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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체제 권력구조와 정치행태 분석
김 창 희
[국문요약]
Ⅰ. 서 론
김정일은 김일성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12년을 강성대국 완성의 해로 정하고, 후계자도 ‘백두혈통’에 의하여 대를 잇게 하려고 하였다. 주체와 선군을 이념의 중심축으로 김정일에게 절대 권력을 부여하는 제도적 접목은 2009년과 2010년에는 헌법과 당규약 개정으로 이루어졌다. 국방위원장을 ‘최고의 영도자’로 총 비서를 ‘당의 수반’으로 위상을 더욱 높인 것은 후계체제구축을 위한 정비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다.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에게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직함이 주어졌고, 이는 공식적인 후계자 선출로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정치과정 속에서 권력 엘리트들의 전진과 배치도 후계자를 확실하게 후견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루어 졌다. 김정일은 자신이 이러한 정치구도로 5년 정도 이끌어 가면, 실제적인 정치권력을 김정은에게 넘겨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북한이 김일성 시대에 ‘김일성 영도-김정일 관리체제’로 갔던 것처럼, 김정일 시대도 ‘김정일 영도-김정은 관리’로 세습을 완성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2012년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김정일 시대는 막을 내렸고, ‘김일성 탄생 100주년 경축 열병식’의 자리에는 김정일의 유훈대로 김정은이 섰다.
김정일은 자신의 유일지배체제를 완성하고 김정은 후계체계를 구축해가는 과정에서 사망하였다. 북한 당국은 즉시 ‘김정은 영도체계’를 공식 선언하였다. 북한 정치는 과도기를 맞게 되었고, 북한 정치권력의 향방에 대한 분석은 상반된 견해가 제시되었다. 권력승계에 대한 선행 경험과 짧은 기간이지만 권력승계에 대한 제도적이고 인적 정비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김정은 체제에서 권력투쟁의 가능성은 낮고 곧 안정화 될 것이라는 주장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시대상황의 변화와 그동안 군부의 강화가 오히려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사망 시 김정일이 김일성의 유훈에 의하여 통치한 것과 유사한 형태의 방식으로 김정은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김정일은 3년간 종전에 가지고 있던 직위를 그대로 유지하였지만, 김정은의 경우 이와는 달리 당 총비서 등 최고의 직책을 가지고 유훈통치를 할 것으로 보았다. 북한은 4월 15일 이전에 제4차 당대표자회와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하고 당규약과 헌법을 개정하면서, 김정은을 ‘로동당 제1비서’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추대하였다. 이는 혁명전통에 의한 수령승계에 이어 제도화를 통한 권력승계의 완성을 가져가는 것으로 김정은 체제의 공식적 출범을 의미한다.
이후 김정은의 행보는 파격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김정일 시대에는 거의 볼 수 없었던 공개연설을 하기도 하고, 부인을 대동하고 현지지도에 나서기도 한다. 체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제도나 권력엘리트들에 대한 용인술도 중요하지만 인민들 속에 파고들지 않으면 어렵다는 생각에서 일 것이다. 먼저 먹고사는 문제를 거론하고 인민친화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인민들의 마음을 사는 정치리더십의 동원적 지지를 이끌어 내고 있다. 김정은이 인민들의 환심을 사기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강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연구는 김정일의 사망과 그 후에 이루어진 북한의 정치과정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김정은 중심의 권력구조를 형성해가는 과정에서 어떠한 핵심 권력엘리트가 어떠한 역할을 하였으며, 여기에서 북한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과 어떻게 연결시켜 나가고 있는가? 김정은의 발언이나 행동의 정치행태가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고, 이것이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규명도 해 본다. 김정은 체제에서 제기될 수 있는 불안정의 요소는 어떤 것이 있을까도 진단해 본다.
논문을 구체화 시키는 과정에서 북한이탈주민과의 인터뷰는 직접하지 않았지만, 그들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들을 수 있었던 것을 내용에 포함시켰다. 북한의 1차 자료로는 김정일 사망 직후 발간된 저서 ��위인 김정일��과 ��김일성종합대학논문집��, 과학백과출판사에서 발간한 잡지의 내용을 참조하였다. 그리고 조선중앙통신사, ��로동신문��, ��민주조선�� 등의 보도내용을 분석하였다. 국내 전문가들의 관련 저서, 논문, 기고문은 이 논문을 완성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Ⅱ. 혈통승계의 정당성과 김정은 옹위
북한이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권력승계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혈통과 혁명전통이었다. 김정일 사망이후 북한은 매체가 총동원 되여 ‘김정은 동지의 영도’를 부각시켰다. 장례이후 로동당은 정치국 회의를 개최하여 김정은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하였다. 북한은 정치권력의 안정화를 위하여 15일 내에 압축승계의 정치과정을 진행시켰다.
