두하기 위해서라나요. 근데 갑자기 속성 건축을 시작해서 대회 회관을 전도인들 호주머니 털어서 짓더니 아예 세계적인 규모로 조직을 해 부동산 기업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성장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일에 몰두하는 일인가요? 그리고 건축일이 봉사보고에 포함되는 일인가요?
이제 곧 영상 사업단에서 만드는 DVD가 회중에 대량으로 보급됩니다. 책보다 만들기 쉽고 수익금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얻게됩니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TV가 없는 것이 자랑이었는데 이제는 최신의 TV보유를 뽑낼 것입니다. TV만 보여 줘도 봉사 시간 어렵지 않게 달성되겠지요.
봉사보고는 누구의 사주로 탄생된 걸까요? 하나님? 아니면 내밀에 싸인 옛 뱀?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하시면 답이 나올까요? 세계적인 건축 사업을 창안한 그들의 통찰책에서 그 대답을 볼 수 있습니다.
*** 통-1 731면 미가서 ***
공의를 집행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백성을 동물 취급하듯 착취한다 (3:1-3)
(미가 3:1-3) 내가 말하였다. 부디 들어라, 너희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집의 명령자들아. 공의를 아는 것, 그것이 너희의 일이 아니냐? 2 선한 것을 미워하고 악을 사랑하는 자들아, 백성에게서 그 가죽을, 그들의 뼈에서 그 살을 벗겨 내는 자들아. 3 또한 내 백성의 살을 먹고, 그들에게서 그 가죽을 벗기고, 그들의 뼈마저 바스러뜨리고, 아가리 넓은 냄비 속의 것처럼, 솥 안에 있는 고기처럼 그들을 산산이 부서뜨린 자들아.
(이사야 30:1) ...여호와의 말씀이다. 그들은 계획한 바를 이루려고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며, 헌주(獻酒)를 부으려고 하지만, 나의 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죄에 죄를 더하려는 것이다.
(야고보 5:4) 보십시오! 여러분의 밭에서 수확을 한 일꾼들에게 마땅히 주어야 하는데도 여러분이 거머쥐고 있는 삯이 계속 부르짖습니다
[9-노래책이야기1 ]
1960년대부터 2009년까지 노래책이 3번 바뀐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국방색 그 다음에는 빨강색 지금은 진흙색이다. 국방색의 노래책은 한 회중에 몇 권 되지 않아 소유하기가 참 어려웠다. 그 전 세대는 협회 서적 팔아 집까지 사신 분들의 무용담을 듣던 시대니 그럴만 하다.
파이오니아 전신인 콜포처들은 책 장사꾼들이었다. 돈 안주면 책 주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니 돈 없고 가난한 시절에 노래책을 구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한 콜포처는 자전거로 만주까지 이동하면서 협회 서적들을 팔아 집까지 장만하였다니 진리보다는 돈 버는 조직으로 인식될 수도 있었다.
선포자책에서는 미화시키느라 아래와 같이 왕국 전파 사업을 각 나라가 방해한 것으로 표현하지만 그 시대상을 안다면 지능적이고 교활한 표현 수법들의 의미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와 제30장 678면 ‘좋은 소식을 변호하고 법적으로 확립함’]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오래 전에 교직자들은 지방 관리들에게 압력을 가함으로써 자기들의 지역에서 성경 연구생들이 출판물을 배부하지 못하게 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1차 세계 대전에 뒤이어서 반대가 더 심해졌다.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이 증거되도록 전파하라는 그리스도의 예언적 명령에 순종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앞에,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생각해 낼 수 있는 온갖 법적 장애물이 놓이게 되었다.—마태 24:14.
그런데 이 교활한 표현과 당시의 상황을 비교 분석해 보라. 그 당시는 한국도 "상도"라는 조선시대의 판매 조직이 있었는데 고가의 서적을 집집으로 돌아 다니면서 팔고 있으니 관리들이 가만 두겠는가? 지금의 피라미드 방식의 호별 방문에 제약을 둔 것처럼 상도를 따라야하는데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서 불법으로 책을 팔면서 상도를 무너뜨리니 박해를 안 받을 수 있겠는가?
