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 한자, 문자전쟁 (1) |
|
[한글 살리고 빛내기 62] 한글전용법을 페기하자는 자들과 치열하게 싸우다 |
|
|
한글이 태어나고 500년이 지났는데도 한글을 못살게 군 한국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중국 유교를 받드는 성균관 무리들과 일본 식민지 국민 교육을 착실하게 받고 길든 일본 한자말을 일본처럼 한자로 쓰자는 이희승 서울대 국문과 교수와 그 제자들이 중심으로 모인 일본식 한자혼용주의자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보통 사람이 아닌 교수,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으로서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기득권층이 도왔다. 이들의 몸은 한국인이라지만 정신 상태는 사대주의와 일본 식민지 교육에 찌든 자들이었다. 이들은 광복 뒤부터 우리말을 도로 찾아서 우리 글자인 한글로 적는 말글살이를 하자는 한글학회 활동을 못하게 온갖 못된 짓을 다했다.
이들은 식민지 때에 일본 국민으로 태어나 일본 식민지 국민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자들로서 우리 말글보다 일본 말글에 길들어서 일본 한자말을 일본처럼 한자로 쓰게 하려고 1961년 박정희, 김종필 군사정권에게 광복 뒤부터 한글로만 만들던 교과서를 1964년부터 한자를 섞어서 적게 했다. 그러나 1967년 대학생들이 국어운동대학생회를 만들고 그건 나라가 빛날 길을 막는 잘못된 일이라고 반발하니 박정희 대통령은 한글단체 건의를 받아들여서 1970년부터 한글전용 정책을 강력하게 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니 일제 강점기에 일본 식민지 앞잡이 양성소인 경성제국대학을 나온 서울대 국문과 이희승, 이숭녕 교수들이 그 제자들과 1969년에 ‘어문회(회장 이희승)’라는 한글전용 반대 단체까지 만들고 한글을 못살게 하려고 나섰다.
서울대 이희승, 이숭녕 교수들은 1960년대 연세대 최현배, 김윤경 교수들 중심으로 한글전용 말글살이를 외치는 한글학회를 장악하려다가 안 되니 교과서에서 토박이말로 된 “이름씨, 그림씨, 어찌씨”같은 토박이말로 된 것을 “명사, 형용사, 부사”처럼 한자말로 바꾸게 하면서 ‘어문회’라는 한자혼용단체를 만들고 자연 교과서에서 살려 쓰던 “흰피톨, 붉은피톨”같은 토박이말을 “백혈구, 적혈구”처럼 한자말로 바꾸고 모든 교과서에서 자꾸 토박이말을 빼고 한자말로 바꾸었다. 그리고 그 한자말을 알려면 한자를 초등학교 때부터 배워야 한다고 김영삼 대통령을 등에 업고 한자조기교육을 꾀하다가 안 되니 1998년 이희승 교수 제자인 이응백 어문회장이 앞장서서 한자혼용단체가 한글전용법 폐기 청원을 국회의장에게 낸 것이다.
한글전용법은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었으니 공문서만이라도 한글로 쓰자고 만든 두 줄짜리로 된 하나뿐인 한글 살리기 법이다. 그러나 지난날 공무원들이 한글전용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한글단체는 얼마동안 한자를 병기한다는 단서 조항을 빼고 지키지 않으면 처벌한다는 법 개정을 요구해왔고 나는 1990년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는 정부를 바로 세우려고 1991년에 노재봉 국무총리를 한글전용법 위반 직무유기로 검찰에 고발해서 앞으로 잘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일도 있는데 이들은 오히려 한글전용법을 폐기하겠다니 기가 막혔다. 이들은 1991년에 국회의원 98명 서명을 받아 한글전용법 폐기 청원을 한 일이 있는데 이번에는 한나라당(총재 이회장)67명, 국민회의(총재 김대중) 43명, 자민련(총재 김종필)41명 들 여야 의원 151명이 서명을 해서 냈다.
151명은 국회의원 절반이 넘는 숫자로서 법을 바꿀 수 있는 수였다. 더욱이 이들은 김종필, 박태준, 공노명 들 친일 정치인과 롯데 농심(신격호) 같은 친일기업이 들어있는 전경련과 조선일보 같은 언론과 일본 식민지 교육을 받고 일본 한자혼용에 길든 학자들을 등에 업고 야당인 국민회의까지 포섭해 총력전을 펼치고 나섰다. 그래서 한글단체도 죽기 살기로 맞서야 했다. 한글전용법은 한글 살리려는 하나뿐인 법인데 그것마저 지키지 못하면 끝장이었다. 그런데 그동안 한글단체를 잘 이끌던 한글단체모두모임 안호상(한글전용법을 만든 초대 문교부장관) 회장이 돌아가시고 허웅 한글학회 회장도 여든이 넘어 지쳐있었다. 그러니 지난 30여 년 동안 이분들을 모시고 한자단체와 싸우는 선봉에 섰던 나는 또 이 싸움판에 앞장을 서게 되었다.
그래서 한글단체는 한글회관에서 한글전용법 지키기 결의대회를 열고 거리로 나가 광화문 네거리를 거쳐서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로 가서 정부에 우리 뜻을 밝히고 건의문을 전달하기로 했다. 그러나 광화문 네거리로 나가려고 했으나 우리 한글단체 사람들보다 더 많은 전투경찰이 한글회관 입구부터 길을 막고 있어서 큰 길로 나갈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간신히 큰 길 앞가지 밀고 나가 거기서 우리 뜻을 밝히는 성명서를 내가 읽고 언론과 경찰에 우리 건의문을 전달했다. 그런데 한글이 죽느냐 사느냐 중대한 일인데 언론은 하나도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1967년 국어운동학생회를 만들고 박정희 정부에 한글전용 정책을 강력하게 펴도록 하면서부터 30년이 넘게 한글과 한자 싸움판 선봉에 서서 전투력을 키웠고 저들 속셈을 잘 알기에 그날은 우리 각오를 보여주는 그것으로 끝냈다.
한글과 한자, 문자전쟁 (1) : (ja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