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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작정기도' 하면 다니엘처럼 응답을 받을까?
한국 성경은 창조주 신을 하나님아버지라고
번역했다. 좋은점도 있지만 나쁜점도 있다.
창조주 신을 하나님아버지라고 부르면
친근감은 있지만 기독교 종교의 신 정도로
작게 느껴지고,
창조주 신이라고 부르면 전인류적으로,
전 우주적으로 느껴지고, 단 한분이시고,
전지전능하게 느껴진다.
다니엘이 첫번째 환상을 봄
(다니엘 8:27) "이에 나 다니엘이 지쳐서 여러 날
앓다가 일어나서 왕의 일을 보았느니라 내가 그
환상으로 말미암아 놀랐고 그 뜻을 깨닫는 사람도
없었느니라" 아멘.
다니엘 8장에 보면 다니엘이 벨사살 왕 때에 환상을
보는데 두 뿔 가진 숫양이 나오고 서쪽 북쪽 남쪽
사방에서 서로 받으면서 싸우고 강성해지고 하는
환상을 본다.
그리고 숫 염소가 나와서 서로 싸우는데 숫염소가
이기고 강대해진다. 뿔 들이 나오는 환상을 보는데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
그 환상이 무슨 내용인지 알고 싶어하니까
한 천사가 나타나서 그 환상에 대해 설명해준다.
그 환상을 본 후 다니엘이 얼마나 지쳤는지
여러 날 앓다가 일어나서 직무를 보게 된다.
거대한 교주가 될만도 한대
종교인들 중에 다니엘만큼 은혜를 받으면 벌써
하던일 때려치고 주께서 나를 선택하셨다고 자기
종교 신학교에 들어가서나 아님 스스로 일어나서
전도자가 되든 목사가 되든 교주가 되든 했을텐데,
다니엘은 자기 직무에 다시 임한다.
여러번 환상도 보고 세계전쟁에 대한 환상도 보고,
가브리엘 천사도 만나고 하는 주의 은혜를 듬뿍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본분을 떠나지 않고
직무에만 충성스럽게 임하고 자기 삶을 살다가
죽는다.
다니엘은 종교리더자가 아니라 정치리더자다.
지금의 목사격이 아니라 정치인인 것이다.
'정치인 총리' 대한민국도 총리가 있다.
하지만 현재 종교인들은 조금 하늘의 은혜를 받았다고,
환상을 보았다고, 능력이 나타났다고, 종교를 만들어대고,
교단도 만들어대고, 교인들을 모으고, 자기 종교에
묶여서 서로 이단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싸우고
죽이는 것들을 본다. 그들은 종교인이다.
이런 것들이 자기 종교에서 볼땐 의롭고 거룩해
보이겠지만 창조주신 예수는 바다건너 두루다니며
교인들을 모아 지옥자식을 만드는 결과라고
벌써부터 말씀하셨다.
인간들이 귀를 막고 안 들을 뿐이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나 모세나 아브라함이나
다윗이나 사울이나 솔로몬이나 이런 자들은
종교지도자가 아니라 부족 족장이나,
나라적인 리더자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정치와 유일신 섬김이 같이
맞물려 가는 것일 뿐이다.
종교를 만들지 말라
아브라함도 창조주 신과 친구처럼 지냈고,
모세도 창조주 신과 친구처럼 지냈지만
부족 지도자이고, 나라 지도자이기 때문에
종교를 만들지 않았고 교주가 되지 않았다.
모세시절 종교가 탄생할뻔한 상황이 있었다.
모세가 시내산으로 창조주 신의 부름을 받고
올라간 후 수십일이 지나도록 내려오지 않자
산 아래 있었던 백성들이 아론을 중심으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신'으로 섬기려고 했다.
이때 모세는 송아지를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버렸다. 종교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사도바울에게 기적이 나타나자 백성들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무리와 함께
바울을 대상으로 제사를 지내려고 할때
바울이 옷을 찢고 소리질러 못하도록
막았다. 종교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은 종교를 만들지
말라이시다. 종교가 없어도 창조주 신은
얼마든지 사람과 소통하실 수가 있으시다.
사람에게 손을 내미실 수 있는 절대적
권세가 있으신 분이 창조주 신이시다.
사람이 먼저 신을 찾는 것이 아니다 절대로.
