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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요 세상 탓할게 아니라구요. 참~ 뉴스 보고 뭐 신문 그 읽으면은 전부 얼굴 찡그려지고 좋지 아니한 일들 그것도 무슨 고위공직자들, 주로 고위공직자들 보통 서민들은 나쁜 짓 해봐야 거기거기야. 별로 나쁜 짓 크게 못 해. 근데 전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거든. 그러면 그 좋은 날 참 그 청명한 날 가을 아침을 맞으면서도 그만 얼굴이 찡그려지고 속이 뒤틀리고 그러는거여. 근데 그게 뭐 때문이냐? 내 한 마음 때문이라. 절대 그거 탓할게 아니라 이거여. 끝내는 그거 탓할 일이 아니여. 탓한다고 돌아가는 것도 아니여. 내 마음 잘 단속하고 내 마음가짐을 잘 가져야 돼. 그러면 뭐 그까짓거 다 용서되고 다 이해되고 다 괜찮아요.
내가 아주 즐거운 마음이 있으면은 너무 막, 한꺼번에 예를 들어서 재산이 뭐 얼마 안되는 사람이 예를 들어서 1억을 횡재를 했다. 그러면 아마 뭐 1년 내내 싱글벙글할거여. 왜 싱글벙글하는지 이웃집에서는 몰라. 그냥 기분좋은거야. 그래서 다 용서해주고 싶고 다 이해해주고 싶고, 그와 같이 우리 마음이 그렇게 참 요상한 물건이여. 그래 일심이 청정하면요 온 우주법계가 다 청정해. 이웃집 미운 사람도 다 용서해주고 싶어. 용서해주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 그냥 없어 그냥. 그 사람 마음에
이런 이치를『화엄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以妙音聲轉法輪(이묘음성전법륜)하사 미묘한 음성으로, 아름다운 음성으로 법륜을 굴리사. 부처님 법을 연설한다 이 말이죠.『화엄경』이 그렇고 여기 저 오늘 받은 법공양 책이 그렇고, 하사. 普遍世間無與等(보변세간무여등)이로다 세간에 두루두루 펼쳐져서 더불어 같을 이가 없더라.
그러니까 세상에서 이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은 정말 그 깨닫기 위해서, 이러한 법문을 설하기 위해서 투자를요 희생을 얼마나 치뤘습니까? 그 좋은 직장, 태자자리 다 버렸죠. 그 어여쁜 자식도 버렸죠. 부인도 버렸죠. 다~ 그렇게 희생을 치루고 그리고 6년고행이라고 하는 또 그 큰 엄청난 희생을 치루고 그리고 또 깨달음이라고 하는 아무도 경험하지 못했던 정각을 또 이루고 그리고 나서 얻어낸 법문이에요. 이게 그냥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곱씹고 곱씹고 곱씹어 볼 수록 그 맛이 우러나고 또 깊이가 있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그 이거 한 구절 얻어내는데 얼마나 많은 그런 그 희생이 거기에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댓가를 치뤘어요? 사실.
그러니까 妙音聲이야. 미묘한 음성으로써 법륜을 굴린다. 한 구절, 한 구절이 묘음성입니다. 미묘한 음성으로 법륜 굴리는 일이에요. 普遍世間無與等이로다 세간에 두루두루 널리 두루 펼쳐져서 더불어 같을 이가 없더라. 그러니까 그 처음 그 출발이 그러한 것이기 때문에 참 우리가 따라가지를 못해서 그렇지 어마어마한 그런 그 진리의 말씀이고 훌륭한 가르침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하는 것도 이 참 성철스님 참~ 머리가 총명한 분이거든요. 그리고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참선도 많이 하셨고 그리고 나서 거기에서 뽑아낸 엑기스야 이게. 그런 큰스님 평생공부가 이 한 권의 책 속에 다 들어있어요. 다음에 또 상황이 좀 더 이제 더 이제 넉넉해지면은 여기에 있는『영원한 자유』라든지,『자기를 바로 봅시다』이런거 참 좋은 내용이거든요. 이걸 한 만 권쯤 주문해가지고 그 또 한 번 법공양을 하는 그런 기회가 한 번 만들어 봐야되겠어요.