전세계적으로 반대가 있을 수 밖에.... 그러니 러더포드같은 법률가가 필요한 것이다. 법적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는 강한 카리스마를 소유한 자! 법망을 빠져 나가면서 투쟁까지 할 수 있는 법률가! 술 좋아하고 목소리까지 크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편법을 동원하고 종말을 부추길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익이 많이 나는 서적을 팔려고 누구라도 뛰어 들었을 것이다. 밥먹기도 힘든 세상에서 집까지 장만할 수 있다니... 아마겟돈의 날짜를 명시에 놓고 돈도 벌고 거룩한 하나님의 예언자 반열인 콜포처가 된다는 것 얼마나 신나는 일이냐? 더구나 하늘에서 왕까지 될 수 있는 적은 무리라니... 당신이라면 그 기회를 놓치겠는가?
얼마전 돌아가신 전(0)영 순감의 "졸면서까지 정규파이오니아를 할 수 있는 비법"을 듣다가 그 영웅적인 콜포처의 무용담을 들은 것이다. 요약하자면 만주까지 자전거로 협회 서적을 팔아 집까지 장만하신 그 콜포처께서 자식들을 미국으로 진출시키고 그들을 6개월간 만나고 온 스토리다.
언어가 안 통하니 공원에서 미국 정규파이오니아 할아버지와 만나 판매대에 잡지 진열하고 실컷 졸면서 봉사 시간 채웠다는 것이다. 당신도 졸면서 할 수 있다. 안산이나 외국인 밀집 지역에 가서 판매대에 중국어 잡지나 아랍어를 번역해 놓고 딴 짓해도 봉사시간 넣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장로라 할지라도 중국어 회중에 들어가려면 빽(?)이 있던지 그 쪽 장로들이 승인할 때까지 양쪽 집회에 참석해야 할 것이다.
호별 방문에 관한 기록과 출판물 숫자를 기록하는 것은 진정 여호와의 이름을 무가치하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여호와께서 손수 돌판에 기록하신 명령을 읽고 봉사 보고를 하십시요. 봉사보고를 창안하고 여호와의 증인이란 이름을 독단으로 결정하며 럿셀의 추종자들을 일거에 몰아낸 러더포드의 하수인들이여 읽어 보라!
(탈출기 20:7) 너는 너의 하느님 여호와의 이름을 무가치하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무가치하게 사용하는 자를 처벌하지 않은 채로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9-노래책2를 쓰려고 하다가 ]
대단히 정직하고 순전하신 분들의 답글들을 보고 기쁜 나머지 글을 씁니다. 형제들이여! 고맙습니다. 흔히들 배교자하면 무조건 근거없는 낭설을 토대로 하거나 자기 주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편짜기식인데 여러분들은 정직한 밀알들이십니다. 의심까지 받으면서도 정직한 속내를 드러낸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운동본부의 태도는 피켓을 들고 나갈 정도로 반워타적인데도 의심은 그냥 넘어 가지 않고 살피고자합니다.
여러분은 분명 배교자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추종자들입니다. 그리고 진리 애호자입니다. 자, 숨 한번씩 돌리고 스냅스를 가동시켜 봅시다. 두뇌 신경 세포 중에 중요한 데이터를 꺼내 봅시다. 꼭 파이오니아 모임같군요.
왜 럿셀 부인이 파수대 집필의 권리를 뺏기지 않으려고 했을까요? 러더포드가 어떤 자금으로 대궐 같은 저택을 마련하고 방송국도 만들고 축음기를 만들어 그 당시 최 첨단의 활동 사진으로 봉사를 하도록 하였을까요? (이 내용은 선포자책에도 언급됨)
1900년대의 각국의 양장본 출판물 가격을 살펴 보고 한국의 실정도 살펴 봅시다. 제가 왕국회관에 첫 발을 들여 놓을 때 만화책 방에도 자주 갔습니다. 지금은 만화책을 사서 봅니다만 그때 당시는 고가라서 극장가서 영화 보듯이 돈내고 만화책을 보았지요. 어떤 아이들은 훔쳐서 팔기도 한 시대였습니다. 학교 교과서도 훔쳐서 파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런 시기에 양장본으로 된 고급책! 정말 고급스럽고 비싸게 보였습니다. 아마 요즘에 나오는 협회 책들은 표지가 얇은 싸구려 티가 나는 것으로 바꼈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계시록 절정 책도 양장본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지금은 몇 장 넘기면 부분 부분 떨어져 나가지만 서적들은 고급이었습니다.