종교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종교로만
신을 찾을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이땅에 성경책이 없어도 신은 얼마든지
인간에게 나타나신다.
내가 신을 찾는 것이 아니고
종교가 신을 찾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시날땅에 인간들이 하나로 뭉쳐서
모였을 때 주께서 내려오셔서 여러 곳으로
흩어지게 만들고 결국은 여러나라가 되게
하신 것처럼, 종교도 그런 것 같긴하다.
https://cafe.daum.net/mizzkwon/KdtU/71
어떤 종교 하나로 크게 뭉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다른 종교를 일으키시는 것 같다.
왜냐하면 종교든 정치든 단체든 사람이든
크게 뭉치면 권력을 휘두르려고 하는 것을
본다. 권력을 쥐려고 하는 자들이 일어난다.
나라까지 흔들리는 것을 본다.
그러면 주께서 다른 종교를 일으키시나보다.
큰 종교를 흔들기 위해서. 더 커지지 않게.
다니엘이 나라죄 회개
그리고 세월이 흘러 다리오가 갈대아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해에 다니엘이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70년 만에 그치리라" 하신 창조주신의
예언의 말씀을 깨닫고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하늘의 신(창조주신)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자기 나라의 왕들과 고관대작들과
조상들과 국민들의 죄를 회개한다.
자기의 죄와 백성의 죄와 나라의 죄를 자복하고
창조주신의 긍휼을 구하는데, 전에 환상을 깨닫게
해준 가브리엘 천사가 다시 와서 다니엘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시 환상에 대해 설명해준다.
두번째 환상을 봄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 바사왕 고레스 삼년에
다니엘이 또 환상을 보는데 앞으로 일어날 큰
전쟁에 관한 것이다. 그 환상 또한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지 좋은 음식도 먹지 않고 고기나 떡이나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고 얼굴에 기름도 바르지
않고 슬픈 마음으로 힛데겔 강가에서 여러
사람과 기도를 드린다.
(다니엘 10:2~3) "그 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아멘.
그렇게 강가에서 죽을힘을 다해 기도를 드리면서
며칠이 흘렀다. 그런데 어느 날 다니엘에게 또
환상이 임한 것이다.
이런 형태의 기도는
"하늘님이시여!" "용왕님이시여!"
"신이시여! 살려주소서!" 식이지
지금 교회에서 하는 것 같이 일어났다
앉았다 하면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아버지시여"
라고 주절주절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차려놓고 여러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는
형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부들의 생활에서
바다는 바다를 주관하는 '신'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각 나라와 문화마다 고유한 바다의 신이 있는데,
그리스는 이를 '포세이돈' 이라고 불렀고, 로마는
'넵튠' 이라고 불렀다.
한국에도 바다의 신이 있는데 잘 알려진
'용왕' 신이 그것이다.
성서 시대 이스라엘에는 바다의 신으로
'얌' 이 있었다.
바다의 신인 '얌'이 점차 바다를 가리키는
보통 명사로 바뀔 만큼 유대인들에게 바다와
뗄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바다와 호수는
모두 히브리어로 '얌'이다.
호수(lake), 바다(sea), 지중해와 같은
대양(ocean)이 히브리어로는
모두 '얌' 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많은 나라에서 어부들은 출항에 앞서
바다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는 바다의 신을 기쁘게 해주어야
고기들을 많이 몰아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바다의 신이 노하면 풍랑을
일게 해 배를 뒤집어 엎고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화가 난 바다의 신을
달래기 위해 심청이가 공양미 삼백 석과
자신을 바꿔 바다에 몸을 던진 것이고,
성경에서는 '요나'를 던진 것이다.
산에서 제사를 지내고 바다에서 제사를
지내고 하는 그런 모습이지 교회에서처럼
거룩하게 눈을 감고 그런 기도가 아니다.
무속의 모습이다.
다니엘이 기독교의 선배인줄 알면 안된다.
오히려 무속의 선배이다.
그날 그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같이 있었는데,
환상은 다니엘 혼자 보고 두려워 떨었다.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은 그 환상을 직접 보지는
못했어도 두려움이 같이 임해서 크게 떨며
도망했다고 한다.
