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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고 21회 동기회 원문보기 글쓴이: 박관식
이스라엘의 전쟁과 종교
이스라엘의 텔아비브(Tel Aviv)!
The Jerusalem Post 일간지가 또 하마스나 PLO의 지하드(Jihad, 성전)로 여기 저기서 폭탄이 터져 사상자가 생기고, 이에 이스라엘은 대량 보복한다는 기사를 때릴 것 같은 긴박한 곳이다.
이번 이스라엘에 오기 바로 전날도 가자 지구에서 주변 이스라엘 도시에 로켓을 쏘아서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텔아비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이란의 원자력 단지의 이스라엘 공습이 임박한 심각한 상황의 가장 위험한 나라이스라엘에 간다.
이번 여행은 시장개척이라는 면에서, 13억 명의 아랍국가들이 “Israel Boycott” 동맹에 의한 한국의 이스라엘 진출에 한계 등으로, 그리 편한 여행은 아니었다.
12시간의 비행 후 도착한, 텔아비브에 발을 디디는 순간 정말로 조용한 도시에 놀랐다. 무역관에서 나와 간단한 설명을 하는데 서울에서 말하는 분위기와는 많이 달랐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30분 정도 스치는 그 어느 곳도 위험을 느낀 곳이 없다. 우기가 시작하여 처음 비가 오고 있단다.
첫날밤을 지나고 파도 소리에 깨어 새벽 바다를 베란다에서 바라보았다. 지중해의 잔잔한 바닷물이 해변을 줄지어 다가온다. 포개지면서 도미노 식으로 하얀 포말을 내 쏟는다. 붉게 떠오는 태양빛을 살포시 머금고 되 반사하는 잔잔한 파도는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다.
이곳은 프랑스의 베니스다. 지중해의 전형적인 해안가이다. 마음이 푸근하다.
이른 아침인데 수영이나 서핑에 열중인 사람들이 눈에 띈다. 호텔의 수영장에서도 수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천천히 몇 키로는 되어 보이는 기다란 해변가를 산책을 하고 있다. 강아지들도 제법 즐겁게 물속을 오가며 뛰어 놀고 있다. 여기가 중동의 화약고인가?
그 어느 곳에서도 전쟁의 흔적이나 낌새를 찾아볼 수가 없다. 조간 신문인 The Jerusalem Post의 긴장을 부추기는 단편 기사만을 제외하고는 긴박감을 전혀 느낄 수 없다.
너무나 깨끗하고, 잘 정돈된 현대식 도시는 골란 고원의 깊은 맛을 내는 포도주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너무나 많다. 가격은 좀 비싼 편이다. 이스라엘은 너무나 풍부한 과일을 생산하는데 당도마저 아주 높아 외국에 수출을 많이 하고 있다. 우선 내가 처음 발을 디딘 텔아비브(Tel Aviv)는 평화롭고 풍요가 넘친다.
걱정했던 마음이 모두 기우라고 생각되며, 마음이 차분히 가라 앉는다.
베란다 하얀 의자에 앉아 이번 일주일 동안 처음으로 경험하게 될 이스라엘 여행을 그려본다. 어떠한 상황이 내 앞에 전개 될 것인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Tel Aviv 인근도시 Herziliya의 The Sharon Hotel 내 방의 베란다에서 한가로운 첫 아침을>
2011년의 가을은 하얀 한지에 떨어진 한 방울의 수채화 물감이 퍼져가듯 북쪽에서 남쪽지방으로 빨리 흐르는 도미노 방식의 단풍 물결은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어느 해보다 더 곱디 고운 단풍이, 사과 한입 베어먹은 것처럼 이미 전국에 일제히 조금씩 물들어있었다. 새삼 놀라와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테헤란 대로의 제법 수령이 된 느티나무들도 이미 군데군데 멋지게 단풍이 들고 있었다.
언제부터 단풍이 들기 시작하였을까?
그렇게 이미 시작된 푸른 잎들을 화려하게 변색시켜 가는 모습을 감사하게도 나는 부인과 함께 몇 번 지방으로 단풍놀이도 갔었다. 그러나, 올해는 아쉽게도 그 아름다운 클라이맥스를 함께 보지 못하게 되었다. 절정은 꼭 보아야 하는데……
시작을 해서 절정에 도달하면 다시 내려와야 한 주기가 된다. 그렇기에 만개 된 단풍을 못 보게 된 2011년의 미완성은 다음을 위해 남겨둔 가을거지인가?
다종교의 나라 “이스라엘(The State of Israel)”에 업무출장을 다녀오게 되었다.
겹쳐진 개인적인 정례 태국여행은 먼저 계획 된 것이지만, 나의 ‘선택’과 ‘집중’은 이스라엘이었다.
살아오면서 이러한 결정의 연속은 항상 부인과 가족에게 너무나 미안한 감을 쌓아 놓았다. 오죽하였으면 작년 아들 결혼식 날도 아침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였을까……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본처 아들이냐고 농담을 걸어왔었다.
또한, 이번 여행은 업무 우선이라기 보다는 역마살이 많았던 나에게도 처음 가보는 나라이기에 또 다른 기대가 많았기 도 하였다.
이스라엘!
무엇인가 나에게 역사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보라는 명을 받은 기분이다.
선택은 희생이 따른다. 작게는 이미 나의 태국 행 Ticketing이 되어있어서 취소비용 50,000원을 지불해야 했고, 큰 문제는 부인과 함께 여행도 못하게 되어 나의 부인은 현지에서 독방 신세가 된다. 일행 남편들이 나의 부인을 책임진다고 하면서 몹시 서운해한다. 그런데 무엇을 책임진다는 말인가?
작년도에 요르단에 몇 번 다녀오면서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육지인 “사해(Dead Sea, 해수면 아래 390미터)”을 보았다. 기다랗게 펼쳐진 소금바다인 사해 건너편이 이스라엘이다. 사해에는 배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국경수비대 작은 배가 있다지만 보이지 않았다.
건너가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으니 총을 맞는다고 한다. 총을 쏜다는 이스라엘은 어떠한 나라일까?
이스라엘은 근년에는 포로교환 문제가 Hot Issue이다. 이스라엘인 포로를 자국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엄청난 상대국 포로를 돌려주고 있다. 한 명의 국제 조난사고에도 포기하지 않고 엄청난 장기간 수색을 계속한다.
국가의 강력한 국민 보호는 이스라엘 국민은 더 단합을 만든다. 국가가 나를 잊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마침 우리나라 정가에도 요즈음 납북 국군을 포함한 우리 국민을 이북에서 데려오는 운동이 Hot Issue가 되었다. 전체 장관들이 “물망초” 푸른 꽃 뺏지를 달고 다닌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물망초의 꽃말은 “Forget me not”.
그리고 최근에 히말라야 산에서 조난 당한 우리나라 산악대원들에 대해 생존 기간 이상 수색 중이다. 또 다른 사고를 수반할 위험한 구조활동을 하고 있는 수색조의 검게 탄 얼굴에서 나는 민족의 동질감이 묻어나오며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스라엘과 한국은 나름대로 공통점이 많다. 5,000년이란 오랜 역사(이스라엘은 아담이 흙으로 만들어진 BC 3761년 기준으로 올해 5772년, 한국은 단군이 탄생한 BC 2333년을 기준으로 올해 4344년)의 단일민족이다.
또한 많은 외세 침입을 받았고 이에 대한 굴욕을 인내와 끈기로 살아남았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의 것이다.
양국의 국민은 근검과 도전의 민족정신의 저변에 깔려 있었기에 지금 발전된 모습을 이룩하게 되었다. 현재의 양국의 위상은 그러한 역사 속에서 가장 화려한 시대로서 대변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도 역사 속에 가장 큰 번영과 영토를 확보하고 있으며 대 중화권에 한국을 넣으려고 하고 있다. 더 큰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다.