1. 백두혈통과 권력세습의 정당성
북한의 권력승계 정치에서 가장 강조한 것이 혁명전통의 계승과 후계자론이었다. 북한당국은 김정일 사망이전부터 군민일치를 주장하며, 김정일에 대한 ‘수령결사옹위정신’을 강조하고 백두혈통에 의한 후계자를 강조하여 왔다. 이는 젊은 김정은에게 정통성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은 혈통과 김정일의 선군혁명전통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북한에서는 김정은이 공식적으로 등장하기 전부터 ‘청년대장’이라는 호칭을 써왔고, 2010년 9월 28일 제3차 당대표자회 직전에 그에게 대장칭호가 수여되었다. 당규약 개정으로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을 주체혁명 선군혁명의 대를 이어 나갈 정치적 후비대라고 한 것도 후계자 김정은과 무관하지 않다.
‘백두산 혈통’은 혁명전통의 체현자여야 하며, 김정은이 김정일을 보좌하면서 후계자로서의 ‘역사’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북한이 백두혈통의 위업계승이라는 신화를 이어가려한 것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2009년 2월 16일의 로동신문에서는 “백두의 혈통을 빛나는 계승 속에 주체혁명의 앙양한 전도가 있다”고 하였다. 제3차 당대표자회가 열리기전인 2010년 8월 26일에서 30일까지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먼저 찾는 곳은 ‘김일성유적지’인 위원(毓文)중학교였다. 이곳은 김일성이 ‘공산주의청년운동’을 결성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선군통치의 정통성을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 간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김정일의 “수령님께서는 나의 사상이나 성격, 취미와 습관을 두고 신통히 백두산을 닮았다고 하시었는데 우리 대장은 나를 닮았습니다. 우리 대장의 정신과 기질은 백두산의 정기와 기상 그대로 입니다”라는 발언은 3대 세습을 염두에 둔 것이다.
김정일 사망이후 2011년 12월 20일 로동신문의 ‘백두의 혈통이어 주체의 혁명 끝까지 완성하리’나, 12월 25일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젊고 젊으신 백두산의 아들 김정은 동지를 대오 앞에 거연히 세워주신 것은 성스러운 혁명위업”이라는 주장은 권력승계의 정통성이 백두혈통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북한 문헌의 다음 내용들은 이러한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 즉, “백두산 정기와 기상을 안으시고 탄생하시여 위대한 혁명가, 장군형의 위인으로 성장하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는 전설적인 위인들이신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장군님의 손길아래서 총대와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을 맺으시고 선군혁명령도의 길에 오르신 탁월한 령도자이시다”이다. 김정은이 백두산의 정신과 기상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고 하면서, ‘김정은동지의 위인적 풍모는 폭풍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김정은동지는 인간사랑의 태양이신 위대한 장군님의 유일무이한 계승자’라는 것이다. 이는 백두산 혈통에 의한 승계의 정당화를 넘어서, 김정은 우상화의 시작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북한에서는 ‘김정일의 위대한 계승자 김정은’은 ‘충정의 역사’ ‘계승의 역사’ 속에 있다고 하면서, ‘고결한 충정과 숭고한 도덕의리, 탁월한 사상이론적 예지와 비범한 군사적 풍모’를 지니고 있어 선군위업을 빛나게 계승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 이는 김정은 권력승계의 정당성을 혁명전통의 역사와 혈통에 의해서만 아니라, 그의 충성심과 자질 그리고 탁월한 능력에서 찾으려는 것이다.
2. 김정일의 사망과 최고사령관으로 김정은 옹위
북한 당국이 김정일의 사망보도를 통해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완성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쳐오시였으며 사회주의조국의 강성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나라의 통일과 세계의 자주화를 위하여 불철주야 정력적으로 활동하시던 우리의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 너무도 갑자기, 너무도 애석하게 우리곁을 떠나시였다”하였다. 바로 김정은을 필두로 232명의 국가장의위원회가 구성되었는데, 그 위원회의 명단은 북한의 권력서열을 의미하는 것으로 김정은에 이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영림 내각총리,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 순이었다.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에서 장의위원장이 정치권력을 승계하였는데,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도 김정일이 장의위원장이었다. 12월 22일 로동신문은 ‘위대한 김정일 동지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심장 속에 영생하실 것이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김정은의 영도와 유훈통치를 언급하였다. 즉, “김정은 동지의 영도에 따라 난국을 이겨내며 더욱 억세게 투쟁해 나가야 한다”면서, “김정은 동지의 두리에 단결하고 단결하고 또 단결하며 영도를 충직하게 받들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김정일 동지를 영원히 높이 우러러 모시며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지켜 주체혁명, 선군혁명의 길을 꿋꿋이 걸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조선중앙TV가 생방송으로 중계한 김정일의 장례식에서 영구차를 호위한 김정은외 7인의 인물을 북한의 당과 국가기구와 군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었다. 김정은은 장례기간 북한의 언론 매체를 통해 ‘위대한 후계자’ ‘영명한 지도자’ ‘군최고사령관’ ‘21세기의 태양’ 등으로 호칭되었다. 12월 29일 김일성 광장에서 십만여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김정일 위원장 추도대회가 열렸는데, 이것은 일종의 ‘김정은 추대대회’였다.
