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본풀이의 형식
(1) 표현형식
본풀이는 呪文型의 것에서부터 說話形의 것까지 다양하다. 이들의 내용은 꽤 장황한데 심방들이 이들을 모두 기억하여 구송하는 데서 그 구성이나 표현형식에 일률적인 어떤 특성이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먼저 구성형식을 보자.
첫째는 開始의 奏言이다. 이것은 본풀이를 개시하겠다고 신격에게 예고하는 인사와 같은 것이다. 약식제차에는 이런 것이 없지만 큰굿에서는 본풀이가 제차의 독립단위로 되어 있는 일정한 개시의 주언으로 시작된다. 이것은 정식으로 하면 매우 길다. 간단히 하면 "날짜는 ○월 ○일 어디에서 어느 마을 누구가 어떠한 사유로 이 굿을 시작하여 무슨 제차를 거쳐 무슨 본풀이의 차례가 되었기로 본풀이를 올립니다" 라는 식의 사설이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신○○신 ○본을 풉니다" 또는 "○○본풀이를 아룁니다" 하는 형식을 넘겨간다. 이 개시의 예고 인사는 인간 대 신의 口誦文學으로서 필수적인 인사다. 이러한 聖性的인 신화가 속성적인 설화롤 바뀔 때는 그것도 인간에의 인사로 바뀌게 된다.
둘째 發端의 형식이다. 당신본풀이와 일반신본풀이의 경우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당신본풀이는 주인공 신이 부모없이 이상탄생하는 경우이다. 이때는 직접 신격의 출생의 서술로 들어간다. 그 형식은 일반적으로 "○○에서 ○○월 ○○일 ○○일 ○○신이 솟아나니……"로 되어 있다. 일반신본풀이는 주인공이 부모 사이에서 출생하는 경우다. 이때는 부모의 혼인생활부터 발단하여 30세가 넘도록 슬하에 자식이 없어 근심하는 대목으로 넘어간다. 이 경우엔 '옛날 옛적'으로 실마리를 끌어내는 것이 보통이다.
셋째는 終結의 奏言이다. 이것은 보통 "○○본풀이를 올렸습니다. ○○신님 ○○하여 주십시오"하고 祈禱詞로 넘어간다.
다음은 본풀이의 서술양식의 특징을 들어보자.
첫째, 문체가 율문적임을 들 수 있다. 즉 구송이 율문적 담화라는 것이다. 그것은 장구의 장단에 맞추어 노래하는 것이니만큼 필연적인 것이다.
둘째, 문장이 모두 현재형으로 서술된다. 이는 아마도, 신의 내력을 엄연한 사실로 믿는 것이니만큼, 신의 현실적 現顯을 위한 것인 듯하다. 태초의 신의 세계를 현실적 사실로 재현시키기 위해선 과거적 사실로 서술하기보다 현재시제로 이야기하는 것이 현실화에 더욱 효과적인 데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셋째, 사건의 전개를 대부분 등장인물의 대화의 형식으로 진행시키고 있는 점이다. 가창자는 인물이나 사건의 경과나 배경을 설명하지 않고, 환경서술은 전체 속에 은연중 숨어서 나타난다.
넷째, 표현이 상투적인 점을 들 수 있다. 일점혈육이 없어 대찰에 祈子하거나, 주인공이 죄를 지어 추방될 때, 혹은 총명하다는 표현 등 모두가 그 표현법이나 어구들이 일률적이다.
다섯째, 반복·대구·과장 등의 수사법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여러 표현의 특성은 노래부르기 위한 필연적인 소산으로 민담의 그것과 통할 뿐 아니라, 고대소설의 그것과 유사하기까지 하다.
(2) 구성
주문형의 본풀이는 스토리가 구성되어 있지 않으나 설화형식을 갖춘 본풀이들은 신의 출생에서부터 신으로서의 직능을 관장하여 좌정할 때까지의 생활사를 서술한 전기적인 구성을 하고 있다. 이를 기승전결로 나누어 살펴보자.
起 : 발단으로서 주인공의 출생을 서술하는 대목이다. 당신본풀이들은 여기서 신의 계보와 신이한 출생을 말하고, 일반신본풀이는 대부분 부모의 혼인에서부터 시작하여 大刹에 祈子하여 태몽을 얻고 출생함을 서술한다.
承 : 주인공이 부모 곁을 떠나 행각 고행함을 그린다. 당신본풀이에서는 보통 불효죄로 인한 추방이요, 일반신들은 중과 결연 懷胎나 귀동자의 연애로 인하여 추방당함이 일반적이다.
추방된 당신들의 행각은 출생지에서 좌정지까지의 행각이다. 한라산 출생의 신들은 山峰에서 좌정지인 마을까지의 도내 산야의 순행이나, 서울이나 강남천자국 등의 출생신은 일본·조선 ·경상·전라·진도·거제 등의 기다란 행각을 한다. 이 사이에 여러 가지의 주력을 부리고, 혼인을 하고, 투쟁을 하고 하여 신으로서의 위대성을 말할 기반을 만든다.
일반신본풀이의 행각은 심각한 고행이다. 결연 후 소식 없는 남편을 찾아 피어린 고행을 하는가 하면, 長子의 학대에 생명까지 빼앗기며, 재주는 뛰어나나 양반의 학대로 출세의 길이 막혀 울분하고, 혹은 계모의 학대로 괴로워하는 것들도 있다.
轉 : 신으로 좌정할 기반을 마련하는 대목이다. 당신들은 산야를 행각 하다가 마을의 인간을 만나 단골(司祭民)을 정하며, 일반신은 고행하던 소망이 이루어진다. 고행 끝에 상봉한 부친에게서 呪具를 얻어와 양반이나 장자에게 복수한다든지, 연인과 상봉하여 혼인생활에 들어간다든지, 소망이 성취되는 장면을 그린다. 그런데 신이 되는 데는 현세 생활의 실패와 파탄에서 또는 죽음으로써 되는 경우도 있으니 그 결말은 반드시 행복으로 끝맺지는 않는다.
結 : 신으로 좌정하여 제사 받음을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현세 생활에서 이루지 못한 기원은 신의 직능을 관장함으로써 이룩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祭日·祭需·祭法등의 설명이 들어간다.
6) 본풀이의 내용
(1) 주 제
본풀이들의 내용을 보면 善, 惡 두 사회의 갈등을 선의 승리로 이끄는 이야기로서 그 승리한 善者가 신격화한다는 것이다. 모든 악인 악행은 일시 기세를 피우나 끝내는 善人·善心·善行·善神에게 굴복 당하고 무서운 처벌을 받는다.
이 주제의 내용을 몇 가지로 나누어 말하면,
첫째, 세경본풀이, 초공본풀이, 이공본풀이에 나타나는 것으로 양반에 대한 조소와 반항 의식이 보인다.
둘째, 삼공본풀이의 것으로 효행을 권장하는 것이 보인다.
셋째, 문전본풀이의 것으로 계모의 비행을 징계하는 것이다.
넷째, 이공본풀이의 것으로 정절을 권장하기도 한다.
다섯째, 세경본풀이의 것으로 자유 연애가 엿보인다.
여섯째, 멩감본풀이의 것으로 崇佛思想 및 崇巫思想의 고취를 들 수 있다.
(2) 무대
본풀이의 무대는 크게 天上界·神聖界·地上俗世界·海洋界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천상계는 보통 '옥황'으로 불리며 옥황상제가 이를 주재한다. 이 천상계에 같이 소속시킬 것이 '저승'이다. 저승 곧 冥府는 불교적으로는 지하계 이겠으나 무속사회에선 지하계란 관념을 별로 볼 수 없다. 초공본풀이에서 무조신이 된 삼형제가 저승에를 '올라간다' '내려온다'로 되어 있는 것이 이를 의미한다. 신성계는 천상계도 아니요, 지상속세계도 아닌 곳이다. 엄밀히 말하면 지상이겠지마는 무속사회에선 매우 찾아가긴 험난한 곳이라 관념되는 곳으로 '서천꼿밧' '황금산절(寺)' '동개남이은중절'등이 있다. 지상속세계는 범인이 사는 곳이다. 여기엔 제주도 일원을 위시하여 서울 강남천자국, 경상도·전라도·일본 등 지역과 '동경국' '짐칫꼴' '노일국' 등의 지명들이 나온다. 해양계는 동서남북 西海龍王國이며 용왕이 주재하는 海中의 이상국이다. 주인공들은 인간 속세계를 주무대롤 하여 갖가지 인간적 희비극을 벌이다가 신성계에, 용왕국에, 지상계에까지 왕래하며 신으로 좌정할 기반을 꾸며가는 것이다.
(3) 주인공의 탄생
본풀이의 등장인물을 분류하면 ① 본래부터의 신, ② 범인, ③ 비범인으로 나눌 수 있다.