처음 양장본으로 “진리” 책이 나오는 날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예쁘게 생긴 특파 자매가 집에 들어 가는 쪽쪽 수십 부를 금방 전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무료로 줘도 팽겨쳐 버리지만 전설적이었지요. 돈도 뒤에 새겨진 데로 받는 것이 아니고 선한 사업의 기부금으로 내키는 데로 받는 것이죠. 기마이(?)가 센 사람들은 집히는 데로 주지 않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워치타워에서 나왔다면 기가 죽는 시절이었습니다. 워치타워를 대표해서 하면 거의 모르는 때였고 영어의 힘, 미국의 힘, 참 의기 양양했지요. 그당시 절대 여호와의 어쩌고 안했습니다. 워치 타워…참 오래전 이야기지요. 말 잘하고 세련되고 예쁜 꽃 미남들은 한달에 몇 백부씩 전합니다. 나 같이 코묻은 것 같은 사람도 몇 십부는 잘 파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보다도 더 50-60년전의 출판물 가격이 겨우 선데이 같은 싸구려 잡지에 비하겠습니까? 흠정역 성서의 가격이 그때 얼마였는지 조사해 보십시요. 답이 나올 겁니다. 가끔 저의 아버지 세대의 증인들 중에 최고의 서적 판매 왕들이 존재하였음을 지부 위원들은 알고 있습니다. 집을 장만 못 했을거라구요? 그러면 한국의 콜포처 출신이 일제 치하때 무슨 돈으로 자전거 사서 만주까지 갔었으며 유신치하의 어려운 시기에 자녀들을 미국까지 진출시킬 수 있었겠습니까? 현존하는 그 가족들이 그때의 자랑을 아직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능력 없는 특파나 정파들은 월세나 전세 살지만 순감된 뒤 집을 소유한 사람이 없을까요? 서적하고 순감을 왜 연관시키냐고요? 능력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거의 대부분은 양심적으로 일해서 죽어라고 출판물 전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우상(?)이 되지요. 다단계 피라미드 회사와 같은 이치라고 생각하십시요. 겉으로는 믿음을 가장하지만 속내는 그 화려한 사람들의 목적을 나도 달성하려고 하는 그 고도의 심리를 이용했다는 말입니다.
나 역시 얼마나 그 당시에 속이 부글 부글 끓을 정도로 창피했는 줄 아십니까? 내가 방문했던 집주인에게 잘못 다시 들어간 잘 생긴 전도인이 잡지 서적뿐 아니라 1년 예약까지 맡아 나오는데 내가 죄짓는 기분이었습니다. 뭔가 충실하지 못했기에 그런 줄 알고 실연 연습 정말 겁나게 했습니다. 잡지 주고 받는 연습(집주인에게 주고 나고 잡지 꺼내 드는)에서부터 집안에 서적과 바꿀 고가의 물건이 있나 없나 현찰을 가지고 있는 능력까지 고도의 상술을 터득하려고 정말 어린 시절 그렇게 보냈습니다.
왜냐구요? 혹 봉사 보고난에 출판물 예약 건 수가 급증하여 특파로 나가길 기대했으니까요. 이정도로도 이해하시기 어려우면 양심적인 그 시대의 증인 가족이 이 카페를 들어 올 때까지 기다려 봅시다.
[10-노래책2-당신의 목이 안전하십니까?]
노래책이 국방색이었을 때 “봉사 나가는 그 날은~”하고 시작한 노래가 있었다. 곡도 그렇지만 정말 가사까지 유치해서 부르기가 창피했었다. 왜 교회 노래들은 심금을 울리도록 부르기가 좋은데 이럴까? 그런 중에 빨간 노래책이 나오면서 곡도 많고 테이프로 들으면 제법 그럴 듯 했다. 그런데 이 노래도 가정 서적 연구때 부르면 엉망이 되고 dog판이 되는 것이다.
지금의 증인들은 무슨 서적 연구때 노래를 부르냐?하고 의심할 테지만 그때는 그랬다. 녹음기가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음치들이 모여 부르면 상상해 보라. 학교 수업도 제대로 못 받은 사람들이 음정을 맞출 수 있는 여건도 갖추지 못했으니 창피해서 웅얼거리는 사람, 배짱 좋게 크게 되는 데로 소리지르는 사람, 입만 벌리고 눈치 보는 사람 참으로 가관이었다.
