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
신유의 이적
신 권사는 미국에 있는 자녀들을 만나러 가려고 꿈에 부풀었는데 갑자기 어지럼증이 생겼다. 일어나면 머리가 빙빙 돌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러지 않아도 좌우 대퇴골 골절로 걸음을 못 걷게 된 지 2년이다. 이제 다시 넘어져 고관절 골절이라도 하게 되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여서 조심하는 중인데 어지러우니 일어서 걷기가 무섭다. 늘 가던 이비인후과로 문의했더니 이석(耳石)증은 아니고, 계속 어지러운 것 같지는 않다니 신경 안정제를 먹어보라고 처방해 주어 3일간 복용했는데 아무 효과가 없었다. 남편은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영양제를 과복용할 때 생기는 부작용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혹 이번 보건소 처방이 다른 약으로 바뀌었는데 그것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해서 그 약을 중단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무 효과가 없었다. 아내의 12년 후배인 의사가 있었는데 그녀는 요양원 병원 원장이었다. 그 후배에게 물었더니 이제 어지럼증이 생기는 나이라면서 자기도 가끔 어지럽고 또 요양병원에 있는 노인들은 늘 어지럼을 호소해서 ‘보나링 A’ 정을 처방해 준다고 했다. 가까운 병원에서 처방해 받아 먹어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약을 처방해 먹었더니 신기하게 먹고 나면 한두 시간 뒤에는 어지럼증이 말끔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하루에 3정까지 먹을 수 있는 것이라는데 아침, 저녁 두 차례만 먹었다. 문제는 그 약을 끊으면 또 어지러웠다. 처음 약을 처방해 준 이비인후과에서는 그 약은 어지럼증을 치료하는 약이 아니고 이 약이 한순간 신경을 마비시켜 어지럼증을 잊게 하는 것뿐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오래 복용하면 후유증이 생길 수도 있어 장기복용을 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또 께름칙하여 몇 번 약을 먹지 않고 견뎌보려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샤워할 때는 남편을 불러 침실에 앉아 자기 샤워가 끝날 때까지 대기하라고 당부했다. 교회도 나갈 수 없었는데 남편이 혼자 가버리면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불안하였다. 그뿐 아니라 장기복용이 또 어떤 후유증을 가져올지 걱정이었다. 후배에게 그런 걱정을 털어놓았더니 약이 안 들으면 문제지만 먹고 나면 어지럼증이 없어진다니 무슨 걱정이냐고 그녀는 말했다. “이건 치료제가 아니고 일종 마약 성분의 진통제가 아니야?” 그러자 그녀는 “언니, 언니 나이가 지금 몇 이유. 얼마나 더 살고 싶어 후유증을 걱정하우?” 이러는 것이었다. 하긴 그렇다. 어지럼증이 사라지면 그것으로 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후유증과 상관없이 먹기로 했다. 오래 살고 싶지 않다는 게 신 권사가 늘 하던 말이었다. 그러나 어지럼증은 뇌로 가는 혈관이 좁아져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생긴다는데 그러다가 뇌 기능이 약해져 언어 장애가 오거나 치매로 발전하면 어쩔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또, 걱정되는 것이었다. 밖에 시원한 공기라도 쐬고 싶지만, 2년 이상 집에만 있어서 이제는 밖에 나가는 것도 무서웠다. 애들은 다 외지에 있어 남편과 둘이 살고 있어 소일거리라고는 TV밖에 없다. 요즘은 연속방송도 재미가 없다. 젊은 애들이 하는 짓을 잘 이해도 못 하겠고 거기 옛 배우들이 어머니나 할머니로 나오면 그 역할도 꼴불견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겠다.
아파트에 살고 있어 유선 방송으로 여러 가지 채널을 갖고 있었지만, 신 집사네는 셋톱 박스를 설치해서 채널이 더 풍성했다. 연속극의 재방송, 쇼핑, ‘세계 테마 기행’, ‘나는 자연인이다’, ‘동네 한 바퀴’, 각종 운동 중계, …. 신 권사는 특히 골프 채널을 좋아해서 운동선수 이름과 수상 이력을 많이 알고 있다. 요즘은 예배도 온라인으로 드리는데 대부분 유튜브로 방영하고 있어 TV의 대형 모니터로 볼 수 있다. 교회에 가지 않아 편했고 교회는 자막이 잘 안 보이고, 또 음성이 잘 안 들릴 때가 있는데 집에서는 그런 불편이 없었다. 또 예배 전에는 준비 찬양으로 따라 부르기 어려운 복음성가를 부를 때는 듣고 있기도 힘들었는데 적당히 음량을 줄여 놓을 수도 있다. 목사가 알기 어려운 설교를 하고 있으면 유명한 다른 채널의 목사 설교도 들을 수 있다.