본래부터의 신은 주인공이 신이 되어 차지할 직능을 분장해 주는 역할로, 또는 여러 事象을 관장, 징계하는 초자연적인 존재로 등장되는데, 이것은 항시 주인공의 내력 서술의 보조역이 된다. 범인은 주인공의 예속인물 또는 司祭者난 부모로서, 주인공의 비범성 위대성을 구상화시켜 주는 역할로 등장한다. 나머지의 비범인은 곧 주인공이다. 이들은 거의가 이상탄생아요, 성장해 감에 따라 총명이 과인하고 재주가 비범하여 후에 신이 되고 여러 事象을 관장, 지배하게 된다. 이상탄생은 당본풀이의 경우 부모없이 스스로 땅에서 솟아나며, 일반신의 경우는 大刹에 祈子하여 태어난다.
(4) 갈등과 해결
본풀이의 갈등은 善과 惡의 관계로 대립된다. 사회적으로는 양반과 常人, 長子와 奴僕, 父와 子, 繼母와 繼子로 대립되며 종교적으로는 惡神과 善神이 대립된다.
초공본풀이의 주인공인 중의 자식은 학대하는 양반과 항쟁하여 가혹하게 징벌했으며 이공본풀이의 주인공인 노복은 간음을 기도하다 어머니를 죽인 長子와 대결하여 초자연적인 呪花로써 복수한다. 문전본풀이는 살해를 계략하는 계모를 징벌하고, 세경본풀이는 부모와 의를 끊으면서 연애 결혼한 연인을 찾아 어려운 시험 끝에 혼인한다.
종교적으로 볼 때 産神인 '삼승할망'과 死亡兒管掌神인 '구천낭할망'과의 대립 경쟁, 産神과 마마신 '홍진국대별상 서신국마누라'의 대립, 모두가 선·악 양신의 갈등이다. 선신은 일시적으로 악신에게 눌리나 궁극적으로는 악신을 제압하고 그 직능이 마련됨으로써 해결된다.
다. 文獻神話- 三姓神話
1) 異本과 內容
삼성신화는 많은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나 크게 두 가지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高麗史>系요, 다른 하나는 규장각 소장의 <瀛州誌>系다. 전자로는 <新增東國輿地勝覽>, 이원진의 <耽羅志>, <東國通鑑> , 이형상의 <南宦博物誌古條>, <海東繹史>, 김두봉의 <耽羅誌>, <濟州道實記>, 이승연의 <朝鮮 輿勝監> 등이 있고, 후자로는 고득종의 序世文, 高氏世의 <瀛州誌>, 長興高氏家乘 의 <瀛州誌 >등이 있다. 이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高麗史系
탐라현은 전라도 남쪽 바다에 있다. 고기에 이르기를, 태초에 사람이 없더니 세 신인이 땅에서 솟아났다. 한라산의 북녘 기슭에 구멍이 있어 모흥혈이라 하니, 이곳이 그것이다. 맏이를 良乙那라 하고 다음을 高乙那라하고 셋째를 夫乙那라 했다. 세 신인은 황량한 들판에서 사냥을 하여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살았다. 하루는 자줏빛 흙으로 봉해진 나무함이 동쪽 바닷가에 떠 밀려오는 것을 보고 나가 이를 열었더니, 그 안에는 돌함이 있고, 붉은 띠를 두르고 자줏빛 옷을 입은 사자가 따라와 있었다. 돌함을 여니 푸른 옷을 입은 처녀 세 사람과 송아지, 망아지, 그리고 오곡의 씨가 있었다. 이에 사자가 말하기를 "나는 일본국 사자입니다. 우리 임금께서 세 따님을 낳으시고 이르시되, 서쪽 바다에 있는 산에 神子 세 사람이 탄강하시고 나라를 열고자 하나 배필이 없으시다고 하시며 신에게 명하시어 세 따님을 모시도록 하므로 왔사오니, 마땅히 배필을 삼아서 대업을 이루소서" 하고 사자는 홀연히 구름을 타고 가 버렸다. 세 사람은 나이 차례에 따라 나누어 장가들고, 물이 좋고 땅이 기름진 곳으로 나가 활을 쏘아 거처할 땅을 점치니, 양을나가 거처하는 곳을 第一都라 하고, 고을나가 거처하는 곳을 第二都라 했으며, 부을나가 거처하는 곳을 第三都라 했다. 비로소 오곡의 씨앗을 뿌리고 소와 말을 기르니 날로 살림이 풍부해지더라.
(2) 瀛州誌系
영주에는 태초에 사람이 없었다. 홀연히 세 신인이 한라산 북녘 기슭에 있는 모흥혈에서 솟아난 것이다. 맏이를 高乙那, 다음을 良乙那, 셋째를 夫乙那라 했다. 그들의 용모는 장대하고 도량이 넓어 인간 세상에 없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가죽옷을 입고 육식을 하면서 늘 사냥을 일삼아 가업을 이루지 못했었다.
하루는 한라산에 올라 바라보니 자줏빛 흙으로 봉한 나무함이 동해 쪽으로 떠 와서 머물러 떠나지 않았다. 세 사람이 내려가 이를 열어 보니, 그 속에는 새알 모양의 옥함이 있고 자줏빛 옷에 관대를 띤 한 사자가 따라와 있었다. 그 옥함을 여니 푸른 옷을 입은 처녀 세 사람이 있었는데, 모두 나이는 15,6세요, 용모가 속되지 않아 아리따움이 보통이 아니었고, 각각이 아름답게 장식하여 같이 앉아 있었다. 또 망아지와 송아지, 오곡의 씨를 가지고 왔는데, 이를 금당의 바닷가에 내려놓았다. 세 신인은 즐거워하며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하늘이 우리 세 사람에게 주신 것이다"고 했다. 사자는 재배하고 엎드려 말하기를 "나는 동해 碧浪國의 사자입니다. 우리 임금께서 이 세공주를 낳으시고, 나이가 다 성숙해도 그 배우자를 얻지 못하여 항상 탄식함이 해가 넘는데, 근자에 우리 임금께서 紫 閣에 올라 서쪽 바다의 기상을 바라보시더니, 자줏빛 기운이 하늘을 이어 상서로운 빛이 서리는 것을 보시고, 神子 세 사람이 絶岳에 내려와 장차 나라를 열고자 하나 배필이 없으시다 하시고, 신에게 명하여 세 공주를 모셔 가라 하여 왔사오니, 마땅히 혼례를 올려서 대업을 이루소서"하고, 사자는 홀연히 구름을 타고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세 神人은 곧 목욕 재계하여 하늘에 고하고, 나이 차례로 나누어 결혼하여 물 좋고 기름진 땅으로 나가 활을 쏘아 거처할 땅을 정하니, 고을나가 거처하는 곳을 第一都라 하고, 양을나가 거처하는 곳을 第二都라 했으며 부을나가 거처하는 곳을 第三都라 했다. 이로부터 산업을 일으키기 시작하여 오곡의 씨를 뿌리고 송아지 망아지를 치니 날로 살림이 부유해져서 드디어 인간의 세계를 이룩해 놓았다. 그 이후 9백 년이 지난 뒤에 인심이 모두 고씨에게로 돌아갔으므로 고씨를 왕으로 삼아 국호를 毛羅라 했다.
2) 당본풀이와의 관계
삼성신화의 내용은 이본에 구별없이 地中湧出하는 狩獵生活 화소, 三神人이 漂着하는 혼인 화소, 射矢卜地하는 所居地 選定 화소를 공통으로 하는데 이들 화소는 당본풀이에서 흔히 발견된다. 地中湧出·狩獵生活素는 송당, 호근리 본향당, 사계리 큰물당, 감산리 호근이 루 여드렛당, 다라쿳 본향당, 구좌읍 세화 본향당, 남원읍 예촌 본향당, 보목리 본향당, 색달 본향당, 상창 하르방당 등에 얽힌 본풀이에서 보이고, 三神女 漂着 婚姻 설( )는 칠성본풀이, 월정 본향당, 김녕 궤내깃당, 신풍·하천 본향당, 중문 본향당 등에 얽힌 본풀이에서 보이며, 또한 射矢卜地 所居地 選定 화소는 서귀포시 동홍 본향당, 상귀 본향당, 안덕면 덕수리 광정당, 상창 하르방당 등에 얽힌 본풀이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삼성신화는 삼성씨족의 조상신본풀이요, 이 씨족들이 숭앙하던 당신본풀이적 성격의 신화로 추정된다.
3) 문화 배경
신화가 전승될 수 있다는 것은 전승집단이 신화 속의 내용을 수용한다는 의미다. 바꿔 말하면 신화는 전승집단의 사회문화를 반영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볼 때 삼성신화는 몇 가지 특징을 드러낸다.
첫째, 지중에서 용출한 삼신인이 수렵생화를 하여 '皮衣肉食'을 하다가 삼신녀를 맞아 결혼하고 각각 一徒·二徒·三徒에 分居한다. 삼성신인이 각각 제 지역에 분거하여 국가를 세웠다는 표현에서 이 신화는 씨족사회에서 부족사회로 넘어가는 단계의 소산으로 보인다.