저녁 7시 30분에서 8시면 사람들이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난데 없이 괴상한 노래가 온 동네를 놀래케 하니 이웃들이 가만 있겠는가? “조용하라”는 소리가 노래 끝나고 시작 기도 내내 들려 오는데 창피하기 그지 없었다. 집회 마치고 또 부를 때는 모두가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믿지 않는 남편을 둔 집에서는 제발 노래만 생략하고 공부들만 하면 안되겠냐고, 남편이 동네 창피하다고 사정 사정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구냐? 하나님의 우주 주권 공사 대리들이 아니냐? 끝까지 용감 무식하게 부르다가 집회 장소마저 취소되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80년대에 개정을 거쳐서 지금의 진흙 색으로 된 노래책을 선물로 받았다. 선물로 준 통치체는 입에 거품을 물고, 부르기 좋고 이 세상 어떤 오케스트라에 뒤지지 않은 곡이라며 지금도 자랑하고 있다. 이 역시 봉사 보고처럼 우리의 정신 세계를 갉아 먹고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믿지 않으신다면 계속 들어 보십시요.
80년대에 자녀가 대학교 교육을 받으면 그 가정의 수장은 장로직에서 쫒겨남과 아울러 죄인이 되는 시대였다. 그런데 1975년의 종말론 시대가 지나자 80년대 뒤 늦게 서울 대학교 음대를 들어가 나중에는 미국 유학까지 마치고 한국에서 교수로 일하는 한 형제가 있다. 그는 지금 2자녀의 아버지로써 장로로도 일한다. 유학을 마치고 결혼한 후 교수로 일하면서 1990년대 어느 회중과 연합하였다. 그는 유학 생활에서나 지금까지 무활동으로 들어 간 적이 없는 모범적인 형제였다.
그런데 해병대 출신임을 자랑으로 아는, 도시 감독자를 겸한 주임감독자가 있는 회중과 연합한 것이다. 이 러더포드같은 주감은 툭하면 봉종들의 쪼인트를 까는 것으로 유명했었다. 거짓말 같지요? (한 두명이 당한 것이 아니라니까요.맞아 봐야 알아요?) 음대 교수형제는 연단 마이크의 종부터 시작했는데 회중의 구질 구질한 일은 모두 그 형제 차지였다. 그 세속적인 일에 걸맞게 연단에서 콘덕터로 음악을 지휘하거나 확성 음향 장치를 맡겼어야 어울릴텐데 그렇지 않았다.
도감&주감형제는 음대교수 형제가 70~80년대를 거쳐 증인 생활을 할 때 이방인으로 자랑스럽게 해병대까지 제대하고 돈 벌어 증인으로 들어 오면서 고속 승진을 한 사람이었다. 도감&주감형제는 음대 교수형제를“대학을 진학했다는 이유”로 반역자 취급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음대 교수형제 앞에서 “통치체가 만든 음악이야 말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며 부르기 쉬운 노래라며 서울 대학교를 나와 유학을 통해 교수가 되더라도 작곡할 수 없는 최상의 노래라며 아예 무시했다.. 이 도시감독자가 쫒겨 갈 때까지 이 형제 참 무시도 많이 받았다.
그런 후에 장로로 추천 받아 나하고 일하게 되었을 때 이화여대 음대를 나온 자매와 의견을 나눈 자리에서 협회가 만든 음악에 대한 평가를 들었다. 두 사람 모두 오랜 증인이면서 전문 음악인이였음을 전제로 여러분도 판단해 보기 바란다.
“노래라는 것은 누구도 따라 부르기가 쉬워야 하고 몸에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다.”"그런데 협회가 만든 음악은 인간의 성대 구조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귀로 들어야만 되는 노래라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오케스트라의 악기에만 맞춘 음악이라는 것이다.”결론은“큰 바벨론이라는 거짓 종교와 크게 구별하기 위해 만든 것 같다”였다.
내가 왜 다른 노래는 잘 나오는데 협회의 음악을 제대로 따라 하려면 목이 아프고 성원들 모두가 수십 년이 되어도 괴성을 지르는지 깨닫게 된 것이다. 만약 이 사실을 확인하려면 회중의 확성 장치가 고장이 나거나 전기가 나갔을 때 부르는 괴성을 녹음해서 음악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보라. 아니면 직접 부르시던가-음악 전문가 앞에서- 그래도 목이 안 아프면 당신은 기계다.
어느 땐가 지역 대회장 구석에서 자매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참 음이 높은데도 화음들이 잘 맞고 있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저 분들의 성대가 오늘 저녁에 무사할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아모스 5:23)
내게서 네 노래의 소란한 소리를 치우고 네 현악기의 선율이 내게 들리지 않게 하여라.