경계해야 할 것은 중국 외의 개발도상국가인 자원 보유국들도 놀라운 경제발전을 시작하면서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를 위협하고 있다. 그 대열의 국가들이 하나 같이 지속적인 8%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선진국 형으로 2%대도 유지가 어렵게 되고 있다. 추락은 순간이다.
어쩌면 지금이 역사적으로 우리의 생존에 대해 가장 심각한 위기감을 느껴야만 할 때라고 본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하지만, 한번 부러진 날개는 땅으로 내려 앉는다.
예를 들어, 또 다른 관점에서 법정소송에 들어간 삼성전자가 애플에 패한다면 우리경제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작금의 한미FTA(KORUS FTA)의 ISD(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가 과연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파탄을 가져올까? 반대하는 사람들이 여당이라고 가장하면 계속 반대할 것인가?
선진국 대열에 올려 놓은 우리의 조국을 다음 세대들에게 어떻게 넘겨 주어야 하는 것이 숙제가 되었다. 아니 이미 열쇠는 모두 넘어갔다고 본다. 그저 말없는 후원과 지원을 하는 것만이 우리의 몫인지 모르겠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서 이미 화살은 우리의 손을 떠난 것을 느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것도 긍정적인 모습으로 바라보기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내가 나이가 들긴 들었고, 다행히도 곱게 늙고 있는 모양이다.
안정과 보수의 입장에서 이제는 또 다른 도전에 대한 준비와 싸움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새로운 힘을 젊은이들에게서 보았기 때문이다.
모든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조국”과 어떤 분야이건 간에 자신의 일에 대해 “프로”라는 두 단어다.
조국이라는 단어는 여행에서 그 누구라도 한번쯤 가슴에 각인하고 귀국하는 단어라고 본다. 프로는 어떤 분야라도 자신의 삶은 가장 값지게 하는 보석이다.
이번 이스라엘 방문은, 처음 밟아보는 지역에 대한 “여행”이라는 것과, 우리나라와 유사한 번영과 고통의 역사를 지닌“이스라엘”, 경제, 산업 도시인 “텔아비브”, 국가 수도로서 정치 도시인 “예루살렘”,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라는 작은 주제를 가지고 몇 자 적어 보았다.
<샤론 해변을 걸어 북쪽 끝자리 돌이 많은 곳까지 와서 잠시 쉬면서 지중해의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여행>
언제고 여행에 대한 감미로운 흥분은 비행기에 탑승하는 순간에 이미 반은 흘러버린다.
업무준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여행지에 관하여 먼저 맛을 본 사람들의 기록물과 경험 정보를 알아보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곳과 다른 세계의 자연, 삶, 역사, 문화 등에 대하여, 나름대로 그러한 기록을 보는 자체가 즐거움이다.
단순히 과거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미래와 꿈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미리 가상 체험을 하면서 흥분하게 되고, 또 나름대로 나에게 전개될 모습을 그리면서 흥분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과거에 대한 반추가 이미 여행은 시작 된 것이고, 여행의 반이 지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여행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은 반쪽 여행만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머지 반인 여행의 흥분은, 업무의 성공적인 달성과, 나름대로 몇 가지 좋은 경험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렇게 흥분하였던 여행으로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
나는 실제 비행기를 타는 순간에 어떤 짜증이 머리 속에 퍼져 나올 때가 많다. 편안한 집을 떠나는 자체가 불편하다. 평상시에는 모르다가 꼭 비행기를 타려 하면 또 고생이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난다.
이질감을 배제할 수 없는 외국인들의 생활 속에서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것인가를 수없이 체험했기 때문이다. 수면, 음식, 시간, 의상, 새로운 고객, 등등 새로운 코드에 맞추기가 쉽지가 않다. 설사나 치통 등 통증을 동반할 경우에는 더욱 심각하다. 나는 왜 수 많은 시간을 30,000 피트 상공 위에 있을까?
그러나, 나는 탑승 후에는 곧 그러한 불편함을 잊는다. 준비하는 과정이 즐거웠고, 준비한 것에 대한 Fact-Finding (Due Diligence) 하는 일정은 너무나 기대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마살이 가득 붙은 나의 삶에 있어서 불편함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불편함은 고추의 매운 성분처럼 일종의 고통이며 마약이다. 계속 먹게 된다.
그 많은 해외여행은 나에게 삶의 일부였고, 사실 나는 여행을 즐기고 있다.
<이스라엘>
아인슈타인을 비롯하여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하면서 세계를 움직이는 유대인들이 유독 많은 것은 그들이 머리가 우수하여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근대사의 Guggenheim(광산과 미술관), Ira Rennert(광산, 차량), 광산 신디케이트 구축한 Harold Hoschschild, 광산과 금융업의 Rothschild 등의 명성은 정말로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유대민족이 우수성보다는 아마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영토 없이 민족의 생존과 국가 건설이라는 이상을 가지고 견디어낸 의지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 유대민족보다 많은 2천만 명의 쿠르드 민족은 터키 아나톨라의 동부, 이란의 서부, 이라크의 북부 등에 걸쳐 거주하고 있으나, 독립의 희망은 없어 보인다.
이제 이스라엘은 엄청난 군사력과 정보력, 그리고 국민의 결집력으로 최강의 나라가 되었다. 오로지 이란의 강경한 발언인 핵 문제만 남았지만, 이는 결코 문제화 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핵이란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태풍의 눈인 이스라엘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진정 이들은 어떤 민족이고 어떻게 살아왔나? 앞으로 어떤 모습일까?
이곳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기만 하였고, 어느 질문이건 설명을 잘 하여 준다. 물론 그들의 이면을 짧은 시간에 알 수는 없다.
어찌 되었건 유대민족만 선택 받고, 그렇게 선한 민족일까?
며칠이 지나도 위험하다는 선입감을 가졌던 전쟁 국가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며칠 전에 멀지 않은 가자 지구에서 또 로켓을 쏘아 이스라엘 측에 사상자가 있었는데 전혀 긴박감을 느낄 수가 없다.
왜 서로 평화롭게 살지를 못하는 것일까? 종교의 싸움인가 영토의 싸움인가?
어찌 되었건 많은 한국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직접 접촉이나 거래하면서 자신들만의 그들에 대한 개인적인 정확한 생각을 가지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다. 프로로서 상대방의 진실을 파악해야만 할 것이다. 선입감으로는 국제 비즈니스가 절대 성립이 안 된다. 더욱이 이스라엘 사람들과 상거래는 어렵다.
대부분이 선입감만으로 그것이 사실이라고 확신을 하고 말하고 있다. 오류는 성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우선, 장사를 잘하는 유대민족이라 생각을 하자.
구약성서만을 성서로 인정하고 하나님이 선택한 유일한 민족이라는 데에 거부감이 있을 것이다. 머리가 좋아 노벨상을 가장 많이 받은 민족이고, 세계의 자금을 쥐고 있고, 미국을 뒤에서 움직인다고 한다. (사실 미국 재무장관은 거의 유대인임)
주변의 많은 이슬람 국가들을 그 작은 이스라엘에서 전쟁에서 항상 패하는 것은 미국의 도움도 있지만, 단결된 강한 국민정신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지금 국내 인기 드라마인 “
어찌 보면 이러한 내용 자체도 편협 된 기사 정보의 산물일 수 있다.
그들에 대해 진정 이야기 하고자 하면 그들과 직접 접촉해 보고, 한번쯤은 이스라엘 다녀오라고 권하고 싶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 중에 Mr. Yoni(Yona는 Dove의의미)는 36세의 젊은 친구인데 자랑스러운 이스라엘 사람이다. 또한 최근에 기아 자동차를 샀다고(참고로 이스라엘에서 자동차 판매 1위가 현대 자동차) 자랑하는 69세의 Dr. Motti 역시 풍부한 경험으로 여유 있는 많은 농담에 해주어 나를 많이 편하게 해 주었다.