이 때 한 천사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서
다니엘이 깨달으려고 하는 그 내용을
(앞으로 일어날 큰 전쟁 환상) 가르쳐 주라시는
'창조주신의 응답'을 갖고 왔다고 한다.
처절한 기도 21일째 '응답'
다니엘이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를 드리겠다고
철저하게 작정한 첫날부터 창조주신의 기도응답
명령이 떨어졌지만 그 '기도 응답'이 다니엘에게
도착한 날짜는 21일이 걸렸다.
세 이래라는 것이 3x7=21일 이라고 성경학자들이
밝혔다. 정말 21일인지 아님 그 이하인지 그 이상인지
상관없다. '무슨 응답인지'가 중요하지 날짜가 중요하지
않다. 그 때를 살아보지 못한 우리가 구태여 날짜를
계산할 필요는 없다. 굳이 계산한다면 이스라엘법으로
계산하면 된다.
가브리엘 천사가 기도응답을 갖고 내려오는데
'바사 왕국 군주'가 21일 동안 그 천사를 막았다고
한다.
이 모습이 계시록에서 말씀하시는 '미가엘'과 그
사자들과 '용'과 그 사자들과 싸운다는 것인데,
그들이 스스로 싸워서 이기고 진다는 것이 아니다.
아직 ‘미가엘’이 등장하지는 않았다. 기도가
시작이기 때문이다.
처절한 기도의 영의세계 모습
이 '바사 왕국의 군주' 라는 것은
이 땅의 '바사'라는 나라의 영의세계의
'죄의 법' 세계 이름이다.
그 다음 나라는 '헬라'라는 나라이다.
그것이 영의세계법으로 '용'과 그의 사자들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우리는 그 것을 '공중 권세 잡은
마귀'라고 배워서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 기도를 막고 방해하고 어떤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가브리엘이 기도 응답을 갖고 바로 내려오는데
이 세상의 '바사 왕국의 죄의 법 세계'가 얼마나
큰지 가브리엘 천사를 막고 있다.
무력으로 막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앞에 걸림돌로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앞에 큰 산들이 여러개 있으면 그것을 지나갈 때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과 같다.
안개가 끼어 있으면 앞이 보이지 않아서 더디게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기도를 계속 할수록 가브리엘은 그 걸림돌을
비켜서 조금씩 내려오는 것이다.
그러다 기도자가 기도를 멈추면 가브리엘은
다시 창조주신께 갈 수 밖에 없다.
가브리엘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올 수 있는 힘은
기도자의 기도인데 기도가 멈췄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공중 권세 잡은 자가 막을 힘이
더해져서가 아니라 창조주신의 시스템에
의해서다. 기도가 멈추면 다시 원상복귀.
하지만 영의세계의 전쟁의 모습으로 따진다면
바사 군주(용과 그의 사자들)가 이기게 되는
것이다.
이런 중대한 기도를 드릴 때, 다니엘이 먹을 것
다 먹고, 마실 것 다 마시고, 놀 것 다 놀고,
즐길 것 다 즐기고, 편한 시간에, 조금 시간
내서, 새벽기도로 조금씩 기도를 드린 것이
아니라
아주 처절한 마음으로 다짐을 하고 절식하면서
마음을 겸비하면서 정말 슬픈 마음으로 아주
작정을 하고 "이대로 죽으면 죽는다" 라고
기도한 것이다.
처절한 기도 내용이 중요하다.
나라 적으로 회개 기도를 들어간 것이지
자기의 개인의 소원과 비전과 계획을 가지고
이런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대학을 붙게 해 달라, 회사를 들어가게
해 달라, 집을 사게 해 달라, 우리 교회를
부흥 시켜 달라, 누구를 건강하게 해 달라
등 일반적인 기도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죽으면 죽으리라' 미가엘 등장
"죽으면 죽으리라" 작정을 하고 기도를 드리는
기도에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등장을 하게
된다.
에스더가 이런 기도를 드린 것이다.
이때 영의세계의 모습을 말씀해 주시지 않아서
그렇지 이때도 미가엘이 등장하는 영적 전쟁의
세계가 펼쳐졌던 것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목숨을 담보로 하는 기도를
드리니 '하만의 죄의 법' 세계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창조주 신께서 유대민족을 하만보다
살려주실만해서 에스더에게 중보기도를 시키신
것이지 에스더의 기도가 잘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 편에서 볼 땐 3일을 금식하는
수고를 했다.