둘째, 수렵하던 삼신인이 오곡의 씨와 송아지, 망아지를 가지고 온 삼산녀와 결혼하여 농목생활로 정착한 것은 狩獵·採集생산형태에서 農牧생산형태로 넘어오는 단계를 말해준다.
셋째, 삼신인은 바다 건너 상상의 나라에서 표착해 온 세 신녀와 나이 차례로 결혼하고 있다. 외부의 여인이 삼신인에게 와서 결혼했다 함은 夫方居住制의 혼인형태의 外婚制를말해 주는 것이며, 삼신인과 삼신녀가 나이 차례로 결혼했다 함은 一夫一妻制의 혼인습속을 말해주는 것이다.
넷째, 지중용출의 관념은 大地가 곡식을 여물게 하는 생식력이 있음을 파악하고, 나아가 인간도 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을 大地르 母性原理로 파악하는 地母神信仰을 엿보게 한다.
다섯째, 바다 건너 상상의 나라에서 삼신녀가 풍요를 주는 귀중한 오곡의 씨와 송아지, 망아지를 가지고 왔다는 것은 나라가 聖域이요, 樂土라는 他界信仰을 보여준다.
▶ 2. 傳 說
가. 濟州 傳說의 槪念
제주에서는 전설이란 개념이 분명하지 않다. 대체로 이에 해당하는 말로서 '전하는 말' '옛날 얘기' '古談'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꼭 설화 장르의 종개념인 전설과 일치한다고 말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설화의 종개념인 전설은 특이한 자연·역사적 인물·사건 등에 사실이라는 확인을 줄 수 있도록 설명하는 이야기로서 허구성을 지닌다. 제주의 경우 전설에 대한 일반인의 관념도 대개 이와 같다. 대부분 특이한 자연,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 또는 신앙. 관습 등의 由來를 설명하는 이야기들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본풀이처럼 직업적 전문인에 의해 이야기되어지는 게 아니라, 일반민중이 언제, 어디서나 사실이라고 믿어서 이야기되는 것이며, 듣는 사람도 그렇게 믿어서 듣는다. 이런 이야기들은 태초 사실에 대하여 설명하기도 하고 그다지 오래지 않은 過去의 사실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 시간에 관계없이 사실이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 구체적 증거물을 제시하면서 설명하는 특징이 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는 歷事的 이야기가 아니라, 단지 어떤 사실을 설명하는 것에 그친 이야기도 있다. 그런 점에서 제주 전설은 특별한 인물의 특수한 삶을 설명하거나, 제주의 원초적인 지형에 대한 은유적 설명들이 많다.
나. 傳說의 種類와 內容
제주의 전설도 자연전설·역사전설·신앙전설 등으로 분류하는 것이 편리하다. 자연전설은 특이한 자연현상을 설명하고, 역사전설은 역사적 인물, 사건에 대한 설명을 그 내용으로 하며, 신앙전설은 풍수지리, 신앙 등 민간신앙에 대한 설명 설화이다.
이 세 종류의 전설은 설명하는 대상물에 따라서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自然傳說: 山岳·島嶼·池沼·平野·巖石
歷史傳說:忠孝·烈女·官員·英雄·異人·名醫·富豪·壯士·女傑·建物·石塔·地名· 義犬·墳墓
信仰傳說: 地官·地形·禁葬·名墓·神堂·蛇身·도깨비 등 俗信
제주의 자연전설에는 산악·지소·암석에 대한 전설로서 특이한 것이 있다. 제주는 섬인데 중앙에 한라산이 돌출해 있고 그 주변에 많은 작은 화산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사화산으로 거의 분화구를 가지고 잇다. 지질은 火山灰土로 땅이 메마르고 龍泉이 적어서 내는 비가 올 때 외에는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논이 적고 밭이 많다. 거기다가 돌이 많고 기암절경도 적지 않다. 이와 같은 지리적 조건 하에서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자연전설이 많게 되었다. 이 지리적 特殊條件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島民들은 여러 가지 모티브를 통해 그 이유를 합리성 있게 설명하고 있다. 산악의 형성에는 <巨人傳說> 모티브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고 암석의 형태랑 水田이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에는 풍수지리적 신앙에 기초를 두어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자연조건을 이와 같이 설명하는 것은 섬이라는 限界狀況에 대한 대응 意識이라고 하겠다.
<아흔아홉골 전설>이나 거인 <설문대할망 전설>처럼 한 개의 골짜기가 모자라 호랑이랑 사자 등 맹수가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물도 나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라든가, 거인의 옷 한 벌만 만들어낼 수 있었더라면 本土까지 다리가 놓여질 수 있었는데, 천이 조금 모자라서 옷을 완성시키지 못하여 다리를 놓을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흔하다. 이러한 전설은 왕이나 큰 인물이 없어 政治的 不毛性에서 벗어날 수 없고 지리적 제약 때문에 어려운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는 도민의 처지를, 섬이라는 지리적 조건에 歸着시켜, 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한계의식을 설명하고 있다.
역사적 전설에는 官員·壯士·異人·女傑등에 대한 전설이 많다. 관원에 대한 이야기는 주로 섬의 행정책임관인 牧使에 대한 이야기로 <堂五百절五百 傳說>, <奇虔牧使 傳說>과 같이 무속타파, 棄老 모티브 전설이 많다. 장사 전설을 풍수지리설과 관련시켜 날개 돋은 異人壯士(力士)의 탄생에 대한 것이 많다. 즉 선조의 묘지 精氣로 날개가 돋은 男兒가 태어나지만, 사회적인 固定觀念 때문에 그 날개를 除去해 버려서 결국은 장수가 되지 못하는 이야기이다. 異人·女傑이야기는 동공이 두 개 있는 英雄, 50인분의 식사를 먹어치우는 장사, 남자도 대적할 수 없는 여인의 이야기 등이 많다. 이러한 것은 제주의 풍토적 조건과 역사적 조건의 특수성, 그러한 環境속에 살아왔던 도민의 생활사·꿈·세계사 등이 반영된 것이라고 하겠다.
한편 신앙전설에는 풍수지리에 대한 전설, 사신전설 등이 많고, 무속의 신당에 대한 유래설등 전설보다는 당본풀이로서의 신화의 성격을 띤 이야기들도 많다. 이는 제주도민의 신앙의 특성과 설화분류의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 傳說의 形式
전설은 하나의 모티브에서 성립하는 단순한 구조를 가진 것에서부터 복잡한 구조의 이야기까지 다양하며, '옛날 이야기' 식으로 발단이나 결말에 대하여 일정한 형식이 없는 경우도 있다. 전설은 증거물의 설명이 最小要件이기 때문에 단순한 보고인 것도 있고, 시적 상상을 첨가한 문예적인 성격을 가진 것도 있다. 그러나 전설은 시대·장소·인물·증거물 등이 구체적으로 提示되고 어떤 특정한 대상물을 갖고 이야기되어지는 특징을 갖는다.
그런데 제주도의 경우 반드시 증거물이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경우가 많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즉 추상적인 時代나 人物, 場所의 제시를 통하여 이야기되는 경우가 더 많다. "옛날 어떤 마을에…" "옛날 육지의 어느 곳에…" 식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경우이다. 역사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향유자들이 "조선조 ××왕××년" 식으로 정확한 시간을 제시할 수 없을 것이고, 또한 그 년대를 들었다고 하더라도 그대로 기억하여 전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러한 年代가 傳說의 일부로서 큰 역할을 담당하지 못할 경우 향유자들이 記憶하여 전수할 필요성도 없다. 단지 그들에게는 그 이야기가 사실인 것만을 말하면 된다. 시대나 인물, 장소 중 어느 한 개만이라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 듣는 사람은 사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향유자들의 사실성 여부에 대한 전설의 신빙도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예를 들면 풍수지리에 관한 전설은 민중들이 그것을 굳게 신앙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虛構的인 내용이라도 그 이야기를 굳게 믿고 선조의 行蹟에 관한한 그 先祖崇拜思想에 의하여 그대로 믿게 된다.
라. 傳說의 機能
전설은 본풀이와 같이 어떤 技能者에 의하여 특정한 기회에 이야기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언제 어디에서 누구든지 말하고 듣는다. 그러나 그것이 자주 이야기되는 경우가 있다. 그 주된 機會는 선조의 年忌(祭祀등), 墓祭, 그리고 포제, 기우제 등 부락제 때, 마을의 놀이터나 집에서, 또는 농한기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휴식을 취할 때이다.