북한의 로동당 정치국 회의는 12월 30일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과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후보위원이 참가한 가운데 김정은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하였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최고사령관 선포는 ‘김정일 위원장의 10월 8일 유훈’에 의한 것이라 하였다. 여기에서는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받들어 강성국가 건설에서 일대 앙양을 일으킬 데 대하여’라는 결정서를 채택하였다. 이렇게 북한은 김정일의 유훈을 받들어 백두산 혈통의 김정은을 최고영도자로 추대하는데 속도를 냈고, 로동당 정치국을 통하여 제도적으로도 이를 실현하였다.
Ⅲ. 김정은 체제의 공식출범과 권력엘리트 재배치
2012년 신년공동사설의 제목은 ‘위대한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받들어 2012년을 강성부흥의 전성기가 펼쳐지는 자랑찬 승리의 해로 빛내이자’였고, 여기에서 “우리 당과 인민의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는 선군 조선의 승리와 영광의 기치”라 하였다. 또한 “전당, 전군, 전민이 김정은 동지를 결사옹위하며 위대한 당을 따라 영원히 한길을 가려는 투철한 신념을 지녀야 한다”는 것은 북한의 김정일 체제가 김정은 체제로 옮겨갔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김정은의 최고사령관 추대는 로동당 정치국을 통한 것이지만, 기존 권력엘리트들의 후견 역할을 통해 이루어 진 것이다. 제4차 당대표자회까지 김정은 정권은 김정일 유훈을 전면에 내세우며 단일성 과두제 형태로 조기 출범에 성공했다. ‘김정일은 당과 혁명의 영원한 영도자’가 되었고, 그 유훈으로 김정은이 뒤를 이어 받았다.
1. 로동당 제1비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김정은
김정은이 북한의 최고권력자가 되기 위해서 제도적 뒷받침이 수반되어야 했다. 2012년 4월 11일 제4차 당대표자회를 열어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유훈을 받들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우리당의 최고수위에 높이 추대할데 대하여”라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구체적인 것은 당규약 개정으로 나타났는데,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하고 제1비서직을 신설하여 김정은이 이 직위에 올랐다. 개정된 당규약 서문은 “조선로동당은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당이다”라 하고, “김정일동지는 탁월한 령도자이시며 조선로동당의 영원한 총비서이시고 조선로동당과 조선인민의 영원한 수령이시다”이다. 그리고 ‘<조선로동당규약> 개정안은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하고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로 하는 당의 강령으로 틀어쥐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가 령도’한다는 것을 규정하였고, ‘로동당 제1비서직을 새로 내어 당의 수반으로서 당을 대표하고 전당을 령도’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실질적으로 김정은이 김정일의 총비서를 승계한 것이다. 총비서가 겸직하게 되어있던 당중앙군사위원장에 오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김정은은 지지기반을 형성하기 위하여 자신의 직계 엘리트들을 당의 정치국과 중앙군사위원회에 배치하였다.
이같이 당규약을 정비하면서 김정은을 제1비서로 추대하고, 이틀 후에는 제12기 제5차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하였다. 여기에서 헌법을 개정하고 국방위원장의 직책도 역시 총비서와 같이 변화를 가져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직을 신설하였다. 로동신문은 새롭게 수정․보충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고 보도하였다. 이 회의의 의안은 ‘헌법의 수정보충’ ‘김정은의 최고위 추대’ ‘내각의 과업보고’ ‘예결산보고’ ‘조직문제’였다. ‘김정일의 만고불멸의 국가업적’이라고 한 것을 헌법 서문에서 보면, “김정일 동지께서는 세계사회주의체계의 붕괴와 제국주의련합세력의 악랄한 반공화국압살공세 속에서 선군정치로 김일성 동지의 고귀한 유산인 사회주의 전취물을 영예롭게 수호하시고 우리 조국을 불패의 정치사상강국,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전변시키시었으며 강성국가건설의 휘황한 대통로를 열어놓으시었다”라는 내용이다. 이는 김정일의 선군업적을 기리면서,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로 한 것이다.
북한은 ‘김일성 헌법’에서 ‘김일성-김정일 헌법’으로 명명하였고, 김정일을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높이 모신’다 하여 본문의 국방위원장은 모두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수정하였다. 김정일을 가리키는 ‘국방위원장’ 대신 김정은을 지칭하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대체하여 김정은 체제를 공식적으로 출범시킨 것이다. 김정은이 사실상 국방위원장을 승계함으로써 헌법상 국가수반에 올랐다. 또한 중앙재판소․검찰소를 최고재판소․검찰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김정은은 이와 같이 김정일 사망이후 4개월 만에 당과 국가기구의 최고 자리에 올라 자신의 공식적인 체제를 출범시켰다. 이는 김일성 사망 이후 4년에 걸쳐 유훈통치를 한 김정일에 비해, 김정은은 제도화를 통한 압축승계에 의하여 체제의 안정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김정일이 공식적인 체제 출범 시 헌법을 개정하여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으로 모신다’한 것처럼, 김정은 체제에서도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와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받들었다. 김정은은 권력구조에 대한 큰 변화를 주지 않고, 김정일을 영원히 모시면서 제1이라는 명칭만 붙여 총비서와 국방위원장 승계를 완성하였다.