[11-저의 글 1-10번까지 읽어 주신 분들께 그리고 워타 프락치들께 ]
100명이 넘는 분들이 저의 글을 읽어 주셔서 우선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쯤에서 제가 갑자기 글을 올린 이유를 밝히고자 합니다. 그동안 쭉 4가지의 카페를 몇 개월 살펴 보고 있었습니다. 각각 카페의 성격이 다르고 글을 올리시는 분들의 취향도 살펴 보게 되었지요.
그런데 교리 문제를 다루시는 분들이 많고 자신의 생각이 아닌 협회의 의도대로만 주장하는 분들도 가끔 등장하는 일도 보았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50년이상 조직 생활을 하다보니 공통된 느낌과 생각이 있어서 한 말씀 드립니다.
워타(워취타워)에 들어 와서 3년만 활동하다 보면 어떤 것에 누구든지 지겨움을 느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무슨 말인지 감이 잡히십니까? 회중 집회를 참석하거나 각종 대회를 가거나 똑 같은 이야기들 말입니다.
활동에 대한 반복 교육-집회참석,가족연구,개인연구,호별방문,비공식봉사,재방문,성서연구,관계에 대한 반복 교육-머리직분,장로로써,봉사의종으로써,파이오니아로써,아버지,어머니,자녀로써 교제하는 것(배교에 관한 것) 이 외에는 각종 경험담입니다.
어떤 모임의 연설이든지 이 테두리 안에서 시작되고 끝납니다. 정말 지겹지 않습니까? 어느 누가 들어주지 않으니 신권전도학교에서나 봉사회때나 십자가,삼위일체,지옥불,마지막 날 같은 기본 교리로 네가 옳으냐 내가 옳으냐 하며 집주인과 전도인역을 번갈아 맡아서 자기들끼리 세월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지겹지 않습니까? 한 종교 조직의 형태와 발전 모습을 보면, 모든 형태의 종교 조직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헌금도둑질은 어느 종교에나 있고,간음,음행 역시 어느 종교의 교직자나 신도도 저지르고 있습니다. 살인,낙태,성직매매,뇌물,사기,폭행,다툼 역시 마찬 가지로 똑 같은 모습입니다.
그런데 유독 워취 타워만 유일한 신권 조직이라고 주장하면서, 내밀이란 명분아래 신도들의 모든 행위를 숨겨가며 속박시키는 제도를 교묘하게 그물짜듯이 만들었기 때문에 그 죄가 크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수뇌부들도 똑같이 밥 먹고 쉬야내지 응가까지하며 쌈박질들을 일쌈으면서도 유일하게 선택 받은 적은 무리라고 군림하고 있기에 까발리려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미운 것입니다. 사람이 죽어 가는데도 복잡한 면책 각서 만들어 놓고 양심을 시험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 제도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경험을 통한 사실을 밝히고자 합니다. 먼저 봉사보고 기록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잘못되게 하는지, 음악 활동 같은 것도 사람을 생각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대외 선전용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수하게 마음의 느끼는 데로 누구나 쉽게 부르도록 해야하는데 사람은 기괴하게 소리내게하고 기계만이 웅장하게 울리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 너무나 얄밉습니다.
이제 부터는 내밀에 붙여진 장로 수뇌부들이 반 성서적으로 행한 사례들을 하나 하나 언급할 것입니다. 결코 사랑하는 여호와의 증인인 보통 사람들을 비난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그 속에 저의 자식과 집사람,부모님,친척들도 섞혀 있는데 어떻게 비난합니까?
수뇌부들 밑에서 신음하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 관련된 범법자가 있다면 "앗 뜨거"라할 것이고, 모르고 속고 있었던 사람들은 그들도 똑 같은 응가쟁이구나고 안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쪼록 저에게 교리 문제가지고 혹은 조직을 들먹이면서 비아냥거리는 답글을 달지 않도록 해 주십시요. 조직을 들먹이는 그가 배교자입니다. 이 카페 출입한 그 자체가 배교로 보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는 내밀에 대한 책임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과거 히틀러의 부도덕한 명령을 따르지 아니한 수뇌부 장교처럼 만인의 양심과 하나님께 책임을 심판 받고자 합니다. 경험여부의 실상을 물어 보는 것은 환영합니다. 그것은 관계된 분들이 증명도 하고 들었던 분들이 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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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천불아님, 수고하셨네요. 이런 분들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분노가 끓어오릅니다. 무너질 바벨론, 증인조직 그리고 워치타워...분개합니다.
좋은 글 감사힌ㅂ니다 일찍 알았어야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