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황후
박응순의 딸로 태어난 의인황후는
1569년 왕비에 책봉되었습니다
자식없이 1600년도에 승하 하셧습니다
황화방 별궁에서 승하하셧는데
정치적으로 힘을 쓰는 그런 왕비는 아니고 성품은 온화하고 그런데로
왕을 잘모셧던 왕비 셧습니다
자식이 없었으므로 남다르게 후궁의 자식들을 자기 자식인듯 보살피셧습니다
그래서 광해군을 자식 다루듯 하셧도 친분관계가 꾀나 높았습니다
광해군도 공빈김씨가 광해군이 태어난지 3살만에 승하하셧기 때문에
의인황후를 더 따랏는지 모르겟습니다
임진왜란때 도피할때도 같이 피신을 하였습니다
죽음의 원인은 아마도 심중에 담아둿던 힘든 마음때문이지 않을까싶습니다
허준에서도 다뤄젓는데 선조는 공빈김씨 그다음 인빈김씨를 순으로
총애를 했습니다
공빈김씨가 그때 한 말이 있죠 의인황후도 내 심정이었을게야
인빈김씨에 왕의 총애를 잃고 마음의 병을 얻을때 한 말 입니다
말이 많아졌는데 의인황후는 여기서 끝내고

공빈김씨(장지은)
김희철의 딸로 선조의 총애를 받다가
임해군과 광해군을 낳고
1578년에 승하하셧습니다
성품같은건 잘 안다뤄졌는데
미모와 성품이 뛰어나 왕의 눈에 띄이고 총애를 받앗다 합니다

인빈김씨(정시아)
허준에서 다뤄졌던 인빈김씨는 약간 좀 안좋은 이미지로 나왔으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만 욕심이 조금 많으셔서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봅니다
용모가 단정하고 머리가 좋았으며 행실이 바르다는 칭송을 많이 받을 정도였습니다
자식을 9명을 낳고 신성군이 맏아들인데 신성군은 빨리 죽게 되고
둘째 아들인 원종 즉 인조의 아버지가 되는 분을 낳게됩니다
선조대왕이 승하하시자 궁을 나오고 궁 밖에서 사시다가
1613년에 승하 하십니다
라이벌 관계는 그렇게 심하지않았지만
공빈김씨와 인빈김씨의 사이에서 약간의 그런 라이벌적인게 있었습니다
총애를 두고 다투던 사이였죠
붕당 당파싸움의 인형이 되신분들입니다
왕 자리를 놓고 세자들을 이용해 다투었던 그런 피해 자들인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