그것도 개인 적인 일로 죽으면 죽는다의 기도가
아니라 나라적인 것이다.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든지
나라의 회복을 원하는 죽음을 담보로 하는 기도다.
그냥 일반적인 기도일 때는 가브리엘 혼자서도
충분하다.
하루 기도했는데, 일주일 기도했는데,
무슨 생각만 했는데 이루어 지는 그런 생활적인
기도는 하루 만에 응답되기도 하고, 일주일 만에
응답 되기도 하고, 생각만 했는데 이루어지기도
한다.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하네"
라는 아주 쉬운 기도응답이 있다.
나도 많이 받아봤다.
이런 기도에는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등장하지
않아도 된다.
기도 단위가 클수록 응답도 시간이 걸리는
것이고, 절망이 따르는 나라적인 기도는
더더욱이나 베옷을 입고 금식하던지 절식하던지
재를 뒤집어 쓰고 작정을 하고 죽으면 죽으리라
기도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기도자의 큰 내용이 담긴 처절한 작정기도,
목숨을 담보로 하는 그 정도의 기도에
'미가엘'이 등장하게 된다.
다니엘의 그런 결심하는 마음 상태에서
벌써 하나님은 응답을 주신 것이다.
이런 기도도 누가 사람이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창조주 신께서 누군가에게 큰 감동을
주시는 것이다. 이런 기도자에게 목숨을 걸고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
인간인 내가 스스로 했다고 하지 말자.
나의 의가 된다.
하지만 다니엘이 그런 겸비한 마음으로 진심으로
슬픈 마음으로 얼마큼 기도를 계속 할 것이냐가
문제인 것이다.
날짜를 정하는 작정기도는 '안돼'
이 작정기도는, 다니엘이 며칠을 하겠다고
계산한 것이 아니다.
"100일 동안 작정 하겠다" "21일 동안 작정 하겠다"
"한 달을 작정하겠다" 한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인지
모르는 슬픈 마음으로 받을 때까지 계속 처음 작정한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변하지 않고 작정기도를 멈추지
않으니 21일 만에 기도응답이 도착이 됐다.
다니엘이 작정을 하고 멈추지 않으니 가브리엘이
혼자 오는 것이 아니라 미가엘이 등장을 해서
가브리엘이 내려오는 것을 돕는다.
그래서 더 빨리 올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미가엘이 등장했다는 것은 다니엘의 기도
범위가 아주 컸다는 것이다.
이런 작정기도의 내용은, 내가 집을 사겠다는 것도
아니고, 교회의 부흥을 위함도 아니고, 내가 무엇이
되고 싶다도 아니고, 내가 무엇을 할 것이다도
아니고, 내가 무엇을 사겠다는 것도 아니고,
내가 무슨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나의 건강을 위함도 아니고, 좋은 대학에 붙게
해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세계에 마지막 날에 백성들이 당할 어떤 큰
전쟁에 대한 환상을 알고자 하는 것이었다.
자기 개인적인 기도가 아니라 나라를 위한
'회개기도'이다.
환상의 내용을 알려주셨을 뿐이지, 기도를
드렸다고 해서 세계 전쟁이나 나라 전쟁이
안 일어난 것이 아니다.
나라가 포로생활에서 회복되기 전에 다니엘에게
회개기도를 시키셨다. 유대백성이 죽임을 당하기
전에 에스더에게 금식기도를 시키셨다.
한국의 일제식민지 시대에서 해방되기 전에
목숨을 건 안이숙 여사의 죽으면 죽으리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사형 삼일 전에 나라가 해방이 되었다는데.
'바사' 나라가 망하고 '헬라' 등장
'바사군주'를 뚫고 내려온 가브리엘이 말하기를
내가 간 후에는 '헬라 군주'가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때는 '바사' 나라였다.
'바사'가 망하고 '헬라' 나라가 등극할 것이다.
헬라가 망하고 '로마' 가 등장할 때는
영의세계에는 '로마군주'가 형성된다.
미국군주, 중국군주, 일본군주, 대한민국군주
등 그렇게 영의세계에 형성된다.
다니엘 11장에는 세계사의 예언이 펼쳐진다.
모르는 예언을 함부로 파헤칠 필요는 없다.