선조의 年忌는 고조부모(4대조부모)까지 每年 그 자손의 집에서 행해진다. 그 때에는 아버지 편에서 8촌 내의 친족, 즉 4대조를 정점으로 하는 친족들이 모이다. 이 8촌 이내의 친족이 최소 친족집단으로 되어 있고, 이 집단이 저녁에 제사를 하는 집으로 모여들게 된다. 이들은 맛있는 음식을 들면서 여러 가지 세상일에 대하여 이야기하는데, 이때 자연히 전설도 이야기된다. 묘제는 5대조 이상의 선조들 묘에서 1년에 한번씩 행해진다. 그 묘제 때에는 선조 자손들이 참가한다. 제사는 낮에 행해지고 유교식의 제례가 끝나면 門中會가 열려 문중의 일이 의논되고 가문의 명예나 긍지가 되어 意識되고 음식을 들면서 세상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이때 자연히 전설도 이야기되어진다. 이런 경우 전설은 주로 선조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전설이나 신앙, 자연전설들이다. 선조를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에 따라서 선조 숭배사상이 강조되고 가문의 명예나 긍지가 의식되어 친족집단의 결속이 보다 굳게 다져지게 된다.
포제는 일종의 풍년제다. 포제나 祈雨祭, 제사 등은 마을제로서 온 마을 남자들이 모여서 행해진다. 제사일 수일 전에 마을 회의가 열려 제관이 뽑히면 제사에 따랄 준비를 맡은 사람들과 함께 일정한 장소에 합숙하면서 근신제계에 들어가다. 그 기간동안 마을 남자들은 합숙소에 모여 놀면서 여러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이 때에도 전설이 이야기된다. 이 경우에는 주로 마을 설촌 이야기에서부터 마을 역사가 이야기되나 그 내용을 보면 대체로 자연물에 대한 얘기, 각 가문의 얘기, 마을에서 유명하거나 기이한 행적을 가진 사람들의 얘기, 신당에 대한 얘기 등이다. 이처럼 전설은 친족집단이나 마을사람들의 집합장소에서 많이 이야기된다. 특히 제사를 중심으로 하는 집합소에서 더욱 잘 이야기된다. 이러한 기회에 이야기되는 전설은 이야기되는 것에 따라서 자연이나 역사에 대한 소박한 지식을 배워 얻을 수 있으며, 숭조정신·애향심 등을 깨우쳐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친족집단이나 부락 공동체의 유대를 한층 강조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이러한 기능 외에 그 이야기 자체를 즐기는 순수한 기능도 갖고 있다.
마. 濟州傳說의 特徵
1) 풍수(斷脈)전설
(1)풍수와 전설
풍수는 산수의 생기가 인간생활의 吉凶禍福을 지배한다는 생각에서 양자를 조화시킴으로써 인간생활의 복리를 추구하는 일조의 속신 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민간의식에 고착되면서 인간의 출생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고 믿게 되었고, 급기야는 한 가문에서 한 지역, 또는 국가의 발전과 흥망도 풍수지리와 관련을 갖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제주와 같은 불모의 섬에서는 이러한 습속이 상당히 성행되었다는데, 그것은 제주의 지리적 決定事實 자체를 풍수에 의해 설명하려 했던 것이라고 생각 할 있다.
풍수전설은 일종의 신앙전설로서, 여기에는 明堂·斷脈(討穴) 6防鎭·王都豫言·서울풍수설·名風水등을 내용으로 한 전설이 포함된다. 이러한 풍수전설은 우리나라 전역에 널리 펴져 있다. 이 가운데서도 풍수와 인간과의 관계를 가장 절실하게 나타내어 주고 있는 것이 단맥(토혈)전설이다. 이 이야기에는 개인·집단, 한 국가의 흥망이 점철되어 있고 화합과 결별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바로 당시에 풍수가 인간생활에 얼마나 밀접하게 關聯되었는가를 보여준다.
(2) 제주의 풍수(斷脈) 전설 : 고종달型의 전설
제주도 풍수·단맥전설의 特徵은 고종달형 전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전설은 고종달이란 인물이 제주 곳곳을 단맥 토혈함으로써 제주를 불모의 땅으로 만들었다는 제주문화 형성에 대한 좀더 근원적인 문제를 제시, 형상화시켜 주고 있다. 즉 "제주가 王侯之地임을 염려한 대국 왕이 고종달을 제주에 파견, 곳곳을 토혈하였기 때문에 제주에는 왕도 인물도 나지 않게 되었다"는 내용인데, 많은 파생태를 지닌 이와 유사한 전설을 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종달형 전설의 기본은 다음과 같다.
① 중국 진시황은 제주가 인물(왕)이 날 지세임을 안다.(王侯之地)
② 인물(왕)이 나지 못하도록 고종달을 제주에 보낸다. (風水파견)
③ 고종달은 제주에 와서 여러 곳의 지혈을 끊어 버리나.
④ 그 결과 제주에는 왕(인물)도 없어지게 되고 샘도 없어지게 된다. (왕이 안 남)
이 기본형은 主軸으로 하여, 고종달이 온 섬을 돌아다니며 討穴(단맥)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이야기가 다양하게 전해진다. 그러므로 비록 도내 곳곳에서 많은 이야기가 전한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모두가 "고종달이 제주를 討穴한' 이야기이다. 이 전설은 제주에 샘(泉)이 드물다는 地質的 현상을 설명하는 것 같으나, 실은 불모의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하고 있다. 제주인이 처한 狀況의 불모성을 왕이 없는 땅에 비유, 제주인의 어려운 역사와 그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사유를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전설에서 가장 중요한 갈등 요소는 제주가 "王侯之地"라는 데 있다. 이는 큰 사건이다. 왕기가 서린 땅은 축복 받을 곳이지만, 그 축복을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적 상황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낳게 된다.
고종달이 중국왕이 보낸 (하필이면 중국인가) 풍수사라는 점은, 王侯之地인 제주가 본토 전설과 같이 한 왕권이 지배하는 한 국가내의 변두리 지역이라는 意味보다, 제주 대 중국이라는 , 제주가 한 국가단위로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왕후지지로서의 의미가 돋보이게 되며 그만큼 비극도 격렬해 질 수밖에 없다. 중국 왕이 보낸 풍수의 단맥 토혈은 제주민이 겪었던 외세의 압박을 설명한다. 富하기만 하면서 살아온 제주 사람들의 역사적 상황과 그러한 사왕 속에 살면서 역사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제주가 왕후지지였다는 자존의식 때문이다. 또한 대립적 상대 세력 역시(중국), 그 가운데서도 진시황까지 거론되므로 제주가 왕후지지라는 의미를 돋보이게 한다. 중국왕(진시황)이 걱정할 땅이라는 점은, 제주를 한 국가 단위로 의식한 때문이고, 그만큼 自尊 속에 현실을 변용하며 살아 왔음을 말해준다.
고종달 전설의 플롯은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다.
① 王侯之地였다.
② 中國 王이 근심했다
③ 斷脈하도록 풍수사를 보내 토혈해 버렸다.
④ 그 결과 왕이 나지 않게 되었다.
①∼④의 플롯은 인과관계에 의하여 정연하게 짜여졌다. 이와 같이 정연한 플롯을 지니게 된 것은 구전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關心 속에 다듬어지면서 다시 엮어졌기 때문이다. 죽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사랑했다는 증거이다.
2)제주의 인물전설
제주 인물전설의 원류는 고종달형 전설에 있다. 제주에 왕이 날 것을 두려워한 대국왕이 풍수사를 제주에 파견하여 단맥한 이후부터 제주에는 왕도 큰 인물이 날 수 없게 되었다. 이 전설은 새 역사를 주도해 나갈 인물을 바라는, 그래서 폐쇄된 역사가 열려지기를 바라는 도민의 꿈이 형상화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제주인물전설에서는 그러한 決定論 때문에 비범한 인물들이 세속화되어 현실과 타협하면서 살아가도록 되었다. 그러나 이는 單純한 타협이 아니라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질서의 구축에 참여하기 위하여 그가 지닐 비범성을 포기하고 평범한 인간들처럼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방범을 찾는 것이다.
전설의 비극적 構造인 "세계와의 대결을 통한 패배"가 "세계와의 대결을 통한 화합"이라는 제주전설이 갖는 구조는 바로 제주전설의 특징인데, 이는 제주인의 삶의 한 양식을 형상화시켜서 현실 극복의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제주의 人物傳統은 제주사람들의 삶의 한 방식을 보여준다. 옛날에 살았던 인물에 대한 사실이 과장 내지 그에 따른 허구를 통하여 영웅이나 장수가 현실에 적응하여 자기를 숨기고 비하하며 어떻게 살아갔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불모의 땅에서 살아가면서 그들의 삶의 의지는 상황에 대한 저항을 통하여서만 펴려고 하지 않고 새로운 길(和合과 和解)을 모색하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그러기에 보다 현실적이었다. 여기에서 전설적 경이는 결여될 수밖에 없었다.
제주의 인물전설들은 실재하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 인물들은 거의 異人으로 형상화되는데, 그 가운데 장사, 여걸에 대한 전설이 특이하다. 이야기들은 전국적으로<겨드랑이에 날개 돋은 將師 이야기>와 <오뉘힘내기형> 모티브를 지닌 장사 이야기와 유사하면서도 다르다.
