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의 전통 공양간을 그대로 재현한 닥종이 인형 모습. 아래 불교신문 자료사진 |
지난 2009년 종단은 사찰음식조사단을 발족하고 사찰음식전문점인 ‘발우공양’을 개설했다. 사찰음식 대중화의 본격적인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여기에 더해 같은 해 수원 봉녕사에서 열린 ‘대한민국 사찰음식대향연’은 당시 대통령부인까지 참석하면서 세간 속에 사찰음식의 존재를 각인시킨 것으로 평가 받는다. 그로부터 5년, 40여 개소의 음식점과 백화점 문화센터까지 더하면 50여 강좌 개설이 사찰음식의 현주소다. 짧은 기간 동안 거둔 괄목할만한 성장이다.
일본 사찰음식 ‘정진요리’
한국은 ‘수행식’ ‘해탈식’?
불교형 인재양성 ‘중요’
문화사업단, 내년 상반기
자격인증제도 실시 계획
현장학습 강좌 강화
템플스테이 최대 활용
정신적 가치ㆍ방향 정립해야
지난 6월 서울 봉은사에서 열린 2013 사찰음식대축제. |
‘비싸다. 쉽게 접할 수 없다. 맛이 없다…’ 이 또한 사찰음식의 현재 모습이다. 웰빙을 거쳐 힐링이 각광받는 시대에서 사찰음식은 기존의 오염된 먹을거리를 극복할 대안으로 떠오르며 성장해 왔다. 지난 5년간의 성장은 양적인 면에 집중돼 왔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찰음식을 접하도록 하는데 치중하다보니, 정작 가장 중요한 정신과 가치는 크게 두드러지지는 못했다. 이제는 질적인 내용을 채워야 할 때다.
때문에 대중화의 방향도 다시 정립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술이나 기능을 넘어 정신과 가치를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찰음식이 제대로 대중 속으로 전파되려면 그 속에 담긴 정신과 가치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사찰음식은 수행음식이다. 우유 및 유제품을 제외한 모든 동물성 식품과 오신채라고 하는 매운 맛을 내는 다섯 가지 채소, 파 마늘 부추 달래 흥거를 금하는 것이다. <열반경>에 ‘육식은 자비의 종자를 끊는 것’이라는 데서 살아있는 생명을 내 몸과 같이 여기는 자비사상이 녹아 있다. 음식 맛을 더해주는 향신료인 오신채는 맛에 대한 작은 집착이라도 일어나 수행에 방해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해 금지한 것이다. 집착에서 벗어나 모든 생명들이 서로 의지해서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고 조화롭게 세상을 만드는 수행정신이 담겨져 있다.
자연음식이다. 인공조미료를 쓰지 않고, 자연재료로 만든 천연조미료를 사용한다. 또 사찰음식은 제철이 지난 후에도 먹을 수 있는 저장음식이며, 발효음식이자, 친환경 건강음식이다. 사찰음식에 담긴 정신은 발우공양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발우공양의 정신은 첫째 평등사상이다.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두가 차별 없이 똑같이 나눠 먹는다. 둘째 청결사상이다. 먹을 만큼만 덜어서 먹기 때문에 위생적이다. 셋째 청빈사상이다. 음식을 남기거나 버리지 않아 낭비가 없고, 그릇 씻은 물까지 먹음으로써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 넷째, 대중들이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먹음으로써 화합하고 단결할 수 있는 공동체 사상이다. 마지막으로 음식이 만들어지기까지 고생한 이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자신의 소임을 다하겠다는 서원으로 공덕을 성취하고자 하는 복덕사상이다.
2013 사찰음식대축제. 사찰음식 대중화를 위해 종단 차원에서 처음으로 개최한 행사다. |
이같은 정신과 가치는 사찰음식의 대중화에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 사찰음식이 일반 음식과 구분되는 우수성이자 차별성이기 때문이다. 이를 살리지 못하면 사찰음식은 그저 좋은 먹을거리 정도로 치부될 위험성이 있다. 때문에 사찰음식에 ‘문화’가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최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김장문화’가 좋은 사례다. 대전 영선사 법송스님은 “대중화는 식생활과 식습관 변화 운동으로 나가야 한다”며 “밥과 반찬 등 밥상이 아닌 정신과 사상이 차려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레시피나 먹을거리는 유행을 타서 사라지거나 수그러들 수 있지만, 문화는 지속가능해 오랜 수명을 담보할 수 있다. 현재 사찰음식 강좌는 레시피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론 수업도 하고 있지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불교를 이해하는 속에서 사찰음식을 접할 때 정신과 가치가 구현돼 문화로 인식될 수 있다. ‘발우공양’ 대표 대안스님은 “음식만 먹이면 의미가 없으므로 정서적인 스토리의 바탕이 있어야 한다”며 “부처님 가르침과 마음이 우선이며 문화와 수행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찰음식 강좌에 현장학습을 강화하고 사찰음식 템플스테이를 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불교사상과 문화를 익히면서 사찰음식을 배우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예도 주목할 만하다. 일본은 사찰음식을 ‘정진요리’라고 칭한다. ‘정진(精進)’이라는 이름 속에는 불교, 전통문화 등이 내포돼 있다. 한국의 사찰음식도 ‘수행식’이나 ‘해탈식’ 등으로 명칭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여기서 비롯된다. 대중화의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주도권 획득이라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지금 사찰음식을 올곧이 인식시키지 못하면 불교와 전통문화로서의 위상이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의 반영이다.