이런 거대한 예언을 받았을지라도
떠들고 다닐 필요도 없다. 다니엘처럼 그냥
자기 일을 하면 된다. 내가 중보기도 했다고
내가 떠들고 다닌다고 그 일이 안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내 기도에 의해 다르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종교인들 같으면 다니엘 정도의
환상을 보면 아마도 제단을 만들고 원생이
몰려오고 한 종교단체가 형성될 것이다.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라도,
창조주신의 어떤 특별한 섭리에 의해
사용되어지는 자가 아닌 일반인들은
그냥 나는 지금 현재 내가 있는 자리에서
더 겸손하게 더 정직하게 더 착하게 더 바르게
더 온전하게 더 좋은 마음으로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서로 도우면서, 올바른 재판을
하고, 고아와 과부를 도우면서, 창조주신을
섬기는 일에도 충성을 다하면서, 사회에서도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칭찬 받도록 잘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사명을 가지고 어디로 함부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다.
창조주신께서 지목하여 시키신다.
21일 특별작정기도는 '안돼'
우리는 '21일 다니엘 특별기도' 라는 타이틀을
걸고 자주 새벽기도든 일반기도든 작정기도를
하는 것을 보는데, 다니엘이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떤 기도를 어떻게 드렸는데 21일씩이나
걸렸는지를 제대로 안다고 한다면,
연약한 자기만의 기도 내용을 가지고
"21일 동안 작정기도를 드리면 응답을
받겠지?" 하는 얄팍한 작정기도는
삼가 해야 옳다.
나만의 기도나 어설픈 중보기도를 가지고,
나라적인 회개기도를 처절하게 목숨 걸고
들어간 다니엘의 기도와 "그게 그거 아냐!"
라고 퉁치려고 하지 말자.
창조주신의 성경말씀은 기도의 법전이기도
하고, 창조주신의 인간들 삶의 재판의 법전
이기도 하고, 그 말씀이 살아 움직이고
이루어지는 능력이 있어서, 아무 말씀이나
축복의 기도문으로 가져가서 사용하면
안 된다.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그리고 '기도'는 응답을 받을 때까지든
아니든 계속 하는 것이지 며칠을 내가
작정을 하고
"창조주신이시여, 그 날까지는 꼭 응답해
주셔야 합니다!" 라는 자세는 옳지 않다.
창조주 신은 램프 안에 갇혀 있는
'지니'가 아니시다.
이런 경우 거의 시험에 빠지게 되는 것을 본다.
창조주신께서 응답을 빨리 주시고 늦게 주시고
하시는 것은,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크기의
내용의 기도를 어떤 처절한 마음으로 드리냐다.
그것도 창조주 신께서 필요한 내용을, 필요한
자에게, 필요한 때에, 기도의 행위를 시키시고
이뤄지게 하시는 것이지, 내 스스로 내 기도에
혈서를 쓴들 아무 소용이 없다.
창조주신을 섬기는 자의 기도는 응답을 받을
때까지, 내가 죽는 날까지 무조건 하는 것이다.
나의 삶이 '기도'
성전에 가서 중얼중얼, 고래고래, 울고불고
떠드는 것만이 기도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나의 삶이 곧 기도 이어야 한다.
그리고 기도를 내가 드린다고 해서 아무거나
무조건 창조주신께서 "오냐 내 새끼~" 하면서
응답해주시는 것이 아니다.
창조주신께서 그 사람에게 무언가 시키시고
싶으실 때 무언가 주시고 싶으실 때 기도를
시키시면서 때가 되면 주시는 것이다.
꿈과 비전도 누구의 간증을 듣고 설교를 듣는다고
아무거나 나도 그런 꿈과 비전을 가져야지 한다고
추진되는 것이 아니다.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해
원망 불평 실망 우울증이 올 수도 있다.
창조주신께서 각 사람에게 이런 저런 비전과 꿈과
계획을 주시고 추진하게 하시는 것이다.
이 부분을 오해하면 내가 그렇게 기도를 오래
드렸는데 내가 그렇게 기도를 울고 불고 소리소리
지르며 드렸는데 무릎이 닳도록 기도를 드렸는데,
어쩌면 그렇게 응답을 안해주시냐고, 신이 계시기는
하시냐고 하면서 오히려 불평불만을 일으킬 수 있다.