보통 그 말하자면은 공을 들여서 나온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공을 많이 들여서 그 가르침은요 그 우리가 한두 번 보고 사장할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나눠야되고 많은 사람에게 소개해야되고, 우리가 또 열 번, 백 번 읽고 돌돌돌돌 외우고 이 책이 그냥 다 닳도록“이제 책이 닳아서 못쓰겠습니다. 한 권 더 주세요.”정도로 그렇게 이제 알뜰히 읽고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그런, 그래도 부족해요. 사실은, 그래도 우리 공이 부족할 정도로 그런 그 소중한 말씀들이거든요.
그 다음에 두 번째 게송 ② 如來境界無邊際(여래경계무변제)라 一念法界悉充滿(일념법계실충만)하사 여래의 경계는, 부처님의 경계는, 깨달음의 경계는 邊際가 없다. 가이 없다. 끝이 없다. 일념에 법계에 悉充滿이라. 한 순간에 법계에 가득히 충만한다.
一一塵中建道場(일일진중건도량)하야 참~ 좋은 말이네. 낱낱 먼지 속에 도량을 세워. 무슨 뭐 법당을 세우고 절을 세우고 큰~ 뭐 근사한 불국사같은 그런 절을 그렇게 세우고 그래서 아름다운 도량이 아니라 낱낱 먼지 속에 建道場이야. 도량을 세워서 悉證菩提起神變(실증보리기신변)이로다 모두 모두 보리를 증득해서, 깨달음을 증득해서 신통변화를 일으킴이로다.
이건 무슨 말인고 하면요? 온 우주법계가 여래화(如來化)되었다. 전부 여래다 이 말이여. 난 一一塵中建道場이란 말이 참 좋네요. 저기 명산대찰에만 훌륭한 절이 있는가 했더니 그게 아니야. 낱낱 먼지마다 먼지 먼지마다 전부 아름다운 도량이 건립돼있어. 불국사보다도 아름답고 통도사보다도 아름다운 그런 도량이 건립돼있다. 거기에 눈을 떠야 되요. 거기에, 참 차원이 높아요. 이건, 정말 차원이 높은 이야기입니다. 一一塵中에 建道場이라 낱낱 먼지 가운데서 도량을 세웠다. 그래서 悉證菩提하야 起神變이라 다 보리를 증득해서, 깨달음을 증득해서 신통변화를 일으킨다. 여래화되었다. 부처화되었다. 온~ 저기 우리 작은 세포에서부터 우리 육신, 저~ 먼지에서부터 저 수십 억 광년 저 끝에 있는 별들에 이르기까지 일체가 전부 여래화되었다.
그게요 좀 엉터리로 좀 설명을 하면은 아무리 멀리 있는 것이든, 가까이 있는 것이든 내 마음이 거기에 개입되지 아니하면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하지 않고 내 마음이 개입되지 아니하면 인식이 안돼. 나에게 내 자신에게 인식되지 아니한 것은 존재하지 아니해. 내 정신이, 내 의식이 거기에서 인식되어져서 비로소 그게 존재하는거요. 그러니까 이게 이런 말이 해당이 되는거죠. 알 수 있잖아요. 고것만 가지고도 우리가 짐작해서 알 수 있습니다.
③ 世尊往昔修諸行(세존왕석수제행)에 세존이 지난 날 往昔에 여러 가지 수행을 닦음에 經於百千無量劫(경어백천무량겁)토록 百千無量劫을 지나도록, 百千無量劫을 지나도록
그 우리가 살아가는게 수행이에요. 무슨 사실은 세속에서 사는 것도 어떻게 보면 더 아주 높은 수행이야. 사실은 절에서 뭐 크게 어렵지 않게 무슨 때되면 다 공양해 바치지. 시간 딱 되면 자라고 삼경치지. 자기 싫어도 자야되지. 또 일어나기 싫어도 일어나야 되지. 착착 기계처럼 돌아가요. 사실 쉬워 그래서. 대중이 운력을 해주는거야. 대중이, 전체 규칙이 있어가지고 대중이 그렇게 한 통속으로 돌아가니까 사실은 쉽다구요. 사실 세속에서는 마음대로잖아. 누가 뭐 더 자도 괜찮고 덜 자도 괜찮고 뭐 마음대로니까 근데 거기에서 어떤 상황에 맞춰서 이렇게 제대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더 어려운 수행이다.