나와 동행한 한국사람은 그의 농담을 받아들이지 못해 소통의 중요성을 새삼 인지하게 되었다.
이들이 나의 이스라엘에 대한 관념의 확장에 도움을 주었다기 보다는, 그들이 소개해 준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인 이스라엘의 거부로부터 일선실무자까지의 연결 해주에 감사해 하고 싶다.
이스라엘은 인류의 다 종교의 발생지이고, 지금도 가장 중시하는 성지 중에 한곳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다.
유대민족!
이스라엘은 BC 5세기경에 유대인 예즈라가 완성한 토라(Tora, 즉, 모세5경으로,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기타 국민의 15%는 팔레스타인 사람인 Muslim이고, 그리스 정교도 일부가 있다. 그래서 다종교의 국가라고도 한다.
유대인은 셈족의 가지로서 히브리인과 가나안인의 혼혈민족이다. 원래 히브리어를 사용하다가 BC 6세기 이후 아랍어를 사용하였다. 구약성서는 히브리어로 된 것을 BC 1200년경부터 그리스어로 번역 되었다.
유대인은 전 세계에 1,300백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그 중에 이스라엘에 인구 700만 명 중에 81%인 약 560만 명이 유대인이다. AD 70년 로마에 패망한 후에 디아스포라 (Diaspora)로 전 세계에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많이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러시아, 유럽, 남아프리카, 남미 등 전세계에서 유입 되었다.
현재 미국에 정착한 유대인은 650만 명이라 한다. 미국에는 AIPAC라는 유대인 집단이 있는데 여기에 책임자가 Lee Rosenberg이다. AIPAC에는 미국 유대인 중에 연간 100불 이상 기증자가 330,000명의 유대인이 가입되어 있다. 이 기금은 미국에서 유태인을 위한 Lobby자금으로 들어가 막강한 힘이 되고 있다.
최근 이명박(Lee)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서 만찬회에 미국 대통령이 그의 부부를 초대 하여 화제가 되었다. 누군가 말했다. “Lee”에 주목하라고. 어떤 Lee를 말했겠는가?
많은 유대인들은 이스라엘로 돌아왔지만, 지금도 유대교나 기독교의 성지의 대부분 지역에는 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다. 로마에 의해 패망한 후 지난 2000년간 유대인은 팔레스타인(Palestine, Pali-Stan) 지역에서 이주 되었고, 그곳에는 이미 그 전에도 팔레스타인들이 오랫동안 살아왔다. 아니 유대인들이 이주 되기 전에도 이 땅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았었다.
일설에 의하면 수단의 유대인은 검은색이다. 에티오피아의 시바공주가 돌아갈 때 잉태하였고, 수많은 시녀들도 잉태를 하였을 것이고, 결국 유대민족의 피는 아프리카 여러 나라로 흘러 들어갔을 것이란다. 그러다 보니 유태인 중에는 검은 피부도 자연적으로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 이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어디로 갔고, 어디서 살아야 하나?
유대인은 이제 전 세계의 자금을 주무르고 있다. 신약에서는 대부업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따라서 유럽에서 부동산에 자유롭지 못한 유랑하는 유대인들에게 대부업에 전념할 수가 있었다.
또한 유대인은 대부업 외에 고가의 다이아몬드와 같은 귀금속에 손을 대었다. 지금은 이스라엘은 전세계의 다이아몬드 상거래 1위국이다.
이스라엘의 국경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되 찾는 근거는 여러 가지로 정당화하고 있다. 그 중에서 1948년 이스라엘 독립 직전에 아랍인들로부터 정식으로 산 땅의 등기부를 가지고 이스라엘 땅이라고 주장도 한다.
그렇게 1948년 독립 전에 유대민족은 많은 땅을 아랍인들로부터 사들였고, 독립 즈음에 아랍인들이 이 점을 걱정이 되었을 때 이미 늦었다고 한다. 현재 대부부의 이스라엘 땅은 국가소유로 임대형식이다.
영국이 지배하던 팔레스타인 지역을 철수하면서 거주 지역에 관한 사항 등 정하지 않고 UN에 맡겼고, 유엔이 설정한 유대민족과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을 구분하여 주었다.
유대인은 받아들였고, 팔레스타인은 거부하고 1948년 이스라엘 독립과 함께 바로 전쟁을 일으켰다. 당시 주변 아랍인구 1억5천만 명에, 이스라엘 70만 명 정도로 이것은 상대가 되지를 않았다. 아랍측은 이스라엘 자체를 폭격으로 완전히 없애겠다고 이스라엘 지역의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국외로 소개 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제1차 중동전에서 아랍의 대승이었고, 소개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오히려 들어오지 못했다. 제4차 중동전쟁 전부를 완승한 이스라엘은 국가 안의 3군데 지역은 이스라엘이 관리하고 있다. 단,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점령지는 이스라엘이 돌려 주었으나, 비무장 지대 유지의 조건이 붙어있다.
남쪽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와 접경지역인 가자 지구, 중부 요르단과의 서안지구, 그리고 북쪽 시리아와의 골란 고원지역이다.
l 가자 지구(Gaza Strip)
하마스가 장악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인구 150만 명의 가자 지구. 그러나, 일련의 중동전쟁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거주지인 가자 지구의 땅이 줄어들었다.
도착 전날에도 가자 지구에서 발사 된 로켓포가 인근 이스라엘 도시를 공격하였다. 사상자가 나왔고, 이스라엘은 곧 보복에 들어갈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이스라엘이 더 많은 포로를 확보하기 위해서 국지전을 곧 치를 것에 대한 선제 공격이었다고 한다.
가자 지구는 내가 머물고 있는 텔아비브에서는 개인 화기에 의한 로켓포의 유효사정거리에 있지는 않다. 팔레스타인 사람의 무기는 재래식뿐이기에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나, 재래식 무기에 대한 방어를 위한 이스라엘 무기체제에 엄청난 자금이 투입되어 부담이 크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생필품을 전하려는 터키 배를 공격하여 사상자가 크게 났고 이로 인해 터키와도 관계가 악화 되었다. 이집트는 튜니지아의 재스민 혁명의 여파로 새로운 정부가 서면서, 터키는 이슬람의 종주국을 다시 꿈꾸고 있다.
이라크에서의 미국의 입지가 높아졌고, 주변 아랍국가의 대부분은 자유화의 물결로 이란을 제외하고는 이스라엘 대해 모두 강경 노선을 아무도 갖고 있지 않다. 터키의 고민은 여기에서 생길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국내외의 문제를 안고 있으며, 굳건한 것은 강한 정신력과 군사력을 보유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이제는 말로는 이란과는 거의 전쟁 수준에 들어왔다고 한다.
l 서안지구(West Bank)
내부적으로 예루살렘 동쪽 지역에서 요르단을 국경의 서쪽 지역(West Bank)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있는 공식적인 팔레스타인 거주지이다. 그러나, 이 안에는 이스라엘 군대가 이 안에 또 구축된 이스라엘 정착촌의 보호구실로 여러 곳에 주둔하고 있다. 서안지구와 요르단 사이의 국경 역시 이스라엘 군대가 지킨다.
즉, 서안지구 안에서도 팔레스타인 사람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 문제는 그 안에 계속 유대인 들이 정착촌을 계속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이 지역에서 집단촌을 만드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속내를 알고 싶다. 현재 서안지구의 경계선이 중동전에서 초기 UN에서 설정한 경계선에서 많이 서안지구로 들어와 있는데 이것이 향후 초미의 관심사로 되어 있다.