행함 없는 믿음·기도='죽은 것'
교회에서는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기독교인들을 너무 사랑해서 기도만 하면
무조건 응답해주시고, 기독교인들을 너무
사랑해서 기독교인들만 눈동자 같이 지켜
주시고, 기독교인들이 회개기도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기독교인들이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사는지는 체크하지
않고 교회에서 예배의 행위, 봉사의 행위,
기도의 행위, 헌금의 행위만 잘해도
이 땅에서 복을 잔뜩 받고, 하늘나라 가서도
따따블의 복을 받는다고 가르치면 안 된다.
그런 가르침에 다들 방종하며 떠들며
안전불감증에 걸려 있다.
기독교인들아!
사회에 나가서는 반드시 나라법, 사회 법,
이웃법, 회사법, 가정법을 잘 지키고
(도리 경우 에티켓 상식 속담 격언 등),
회개는 중언부언 기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쁜 행위(떠들고, 분내고, 이간질하고,
험담하고, 무시하고, 정죄하고, 생각, 눈길,
마음, 느낌, 동기, 과정이 나쁘고 속과 겉이
같지 않고-회칠한 무덤의 죄)를 저지르지 않고,
계속 재발 되지 못하도록 뜯어 고쳐야 하는
것이며
중언부언 기도보다 '개과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눈길에 미끄러져 다치거나
사고나지 않게 해달라!!"고 무릎꿇고 울고
불고 기도 드리는 것보다 밖으로 나가 눈을
치우는 행동이 먼저 있어야 한다.
기도는 상감마마의 윤허를 기다림
'기도' 라는 것은!
창조주신이 요술램프 지니가 아니시므로
응답해 주실 것이냐 마실 것이냐 떠들지
말아야 하며 소망은 갖되 날짜를 정하고
기다리지 말고
그럴지라도 나는 아무 일이든, 아무 때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무조건 기도하고 볼 일이다.
죄인인 사람은 창조주 신께
상감마마의 윤허를 기다리듯이 기다림만
있을 뿐이고 상감마마의 은총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에스더 왕비가 '인간 왕'을 뵈러 나갈 때
'인간 왕'이 '금홀'을 내밀지 않으면
죽임을 당한다.
인간 왕도 그 정도인데 인간 왕을 세우시고
멸하기도 하시는 창조주신을 우습게 보지
말라.
창조주께서 계획하신 모든 일들 중에
축복에 관련된 것은 주시고 싶으신 사건을,
주시고 싶으실 때에, 주시고자 하는 자에게
마음에 소원을 주시고 '기도'라는 것을 시키시고
입술로 시인하게 하시고 주시는 것이며,
'기도' 라는 것도 교회에 나가서 기도하지
않아도, 자기가 있는 처소에서 '생각'으로나
'소원의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죽을 자를 살려주실 때에는 '중보기도'를
사용하시고 살려주실 수도 있으시고,
그냥 죽일 자들은 '중보기도'를 드리지
못하도록도 하신다.
창조주 신의 다스리심은 기독교적이
아니라 전 인류적, 온 인류적,
온 우주적이시다.
열 길 '물 속'과 한 길 '사람 속'
징계에 관련된 것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고요한 때에 갑자기 우연인 것처럼, 재수가
없는 것처럼, 그냥인 것처럼 무슨 일로
이런 값을 치루는지 잘 모르도록 온다.
이런 징계는
속과 겉이 다른 '회칠한 무덤의 죄' 때문인
경우가 많고, 타인에게 쓸데없이 스트레스를
주거나, 타인이 나로 인해 힘들다고, 눈물이
난다고 하는 충고와 부탁의 말을 듣지 않는
'안하무인 죄'로, 쓸데없는 말의 나불거림으로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죄는 본인도
잘 모른다.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나는 피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본인이 알 수 있는 실수나 부주의로
오는 창피함과, 손가락질 당함과, 사고들은
본인이 알 수도 있다.
그 즉시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에.
하지만 본인도 본인이 무슨 잘못을 하는 것인지,
무슨 잘못을 하고 사는지 잘 모른다.