내가 늘 그런 말씀드리죠. 산중에서 공부하는 것은 그늘에서 식물이 자라는 거와 같고 세상에서, 세상살이하면서 수행하는 것은 마치 자갈밭에서 도 닦는 거와 같아서 그건 이제 훨씬 공력이 깊고 힘이 있는 그런 수행이 된다. 그런 표현을 했어. 그래서 일체 생활이 어디서 어떻게 하고 살던간에 사실은 눈을 뜨고 보면 전부가 수행이다. 그런 말이여.
그러니까 經於百千無量劫 百千無量劫을 지나면서 수행한다. 一切佛刹皆莊嚴(일체불찰개장엄)하사 그래서 一切佛刹을 皆莊嚴이라 그래서 이러한 이치를 통해서 우리가 눈을 뜨게 되면요 뭐 어디 청소 잘 하고 아름답게 꾸미고 그렇게 해서 비로소 장엄이 아니라 그대로가 장엄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일심이 청정하면은 법계가 청정하다. 一切佛刹을 皆莊嚴하사
出現無碍如虛空(출현무애여허공)이로다 출현하는데 걸림이 없어서 허공과 같더라. 그래 허공에 뭐 걸릴게 있습니까? 그와 같이 우리가 뭐 장엄한다 뭐한다 굳이 꽃을 갖다 꽂아야 장엄이다 이런게 아니에요. 차원이『화엄경』차원은 그런게 아닙니다. 현재 있는 그대로 좋게 보는거여.
아까 뭐라고? 내가 뜻밖에 큰~ 횡재를 해가지고 너무 기분이 좋아.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도 없고 이거. 내 혼자 그냥 안고 그 기분 좋아라 하는거야. 한 예로써 말이죠. 그러면 다 용서해주고 싶고 다 그냥 적당히 넘어가고 싶고 그런 상황이 되잖아요. 그와 같이 한 생각이 우리가 제대로 깨달음을 이루고 이러한 이치에 계합이 되면은 바로 법계가 전부 청정해진다. 그래서 여기서도 허공처럼 출현하는 것이 걸림이 없다.
그 다음에 ④ 佛神通力無限量(불신통력무한량)이여 부처님의 신통력이 한량이 없음이여. 아침에 잠 실컷 자고 나니까 눈을 뜨죠. 눈 뜨면 바로 세수할 줄 알죠. 옷 갈아입을 줄 알죠. 음식장만할 줄 알죠. 청소할 줄 알죠. 또 이제 시간 맞춰서 공부하러 올 줄 알죠. 야~ 이게 佛神通力아니고 뭡니까? 한량없는 부처님의 신통력입니다.
글자 따라서 낱낱이 이게 뭐 이렇게 해석하는구나. 저렇게 해석하는구나. 참~ 그 한 구절 근사하다 뭐 一一塵中建道場 야~ 이거 참 신기하잖아요. 낱낱 먼지 속에서 부처님이 도량을 세웠다. 건립했다 얼마나 근사한 말입니까? 이게 얼른 우리 마음에 착 그 계합이 되고 안되고는 그건 이제 우리가 살아가면서 해야 할 몫이지마는 우선 말이라도 너무 근사하잖아. 뭐 도량이 저 산에 기도처에만 도량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말이야. 一一塵中建道場이야. 낱낱 먼지 속에서 도량을 세웠다. 아 이런 소리 척 이렇게 계합이 되잖아요. 그게 신통력 아니고 뭡니까? 한량없는 신통력이여. 佛神通力無限量이라. 딴 데 가서 찾아봐야 찾아지지도 않고 딴 데 따로 있지도 않습니다. 솔직하게 부처님 신통력이 한량이 없다하는게 어디 가서 따로 안찾아져요. 있지도 않는데 없는데 뭘 이것 말고, 우리가 보고 듣고 하는 것 말고 따로 없는데 어떻게 찾아요.