경계선 분쟁의 해결 책으로, 줄어든 거주지 경계선을 일부를 되돌리자고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연설을 하였다가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가 잠시 좋지 않게 되었다.
l 골란 고원 (Golan Heights)
해발 1,000m의 암석 고원에는 유태인과 드루즈인이 함께 살고 있다. 1967년 6일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시리안 골란고원의 2/3를 점령하였다.
점령한 골란 고원 지역은 현재까지 반환을 하지 않고 있다. 위협국가인 시리아는 골란 고원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수도 다마스커스를 언제고 장악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라 반환을 하지 않고 있다.
이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로 모든 과일들의 재배에 아주 좋다. 풍부한 햇빛과 강수량 등으로 당도 높은 과일을 해외로 많이 수출하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종교적으로 한 핏줄이다. 아브라함의 첫째 부인의 아들이 유대교이고, 둘째 부인의 아들이 이슬람교의 시조가 아닌가? 국경선 없이 함께 공존하는 방법은 진정 없을까? 없을 것이다. 그것이 인간사 아닌가? 끝없는 전쟁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텔아비브의 입국!
2011년도의 만개되는 단풍을 뒤로하고 나는 분쟁지역으로 간주되는 이스라엘을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궁금한 것이 많다. 드디어 이야기만 들었던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에 도착하였다.
입국하면서 동행자 모두 “No Stamp” 하면서 여권에 입국비자를 찍지 않았다. (출국 때도 “No Stamp” 말해야 됨) 그 중 한 명이 별도 심사실로 불려가서 조사를 받았다. 수단에 다녀온 스탬프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수단은 현재 어떤 정치적인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나의 여권에는 다른 아랍국가 스탬프가 많이 찍혀 있었지만 문제가 없었다. 질문은 많았지만 짧은 시간에 마치고 짐 검사 없이 세관은 그냥 통과하여 나왔다. 공항로비는 인천공항과 비슷한 기분이 든다.
이스라엘에서의 한국인!
이스라엘에는 현재 우리나라 교민이 약 700명 정도 거주하고 있다. 일부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공부하는 학생이 많다. 한인회도 학생들만의 모임이란다.
현재 일년에 약 3~4만 명의 한국인이 성지 순례 관광 또는 포교를 하러 오고 있다. 포교하러 오는 한국인은 다른 명목으로 들어온다.
유대교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너희에게 포교를 하지 않는데 너희는 왜 남의 나라에 입국해서 포교를 하는가?’라고 묻는다. 물론, 다종교의 나라이기에 믿음은 자유다. 그러나 외국인에 의한 포교는 다른 문제라고 한다. 물론 입국 목적을 포교로 이야기하면 절대 입국이 되지 않는다.
이는 비단 이스라엘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인들의 해외포교의 활동은 가히 세계적이다. 일부에서는 국내의 빈민 계층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데에 놀랍게도 3% 이내의 돈만을 사용하고, 엄청난 돈을 해외포교에 사용한다고 비판도 한다. 이 문제는 Muslim은 개종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현재 이스라엘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연구부분에서 삼성전자, LG전자 연구소를 비롯하여, 건설부분에 발전소를 중심으로 한 대우인터내셔널, 포스코건설, 두산 중공업 등이 있다.
내가 이스라엘 입국하는 날에도 LG와 삼성 직원들이 대거 입국하였다. 연구소 사람들이 많은데, IT분야의 입찰도 있단다. 내 옆자리의 삼성직원이 12시간의 비행시간 내내 업무 문서를 형광 펜으로 그어가면서 숙지하는 것을 보니, 내 시간이 과거로 돌아간 그대로이다.
이스라엘에서 최근 일본 차를 누르고 가장 많이 팔리는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는 아직 현지 법인을 설립하지 않은 상태이다.
유대교!
유대 국가인 이스라엘의 유대교를 믿는 신자들은 정통 유대 강령을 준수하는 독실한 유대인은 20%도 안 된다고 한다. 이들의 엄한 율법이 전체를 지배한다고 과언이 아니다.
유대교를 믿는 정통 신자들(Orthodox)는 탈무드를 일상화 하고 엄격한 계율을 지키고 있다. 집단촌, 복장에서 이들은 바로 표시가 난다. 주로 예루살렘 지역에 많이 산다.
일반 유대교인들은 상당히 세속화 되었다고 한다. 아니 현실과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현명하다고 생각이 된다. 정통 유대교만이 이스라엘을 지켜주기는 어렵다고 본다. 대부분의 텔아비브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텔아비브 사람들은 믿음에 있어 서로를 비난한다.
유대인들은 키파(Kipa)를 머리에 쓴다. 하느님이 위에 있으니 경외하는 마음으로 머리를 가린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유대민족은 유일하게 선택 받은 민족인데 하느님이 유대인을 구분하기 어려워서 키파를 쓴 사람을 쉽게 찾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실제 검정색이 흰색보다 더 독실한 신자라고 한다.
경제 상황!
작년에 OECD에 가입을 하였고, 개인 GDP는 29,000 달러로 높은 수준이며, 이는 물가가 비싸다는 의미이다. 평균 대졸자 초임은 3천 달러 정도 한다.
이곳의 주택은 대부분 월세가 많은데, 거실도 방으로 계산한다. 방3개에 월세가 200만원 전후이다.
그러나 이스라엘도 빈부의 격차가 극심하다고 한다. 자본주의 전형적인 패턴은 결국 작금의 재벌의 해체나 분배를 이곳에서도 부르짖기 시작하였다. 우유 값을 내려달라고 농성을 해서 내렸다고 하며, 이러한 움직임은 확산 될 것으로 본다.
이스라엘은 IT가 발전하였고, 다이아몬드, 의약, 의료기기, 방산무기 등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휴일!
이스라엘은 다종교 국가임을 휴일에서 당장 느낄 수 있다. 금요일은 Muslim 상점, 토요일은 유대교 상점, 일요일은 기독교 상점이 문을 닫는다.
그러나 유대교 국가로서 대부분의 주간 생활은 금요일과 토요일이 주말이고, 일요일부터 정상 업무가 시작 된다.
그것을 몰라 토요일에 텔아비브에 도착한 나는 일요일 오전에 월요일부터의 상담을 앞두고 사전에 내부 협의를 하였고, 휴일 오후에 동행자들과 함께 관광하러 갈려고 하였다.
그런데 일요일이 정상 근무일로 나만 오후에 대형회사와 약속이 있어 혼자 일해야만 했다.
와! 이 비극을…….왜 서울에서 가능한 많은 회사와 상담을 주선해 달라고 했단 말인가?
Halal, Kosher 음식 인증!
어떤 의미에서는 이슬람 율법에 따른 Halal과, 유대교 율법에 Kosher는 같다고 본다. 음식을 만드는 방법의 규제와 먹을 수 있은 것과 못 먹는 것에 대한 규율이다.
둘 다 돼지고기 금지하는 것 등 비슷하지만, Kosher는 고기와 유제품, 낙타고기, 등을 함께 먹지 못한다. 많은 상점이 보이는 McDonald 상점에서도 이점을 고려하여 팔고 있다. 근년에 우리나라에도 CJ 등이 이러한 규제에 대한 인증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적용되는 국가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식당!
이스라엘 전통 음식점은 대부분의 중동 국가와 유사하다. 전주 밥상과 유사하다. 채소를 시키면 기본적으로 엄청난 주식 외의 음식들이 올라온다.
빵은 맛있게 금방 구워진 것으로 맛있어 마냥 먹게 된다. 후머스라는 콩발효 크림에 빵(우리는 걸래빵이라고 부름)을 찍어 먹으면 맛이 있다. 그러면, 양 갈비나 소고기 곶이 등을 먹기 힘드니 적게 먹으라고 조언을 한다. 아모네이드에 허브 잎을 넣은 물이 함께 나온다. 다른 중동 국가들과 달리 밥은 나오지 않는다. 주 메뉴를 시키지 않으면 이 밥상은 36세켈을 받는다(미화 10불).