북한은 제4차 당대표자회와 제12기 제5차 최고인민회의를 기점으로 김정은은 로동당 제1비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정치국 상무위원, 인민군 최고사령관 등 당, 정, 군의 최고 직책에 추대되었다. 그리고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주년 경축대회에서는 김정일과 달리 20여 분간 원고를 낭독하면서 그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김정은 체제 출범이후 후견 권력엘리트 부침은 김정은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고, 향후 북한 정치의 방향을 예견할 수 있는 단초가 되었다.
2. 후견 권력 엘리트의 재배치
김정일은 급작스럽게 사망을 예상할 수는 없었지만, 김정은 후계체계를 염두에 두고 로동당 중앙당을 복원하여 기능을 정상화 시켰고 권력엘리트들을 재배치하여 이들 간의 협력체계를 구축해 놓았다. 먼저 김영남 최고인민위원회 위원장은 상징적인 인물로 계속 기용되었다. 최영림의 내각총리 발탁은 과거 인물의 재기용이라는 안정성을 고려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동생 김경희의 남편인 장성택의 부상은 핵심 친인척으로서 후계자 후견그룹을 지도하고자 하는 김정일의 의도였다. 김정일은 장성택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써 군을 통제하고, 권력 이양기 사회 안정과 기강을 확립할 수 인물로 꼽았기 때문이었다. 군부의 세대교체를 단행하면서 급부상한 인물은 리영호였다. 그는 평양방위사령관에서 총참모장에 오른 지 1년 만에 차수로 승진하고, 정치국상무위원과 중앙군사위원에 부위원장에 선출됨으로써 다른 군부 인물들을 제치고 군부서열 제1의 위치에 올랐다. 김정일은 장성택과 리영호를 다른 그룹의 권력엘리트들을 리드하게 하고, 이들을 상호 견제와 협력케 함으로써 조정자의 발휘하였다.
김정은 체제의 공식적인 출범 이후에도 계속해서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은 장성택이다. 실제로 장성택은 당대표자회에서 정치국 위원에만 올라 큰 힘을 발휘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장성택계 인사들이 군과 공안권력 수장의 지위에 올랐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장 주목 받을 만한 인물은 최룡해였는데 그의 총정치국장 기용은 장성택과 동고동락한 사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최룡해는 당대표자회 바로 전에 인민군차수로 승진하였고, 조명록 사망이후 공석에 있던 인민군총정치국장에 올랐다. 그리고 당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은과 함께 정치국 상무위원과 김정은이 위원장이 된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도 오르게 되었다. 그가 리영호에 비해 국방위원이라는 국가직책을 더 갖게 된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었다.
국방위원회 산하에 있는 인민무력부,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의 책임을 맡고 있는 김정각, 김원홍, 리명수는 모두 국방위원들로 김정일 측근의 핵심적인 권력엘리트 들이다. 김정각은 총정치국 제1부국장에서 인민무력부장이 되었고 당정치국 위원․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 등을 겸하였다. 김원홍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은 국가안전보위부장에 발탁되었고, 그 역시 당정치국 위원․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 등을 겸직하고 있다. 리명수도 2011년 4월에 이미 인민보안부장에 올라 당과 군의 직책을 맡았다. 이들도 모두 장성택으로부터 ‘당적 지시’를 받을 수 밖에 없다. 국가보위부장과 인민무력부장 보고 라인에서 당 행정부장을 겸하고 있는 장성택을 거쳐야 하는 것으로 볼 때, 장성택의 군과 공안분야의 장악력 높은 것이다. 이들을 장성택의 측근이라고 말하는 조한범은 “4월의 북한 권부의 변화는 김정은 정권의 강화를 명분으로 한 ‘장성택에 의한 장성택을 위한 권력재편’으로 볼 소지가 충분하다”고 하고 있는데, 결국 이는 군과 공안권력을 강화시킨 김정은 체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최룡해에게 총정치국장을 맡긴 것은 전반적으로 야전군부에 대한 김정은과 장성택의 정치적 장악력 확대를 위한 포석이란 주장도 있다.