充滿無邊一切劫(충만무변일체겁)하시니 요건 이제 시간적으로 일체 시간에 다 충만하다. 無邊一切劫에 충만하다 이 말은, 어제도 그러했고 오늘도 그러하고 내일도 그러하고 작년도 그렇고 금년도 그렇고 내년도 그렇고 역시 아침에 일어나서 모든 상황들, 세수할 줄 알고 옷 갈아입을 줄 알고 밥 할 줄 알고 화장할 줄 알고 공부하러 올 줄 알고 급한 일, 오늘 급한 일 제일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어디 뭔 줄 알고 전화해야 할 일도 착착 알고, 이 무한한 부처님의 신통력 그것은 어제도 그러하고 오늘도 그래. 無邊一切劫에 충만해.
그래 가장 값지고 소중하고 모든 것이 갖춰진 것은 결국은 자기 자신입니다.‘자기를 바로 봅시다’이거 성철스님 법문 속에 그런 것이 있어. 자기를 바로 봅시다. 그러한 자기의 존재를 우리가 제대로 깨닫고 살자 하는 그런 뜻이죠.
假使經於無量劫(가사경어무량겁)이라도 假使 무량겁을 지난다 하더라도 假使 한량없는 겁을 지난다 하더라도 念念觀察無疲厭(염념관찰무피렴)이로다 念念에 순간순간 관찰해서 疲厭이 없다. 피로하거나 싫어함이 없다. 이 마음은요 도대체 피로할 줄 몰라. 망상부리고, 쓸데없는 망상부리고 하면 피곤하지마는 흘러가는데로 자연스럽게 우리가 마음을 쓰면은 피곤하지가 안해. 절대 피곤 안하지. 念念觀察無疲厭 순간순간 놓치지 아니하고 다~ 관찰해도 피로하거나 싫증이 안난다 이 말이여.
또 공부 끝나면 12시 되가면‘빨리 안끝내나? 얼른 가야 되는데...’(하하)‘배도 슬슬 고프고 고파 오는데...’그런 것 전부 인식하잖아. 하나도 안 놓치고 다 인식하네. 밥 때 됐는데 그 못 느끼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공부 끝날 때 됐는데 그거 못 느끼는 사람 없어요. 다 느껴. 신통방통해. 정말 신통방통해요. 그런 우리의 그 정말 천하에 둘도 없이 그런 신통묘용을 가진 우리들 자신, 참 자기 이걸 우리가 참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이 진정 나고 이 세상에서 제일 가치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다른 사람도 역시 그러한 능력을 가졌으니까 같이 존중해주고 배려해주고 그것입니다. 결국은
念念觀察해도 無疲厭이잖아요. 어제도 그렇게 많이 분별했고 오늘도 그렇게 많이 분별하고 내일도 그렇게 많이 분별해도 마음 언제 한 번 피곤하다 소리 안하잖아? 괜히 쓸데없이 돌아다니다가 몸이 피곤해서 그렇지. (하하) 앉아서 사경이나 하고『화엄경』이나 읽고 하면, 읽기 좀 좋게 해놨어요? 이거 그냥 막 읽어요. 뜻이 안돌아가도 읽어. 자꾸 읽다 보면 뜻이 저절로 돌아가.
저 어릴 때『천수경』그거요. 뭐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외웠죠. 어느 날 가만히 보니까 거기에 글자 한 번도 한자 무슨 자라고 하는거, 한글로 배웠거든요. 한글로 뭐 배웠지. 그게 한자로 돼있는데도 불구하고『천수경』하는 것도 한글로 배웠지. 일천 천(千)자 하고 손 수(手)자 하고 경이란 경(經)자인 줄 모르고 배웠어. 모르고 외웠어. 그런데 어느날 그냥 알아져버려. 아~ 일천 천(千)자 하고 손 수(手)자 하고 경이란 경(經)자구나. 그렇게 저절로 알아져요.