(1) 아기장수 전설
아기장수형 전설은 전국적으로 광포 되어 있는 전설 가운데 대표적으로 백성의 계급 上昇의 욕망이 좌절되는 비극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제주의 아기장수 전설은 이러한 비극성이 어느 정도 극복되어 있다. 이 전설은 새로운 세력의 부상은 용납하지 않는, 폐쇄된 사회상황에서 억압상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특히 그러한 비극성이 전설적 경이를 통해 어느 정도 카타르시스되고 잇는 본토전설에 비해, 제주에 분포된 전설에서는 이러한 비극이 극복되고 세계와 자아의 대립이 화합으로 처리되었다.
아기장수型 전설의 기본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 옛날에 어느 곳에 가난한 농부가 아기를 낳았는데
② 며칠 안 되어 그 아이에게 날개가 달린 것을 알게 되었다.
③ 집안에서는 아기가 역적이 될 것을 두려워
④ 죽여버리자
⑤ 龍馬가 나와서 울다가 죽었고, 그 자리에 龍沼 또는 말 무덤이 생겼다.
이러 한 전설은 전국 지명에 분포되어 있고 각 지방마다 변이된 형태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제주의 경우는 그 육지부에 비해 특이하다. 제주의 아기장수형 전설은 다음과 같이 변이 되면서 도 전역에 분포되어 있는데, 그 예를 洪業善 전설에서 살펴 보겠다.
홍업선은 약 300년 전에 애월면 신엄리에서 태어났다. .(인물의 提示)어릴 때부터 풍목 예사 사람과 다르고 또한 힘도 세었다 집안이 가난하여 아버지를 도와서 짚신을 삼아 성내에 가서 팔았다. 그런데 업선이 너무 빨리 성내를 다녀오곤 하자 그 아버지는 이상하게 여겼다. (경이적인 사실의 발견)업선 아버지는 독한 술을 빚어 먹여 취하게 한 다음 아들의 옷을 벗겨보니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 있었다. (상황에 대한 葛藤) 집안에서는 후환이 두려워서, (葛藤의 극복)가위로 그 날개를 잘라 버렸다. (葛藤의 解消)그 후 업선은 전보다 기운이 세지는 못하였으나 보통사람에 비하여 힘이 장사여서 누구도 그 힘을 당해낼 자가 없었다. 업선의 묘는 지금도 제주시 외도동 위쪽 서만이라는 곳에 있는데 해마다 묘제를 지낸다. 지금도 그의 9대손 들이 살아 있다.
이 전설은 실재 인물에 대한 내용으로, 장수가 좌절하여 장사로 살아간다는 이야기이다. 본토의 아기장수 전설이 비극적 결말과 전설적 경이가 강한데 비하여 제주전설에는 그 비극성이 극복되었으나 반면 전설적 경이가 弱化되었다. 제주에 있는 아기장수형 전설로서는 배락구릉·오찰방·김통정장군·홍업선·평대부대각·날개 돋친 밀양박씨·한여한배임제· 릿장군 등이 있는데, 거의 본토 전설과 상이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제주의 아기장수 전설은 날개 달린 아기가 죽지 않고, 주위 사람들의 보호를 받거나, 또는 날개가 잘려져도 죽지 않아서, 힘센 장사로 일생을 살아간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 중요한 것은, 날개 달린 장사가 현실상황에 타협하고 적응하면선 그 나름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점에서, 날개를 가진 장사를 거부하는 왕조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육지 본토보다도 약화되었음을 의미한다.
(2) 힘내기型 전설
힘내기형 전설은 흔히 오뉘힘내기형 전설이라고 한다. 이 전설은 전국에 널리 분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아기장수 전설처럼 비극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전설이란 서사 장르가 비극성을 속성으로 하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유형 전설이 비극성을 강하게 갖고 있다는 것은, 평민의 향유물인 전설의 특징이 비극성에 있음을 시사해 준다. 제주 인물전설 가운데 힘내기형 전설은 단지 그 모티브를 가진 전설만이 있을 뿐이며, 본토처럼 정연한 구조를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런 점에서 제주 힘내기형 전설은 본토 힘내기형 전설의 한 파생태라고 볼 수 있다. 그 전설의 개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吳察訪 전설
오찰방의 아버지는 튼튼한 아들을 낳으려고 부인이 임신하자 소 열 두 마리를 잡아 먹였는데 낳은 것은 딸이었다. 다음에 다시 임신을 하자 이번에는 아홉 마리를 잡아 먹였는데 아들(오찰방)을 낳았다. 그들은 자라면서 힘이 장사였다. 제주 섬 안에서는 오찰방을 당할 자가 없었다. 그러나 누님은 그의 眼下無人格인 태도를 고치려고 하였다. 어느 날 씨름판에 누님은 男裝을 하고 나가서 동생과 겨루었다. 동생이 지고 말았다. 그러나 동생은 그 상대자가 누구인지 몰랐다. 누님은 동생의 짚신을 서까래 아래 끼워놓고 그것을 찾아 신도록 하였다. 오찰방은 짚신을 찾았으나 꺼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누님이 꺼내 주었다. 오찰방은 그제야 누님의 힘을 깨닫고 그 태도를 고쳤다.
○始興里 현씨 부인이 妊娠하자 소 열 마리를 잡아 먹여 힘센 아들을 낳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낳은 것은 딸이었다. 다시 부인이 임신하자 이번에는 아홉 마리를 잡아 먹였는데 아들을 낳았다. 두 오뉘는 힘이 장사였다. 아버지는 오뉘의 힘을 서로 겨루게 해 보고 싶었다. 어느 날 이웃 마을에서 씨름판이 벌어졌다. 아버지는 딸에게 남장을 시켜 따라가도록 하였다. 씨름판은 동생의 독무대였다. 누구도 당할 자가 없었다. 그러나 군중들은 외지놈이 와서 독판을 친다고 들고 일어섰다. 동생은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이 때 남장한 누님이 나서서 동생과 겨뤄서 결국 이겼다. 흥분한 군중들은 진정되었고 동생은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本土에서 전해 내려오는 힘내기型 전설의 槪略은 다음과 같다.
(發端)옛날 어는 집에 홀어머니가 힘이 장사인 아들과 딸을 데려서 살았다. (葛藤)하루는 오뉘가 한 집에서 살 수 없으니 지는 자가 죽기로 하는 내기를 하였다. (危機)그런데 딸이 아들보다 먼저 성을 쌓고 이기게 되자, 어머니는 이왕이면 아들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딸로 하여금 작업을 늦추게 하였다. (結末)결국 아들이 이기자 누이는 죽게 되었다. 그 뒤 아들은 자기가 卑怯하게 이긴 것을 알고 자살하였고 아들과 딸을 잃은 어머니도 죽고 말았다. (證示)지금도 딸이 쌓다 만 성이 남아 있고, 아들이 죽은 비극의 증거가 남아 있다.
이러한 전설은 지역에 따라 화소의 변이를 나타내고 있지만, 전체적인 플롯은 다음 5단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① 發端 (홀어머니가 비범한 오뉘를 데리고 살았다.)
② 葛藤 (두 오뉘는 한 집에서 살 수 없어 내기를 해야 했다.)
③危機 (어머니가 아들 편을 들었다.)
④ 종결(누이가 패배하여 몰락했다.)
⑤ 증시 (증거물이 남아있다.)
종결에 누이만 몰락하는 경우와 누이, 오라비 그리고 어머니까지 몰락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각기 다른 결과는 힘내기형 전설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전설의 개략은 비범한 오뉘를 가진 어머니(아버지)는 두 오뉘는 대립 갈등을 중재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당하게 한 편(아들편)에 가담함으로써 이겨야 할 누이(한 세력)가 패배 몰락했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힘내기형 전설에 비해 제주전설에서는 오뉘가 서로 화합하는 結末로 변이되었다는 데 제주전설의 특징이 있다.
힘내기型 전설은 두 세력의 갈등 대립을 통해 새로운 역사창조의 계기를 이룰 수 없었다는데 비극성이 증폭된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고착된 상황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것인데, 제주전설은 그러한 상황을 극복하려는 삶의 태도가 형상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여 갈등대립이 비극적 결말이라는 육지부 오뉘힘내기형 전설의 구조가, 갈등의 대립의 화해를 통한 발전적 契機를 이루는 구조로 변이 되었다는데 제주전설의 特徵이 있다.