또한 김경희가 비서국 비서가 된 것은 눈에 띠는 대목이다. 조직비서가 되었다는 말이 있지만 알 수 없고, 그럴 경우 당의 인사권을 가진 자리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김경희는 주로 고령인 당정치국 인사들을 위무하고 그들의 정권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내며, 당 조직을 직접 챙기는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 체제의 출범과 더불어 나타나는 또 하나의 특징은 내각의 강화를 들 수 있다. 내각의 강화는 김정일의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의 내용에서 알 수 있는데, 여기에서 “경제사업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내각에 집중시키고 내각의 통일적 지휘에 따라 풀어 나가는 규률과 질서를 철저히 세워야”한다고 하면서 내각을 “경제사령부”라 하고 있다. 김정일이 경제의 ‘내각책임제’를 주창하던 당시의 경제통 인물들이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다시 부상함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경제통의 부상으로는 내각 부총리였던 곽범기의 비서국 비서와 계획재정부장 임명과 내각 총리를 지낸 박봉주의 당중위원회 부장 승진이다.
3. 체제공고를 위한 당권 강화와 리영호 해임
상술한 바와 같이 김정일은 김정은에게 권력을 확실하게 승계하기 위하여 권력구조와 직위를 복잡하게 얽어 놓았다. 권력엘리트들을 국방위원회․로동당․군부․내각에 중첩적으로 배치하여 후계자를 후원하는 권력이 한 쪽으로 쏠리지 않게 하였다. 김정일 영도하에 김경희의 도움을 받고, ‘장성택 국방위원회-최룡해 로동당-리영호 군부-최영림 내각’의 틀 속에서 상호 관여케 한 것이다. 이러한 것은 2010년의 당대표자회를 마지막으로 조정한 결과였다. 김정일은 이러한 시스템이 안착되기를 원했으나, 완전하게 시스템이 가동되기 전에 그는 사망하였다. 그의 사후에 영결식에서 김정은을 필두로 국가기관과 군부 그리고 공안기관의 책임자가 뒤를 따르게 함으로써, 김정은에 충성을 가져가게 하려는 의도였다.
당대표자회와 최고인민회의를 거치면서 김정은의 지위는 굳건해졌고, 권력엘리트 배치 역시 그를 중심으로 한 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는 적어도 정치적 상부구조에서 그에 대한 도전 위협은 상당부분 제거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서 당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권력이 발동되었고, 김정은 체제가 본격적으로 가동하는 과정에서 정통 당 관료였던 최룡해를 총정치국장에 앉힌 것은 군부 힘 빼기 신호탄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2012년 7월 15일 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회의에서 군부의 핵심 인사인 리영호가 실각되었다. 장성택과 최룡해가 김정은의 동의를 얻어 신군부의 간판격인 리영호에 대한 치밀한 내사를 벌여 비리를 적발한 정황도 포착되었다고 한다.
김정은 체제는 당-국가체제를 복원하여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로 인한 과대성장한 군부에 대한 제재와 세대교체를 단행하였다. 리영호의 해임도 그동안 북한 경제가 군부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것을 당이 중심으로 돌려놓으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군부에 대한 당의 통제 강화인 것이다. 권력엘리트들의 재배치 면에서 보면 장성택과의 경쟁에서 밀려난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7월 17일 인민군 8군단장 출신인 현영철 대장에게 차수 칭호를 수여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리영호 대신 총참모장이 되었다. 다음날에 이 통신은 중대보도를 통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원수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인민군 내 소장파인 현영철의 참모장으로 기용은 김정은의 군대 내의 세대교체의 의지로 볼 수 있다. 리영호 해임과 그 이후 조치는 김정은이 군과 권력을 안정적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Ⅳ. 김정은의 정치행태와 의미
김정은 체제가 정치권력의 구조를 완성하면서 자신의 측근들을 물리적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구에 배치하였다. 북한의 정치과정이 위로부터의 조직화나 통제에 의하여 진행되고 있으나, 인민들의 동의나 마음을 잡지 않고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김정은이 인민에게 다가가는 정치행태를 보여주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공개활동을 계속하면서 인민친화적 모습구현과 인민생활향상에 대한 강조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살펴본다.