그래 이『화엄경』공부도 여러분들 아마 이런 경전공부를 거의 다 처음 배우죠 뭐. 여기 와서 그 문수선원에 와서 처음 배우시지마는, 처음 배워도 자꾸 이제 귀동냥을 하다 보면은 어떤건 저절로 이렇게 통하는게 있고, 어떤 것은 한 줄 다 통해지기도 하고, 한 구절만 통하기도 하고 모르는 건 그냥 넘어가버려 그냥. 굳이 뭐 신경 써가면서 알 필요 없으니까. 아는 것만 내가 감상하고 내가 뭐 느껴도 뭐 얼마든지 많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 괜히 모르는거 신경 써가면서 알려고 할거 없어요. 저는 모르는거 그냥 넘깁니다. 모르는거 굳이 알려고 안해요. 아는거만 해도 얼마나 많은데 (하하하) 허 그러니까 이렇게 한문경전을 처음 대하더라도 무턱대고 자꾸 읽어. 자꾸 읽으면 저절로 알아지는 세월이 있어. 알아질 때가 있다구요.
⑤ 汝應觀佛神通境(여응관불신통경)하라 그대는 응당히 부처님의 신통경계를 관찰하라. 十方國土皆嚴淨(시방국토개엄정)하사 시방국토가 다 청정하게 장엄한다. 그게 신통이여. 그게 신통경계라고. 눈 앞에 펼쳐져 있는 모습 그대로입니다. 이것도 뭐 하나도 뭐 청소를 하거나 뭘 옮겨 놓거나 나무를 어디 있는 것을 이 쪽으로 옮기거나 돌을 뭐 쌓아놓거나, 그런 일이 아닙니다.『화엄경』은 현재 있는 모습 그대로
一切於此悉現前(일체어차실현전)호대 일체가 여기에서 다 앞에 나타나 있으시대 念念不同無量種(염념부동무량종)이로다 낱낱이 같지 아니해서 한량없는 종류더라. 그렇죠. 사람 얼굴이 다 달라야 돼. 다 다르고 또 마음 씀씀이도 다 달라. 다 달라야 되고 다 다릅니다. 그 다른 것을 서로 이해해야 돼. 그리고 다른 것을 배려해줘야 되고 念念不同無量種이야. 한량없는 종류더라 이 말이여.
뭐 어제는 이렇다 하더니 뭐 오늘은 달리 말하는가? 念念不同하니까. 無量種이니까. 그게 무슨 조삼모사(朝三暮四)도 아니고 무슨 작심삼일(作心三日)도 아니고 뭐라고 우리 마음은 應無所住而生其心(응무소주이생기심) 이라. 우리 마음은 머무는 바가 없어. 머무는 바가 없어. 절대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應 無所住야. 절대 머물고 있지 않다. 그 말입니다. 念念不同無量種이라 했잖아요. 다행히 어제 생각하고 오늘 생각하고 같으면 또 그 같은데로, 그래도 같아도 어제는 그 1차적으로 생각한 거고 오늘은 똑같이 결론을 내려도 2차적으로 한 번 검정해서 이렇다라고 결정한 것이고, 다릅니다 그것도 또. 그 겉으로 드러난 것은 같을지몰라도 다른거에요.
그 다음에 ⑥ 觀佛百千無量劫(관불백천무량겁)이라도 부처님을 百千無量劫 동안 관찰한다 하더라도 不得一毛之分限(부득일모지분한)이라 一毛 한 터럭만한 分限도 얻지 못한다 이 말은, 뭐 부처님을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부처님의 경우도 이럴 수가 있습니다마는, 예를 들어서 석가모니부처님이라 합시다. 석가모니부처님에 대해서 뭐 경전을 통해서 역사를 통해서 하~ 공부를 많이 해도 석가모니부처님에 대한 조그만한 것도 제대로 이해를 못한거요.