맥주는 현지의 2개 유명한 것이 있고, 칼스버그 등 수입산도 있다. 와인도 자유스러운데 골란 고원 포도주도 유명하다. 공항 면세점에서 보니 가격도 싸지가 않다.
<이스라엘 정통식당으로 The Old Man and Sea, Main Dish (양갈비와 케밥)이 나오기 전 야채 기본식단>
<Electra 회사 인근의 식당에서 Sea Bass Fillet식사> <Harzlyia Marian 해안가의 음식점에서 Golan Wine>
이스라엘 국토의 쉬운 이해!
이스라엘의 위치는 사우디아라비아 반도의 동쪽은 북쪽으로 이란과 이라크로 들어가는 “호르므즈 해협”이 있고, 서쪽으로는 아프리카와 접하면서 역시 북쪽으로 홍해(Red Sea)가 있다.
이 홍해를 따라 곧 바로 가면 이집트와 시나이 반도 사이가 수에즈 운하이고 통과하면 지중해이다. 이 시나이 반도 위에 접한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또한 홍해에서 수에즈 운하 가지 전에 가지로 북동쪽에 작은 해협이 있는데 아카바 해로서 그 끝이 이스라엘의 최 남단 ‘에일랏’ 도시가 있고, 바로 옆에 요르단 최남단의 ‘아카바 항’이 있다.
이스라엘은 지중해 동쪽 끝에 위치하여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와 접경을 이루고 있다.
국토 면적은 20km²로서 한국의 1/5정도이다. 여기에는 보호지역 등 7km² 제외되어있다. 모습은 마름모의 작은 변을 서쪽 지중해로 향한 모습이다.
이스라엘 국토는 위로부터 3등분하여 북부지역은 골란 공원을 포함하여 지중해성기후로 과일이 잘 된다. 중부는 텔아비브, 예루살렘, West Bank(팔레스타인 인 거주지)가 있고, 남부는 네게브 사막이다.
l 남부지역
남쪽 시나이 반도 위에 지중에 접한 긴 부분은 ‘가자 지구’ 이고 국토의 1/2인 “네게부 사막”이 있다. 최남단 에이랏 항구 도시는 지정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위치이다. 이란 혁명 전에는 이란의 원류가 이곳에서 하역되어 Pipeline을 통해 지중해의 하이파(Haifa) 항구까지 수송되어 루마니아 등 동구권에 원유를 재수출하는 주요 에너지 통로였다.
제3차 중동전쟁은 이집트가 이 중요한 해로의 아카바 만을 봉쇄하여 발발한 것이다. 마치 미국이 일본의 동남아 자원보급로를 차단하여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과 같은 이유란다.
지금은 자주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지중해 연안에서 막대한 천연가스 매장량이 발견되어, 이를 역으로 새로운 천연가스 Pipeline을 설치하여 액화설비 수출기지를 건설하고자 한다. 이번 여행기간 중에 이 사업에 대한 상담도 하였다. 이스라엘 최초로 천연가스를 개발 및 공급한 회사이다. 미국의 전문회사와 함께 세계적인 가스전도 발견하였다.
남부는 역시 사막이라서 이용가치가 별로 없다. 사막의 위쪽은 연 강수량이 200mm 정도이고, 남쪽은 25mm로 완전 사막이다. 여기에 한국의 두산이 대형 발전소를 건설 중에 있다. 리모나에는 이스라엘의 핵 시설이 있다고 하며 끝없는 철조망이 있다는데, 이스라엘에서는 핵 보유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l 중부지역
이스라엘 중부인 허리부분이 지중해 연안의 Tel Aviv, Herzliya 해변도시에서 서쪽으로 예루살렘을 거쳐 사해의 요르단 국경에 이른다.
l 북부지역
이스라엘 북부는 고온 다습한 지역이지만 지금은 곡창지대로 변하였다. 지중해의 하이파를 시작으로 담수호인 Galilee 호를 접경으로 역시 요르단과 접하고 있으며, 레바논과 시리아를 접하면서 골란 고원이 있다. 지중해성 기후로 과일이 아주 풍부하다. 올리브와 담배가 유명하다.
이스라엘의 북단은 조금만 더 올라가면 레바논과 시리라 국경에 가장 높은 “헤르몬산(2,814m)”이 있는데 요르단강의 발원지이다. 헤르몬산의 남부는 이스라엘 지역으로 군대의 훈련도 하지만, 휴양지로 스키를 타러 많이 다닌다.
물 문제!
이스라엘의 젖 줄기인 요르단 강은 시리아에서 출발하여 이스라엘 영토로 들어와서 117km 흐르다, 다시 요르단으로 넘어가서139km의 강줄기가 된다. 요르단 강물은 갈릴리호(Sea of Galilee)에 들어간다. 이 물은 다시 사해(Dead Sea)로 유입되었다.
문제는 Galilee 호수와 사해의 수면도 계속 낮아지고 있다. 식수원은 아니지만 관광용의 사해 수면도 계속 낮아지고 있다. 이는 요르단강물의 유입보다 사용량이 많아지고 있는 결과란다.
또한 이스라엘이 사해 해수를 네게브 사막으로 상당량을 이용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양국은 현재 아카바 해의 해수를 사해에 유입 시키면서 대형의 담수공장과 수력발전소 건설을 심도 있게 추진하고 있다.
Galilee 식수의 대체 수단인 바닷물 Desalination Plant와 사해 담수 발전플랜트 사업도 역시 이번에 거대 물 회사와 상담을 하였다.
한편, 역시 물 부족 국가인 요르단은 북쪽 산악지대에 요르단 강을 막아 댐을 만들어 상수원을 하고자 하나 이스라엘의 반대로 쪽도 못쓰고 있다.
<텔아비브>
이번 이스라엘 여행은 ‘터키항공’은 확보해 놓았으나, 불편하게 이스탄불을 거쳐서 와야 했다. 직항인 ‘대한항공’은 만석이라 계속 대기상태이다.
이스라엘은 역시 약속의 땅이라서 서로 가보려고 이렇게 자리가 없는 것일까?
나는 애국자라서 대한항공을 이용하려는 이유보다는, 직항이고 서비스가 좋고, 대한항공 라운지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선택의 이유는 직항으로 가장 짧은 12시간 비행시간이다.
결국은 대한항공 비행기표 일반석(Economy) 클래스 중에서 가장 높은 Y등급으로 좌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였다. 일단 비행기 탑승하면 알 수도 없는 많은 등급은 의미가 없다. 나에 대한 특혜는 항상 비즈니스 클래스 뒤인 28열의 창가인 A나 H좌석을 준다는 것이다.
영화 3편을 보고도 시간이 남았다. 드디어 거대한 비행기는 밤 하늘을 뚫고 서서히 텔아비브(Tel Aviv, Tel은 언덕, Aviv는 봄 즉 ‘봄의 언덕’) 공항으로 접근하고 있다. 내려다 보이는 텔아비브 도시는 화려한 불빛을 내게 보내오고 있지만, 크지 않고 작은 지역으로 느낌이 온다. 공항은 제법 크고 최신형 건물로 잘 유지 되고 있다. (2004년도 개항)
텔아비브는 이스라엘의 제2도시로서, 유일한 국제공항이다. 에일랏과 하이파에 국내선 외에 국제선 전세기가 다니고 있다. 시내는 북쪽으로 50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기차나 대형버스가 있다. 도로는 고속도로로 잘 연결되어 있다.
<Tel Aviv 시내 모습> <오른쪽이 kotra 입주건물로 48 Menachem Begin St.>
이스라엘 제2도시인 텔아비브(Tel Aviv)는 이스라엘(Israel) 중서부 해안평야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도시이다.