1. 공개적인 정치행태와 담화
김정은은 김정일과 달리 인민들에게 자신을 노출시키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는 김정일은 김일성 탄생 100주년 경축열병식에서 첫 공개연설을 하였다. 이것은 김정일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정일은 공개석상에서 연설이나 보고를 한 적이 없다. 1998년 공식적인 김정일 체제가 출범하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 회의에서도 제9기 때 김일성이 한 말을 녹음으로 들려주는 것으로 연설을 대신했다. 김정일의 권위적인 모습과는 달리 김정은은 ‘김일성의 인민친화적 모습’으로 맞추어 정치사회화를 진행시키고 있다. 군인과 노동자 그리고 어린들과 손을 잡거나 어깨를 거는 모습이 북한의 로동신문을 비롯한 매스미디어에 비쳐진다. 김정일이 하지 않던 인민대중연설을 하고, 인민생활에 관련된 현장지도의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소년절을 맞아 어린이들에게 둘러 쌓인 모습이나 청년절에 대규모 행사 광경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는 김정일이 지도자로서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젊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으로 승화시키면서, 그들의 지지를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김정은이 청년절 축하문에서 “나는 이런 청년들을 온 세상이 부러워하게 금방석에 앉히고 저 하늘의 별을 따다가 젊은 가슴에 달아주고 싶습니다”라는 대목은 청년들을 독려하면서, 그들과 함께한다는 것을 보려주려는 것이다. 이렇게 청년들을 자신의 전위옹호세력으로 만들어 가면서 김정일의 유훈을 가미하는 것이 ‘김정일 애국주의’이다. 김정일 애국주의는 북한의 보편적인 구호가 되고 있는 것은 로동신문 사설 “온 나라에 김정일 애국주의의 열풍을 세차게 일으키자,” “모두가 열렬한 애국주의가 되자”에서도 알 수 있다. 김정일 애국주의는 김정일이 보여주었다는 애국의 정신과 실천을 말하는 것으로, 조국관․인민관․후대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민친화적인 모습 중 다른 것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부인의 공개와 활동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을 비롯한 매체들이 2012년 7월 25일 그동안 공개석상에서 김정은 옆에 있던 여인이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라고 밝혔다. 김정은이 부인 리설주를 공개한 것은 다목적의 의도가 있다. 젊은 지도자에 대한 인민들의 우려를 불식시켜주기 위해서는 부인을 공개하여 가정을 가진 안정적인 지도자상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있다. 정성장은 ‘김정일 시대에 부인을 공개하지 않은 비정상적인 관행과 결별하겠다’는 김정은의 의지와 ‘자신이 미혼의 지도자가 아니라 결혼하고 부인까지 둔 지도자’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김정은은 나이가 젊은 것이 약점이 아니고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하여 사회에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음을 인민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북한에서 현지지도는 정치체제의 작동과 운영에 핵심적 기능을 수행하는 통치행위이다. 김정은은 북한 통치수단의 하나인 현지지도를 계속하고 있고, 여기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종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준다. 리설주가 등장한 시점부터 김정은의 현지도 활동이 총23회 공개되었는데 이 중 15회(65%)를 동행했다. 공연관람이나 개업을 앞둔 식당을 방문하여 보여주는 웃음을 띤 편안한 모습에 부인과 함께하는 장면, 심지어 군부대 현지지도에도 동행하는 장면들은 파격적이면서도 계산된 행동으로 보여진다. 또한 인민의 가정집을 방문하여 아이를 안아주는 김정은의 곁에 편하게 손을 집고 앉아있는 리설주의 모습, 신혼부부의 집을 방문하여 곁에서 이야기하는 모습 등은 김정일 시대에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다정하고 과감한 것이다.
2. 인민생활 향상정책
북한에서는 김정은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인민, 만난시련을 이겨내며 당을 충직하게 받들어온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입니다”라고 했고, 김정은의 모든 사색과 활동의 출발이고 정치의 본질은 ‘인민을 최우선, 절대적으로’ 위한다는 것이다. 젊은 지도자의 등장이 인민들에게 일정한 기대감을 주고, 이것이 북한당국의 선전과 결합된다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 체제가 당면하고 있는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것은 현실의 과제를 얼마나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성과를 내느냐에 달려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을 맞아 배급을 늘리면서 인민들의 환심을 샀고, 이것은 일시적인 처방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인민들은 김정은 체제에 기대를 상당히 걸고 있는 듯이 보인다. 2012년 4월 6일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에서 “우리는 인민들의 먹는 문제, 식량문제를 원만히 해결해야 합니다.…살림집문제, 먹는물문제, 땔감문제를 비롯하여 인민생활에서 제기되는 절실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선차적인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라 하고 있다.
북한에서 의도하는 것은 <인민이 사랑하는 우리 령도자>라는 노래의 내용과 같다. 즉, “온나라 대가정을 보살펴 주시며 꿈같은 행복만을 안겨주시네 인민이 사랑하는 우리의 령도자 그이는 친근한 김정은동지”에서와 같이 김정은을 각인시키려는 것이다. <인민의 행복에서 찾으시는 기쁨>에서는 김정은이 교원의 집을 방문하여 선물을 주었고, 노동자 신혼집을 방문하여 아이가 태어나면 다시 오겠다는 약속, 평양아동백화점․릉라인민유원지․중앙동물원 등은 둘러 본 것이 인민의 행복에 대한 위대한 헌신이라 표현하고 있다.
김정일이 내각을 경제의 사령탑이라고 강조하고 군부 위주의 경제를 당의 경제로 옮겨 놓으려는 것도 인민생활향상과 무관하지 않다. 북한에 새로운 경제관리 지침이라고 하는 ‘6.28방침’은 농장 생산물 분배와 할당제 개선과 종소규모기업소의 독립채산제 등이 포함되어 있다고 전해지는데, 이것은 인민생활향상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삶의 현장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뚜렷한 징표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 장성택이 8월 13일 당정고위직인사 50명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한 것은 실무외교 차원으로 파악되고, 6.28방침의 성공에 필요한 물자와 자금의 지원요청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Ⅴ. 김정은 체제의 안정과 불안정
김정은 체제의 정치향방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안정요인과 불안정 요인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권력구조 재편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권력엘리트들의 갈등문제와 인민들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것에 한정하여 조명해 본다. 김정은 체제의 불안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급속하게 진행되는 압축승계 과정에서 소외되거나 권력을 잃을 수 있는 권력엘리트들의 향배이고 다른 하나는 인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나타날 수 있는 개연성이다.