바. 전설 자료
1) 고종달형의 전설
(1) 고종달
옛날 대국(중국)의 왕비가 돌아갔다. 왕은 후궁을 구하기 위하여 신하들을 사방에 풀어놓아서 미인을 구해 들이라고 하였다. 신하들은 여러 곳에서 미인을 골라 바쳤으나 왕은 고개를 내저었다. 신하들은 미인을 찾아 제주에까지 왔다. 신하들은 제주에 의외의 천하일색을 발견하였다. 임금에게 그녀를 올렸더니 그렇게 까다롭던 임금도 희색이 만연하였다. 그 여인은 백정 집안 출신인데 미모였던 것이다. 후궁은 얼마 없어 태기가 있고 10朔만에 커다란 알 다섯 개를 낳았다. 알은 날로 점점 커져서 집 안에 가득해지더니 하루는 깨지면서 將軍 5백이 튀어나왔다. 5백 장군은 매일같이 "칼 받아라! 활 받아라!" 하면서 뛰어다니니 이 장군들로 하여 꼭 나라가 망할 듯하였다.
진시황은 공연히 걱정이 되었다. 이 장군들을 어떻게 해야 처치될 것인지 걱정이 태산같았다. 어느 날 용한 점쟁이에게 점을 쳤다. 점쟁이는 제주에 있는 將軍穴의 정기로 이런 장군들이 태어난 것이니 이 장군혈을 떠 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진시황은 곧 고종달이를 시켜 제주의 모든 穴을 떠버리라고 하였다. 고종달은 칙명을 받고 제주로 향하였다. 배가 구좌읍 종달리에 도착하였다. 상륙하면선 고종달이는 人家를 찾아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다. '종달리외다'고 대답하는 것이다. "무엄하게도 내 이름을 동네 이름으로 쓰다니…" 고종달은 화를 내고는 우선 終達里의 물穴부터 뜨기 시작하였다. 종달리의 물穴을 떠서 흐르는 샘물을 막아 놓은 종달이는 곧 서쪽으로 향해 곳곳의 穴을 떠갔다. 어느 곳엔가 이르러 고종달이는 한 穴을 발견하고 正穴에다 쇠꼬챙이로 쿡 찔렀다. 때마침 옆에는 어떤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다. 고종달이는 그 농부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쇠꼬챙이를 빼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고는 다음 穴을 뜨러 떠나 버렸다. 얼마 없어 어떤 백발노인이 농부 앞에 나타났다. 노인은 매우 고통스러운 듯이 울면서 "저 쇠꼬챙이를 빼어 달라"고 애원하였다. 농부는 무슨 곡절인지는 모르되 그 애원하는 품이 예삿일은 아닌 성싶었다. 노인의 말대로 쇠꼬챙이를 뽑았다. 순간 쇠꼬챙이가 꽂혔던 구멍에서 피가 쫙 솟아올랐다. 노인은 얼른 그 피를 막았다. 다행히 피는 멈추어 평소 狀態로 돌아왔다. 정신을 차려 보니 백발노인은 간 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 穴은 말혈(馬穴)이었다. 다행히 솟아오르는 피를 멈추게 하였으므로 제주도에 말은 나되 피가 솟아 버렸기 때문에 제주도의 말은 그 몸집이 작아졌다. 고종달이가 제주지 화북동의 어느 밭에 이르렀을 때였다.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는데 백발노인 한 사람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노인은 매우 급하고 딱한 표정으로, "저기의 물을 요 행기(놋그릇)로 한 그릇 떠다가 저 소 길마 밑에다 잠시만 숨겨 주십시요."라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농부는 뭣 때문인지 영문을 모른 채 그 노인의 몸가짐이 하도 다급한 것 같으므로 물어볼 겨를도 없이 그대로 해 주었다. 그랬더니 노인은 그 행기의 물 속으로 살짝 들어가서 사라져 버렸다. 이 노인은 水神이었다. 농부는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려는가 보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밭을 갈기 시작하였다. 얼마 안 되어 어떤 부리부리한 사람이 개를 데리고 나타났다. "여기 꼬부랑 나무 아래 행기물이란 물이 어디 있소?" 무슨 책을 들여다보면서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물었다. 농부는 이 마을에 지금까지 살았어도 그런 물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꼬부랑 나무 아래 행기물이란 샘물은 금시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이상하다고 하면서 다시 그 책을 자세히 검토하더니 "여기가 틀림없는데, 여기가 틀림없는데…"하고 중얼거리며 주위를 샅샅이 찾아보는 것이었다. 이사람이 바로 고종달이었다. 그가 가진 地理書가 어떻게 잘 되어 있는 책인지, 水神이 행기 속의 물에 들어가 길마 밑에 숨은 것까지 다 알고서 기록해 놓은 것이었다. 꼬부랑 나무란 것은 길마를 일컬음이고 행기물이란 행기 그릇에 떠놓은 물을 일컫는 것이다. 그런데 고종달이는 이것을 몰랐다. 또한 농부도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그저 그런 이름을 가진 샘물이 없으니 없다고 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고종달이가 데리고 온 개가 물 냄새를 맡았다. 개는 길마 밑으로 가서 냄새를 씩씩 맡아가는 것이었다. 농부는 길마 밑에다 햇볕을 받지 않게 점심을 넣어 두었는데 개가 그것을 먹으려는가 보다고 생각하였다. "요놈의 개가 어디 점심밥을 먹어 보자고!' 막대기를 들어 때리려고 하자 개는 저만큼 도망가 버렸다. 고종달이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샘물이 없으니 "이놈의 地理書가 엉터리구나"하면서 찢어 던져 버리고 개를 데려서 가 버렸다. 이래서 이 화북동의 물 脈은 끊지 못해서 지금도 샘물이 솟는다. 그때 행기 그릇 속에 담겨 살아난 물이라고 해서 '행기물'이란 이름이 붙어 오늘날까지 그렇게 불리고 있다.
2) 아기장수 전설(평대 부대각)
구좌읍 평대리에 夫씨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부인이 이상한 꿈을 꾸었다. 하늘에서 커다란 용이 내려와서 자기 몸 속으로 들어오는 꿈이었다. 부부는 꿈을 의논하고 귀한 자식을 얻을 꿈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후 부인은 임신하였는데 아도 식욕이 좋아 소 한 마리를 잡아 젓을 담가 놓고 다 먹었다. 그래서 해산하였는데 아들 쌍둥이를 낳았다. 낳은 아이들이 어찌나 큰지 보는 사람마다 놀랐다. 쌍둥이는 열 살이 못되어 숙성함이 십 팔구 세 소년 같고 힘이 장사일 뿐 아니라 머리가 영리하여 하나를 들으면 열을 통하였다. 부모는 자식이 너무 뛰어난 것이 다소 걱정스러웠다. 풍모나 행동거지가 너무 영웅스러웠기 때문이다. 집안에 영웅이 나면 역적으로 몰리기가 일쑤고 역적으로 몰리면 三族이 滅하는 때였으므로 걱정이 되었다. 어느 날 부모는 아들들의 거동을 살피기로 하였다. 둘이서 나들이옷을 입고 "오늘은 어느 마을에 다녀올 터이니 집을 잘 보고 있으라"고 아들들에게 타이르고는 집을 나갔다. 그리고는 살짝 돌아와서 집 안에 숨어 아들들의 거동을 살폈다. 어린 쌍둥이는 부모가 나간 줄 알고 저마다 재주를 부리기 시작하였다. 먼저 두 아들이 옷을 벗는다. 가슴은 명주로 돌돌 감겨져 있다. 이게 웬 일인가? 가슴의 명주를 푸니 겨드랑이에 날개가 첩첩이 접어져 있지 않은가? 쌍둥이는 날개를 펴고서 파닥파닥하더니 한 놈이 날아가면 다른 한 놈이 그 뒤를 날아서 쫓아간다. 그래서 잡히면 이번은 거꾸로 다른 놈이 도망가고 그 뒤를 쫓아서 잡아내었다. 한 시간쯤 그렇게 놀다가 아들들은 다시 날개를 접은 다음 명주로 감싸고 옷을 입는 것이었다. 부모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官家에서 알면 집안이 망할 것이다. 그들은 며칠을 생각한 끝에 아들들의 날개를 자르기로 작정하였다. 아들들의 생일을 기다려서 부모는 맛있는 음식에 좋은 술까지 마련하여 아들들을 먹였다. 얼마 없어 술이 취하여 쌍둥이는 깊은 잠에 빠졌다. 아버지는 장토칼을 들어 눈물을 머금고 작은 아들의 날개를 딱 찍었다. 순간 쌍둥이는 깜짝 놀라서 훨훨 멀리 날아가 버리고 작은 아들은 마당까지 날아가다가 날개 한 쪽이 잘렸기 때문에 더 날지를 못하고 떨어졌다. 그 후 큰아들은 영영 돌아오지 않고 작은 아들만이 살아 남았다. 이 아들은 어찌나 힘이 센 지 그 힘을 당할 자가 세상에 없었다. 이 작은 아들이 부대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도 힘센 사람을 보면 '부대각 자손'이라고 한다. 부대각의 墓는 현재 평대리 남쪽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3) 신앙전설(고 전적과 부친묘)
이조 현종 때 풍수로 유명했던 고전적이 전적 벼슬을 하게 된 것은 그의 부친의 묘를 잘 썼기 때문이었다. 고 전적은 작은아들이었다. 아직 전적 벼슬을 아니하고 고 생원이라고 불리고 있을 때 부친상을 당하였다. 형은 동생이 지리에 유명하니 求山을 해 주리라 믿고, 동생 고 생원은 형님이 계시니 내 앞장서서 걱정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서로 방심하였다. 葬事는 토롱(假裝)을 해놓고 1년이 가까워졌다. 하루는 형수가 남편더러 뜻을 물었다.