이걸 또 아주 우리들 자신에게다가 이끌어다가 해석을 하면은, 우리들 자신의 마음 씀씀이도요 아~무리 아무리 우리가 살펴 보고 이해를 할려고 해도 그게 한 털끝만치도 제대로 우리가 이해하고 활용하는게 아니에요. 얼마든지 수억만 배가 아직도 남아있어. 요게 觀佛百千無量劫 그랬어요. 백천무량겁을 부처님을 관찰해도 한 터럭만치도 얻지를 못한다. 우리가 그토록 마음을 많이 써왔지만 아직도 써야 할 마음이 무수히 남아있는 거죠.
如來無碍方便門(여래무애방편문)이여 여래의 걸림없는 방편문이여 此光普照難思刹(차광보조난사찰)이로다 이 광명이 難思刹 불가사의한 세계, 難思刹을 그렇게 표현합니다. 생각하기 어려운 많고 많은 세계를 널리 널리 비추는 도다. 그렇습니다. 여래의 무량 무애한 걸림없는 방편문이 뭡니까? 우리들의 마음 씀씀이죠. 사람 여래, 인간 여래, 여래입니다. 인간 여래의 걸림없는 그런 마음 씀씀이가 그야말로 무수한 세계를 다 널리 다 비춘다.
⑦ 如來往劫在世間(여래왕겁재세간)하사 여래가 지난 세월 세간에 계시사 在世間하사 承事無邊諸佛海(승사무변제불해)실새 無邊諸佛 가없는 모든 부처님 바다를 받들어 섬기실새. 이럴 때 이제 사(事)자 承事할 때 事자는 섬긴다 하는 뜻입니다. 일 사(事)자가 아니고 섬길 사(事)라고 그래요. 承事無邊諸佛海 부처님은 모든 사람, 모든 생명, 모든 존재를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렇고 과거, 현재, 미래 往劫在世間 과거, 현재, 미래에 항상 부처님으로 이해하고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는 것입니다. 承事無邊諸佛海이거든요. 無邊諸佛海 가없는 모든 부처님의 바다를, 바다가 뭐 부처님이 소유하고 있는 그런 그 바다가 아니라 부처님이 그렇게 바다처럼 널리 많다 이 말이여. 그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이라니까. 특히『화엄경』에선 특히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이 그대로 부처님이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해 無邊諸佛海라고 표현합니다.
是故一切如川騖(시고일체여천무)하야 그런 까닭에 일체가 川騖와 같아서 川騖 냇물이 빨리 흘러 달리는 거와 같다. 달릴 무(騖)자여. 냇물이 막 경사진 어떤 그 개울은 물이 빨리 흐르잖아요. 마치 그렇게 변화가 많다 이 말입니다. 咸來供養世所尊(함래공양세소존)이로다 다 와서 냇물이 흐르듯이 모두 모여 와서 모든 세상의 그 높으신 분 世所尊하면, 所자 빼버리면 뭐죠? 세존이잖아요. 세존에게 공양하는도다. 그랬습니다. 그야말로 이렇게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법공양을, 공양이란 말 나왔네. 법공양을 그야말로 아주 경사진 개울물이 막 빨리 달리듯이 그렇게 사람들에게 쫓아가서 공양 올려야 하는 그런 상황이죠. 그렇게 해석이 됩니다. 그것말고는 달리 다른게 없어요.
그 다음에 ⑧ 如來出現遍十方(여래출현변시방)의 여래가 보현시방의 一一塵中無量土(일일진중무량토)에 출현하시니. 낱낱 먼지 속, 한량없는 국토에 출현하시니. 그러니까 뭐라? 낱낱 먼지, 두두물물, 산천초목, 삼라만상 그대로가 다 부처님 여래가 출현한 것이여. 여래가 출현한 모습이라구요.