BC 2세기경에 건설된 YAPO(Jaffa)지방의 변두리 지역에서 시작 되었다. 그래서 지금 정식 도시명칭은 ‘Tel Aviv YAPO(Jaffa)’이다.
이번 여행은 주로 텔아비브에서 있었는데, 시내 중심의 많지는 않지만 고층의 유리빌딩 들과 잘 정돈된 거리는 서울의 깨끗한 도시 모습 그대로이다. 텔아비브 주변의 많은 마을들을 위성도시라고 하는데 아주 잘 정돈된 저택 단지들이다.
너무나 평화롭고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 아름답다. 눈앞에서 잔잔한 파도가 부셔지며 하얀 물거품을 쏟아낸다. 그 위를 지중해의 부드러운 바람이 나의 코에 다가와서 집안의 안락함을 느낀다. 이질감이 없다.
내가 머무는 The Sharon 호텔이 있는 Herzylia 지역은 텔아비브의 북쪽 마을이다. 지중해 해안을 따라서 펼쳐진 Ha Sharon Beach를 매일 아침 걸어 보았다.
<Ha Sharon Beach, Herzylia>
<Ha Herzlyia Beach> <The Sharon Hotel 바로 앞>
바다 색깔이 너무나 좋다. 섬은 전혀 보이지 바다는 잔잔하다. 긴 아름다운 해변을 따라 작은 파도나 계속 하얏게 부셔지고 있다. 리오데자네이로의 하바나 해변보다는 짧지만 아늑함이 가득하다. 아마 긴장상태 속의 평화라 할까?
이제 11월인데 윈드서핑이나 파도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음 번 방문에는 복장을 갖추어 서핑에 한번 도전해 보고자 하는 욕구가 차 오른다. 바다가 깊이 않고, 파도가 높지 않아 자신감이 좀 생긴다. 전에 하와이에서 한번 시도를 못해본 것이 생각이 난다.
텔아비브는 AD 68년 로마황제 베스파시아누수에게 정복 되었다.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와 함께 많은 정복을 당하면서, 1948년 독립과 함께 전세계 각지의 많은 유대인을 맞으면서 급속히 발전하였다.
이곳의 아랍인들을 몰아내고, 대부분을 유대인으로 구성하였다. 이제는 이스라엘의 경제, 산업,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도시 인구는 50만 명이나, 매일 유입되는 인구 1백 명이 되고, 위성도시 합하면 2백만 명 정도가 된다. 교통체증은 러시아워에 대단하다. 남동쪽 예루살렘에서 시내로 진입하거나 북쪽에서 시내로 진입하는 차들은 전용도로에 다 서 있다.
지반이 물이 차 있어 지하철이 어렵다고 한다. 공항에서 시내로, 시내를 관통하는 기차가 있어 나름대로 대중교통 역할을 대체하고 있다.
시내 중심부와 해안가에는 고층 건물이 여러 군데 눈에 띈다. 높은 국방부 건물이 로켓모양으로 랜드마크 역할도 한다.
이번 여행에서 유명하다는 텔아비브의 하비마 극장, 후헤레나 미술관, 맨콘서트홀, 텔아비브 박물관, 등이 유명하다고 하나 시간 상 방문하지는 못하였다.
또한 이곳에 머물면서 케싸리아(Caesarea)를 도착 다음날 다녀 오려고 하였으나 동행자들은 관광하러 갔으나, 나는 대형 물 관계 회사와 약속이 되어있어서 너무나 아쉬웠다.
케싸리아는 텔아비브에서 북쪽으로 지중해를 따라 50km 정도 올라 가면 역사도시가 있다. 궁전, 전차장, 원형극장이 있는 고대도시이다.
이 도시는 헤롯왕(BC74~BC4)이 건설한 인공항구도시(Caesarea Maritmam) 놀라운 신도시이다. 그는 일부 이야기 되는 악한 왕이 아니라, 도시를 건설하고 훌륭한 왕이었다고 한다. 성서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역사의 진실은 많은 부분이 파 묻혀지는 것이리라. 역사는 승자의 몫이라고 했다.
며칠 뒤 다시 다녀오려고 했으나,
이곳 관장이 많은 방문처를 사전에 예약을 하는 세심하게 배려해 준 덕택에 나는 역사의 장소 방문을 다음으로 미루게 하고, 나를 외톨이로 만들었다. 이것도 다 하느님의 뜻인지 모르겠다.
텔아비브의 Old City인 YAFO에서 지중해를 바라보며 해안가 전통식당인 The Old Man and Sea에서 식사와 성당방문, Hilton Hotel에서의 Meeting, 인근의 중국식당에서 저녁, 시내 식당 등 방문과 7개 회사를 방문하면서, 주변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곳이 텔아비브가 다시 한번 각인을 하였다.
그 어느 곳에도 지하드와 긴장감은 찾을 수가 없었다.
조용한 지중해의 해안 휴양도시 그 자체이었다. 여기까지 오는데도 이스라엘은 엄청난 대가를 치렀을 것이다. 한편, 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번 이스라엘의 여행은 나름대로 여기에 쓰지 못한 내용도 많다. 우선 그런대로 정리하면서 다음을 기약해 본다.
출국하기 위해 입구하였던 텔아비브공항(벤그리온공항)으로 다시 돌아왔다.
초대 수상을 지낸 Mr. David Ben-Gurion(1886~1973)은 1948.5.14. 국방장관으로 이스라엘 독립을 선언했는데, 그 기념으로 공항의 이름도 그의 이름을 붙였다.
<텔아비브국제공항 Ben-Gurion 동상>
<예루살렘>
이스라엘은 다종교의 주요 모체가 있는 곳이다. 지중해 동쪽 56km, 사해 서쪽23km의 내륙 800m 고지의 수도 예루살렘(Jerusalem)에는 유대교, 이슬람교, 동방정교 등의 최대 성지가 있다.
“예루살렘 방문기”에 대해서는 별도로 기록을 하여 두었다.
l 통곡의벽(Western Wall-예루살렘 신전의 서쪽 벽, 또는 Wailing Wall)
<통곡의 벽>
헤롯 왕(BC37~BC4)이 예루살렘 신전을 중개축할 때 신전 서쪽 옹벽으로 AD 70년 로마 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 일부가 남은 성벽으로 길이 50m, 높이 20m로 모두 43단이나, 상부 17단은 후대에 쌓았다. 하부 26단 은 특유의 테두리가 있고, 이 중에 15단은 아직 매몰된 채로 있다.
로마에 대한 반란(AD132~135)으로, 유대인은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 되었다가, 4세기에 일년에 한번 신전이 파괴된 달인 아부월(Ab월, 유대력 5월) 9일에 방문이 허용 되었고, 이 때 나라 멸망의 슬픔을 이곳에서 애통해 하여 왔다. 이러한 계기로 유대인의 귀향(시온이즘)의 상징물이 되었다.
후에 이슬람 성소가 건설되어 통곡의 벽은 서쪽으로 옮겨지었다. 1948년 동예루살렘으로 요르단 영토가 되었다가, 1967년 제3차 중동전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면서 이스라엘이 통곡의 벽을 관리하고 있다.
l 바위의돔(Dome of the Rock)
<바위의 돔>
AD 685~691년에 칼리프 이브 마르완(압둘 말리크)이 마호멧트가 승천하였다는 바위에 금박지붕의 웅대한 사원을 설립하였는데 이스람의 최초의 역사 유적이 되었다. 메카, 메니나에 이은 3번째 성지.
l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echur)
<성분묘 교회>
동예루살렘은 성곽으로 둘러 쌓여 있는데, 국교로 그리스도교를 채택한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36년에 예수가 묻힌 골고다 언덕 위에 세운 교회가 성분묘교회로 그 안에 있다. 그리스도교의 성지가 되었다.