"아버지 상을 만나 朞年이 되어 가는데 장사 걱정 ?는 양이 으시니(없으니) 어떤 일이우꽈?"
"아시(동생)가 큰 정시(風水師)나 걱정허염시카부덴 ?는디 (동생이 풍수니까 걱정하고 있는가 하는데)."
"작은 아들도 아들이주마는 큰아들이 걱정하는 법 아니우과? 작은아들이 큰 정시주마는 그것도 고생?영(고생하여) 배운거난(배운것이니) 강 정허영 보는 게 (가서 사정하여 보는 것이) 도리 아니우꽈?"
그제야 형은 동생을 찾아가서 墓 자리를 보도록 얘기하였다. 고 生員은 형님과 같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서귀포 쇠돈(효돈) 도래미(월라봉)에 가서 자리를 하나 골랐다.
"형님, 이만 허민 아버지 묻을만 허우다."
"이게 무슨형인고?"
"力頭形이우다." 역두형이란 남자의 성기 귀두의 모양이란 말이다.
"음 역두형이라? 그러면 配가 이시카(있을까)? 玉門이 있어야 헐건디……"
'예 저기 제제기오름이 옥문형이우다." 바닷가 쪽 서귀포시 보목동의 산을 가리켰다. 이 산은 여인이 활짝 벗은 알몸으로 앉아 있는 형국이었다.
"그러면 저 옥문이 살아 이시카?"
"예, 물이 남수다(나고 있습니다)." 내려다보니 산기슭 밑으로 생수가 졸졸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만하면 쓸만하다고 하여 장사를 하게 되었다. 광중을 파기 시작하였다. 거의 다 파가니 땅에 구멍이 툭 터졌다. 役軍들이 구멍이 터져서 장사를 못하겠다고 수근거렸다. 고 생원은 얼른 달려가서 상복을 벗어 돌돌 말고는 그 구멍을 꽉 막았다.
"그대로 下棺하십서. 甲班科擧 하나는 날 터이니 그만 허민 되었지."
이렇게 하여 장사를 치렀더니 과연 얼마 안 가서 고 생원이 典籍이 되었다. 典籍이 된 다음 高 典籍은 "터진 땅에서 甲班科擧 하나 났으니 그만 떠나자 "하고 아버지 묘를 移葬해 버렸다. 그 후 얼마 안가서 조천읍 뒷개(북촌리) 이만돈네 집에서 그 이상한 자리에 장사지내고 싶다고 양해를 구하러 왔다. 아직 만돈令이 되기 전의 일이었다. 高 典籍은 "우리는 이미 떠났으니 어서 쓰라."고 허락하여 "제열(정자리를 고르는 일)은 다른 사람 빌지 말면 내가 해 주겠다'고 했다. 高 典籍은 원래 墓를 썼던 자리에서 한 광중 내려앉혀 개광하도록 하였다. 흙을 파 가니 오색토가 질질 나왔다. 고 전적이 아버지 묘를 썼던 자리는 正穴이 아니었던 것이다. 正穴에 묘를 쓴 이만돈네 집에서는 그 후 얼마 안 가서 만돈令이 나고 이어서 무과 벼슬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4) 장사전설(논하니)
남원읍 의귀리 경주 김씨宅은 역대 감목관을 지낸 집안으로 유명한데 이 집안에 '논하니'라는 종이 있었다. 논하니는 원체 체구가 크고 힘이 세어 일을 잘 했다. 그에 맞추어 배도 이만저만 크지 아니 해서 제대로 배를 채워본 적이 없었다. 上典인 김씨宅에서도 이 종이 얼마나 배가 크고 얼마만한 힘을 지녔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어느 해 가을 꼴을 베어 들일 즈음이었다. 김씨댁에는 '오맛'이라는 꼴밭이 있는데 약2만평쯤 되는 밭이었다. 상전은 이 밭의 꼴을 베어 들이기 위해 논하니를 불렀다.
"너 오맛에 가서 촐왓(꼴밭) 돌아 ?(돌아보고) 오너라."
밭을 돌아보고 온 논하니는
" 놉 백놈이민 비것습네다(베겠습니다)"고 보고하였다.
"너 그러면 놉 백놈 빌어놔야 할 게 아니냐?"
"예, 다 빌어 놓고 왔습니다."
이튿날은 동이 트자 부산하게 백 사람 먹을 점심을 준비하여 논하니를 깨웠다. 논하니는 소에 점심을 싣고 밭에 나갔다. 낮이 가까워서 상전은 작업광경을 보기 위해 말을 타고 밭에 가 보았다. 백 명 일꾼이 부리나케 일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일꾼은 하나도 없고 논하니 혼자만 낫을 슬슬 갈고 있었다.
"너 이놈아, 어느 게 백 놈 놉이냐?"
상전은 기가 막혀서 욕도 못하고 그대로 내려와 버렸다. 논하니는 그저 무심코 앉아서 낫만 갈고 있었다. 낮이 훨씬 넘도록 낫을 갈아 놓고는 머리털을 하나 뽑아 놓은 후 백 사람의 점심을 혼자 말끔히 먹어 치웠다. 그래서 잠시 숨을 내쉬고 논하니는 꼴을 베기 시작하였다. 어찌나 빨리 베어 제쳤는 지 해가 질 무렵이 되자 백 사람이 벨 꼴을 다 베어 버렸다.
집에 돌아온 종을 보고 상전은
"너 촐(꼴) 어떵허였느냐?"
"다 비었수다(베었습니다)."
다 베었다는 말이 곧이 들리지 않아 상전이 말을 타고 가 보았더니 백 사람이 벨 꼴을 혼자서 다 베어 놓았었다. 상전은 그때야 비로소 논하니가 무서운 놈이라고 감탄하였다.
이튿날은 또 논하니를 불러서 물었다.
"그 촐 몇 놈 역(役)이나 허민(하면) 묶어지겠느냐?"
"예 그저 쉰 놈 역이민 묶으것습디다."
상전은 일꾼 쉰 사람을 빌어 놓으라 하고 이튿날은 쉰 사람의 점심을 하여 밭에 보내었다. 논하니는 역시 쉰 사람의 점심을 싣고 밭으로 갔다. 낮쯤 되어서 상전은 또 말을 타고 밭을 보러 나갔다. 가다 보니 이상한 일이 보였다. 솔개 여남은 마리가 꽃밭 위 하늘을 빙빙 맴돌고 있는 것이다. "하, 종놈이 죽어 솔개들이 뜯어먹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여 밭에 가 보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논하니가 꼴을 묶으면서 한 군데 모아 놓느라고, 한 묶음을 묶어서는 휙 던지고 또 묶어서는 휙 던지곤 하는 것이 워낙 빨리 해 놓으니까 꼴묶음 여남은 개가 쉬지 않고 하늘을 나는 것이었다. 이때 처음으로 논하니는 먹고 싶은 대로 배부르게 먹어 보았다는 것이다.
어느 해 가을의 제삿날에는 바람이 설렁설렁 불기 시작하였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염치없이 쉴 때가 많으므로 상전은 제사만 끝나면 곧 밭벼를 베러 가려고 준비하였다. 상전은 제가 끝나자 곧 논하니를 불렀다.
"이야(얘야), 혼저 (어서) 멧밥 먹어그네 산뒤(山稻) 비러 걸라."
"산뒤 비렌 뭣 허젠(뭣 하려고) 간답네까? 바람 안 납네다.'
논하니는 가려고 하지 않았다. 상전은 종이 말을 안 들으니 할 수 없이 손수 가야겠다고 하여 분주히 밭에 갔다. 컴컴한 밤중에 밭에 가보니 이상하게도 밭벼가 모조리 땅바닥에 납작하게 쓰러져 있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바람이 그리 세지도 않았는데…"하며, 밭벼들을 만져 보니 베어 놓은 것이었다. 바람이 일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논하니가 혼자 와서 제사 때 전에 모조리 베어버린 것을 알았다고 한다.