1. 김정은 체제의 권력구조에서 나타는 불안정 요인
김정은 체제 불안정 요인의 하나는 추락한 권력엘리트들의 반발로 권력투쟁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일천한 경험으로 군부의 원로들을 그대로 두고 자신의 뜻대로 이끌어 갈 수 없기 때문에, 지도부의 연령층이 젊어지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 김정은 체제의 후견인들 간의 결속은 혁명적 의지의 발로와 같은 끈끈한 동지애나 소명의식이라 볼 수 없다. 그들은 정치적․특권적 이해관계의 합치로 권력유지가 최대의 관점이다. 그동안 군부의 강경파들은 막대한 외화벌이의 이권을 향유해 왔다. 권력엘리트간의 이해관계의 분리와 정치적 경쟁이 발생할 경우 급격한 분열양상이 도래할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이는 혁명1세대나 김정일 체제를 유지했던 세대와는 달리 대내적인 위기 시 충성경쟁 등으로 결속보다는 권력투쟁을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최룡해의 급부상과 리영호의 제거 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당의 군대를 내세우는 김정은의 정치방식에 군부들이 불만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군부의 세대교체가 반발의 요인이 될 수 있다.
북한에서 장성택의 권력은 어떤 분석을 통해서 보아도 정점에 있다. 그의 권력의 배경에는 김정일의 절대적 신임과 그의 부인이 김경희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북한 권력의 흐름이 장성택을 중심으로 네트워크화 되어 있다. 그러므로 장성택 후견의 북한 정치체제가 유지되면 김정은 체제에 심각한 도전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김정은과 장성택의 정치적 공생관계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양자의 관계에 균열이 생길 경우 쿠데타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오히려 정치권력이 장성택을 중심으로 수렴되는 현상이 북한정치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2. 인민생활 향상 강조와 실질적인 한계
김정은의 정치행태는 김일성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 많이 나타난다. 실제 북한에서는 이를 의도하고 있다. 그의 태도나 모습 특히 중절모자를 쓰고 현지지도를 하는 것이나 어린이들에 둘러 쌓여 있고 군인들과 팔장을 끼는 모습들은 김정일 시대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태 속에서도 ‘김정일애국주의’를 강조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김정은의 정치행태가 않고 있는 한계인 것이다. 백두혈통을 강조하여 왔기 때문에 청년 김일성을 상기시키는 것은 중요하지만, 김정일 권위적인 행태와의 간극이 있으면서 그의 위대성을 부각시켜야 하는 것이 김정은의 딜레마인 것이다.
또한 인민들의 의식변화나 생활향상에 대한 요구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사회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술한 바와 같이 ‘4.6 담화’에서 “우리는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국방공업에 쌓아올리신 불멸의 업적을 옹호고수하며 선군시대 경제건설로선의 요구대로 국방공업에 선차적 힘을 넣어 나라의 군사력을 백방으로 강화해야 합니다”라 하고 있다. 김정은 역시 국방공업의 자립성의 강화가 경제의 첨병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김일성 탄생 100주년 경축 열병식에서 한 연설에서 “우리가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 위업을 성과적으로 실현하자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민군대를 백방으로 강화해 나가야 합니다”라며 선군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여타의 인민경제 부문의 악화를 가져올 것이다.
북한의 인민생활 향상과 안정화는 인민친화적 모습이나 리설주를 내세우는 것 등으로 만은 어렵다. 북한은 인민들의 생활향상을 위해서 국방공업우선이 아닌 선민경제시스템으로 변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것을 김정일 체제가 적절하게 처리할 수 있다면 점진적인 변화로 귀결 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정치적 갈등이 야기 될 수 있다. 사회적 경제적 삶에서 인민들의 불만이 누적되고, 김정은 체제에 들어와 자신들의 삶이 더욱 곤란에 처하게 될 경우 불만은 증폭될 것이다. 이는 잠재된 것으로서 일정 기간 잠복되어 일정한 계기를 통해 폭발 할 수도 있다.
