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낮에도 그윽한 꿈꾸니[백일견유몽(白日牽幽夢)]
속절없이 읊다〔漫吟〕
················································ 병산 이관명 선생
작은 집이 단학(丹壑)에 임해 / 小室臨丹壑
맑은 시냇물 콸콸 흐르는데 / 淸溪㶁㶁流
석단의 소나무에 맺힌 이슬 차갑고 / 石壇松露冷
산속 부뚜막에 차 끓이는 연기 걷히네 / 山竈茗煙收
밝은 낮에도 그윽한 꿈꾸니 / 白日牽幽夢
푸른 봄이 아름다운 놀이 마련했도다 / 靑春辦勝遊
소리 높여 때때로 마음껏 노래 부르니 / 高歌時自放
하늘과 땅 또한 유유하구려 / 天地亦悠悠
둘째 수〔其二〕
깊은 골짝에 구름은 머물러 자고 / 絶壑雲依宿
빈집에 달만 홀로 친근하구려 / 虗堂月獨親
거문고와 책일랑 대충 쌓아 두고 / 琴書堆不整
높다랗게 누운 나는 한가한 사람 / 高卧一閑人
셋째 수〔其三〕
가지런한 숲 막막하고 비는 부슬대는데 / 平林漠漠雨濛濛
몇몇 푸른 봉우리가 기대앉은 자리에서 보이누나 / 多少靑巒隱几中
산 너머 도성은 지척으로 이어졌지만 / 山外帝城連咫尺
임금님 주변 소식이 열흘 걸러 들려오네 / 日邊消息隔旬通
넷째 수〔其四〕
고목이 어둑어둑하니 해는 넘어가고 / 古木蒼蒼落日時
고운 노을과 붉은 안개가 그윽한 자태 희롱하네 / 丹霞彩霧弄幽姿
괴상한 새는 어디에서 우짖는가 / 一聲怪鳥啼何處
언덕 너머 숲 깊어 알지 못하겠네 / 隔岸叢林深不知
다섯째 수〔其五〕
으슥해라 푸른 덩굴은 고목에 매달렸고 / 窈窕靑蘿掛古木
꾀꼬리 울음은 가장 깊은 가지에서 들려오네 / 流鸎啼在最深柯
그 소리 은은해서 봄이 장차 지려 하니 / 一聲苒苒春將歇
서글퍼라 향긋한 풀 너를 어이하나 / 怊悵芳菲奈若何
여섯째 수〔其六〕
필마 타고 오늘 아침 세상에 나갔는데 / 匹馬今朝出世間
구름 낀 산으로 고개 돌리니 겹겹 관문 막혔어라 / 雲山回首隔重關
가장 다정해라 차가운 계곡 물 있어 / 多情最有寒溪水
십리 물소리가 돌아가는 나그네를 전송하네 / 十里波聲送客還
[주-1] 단학(丹壑) :
붉은빛이 어린 산골짜기라는 뜻으로, 전하여 선경(仙境)을 뜻한다.
<출처 : 병산집(屛山集) 제1권 / 시(詩)>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한국고전문화연구원 | 유영봉 황교은 (공역) |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