<Gilboa & Manera>
이번 여행의 주 목적인 양수발전소 현장인 Tel Aviv (Herzliya) 북쪽 80km에 위치한 Gilboa와 그곳에서 다시 70km 정도 더 북쪽으로 가서 레바논과 이스라엘 국경이 600m 떨어진 Manara에 다녀왔다.
중간에 예수님이 주로 포교한 “나사렛”과 “갈릴리 호수(Sea of Galilee)” 지역을 돌아보는 행운이 있었다. 예루살렘은 많이들 가지만 이곳의 방문 기회는 쉽지가 않다.
<성서에 나오는 갈릴리(Galilee) 호수의 물은 깨끗하였다>
Herzliya(히브리어로서 이름 끝에 ‘–ya’ 많이 붙는데 이는 God이라는 뜻이라 한다. 따라서 Herzli god으로, 유명한 Herzli가 Diaspora 이후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는 시오니즘 창시자라 함, Nettaya는 give-god) 지역에 위치한 Sharon호텔에서 5번 도로를 타고 북진을 시작하였다. 8명이 출발하였다.
Tel Aviv로 향한 차선은 교통체증이 심하다. 잘 건설된 고속화 도로는 중간 중간의 Over Bridge들과 잘 조화된 모습이 아름답다. 이어 유료화 고속도로 6번으로 달려갔다.
가로수는 한국처럼 심어놓지는 안았지만, 유독 유도화를 많이 심었고, 향나무류, 꽃, 선인장으로 장식을 하였다. 양측의 과일 농장들이 많이 조성 되어있었다. 올리브농장, 바나나농장, 귤 농장, 파인애플농장 등 많이 농장들이 연결 되고 있다. 골란 고원 지역을 포함 이곳의 과일은 당도가 높아 스페인, 미국 등에 아주 많이 수출되고 있다고 한다.
<5번 고속화 도로, 나는 한적한 우측으로 올라갔다> <도로 변의 올리브 나무들>
기브츠 집단농장도 자주 보였다. 제법 큰 마을들도 있다 많이 보였다. 어디이건 평화스러운 모습이다. Central Israel 지역을 지나면서, 보이는 큰 마을 지나 2.5km 더 동쪽으로 가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거주하는 West Bank가 있다고 한다.
계속 북쪽으로 가면서 이미 6번 고속도로에 들어왔다. 양측의 마을들에 모스크 첨탑들이 보인다. Israeli Palestine 사람들 마을이라고 한다. 이들은 모든 면에서 West Bank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차이가 나게 혜택을 받고 있다고 한다. 같은 민족이고 인근에 살지만 이렇게 엄청난 삶의 질이 다르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나름대로 시사하는 바가 많다.
첫 번째 목적지인 성소라는 Gilbo 산의 정상에 올랐다.
다윗은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도 쓰러트렸으나, 결국 블레셋에 봉신이 되었다. Gilboa산에서 이스라엘 사울왕의 군대는 블레셋 군대와의 전투에서 대패를 하고 이스라엘 초대 왕인 사울은 3아들과 함께 자살을 한다. 그리고 다윗이 왕위를 이었다.
내려다 보이는 Israeli Valley에는 호수와 농장들은 다 바다 수면보다 낮은 위치에 있다. 산 중간이 바다 수면과 같은 높이(팻말에 Sea Level이라고 써 있음)이니, 그렇다. 이곳은 무엇인가 다른 느낌이 든다.
사해가 해면 400m 아래로만 생각했는데 이 나라에는 이렇게 농지들이 해면 아래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자동차의 GPS에 고도계가 있어 수치로 현재의 높이를 표시하고 있다.
Israeli Valley 중간이 요르단(Kingdom of Jordan)과 국경이라 하며 건너편이 요르단의 산들이라 한다. 작년에 사해를 보기 위해 저 산맥들을 지나쳤는데, 올해는 이스라엘에서 거꾸로 바로 보고 있다.
<Gilboa 산 정상으로 아래쪽에 Lower Dam위치이고, 희미한 건너편이 Kingdom of Jordan>
Gilboa산 정상에 Upper Dam을 설치하여 아래 Lower Dam까지의 높이 500m 낙차를 이용한 양수발전소(Pumped-Storage Hydraulic Power Plant) 300 MW가 들어서게 되며, Lower Dam의 저장 능력은 2.5백만 톤이다 될 것이다. 수원은 인근의 지하수를 이용하는데 물 공급은 정부기관에서 하고 물값만 지불한다고 한다. 투자비는 4억불이다.
이러한 양수발전소는 심야의 싼값의 전기를 이용하여 물을 산 정상으로 올려 놓고 필요할 때 낙차를 이용하여 발전을 하게 되는데, 한국에는 이러한 양수발전소가 7군데 건설되어 운영 되고 있다.
하산하여 두 번째 목적지인 Manara에 가는 문제가 생겼다. Tel Aviv에 중요 약속시간을 계산하니 빠듯하다. 그런데 중간에 Galilee 호수가 있다. Israel은 Galilee호수와 Jerusalem 2곳을 보면 다 보는 것이라는 말에, 일단 Menara로 가기로 하였다. 나는 옳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Tiberius 지역을 지나가자 Galilee 호수(Sea of Galilee, 옛날에 바다로 불렸다고 한다. 히브리어 Yam은 넓은 물을 나타내는데 당시에는 이를 바다라고 번역을 하였단다.)가 나타난다.
동행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호수가 작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 제법 큰 호수인데 왜 그렇게 부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예전에 비해서 많이 줄어든 모양이다.
10년 전에 비해서 5m가 낮아졌고, 지금도 계속 줄고 있는 모양이다. 담수호인 Galilee호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이란 사람들 모두의 큰 상수원이었는데, 이제는 이곳에서 급수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몇 년 내로 기존의 지하수에 의한 식수공급을 서너 개의 대형 해수담수화 공장을 건설하여 충분히 조달할 계획이란다.
동행자가 설명해 주길 이곳 Tiberius지역에 몸에 귀신이 든 사람이 있어 예수님이 빠져나가게 하니, 귀신이 Tiberius에 있는 많은 돼지들에게 들어가서 돼지들이 미쳐 날뛰다가 Galilee호수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또한 이 지역 인근에 예수님 시절에 교회가 7개 있었는데 그 중세 Shemona 교회가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보다 성경 공부를 하고 오지 않은 후회를 하면서 나에게 설명을 해준다.
<갈릴리 호수> <갈리리 호수로서 건너편이 Tiberius>
현재 Galilee호수는 여름철에는 오후 3시경에 항상 바람이 불어 1m이상의 파도가 치는데 그 이유를 전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장로인 동행자에게 Galilee 호수 물을 담아갈 것을 권유를 하니 정말 귀하게 담고 있는 모습이 좋았다. 내가 그의 물 담는 모습을 찍어 주었고, 물의 보증서로서 나중에 비싼 사진 값을 받기로 하였다. 이스라엘 책임자도 증명할 테니 5% 달라고 한다. 사실 인근 마을에서 작은 병에 담아 Galilee호수 물을 판다고 한다.
또 다른 지역인 나하리아 지역의 Menara는 이스라엘의 북부인 골란 고원에 있다. 이곳에서 모세다얀 장군의 한쪽 눈을 잃어버린 곳이다. 지금도 이 지역은 시리아 땅이지만 돌려주지 않고 있다.
<Mernara Mountain> <Gilboa Mountain 입구>
눈앞에 이곳에서 가장 높고, 레바논, 시리아, 그리고 이스라엘 삼국이 공유하는 “헤르몬산(2,814m)”이 보인다. 생각보다 아주 낮은 산으로 보인다. 겨울에 스키를 타러 많이 온다는 휴양지도 되어있다고 한다.