온라인 예배 때는 남편이 설치해 놓은 Chrome Cast를 통해 예배를, 특히 유튜브 방송들도 핸드폰이 아닌 대형 모니터로 볼 수 있다. 최근에 그녀가 유튜브로 보게 된 것은 세계적인 부흥강사 조용기 목사의 옛날 설교들이었다. 그가 2021년 9월에 뇌출혈로 입원하여 소천하게 되자 그의 과거 설교 영상들이 많이 쏟아져 나와 있었다.
한번은 ‘강단교류 5, 보혜사’라는 제목으로 조용기 목사가 사랑의 교회에 와서 설교했던 것을 보게 되었다. 장로교 보수적인 교단에서 순복음 교회의 목사를 초청했다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조 목사는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 70만 명이 모이는 교회의 목사였다. 세계적인 부흥강사로 브라질에 가서는 집회 인원이 너무 많아 강단에 갈 수가 없어 헬리콥터로 강단에 섰고 끝날 때도 헬리콥터로 퇴장한 분이다. 그가 신유(神癒)의 은사를 받게 된 것은 1958년 불광동에 천막 교회를 세웠을 때였다고 한다. 당시 모여든 사람은 예수를 믿고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굶주리고 헐벗고 잠자리가 없고 병든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때 전도사였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불신자를 전도해서 구원받은 신도를 만드는 일이 아니고 교회랄 것도 없는 자기 거처에서 그들과 함께 먹고 자고, 병자를 돌봐주는 일을 할 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 번은 앉은뱅이가 얼음판에서 갖고 노는 나무판 같은 곳에 앉아 버스를 타고 또 내려서 쇠꼬챙이로 나무판을 밀고 서울역에서 아침에 출발하여 밤이 되기까지 수고해 이곳 개척교회를 찾아 왔다며 자기를 낫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그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니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댔는데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자기는 믿는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조 목사는 용기를 내서 머리에 손을 얹고 베드로처럼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소리쳐 외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두려움 가운데 따로 떨어져 기도하기 시작했다. 몇 시간을 기도했는지 방언으로 기도하던 중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며 무엇이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성령 충만의 은사를 체험했다고 한다. 그는 앉은뱅이 앞으로 가서 머리에 손을 대고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라고 외쳤다는 것이다. 조 목사 특유의 언변으로 청중을 웃겨 감동케 하며 평생 처음으로 행한 신유의 은사 이야기를 했다. 그때가 26살이었는데 그 뒤로 3년 만에 교인은 500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설교를 같이 듣던 남편은 조 목사는 타고난 설교자라고 말했다. “설교란 설교 문을 준비해서 그것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로 자신을 준비하여 그를 전하는 것이다.”라고 조 목사는 말했다. “말씀을 먼저 자신에게 적용하여 변화를 경험하지 않는 설교자의 설교에 성도들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라고도 말했다. 신 권사 생각에도 조 목사는 성경 말씀을 가르치는 설교를 하지 않고 그 성경 말씀을 체화(體化)하여 사는 삶을 보임으로 먼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주님을 느끼게 한다고 생각했다. 두 시간 가까운 설교를 심취해 들었다.
설교가 끝나고 기도 후 조 목사는 누구나 아픈 사람이 있으면 앉은 자리에서 그 아픈 곳에 손을 얹으면 나을 거라고 말하며 조 목사 특유의 빠른 음성으로 기도를 시작했다. 신 권사는 무의식중에 머리에 손을 얹었다. 어지럼 증상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유튜브를 통한 조 목사의 설교가 끝난 뒤 신 권사의 어지럼 증상이 사라졌다. 이제는 세상을 떠난 조 목사가 유튜브로 자기에게 신유의 은사를 행했다는 것인가? 믿을 수가 없어 하루가 지난 뒤에 신 권사는 조 목사의 기도 후 어지럼증이 사라졌다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유튜브를 통해 돌아가신 목사가 병을 낫게 해 주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며칠을 지나도 어지럼증은 나타나지 않았다. 신 권사는 “정말 돌아가신 분이 어떻게 신유의 은사를 행했는지 모르겠다”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그러자 남편은 큰 소리로 말했다.
“여자여,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도다.”
그런 뒤, 두 사람은 함께 “아멘”하였다.
창조문예 5월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