하지만 대중화를 새로 쓰는데 있어 난관도 적지 않다. 방향에 대한 이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대적인 변형을 허용할 것인지, 어느 정도 가격이 적정한지, 사찰이 아닌 외부에 음식점을 개설하는 문제까지 의견이 엇갈리고 있고, 주무부서인 불교문화사업단도 아직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중화의 방향을 재설정함에 있어 먼저 사찰음식 관계자와 기관들의 대중적인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개인 입장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사찰음식 전체 발전을 위해 마음을 모으는 지혜가 요구된다.
사찰음식 대중화의 가장 바람직한 방향은 인재양성이다. 불교계가 바라는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 중요하다. 불교문화사업단은 내년 상반기 중에 자격인증제도를 실시할 계획이다. 종단이 공인하는 자격증을 통해 인재를 배출함과 동시에 주도권을 갖겠다는 복안이다. 김유신 불교문화사업단 사찰음식팀장은 “자격제도를 바탕으로 전국 140여개의 조리관련학과와 업무협약을 맺어 강사를 파견하는 노력으로 종국에 전공학과가 개설되면 사찰음식은 대중 속에 오랫동안 깊이 머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찰음식이 템플스테이와 함께 불교와 종단의 발전, 나아가 국가 이미지 제고를 도모할 수 있는 ‘신성장동력’으로서 재평가 받아야 할 시점에 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경전으로 본 사찰음식
‘도업’ 성취 위한 ‘약’
고기 섭취는
‘자비 종자’ 끊는 것…
사찰음식의 본래 진면목은 경전에서 찾을 수 있다. 사찰음식과 관련한 가장 대표적인 경전 문구는 ‘오관게’다. ‘이 음식이 올 때까지의 공덕을 생각해보니/ 덕행이 부족한 나로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을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기 위한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오관게에는 사찰음식의 정의가 집약돼 있다. 음식이 내게 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고를 생각하는 연기적 사고와 자기를 스스로 낮추는 하심(下心), 맛을 탐닉하는 것이 아닌 최소한의 약으로 삼는다는 자세, 수행자로서 반드시 깨달음을 얻겠다는 원력이 담겨 있다.
사찰음식에서 육식이 금지되는 이유도 드러난다. <입능가경> ‘차식육품’에는 “세존이시여, 저는 세간의 나고 죽는 데에 유전하며, 원결(怨結)이 서로 연속하여 모든 악도에 떨어지는 것은 모두 고기를 먹으며 번갈아 서로 살해함으로 말미암아 탐내며 성내는 것을 증장하여 벗어남을 얻지 못하고, 심히 큰 괴로움이 된 것이라고 관찰했습니다. 세존이시여, 고기를 먹는 사람은 큰 자비의 종자를 끊는 것이니 성도를 닦는 이는 마땅히 먹지 않아야겠습니다.” 이는 불교의 첫 번째 계율인 불살생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먹어도 되는 고기도 있다. 부처님 당시 탁발문화로 신도들이 바치는 공양물에는 고기도 들어있었을 터. <사분율>과 <십송률> 등에는 이를 정해놓고 있다. 삼종정육(三種淨肉)과 오종정육(五種淨肉), 구종정육(九種淨肉)이 그것이다. 자신을 위해 죽이는 것을 직접 보지 않은 짐승의 고기, 남으로부터 그런 사실을 전해 듣지 않은 것, 자신을 위해 살생했을 것이라는 의심이 가지 않는 것이 삼종정육이다. 여기에 수명이 다해 자연히 죽은 날짐승과 들짐승의 고기나 맹수나 오수(鳥獸)가 먹다 남은 고기를 더해 오종정육이라 했다. 자신을 위해 죽이지 않은 고기, 자연히 죽은 지 여러 날이 돼 말라붙은 고기, 미리 약속함이 없이 우연히 먹게 된 고기, 일부러 죽인 것이 아니라 이미 죽은 고기 등이 더하면 구종정육이 된다. 아홉가지 고기 모두가 살생을 막고자 했던 원칙은 그대로 녹아 있다.
경전에서 음식은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약이라고 강조한다. <초발심자경문>을 보면 “음식을 먹을 때는 씹고 마시는 소리가 나지 않게 하고, 그릇이나 수저를 들고 놓을 적에 반드시 조심스럽게 하고, 얼굴을 들어 돌아보지 말며, 맛있는 음식만 좋아하고 맛없는 음식이라고 싫어해서는 안 되며, 말없이 침묵을 지켜야 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밥을 먹는 것은 다만 몸이 쇠약해지는 것을 막아 도를 이루기 위한 것인 줄 알아야 하며, 반야심경을 생각하되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주는 물건이 모두 청정한 줄로 보아서 도 닦는 데 어그러짐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선불교로 넘어와서도 음식에 대한 개념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쓰는 점심(點心)도 선불교에서 비롯됐다. ‘마음에 점을 찍는 듯한 양의 식사’를 말하며 적게 먹는다는 뜻이다. 저녁을 ‘약석(藥石)’이라 했는데, 추위와 허기를 달래는 돌이라는 의미로 이 역시 아주 적은 양을 먹는 것이 상례였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백장청규가 반영된 것이다. 이렇듯 음식을 내 몸을 치료하는 좋은 약이라고 여기면 맛을 우선시하고 미각의 만족을 추구하는 생각이 사라지게 된다. 맛을 추구해 잊고 있었던 감사와 공경, 자연과 함께 하는 생활과 음식재료 고유의 효능, 건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경전에서 강조되고 있다.
[불교신문2972호/2013년12월21일자]
첫댓글 기회가 주어지면 가끔 발우공양을 해보면 , 여기에 나오는 생각이 많이 달라질것 같애요.
불교대학에서 한번쯤 해 보면 좋은것 같은데 힘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