Ⅵ. 결 론
김정은 체제는 일단 김정일의 직위를 모두 이어 받아 1인 통치체제로 가고 있다. 김정일 사망 직후 김정은이 장의위원장이 되어 모든 절차가 진행되었고, 로동당중앙위원회 정치국은 그를 인민군최고사령관으로 추대하였다. 김정은 체제의 공식적인 출범은 제4차 당대표자회와 제12기 제5차 최고인민회의에서 당규와 헌법을 개정하고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상징화시켜 놓고 로동당 제1비서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취임으로 일단락 지었다. 여기에는 북한의 위기체제의 수습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백두산 혈통의 승계와 김정일의 유훈이 김정은 최고영도자 승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북한은 김정은을 최고영도자로 추대하는 과정에서 정치권력 구조에는 큰 변화를 주지 않았지만, 후견 엘리트들의 자리이동을 통하여 김정은 체제를 구축하였다. 이 과정에서 김정일 시대에 후계자 김정은의 최측근으로 역할을 해왔던 장성택의 위치는 더욱 강화되었다. 장성택과 부침을 같이 했던 인물들이 당과 군부에 전진 배치되었고, 리영호의 실각도 이러한 측면이 강하다. 물론 김정은이 군부 장악과정에서 세대교체로 신군부의 상징인 리영호를 제거하는 것은 필연이었는지 모른다. 이후 김정은은 당․정․군부에 의하여 원수 칭호를 부여받았다.
북한이 이렇게 권력구조 변화나 엘리트들의 발탁과 더불어 지도자가 인민 속으로 파고드는 정치가 필요했다. 김정은은 너무 젊어 국정운영을 잘 할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을 불식시키기 위하여 현지지도에 최고의 권력엘리트를 대동하였고, 그들이 깍듯하게 김정은을 모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북한의 정치과정에 전혀 볼 수 없었던 부인과 함께하는 활동하면서 젊지만 안정적인 지도자상을 인민들에게 각인시켰다. 현지지도로 군부대도 방문하였지만 인민들의 생활현장에 다가가 그들의 삶을 챙기고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려 하였다. 김정은은 김일성의 모습을 재현하고 ‘김정일 애국주의’를 강조하면서, ‘인민을 최우선적 절대적으로’ 위한다는 것이다.
외견과는 달리 김정은 체제가 정착되고 영도권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쉽지 않은 과제가 존재한다. 김정은의 확실한 국정장악도 미지수이고, 군부 핵심인물들의 갈등도 나타날 수 있다. 장성택의 정치권력의 핵으로의 부상은 오히려 김정은 정권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도 있다. 인민들을 최우선 한다면 정책전환으로 어려움을 타파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다.
북한의 상황은 전격적인 외부지원 없이는 경제위기가 체제의 위협으로 대두될 수 있다. ‘김정일 애국주의’ 열풍을 일으키는 것과 위성발사 만으로는 강성국가로 갈 수 없다. 김정은은 체제안정을 위해서는 할아버지의 ‘주체’와 아버지의 ‘선군’을 뛰어넘어야 한다. 김정은 체제가 북한의 현실의 직시하고 장기적 생존을 위해서는 독자적인 김정은식의 정책노선을 모색해야 한다. 북한이 근본적인 변화없이 후견엘리트의 재배치나 ‘제스처․구호의 정치’로는 인민들을 끌어드리는 것도 한계가 있고 지속적인 체제유지도 어렵다.
논문투고일 : 2012.12.26
심사완료일 : 2013.01.16
게재확정일 : 2013.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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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nalysis on the Power Structure and Political Behavior of Kim Jong Un Regime
Kim, Chang Hee(Chonbuk National Univ.)
The core in the North Korean Politics is power succession and the sustenance of a regime. The DPRK has tried to inherit the legend, the succession of the great achievement of Baekdu lineage. After Kim Jong Il's death, in the name of the five authorities, it was announced that observing the late Kim's instruction, people should faithfully support Kim Jong Un's leadership. Kim Jong Un headed as 'Sumprem Leader' is ruling North Korea. This study is to explore the establishment of Kim Jong Un regime with what kind of power structure through Kim Jung Il's official status and the rise and fall of power elite guardians in the course of the regime establishment. In addition, Kim Jong Un's political behavior in the relationship with people and its intention are analyzed. Kim Jong Un was headed as Supreme Commander of the North Korean People's Army, 1st Secretary of the Worker's Party and 1st Chairman of Defence Committee and he became the first man of power in military, party and politics. Justly, he has held additional positions, such as standing member of Central Committee and chairman of Central Defence Committee and was heady as a chief of state. Under his one-manned governance, the existing power elites have been taken into confidence but Lee, Young Ho, the symbol of new military elite was ousted and Choi, Ryong Hae has been deployed forwardly. This means Kim's intention to the politics centered on the party. Since the official establishment of Kim's regime, his political behavior has been distinguished from Kim Jong Il's. With standing on 'Kim Jong Il patriotism', he encourages the army and people, and states 'absolute priority given to people'. Showing openness symbolic of youth and a friendly relationship with people means the expression of his intention into the populace. It is not sure that the Kim regime can enjoy continuos stabilization in the point that discords among power elites and limitations from enhancing public life will foster instability factors. For the long-term survival of the regim, Kim Jong Un regime's own policy line with independency has to be taken.
Key Words : Power Succession, Baekdu Lineage, Power Elite, Kim Jong Il Patriotism, Stabiliz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