헤르몬산을 바라보며 도로변 왼쪽 산이 Menara산이라고 한다. 정상에서 600미터 정도가 국경이라고 하는데, 이곳도 우리나라와 같이 Demilitarized Zone이 양쪽에 있어 UN군이 지키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는 정말 시간이 없어서 오르지 않았다.
이곳에 설치될 양수발전소는 700m 낙차를 이용하는 200 MW발전소인데 투자비는 3.5억불이다.
두 발전소의 카프란 수차는 다 땅 속에 있다. 지하 관로를 이용하여 수차를 돌려 발전을 하는데 금회 경쟁사는 불란서와 이태리 회사이다.
나는 이스라엘의
돌아오는 길에 이스라엘의 전반적인 현재 상황과 문제점에 대해서 들었다. 항상 새로운 사실을 아는 것도 중요하고, 더 중요한 것은 변화하는 새로운 정보로 계속 Up-dated 시키는 것이다.
아무리 정확한 정보라 해도 시간이 흐른 것은 별로 효용가치가 없어진다.
이스라엘의 돈 세켈(IS이지만 지금은 NIS)의 환율은 3.6 NIS/미국 달러이다. 부정부패가 거의 없다고 하지만, 역시 청탁으로 인한 최고위층의 실형 선고 등을 보면 인간사회는 모두 같은 속성에 대하서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이곳도 대기업의 자금 집중화와 분배에 대한 데모가 일어나고 있다. 이 문제는 전세계적으로 새롭게 퍼지고 있다. 뉴욕에서 시작하였는데, 한국도 시작하였고, 이곳 이스라엘도 시작이 되었다. 아직은 그리 크지는 않지만 또 하나의 큰 불씨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젊은 이스라엘 청년과 나는 이 문제를 가지고 보수적 입장에서 그와 말씨름이 좀 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스라엘 사람과 말싸움에서 이기기 어렵다고 한다.
Hilton Hotel Meeting Room에서 갖기로 한 회의가 지중해 바다가 옆에까지 와 있는 Lobby에서 진지하게 큰 회사의 사장에게서 Briefing을 받았고, J거부가 젊은 남녀 2명의 비서를 데리고 인사하러 왔다.
나의 명함을 건네 주었으나, 그는 그의 주머니를 다 뒤져 보어도 명함이 없자 난처해 하였다. 현금이 보이길래 돈으로 주어도 된다고 하였다.
<Tel Aviv 중심부 해안가에 위치한 중국집, 인근에 Intercon, Hilton, Crown Plaza, Sheraton 등 호텔이 많음>
그리고 회의 후에 돌아오는 중에 다른 명소를 들렸다가 나중에 합류한 동행자들과 중국집에서 저녁을 하는데 Galilee호수가 주요 화제가 되었다.
음식은 상당히 짠 편이었다. 술은 단 한가지 56도짜리 정종 병 모양에 담긴 이과두주뿐이었다.
<이스라엘 역사>
구약성서는 이스라엘의 역사 서적이라고 한다.
물론, 역사의 사실과 종교의 관점에서 성서를 해석해도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 더욱이 한국어 성서는 번역의 시점에 한국이 처한 위치와 번역 단어의 한계 또는 당시의 단어의 진정한 의미 등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 팔레스타인에는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10만년 전부터 시작하여, 고대 선형문자를 BC 2000년에 개발한 팔레스탄인 사람의 업적은 BC 1000년경에 페니키아인과 이스라엘인들이 찾아냈다고 한다.
* 유대인의 시조는 아브라함이다.
* 아브라함의 사촌누이 사라와 사이에 난 아들 이삭으로 기독교의 뿌리이고, 하녀 하갈이 난 아들 이스마엘이 이슬람교의 뿌리가 된다.
* BC 3000년대에 여부스라는 부족이 살았고, 성채를 시온이라 하였다.
* BC 18세기에 반유목민인 유대인의 조상인 셈족은 Mesopotamia에서 지중해 동부연안의 정착.
* BC 1400년에는 이집트의 침입으로 예루살렘은 이집트의 지배를 받는다.
* 히브리인들 이 가나안으로 알려진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점령한 BC 1230년 모세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끌고 나와 정착한 이후이다.
* 이스라엘 유다(Judah) 왕국은 선지자 사울(BC1020~BC1004)이 초대 왕을 하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였다. 다윗(BC1004~BC967)에 이어서 전성기인 솔로몬(BC967~ BC928) 은 BC 955년 왕이 된다. 이 전성기에 최초 신전이 건립되었으나, 이후에는 왕국은 남북으로 분열이 된다.
* BC 931년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짐. 남쪽은 예루살렘이 유대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신바빌로니아가 BC 586년에 유대왕국 멸망시키고 예루살렘 완전 파괴. 이후, 재건하였으나, 마케도니아, 이집트, 시리아 지배를 받음. 반면에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은 아시리아에 BC721년에 먼저 멸망 당함.
* BC 63년에 로마의 폼페이우스에 의해 점령당함.
* BC 37년에 헤롯왕(BC70~BC4) *¹이 통치(로마로부터 유대인의 왕 칭호 받음)
*¹ : 헤롯왕은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사막의 이도메네다 족 출신으로 유대인은 아니다. 그러나, 시조를 아브라힘의 손자로서 유대민족 관계는 있다.
부친 안티파테르는 로마의 점령군인 폼페이우스와 막역한 친구일 뿐 아니라, 안토니우스, 카이저와 가까워서 로마 시민 세습권을 받았다. BC43년에 죽자 25세에 갈릴에이 총독이 되었던 아들인 헤롯이 왕이 되었다. 그가 BC4년에 죽자 그의 아들 헤롯빌립이 왕을 계승 받는다.
헤롯왕과 관련 이야기 되고 있는 “영아학살(왕이 될 애가 태어났다고 하여 2세 이하 영아 모두를 학살하는 사건)”이나, 요부 살로메에 의한 요한의 핍박은, 모두 그의 사후의 일로서 관계가 없다.
* AD 30년 예수 그리스도가 처형됨. (그리스도교 발생)
* AD 70년 로마군의 예수살렘 신전 파괴 및 통곡의 벽만 남음. 유대인의 세계유랑 시작(Diaspora)
* AD 614년 예루살렘은 사산조 페르시아에 점령당함. 이어 로마가 탈환하였다.
* AD 637년 아랍인이 점령
* AD 1099년 제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정복함에 예루살렘 왕국이 건설 되었으나, 술탄 할릴에게 멸망 당함. (1099~1291)
* AD 1260년 몽골의 침입으로 완전파괴 됨.
* AD 1517년 오스만 투르크의 통치
* AD 1917년 영국군이 점령, 그리고 AD 1948년 이스라엘로 독립은 독립하였다.
* 중동전쟁은, 제1차(1948~49)는 유대민족이 이스라엘 국가 선언을 하자 아랍측이 팔레스타인에 진입하였으나 이스라엘 승리로 UN이 정해준 땅보다 더 갖게 되었다. 이어 1956년 제2차 중동전쟁, 이어서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은 또 다시 이스라엘이 압승하여, 골란 고원, 서안지구, 및 가자 지구와 시나이 반도까지 점령을 하였다. 제4차 중동전쟁은 1973년 발발하였는데, 이집트와 시리아가 기습공격을 하여 왔으나, 이스라엘이 연승을 하게 되었다.
* 1978년 캠프데비드 협정으로 1981년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 돌려 주었으나, 그 나머지 점령지는 지금도 가자 지구를 제외하고는 강력한 통제를 하고 있다.
<텔아비브에서 지중해로 지고 있는 석양은 이미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일출이 시작 되었다>
2005년경에 중국은 이스라엘 항구 건설을 적극 지원하면서, 이스라엘에서 최고급 무기를 수입하여 갔다. 이 무기들은 바로 이란에 공급 되었고, 이란은 이 무기들로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 속에 앞으로 어떻게 이스라엘의 역사가 전개될 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