자기의 타고난 성격, 자라온 환경으로 조성된
성품, 그냥 본인의 좋은 특징인 줄 알고 고집
부리고 산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사람은 올바르지 않은데도 일이 잘 된다고
알게 되고, 그 사람은 올바르지 않은데도
성공하고 상석으로 올라간다고 알게 되고,
그 사람은 올바르지 않은데도 복을 미어터지게
받는다고 알게 되고,
그 사람은 올바른데도 악한 일을 당했다고
알게 되고,
그 사람은 올바른데도 병에 걸렸다고 알게 되고,
그 사람은 올바른데도 일이 참 안 풀린다고
알게 되고,
그 사람은 올바른데도 사고가 났다고 알게 되고,
그 사람은 올바른데도 힘들게 죽었다고 알게 된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 마음은 알 수가 없다
신의 칼은 죄인에게
나도 기독교인으로서 행실과 상관없이
하나님아버지를 잔뜩 잘 믿으면
일반적인 삶의 계산이 없는줄 알았다.
과거 어느 때에 새벽기도 가다가 칼 맞았다,
새벽기도 가다가 봉고차에 실려갔다는 등
새벽기도 가다가 봉변을 당했다는 뉴스가
떠 돌아다닐 때가 있었다.
그날 저녁 뉴스를 보면서 나도 매일 같이
새벽기도를 가는데 이런 뉴스를 듣고는
내일 새벽이 걱정이 되었다.
그동안 무서움 없이 다녔는데 말이다.
다음날 새벽, 다른 날과 같이 일어나 준비를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새벽 기도를 간다고 나갔다.
어제 뉴스가 생각난 것도 아니고 잠결이라
아무 생각이 없었다.
건물 자동 현관문이 떡 열리고,
한 발을 밖으로 내딛었을 때였다.
갑자기 솜털이 일어서는 느낌과 함께
등 살에 칼이 딱 닿는 느낌이었다.
뒤에 누가 따라 온 것도 아니었고,
분명 나 혼자였고, 앞에도 아무도 없었다.
깜짝 놀라 나머지 따라온 발과 함께 꼼짝
못하고 서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었다.
얼마나 정밀하게 닿은 느낌인지,
찔린 것은 아닌데 딱 닿은 느낌이다.
숨을 크게 쉬면 찔릴 것 같은 무서운 느낌.
그 때가 겨울이라 일반적으로 볼 때
두꺼운 패딩점퍼를 입었으니 두꺼운 옷을
뚫고 몸까지 닿으려면 세게 찔렀어야
하는 건데, 옷은 아무 느낌도 없고
그냥 살에 정확하게 닿은 느낌이었다.
내가 그대로 서 있으니 칼도 정밀하게
그 느낌 그대로 있었다.
그렇게 서서 새벽 기도를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가, 에이 아무도 없었는데
여기까지 나왔는데 다시 들어가기 그래서
그냥 한발 더 내딛고 새벽 기도를 가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 칼 맞은 느낌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냥 교회를 갔다.
그런데 등 살에 칼 닿은 느낌은 한참을
갔다. 며칠을 간 건지는 기억이 희미하지만
오래 동안 여운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 느낌 참 이상했다. 섬뜩한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러셨다.
"이 녀석이 누굴 믿는 거지?"
"하나님 아버지가 아무나 마구
죽이는 줄 알고 있다니, 너는
대체 누굴 믿는 것이냐?"
나는 그냥 사탄이 아무나 막 죽이고
귀신이 아무나에게 막 들어가고 괴롭히고
하는 줄 알았다.
귀신 들린 사람 옆에 가면 그 귀신이 나한테
옮겨 붙는 줄 알았다.
기독교인들 거의 이렇게 알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 드리고
살고, 예배 드리고 살고, 찬양 드리고 사는데
하나님 아버지는 도대체 모 하시는 건지
궁금했었다.
왜 새벽 기도를 열심히 다니는데 사건이
생기고 죽고 하는지 궁금했었다.
사탄이 이렇게 사람들을 죽이고
기독교인들까지 죽이고 하는데
전지전능하시다고 하는 하나님 아버지는
기독교인들을 안 지켜주시고 모 하시는
거지? 했었다.
새벽 기도를 열심히 다니는 기독교인들의
속 마음을 일반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하나님 아버지(창조주 신)께서는 기가 막히게
잘 아셨던 것으로 디테일하게 계산을
당하고 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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