其中境界皆無量(기중경계개무량)이라 그 가운데 있는 경계가 한량이 없음이라. 그 가운데 경계가 한량이 없음이라. 참 우리가 유심히 우리가 마음이 아주 밝아지고 지혜로워져서 세상을 아주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또 어떤 변화를 낱낱이 놓치지 않고 살필 수만 있다면은 그 가운데 경계가 한량없다 라고 하는 것을 그냥 느끼고 알 수 있는거죠. 悉住無邊無盡劫(실주무변무진겁)이로다 다 無邊 가없는 무진겁에 머무는도다. 부처님은 그와 같이 여래가 시방 일체 진중에 있는 불토에 출현해가지고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아홉 째 ⑨ 佛於曩劫爲衆生(불어양겁위중생)하사 부처님은 지난 세월 曩劫 옛 양(曩)자에요. 옛 양(曩)자. 曩劫에 중생을 위하사 修習無邊大悲海(수습무변대비해)라 無邊大悲 바다를 수습하심이라.
그렇죠.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은요 아까 그 말씀드렸듯이 부처님 입장에서는 전부 중생이야. 근데 중생입장에서는 전부 부처까지도 중생이기 때문에 그런 그 중생들이 부처님이 보기에는 안타까운거야. 내 입장에서는 너희가 아무 문제없지만 너희 입장에서는 너무 안타깝다. 그래서 내가 나처럼 이해하도록 깨우쳐주고자 하는게 그게 부처님 마음이라. 간단하게 표현하면 그거에요. 중생 따로 있고 부처 따로 있고 뭐 차별이 나고 그런게 아니에요. 보는 사람 안목이 차별 날 뿐이라. 보는 사람 그 부처님은 그러한 사실을 알고 보고 우리는 본래 부처님하고 똑같지마는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보니까 모르고 보니까 그런 차이가 나는거죠. 그래서 부처님은 모르고 보는 중생들이 너무 안타까워서 無邊大悲海 가없는 大悲 큰 자비의 바다를 수습하는거여. 그걸 베푼다 이 말이죠.
隨諸衆生入生死(수제중생입생사)하사 모든 중생들을 따라서 생사의 바다에 들어가. 중생들이 태어나면 당신도 태어나고 중생들이 죽으면 당신도 죽는거 보여주고, 그게 이제 隨諸衆生入生死입니다. 모든 중생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따라서 생사에 들어가서
뭐 예를 들어서 3000년 전에 부처님이 계셨고 그 분은 무슨 육신이 다이아몬드로 돼가지고 아주 특별해가지고 할 짓 다 하고 죽지도 않고 지금까지 아무 이상없이 그대로 3000년동안 그냥 계신다하면 그 어디 가까이할 수 있겠어요? 우리가. 그건 이상하잖아요. 너무. 예를 들어서 그런 것을 상상을 하면은, 그런 상상도 더러 하거든요. 상상은 그거는 우리하고는 영 거리가 먼 존재라. 우리하고 상관없는 존재까지도 되는거여.
그래서 隨諸衆生入生死여. 중생을 따라서 생사에 들어간다. 그래야 중생을 제도하는거지.
普化衆會令淸淨(보화중회영청정)이로다 널리 衆會 대중들의 모임을, 모든 대중들을 다 교화해서 청정하게 하는도다. 전부 청정하게 한다. 그 이제 불교가 할 일이고,『화엄경』이 할 일이고, 우리 불자들이 할 일이고 그렇습니다. 대자비(大慈悲) 그게 중요한거에요.
불교는 지혜와 자비의 종교다. 근데 지혜가 있는 사람은 자비를 실천한다. 그래서 실천은 자비요. 또 지혜는 내면이라. 내면은 지혜고 그 내면을 구체적으로 다른 사람
첫댓글 一一塵中建道場...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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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_()()()_
아무리 멀리 있는 것이든, 가까이 있는 것이든 내 마음이 거기에 개입되지 아니하면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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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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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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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가장 값지고 소중하고 모든 것이 갖춰진 것은 결국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이거 성철스님 법문 속에 그런 것이 있어.
자기를 바로 봅시다.
그러한 자기의 존재를 우리가 제대로 깨닫고 살자 하는 그런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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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心淸淨, 法界淸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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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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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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