5) 여장사전설(시흥리 현씨 남매)
약 5백년 전 심돌(지금의 始興里)이 지금 위치에 부락이 이루어지기 전의 일이었다. 당시는 멀뫼(두산봉) 뒤쪽 '대섬머세'라는 곳에 인가 몇이 있을 뿐이었다. 이때 玄氏 부부가 여기에 살고 있었다. 현씨는 자식을 낳으면 힘센 자식을 낳아야 되겠다고 늘 생각하였다. 그래서 어느 해 부인이 임신하자 계속 소를 열 마리나 잡아 먹였다. 아들을 낳으리라 믿고 열 마리씩이나 잡아 먹인 것인데 낳은 것을 보니 딸이었다. 현씨는 아차 했다. 그러나 이 딸아이의 힘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다음에 부인이 또 임신을 하였다. 현씨는 다시 소를 잡아 먹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홉 마리를 잡아 먹이고 나서 생각해 보니 혹시 딸을 낳을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래서 아홉 마리로 중단하였다. 그런데 낳은 것을 보니 아들이었다. 현씨는 아뿔사 했다. 이 아들도 힘이 세었다. 당신 대섬머세에 살 때에는 현재의 시흥리 입구에 있는 '큰물'이라는 샘물을 길어다 먹었다. 현씨의 딸도 남들처럼 허벅으로 이 물을 길어서 지고 날랐다. 그 길은 좁고 험한 길이었다. 어느 겨울 雪寒風이 몰아치는 날 玄氏 딸은 허벅에 물을 지고 그 길을 오르고 있었다. 몰아치는 눈발을 헤치면서 가다 보니 내려오는 사슴 한 마리가 눈앞에 딱 마주쳤다. 그 때는 인가가 많지 않은 때였으니 한라산의 사슴들이 눈을 피하여 해변까지 흔히 내려왔다. 사슴은 사람을 보자 길을 꺽어서 도망가려고 하였다. 현씨 딸은 허벅을 진채 훌쩍 내닫더니 뛰는 사슴을 앞질러 가서 두 뿔을 잡고 홱 돌았다. 사슴은 벌렁 쓰러지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사슴을 잡아서 둘러메고 들어가니 현씨도 과연 딸의 힘에 놀랐다.
이 무렵 구좌읍 김녕리에서 씨름판이 벌어진다는 소문이 들려 왔다. 현씨는 이 기회에 아들과 딸의 힘을 견주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들을 씨름판에 보낸 다음 딸을 남장시켜 좇아가 보라고 하였다. 씨름판에서는 현씨 아들을 이기는 자가 없었다. 완전히 독판을 치는 것이었다. 현시 아들은 기세가 등등하여 휘둘러보니 여기저기서 수근수근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더니 군중들이 와아 하고 일어섰다. 旌義놈이 목안(제주시)에 와서 독판을 치다니 이놈을 발모둠해 버려야겠다는 것이었다. 이때 남장한 누님이 턱 나섰다.
"보자 허니 보잘 것 없는 놈이 남의 모슬(마을)에 와서 독판을 모니 될 말이냐! 나하고 붙어 보자!"
씨름이 붙었다. 누님인 줄을 모른 현씨 아들은 가소롭다는 듯 달려들었다. 그러나 소 열 마리를 먹고 낳은 딸이 이길 것은 뻔한 일이었다. 동생을 쓰러뜨린 누님은 군중을 향해 말하였다.
"난 저 목안 서촌에 사는 사람인디 정의 놈이 와서 독판을 모니 괘씸하여 붙어보니 하찮은 놈이로구만. 그냥 내붑쥬(내버립시다)"
그제야 김녕 사람들의 울분이 가라앉았다. 이렇게 하여 누님은 동생 위기를 구해 주었다.
▶3. 民 譚
가. 민담의 개념
지금까지 논의된 신화, 전설과 민담을 합쳐서 광의로 설화라 칭해진다. 설화의 전반적인 특징으로는 일정한 구조를 가진, 꾸며낸 이야기라는 허구성, 구전성, 율문·서사장르와는 다른 산문성, 구연기회에 제약이 없는 점, 누구나 구연할 수 있다는 점, 문자로 기재되는 기회가 가장 많은 분야라는 점, 그러다 보니 쉽게 소설화할 수 있다는 점등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 민담은
① 전승자가 이야기 자체를 신성하다거나 진실하다고 인식하지 않는다.
② 배경으로서 뚜렷한 시간 및 장소가 없다.
③ 증거물이 없거나 아주 포괄적인 증거물로 나타나며,
④ 주인공으로는 일상적인 인간이나 인간적인 행동을 하는 동물 등 구애받지 않는다.
⑤ 그들은 인간적인 행동을 하며, 예기치 않은 사태에 이르러서는 초월자의 도움으로 운명을 개척한다.
⑥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⑦ 전승의 범위는 범세계적이며 범 민족적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민담의 특성은 범세계적, 범 민족적이기 때문에 제주도만의 특성을 가진 민담은 희귀하기 마련이다. 제주 특유의 민담처럼 생각되는 것도 본토의 것을 찾아 비교해 보면 결국 같은 유형의 민담의 변이에 불과한 것임을 알게 된다. 그 변이는 제주의 자연적 환경, 역사적 배경, 생활 습속, 생활 의식 등의 소재에 의한 것이다. 이제 몇 개의 민담 사례를 들고 그 제주적인 변이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나. 민담의 분석·실례
옛날에 딸 하나를 데리고 사는 부부가 있었다. 아내가 죽자 새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그는 전처의 딸을 몹시 미워했다. 그런데 후처도 딸을 낳았다. 전처 자식은 밉다고 콩죽만 주었고 그로 인해 콩쟁이, 자신의 딸은 귀여워해서 팥죽만 먹여 팥쟁이라 불렀다. 그들이 성장한 어느해 영등당 영등굿이 열리어서. 계모는 자기 딸만 데리고 굿 구경을 가 버렸다. 콩쟁이에게는 밑 터진 항아리에 물을 채워 넣을 것과, 다섯 되의 기장쌀을 찧어놓고, 삼 12타래를 짜 놓으라는 과제를 제시했다. 어디선지 까마귀가 날아와 송진 있는 곳을 알려주어 그것으로 구멍을 메워 물을 채우고, 참새 떼가 기장쌀을 벗겨주고, 그리고 말은 삼을 모조리 먹고 나서 꽁무니로 삼을 짜내어 주었다. 일을 마친 콩쟁이는 영등신을 향해 가다가 보니 하늘애기가 길가에서 가막창신을 놓고 발에 맞는 색시를 고르고 있었다. 콩쟁이는 그 신을 신은 채로 굿하는 데로 갔다. 깜짝 놀라는 계모에게 그 사이의 과정을 얘기해 주었다. 굿이 끝난 후 하늘애기는 신의 주인공을 찾아 결혼을 하려 하였다. 팥쟁이가 속이고 신부로 나섰으나 탄로가 나 관가에서는 계모를 멀리 귀양보내고 하늘애기는 콩쟁이와 결혼식을 올렸다.
이러한 유형의 설화는 본토에서 계모설화로 전승되며 콩쥐팥쥐라는 설화로 수집된 것은 2편이 전한다. 이 설화는 고대소설 <콩쥐팥쥐>와 흡사한데 내용을 보면
1. 어떤 양반이 콩쥐라는 아이를 얻었으나 부인은 아이를 낳자마자 죽었다.
2. 할 수 없이 다른 여자를 부인으로 맞이하였다.
3. 계모와 계모 자식인 팥쥐는 콩쥐를 몹시 미워하였다.
4. 계모는 콩쥐에게 나무 호미를 주면서 자갈밭을 매라고 하였으나 검은 소가 내려와 밭을 다 매어 주고 먹을 것도 주었다.
5. 계모는 팥쥐와 함께 잔치 집에 가면서 물긷기, 방아찧기, 밥짓기, 베 짜기 등을 시켰으나 두꺼비·참새·소·선녀의 도움으로 일을 마치고, 선녀가 준 옷과 신발을 신고 잔치 집으로 갔다.
6.콩쥐는 잔치 집에 가는 길에 신발 한 짝을 잃어버렸다.
7. 신발 한 짝을 주운 귀인이 신발 임자와 결혼하겠다고 하는데, 콩쥐의 신발이 맞아 콩쥐는 귀인과 결혼했다.
8. 이를 시기한 팥쥐가 콩쥐를 죽이고 스스로 콩쥐 행세를 했다.
9. 콩쥐는 죽어 연꽃 구슬이 되었다가 다시 살아나 사실을 밝히고 남편과 함께 잘 살았다.
10. 팥쥐는 일이 탄로나 죽임을 당하고, 이를 본 계모는 놀라서 죽는다.
위 설화 중 8,9,10을 제외한 부분으 제주설화와 유사성을 가지며 민담의 일반적 특징인 행복한 결말과도 일치한다. 다만 다른 점으로는 소재의 차이를 들 수 있다.
제주 : 영등굿·까마귀·송진·말·하늘애기
본토 : 잔치집·검은소·두꺼비·소·선녀
이러한 소재의 차이에서 제주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영등굿은 영등할망이라 불리우는 여신을 모시는 것으로 해녀가 많은 해안부락에서 많이 행해지며 전도적 분포를 보인다. 이 신은 2월1일에 입도하여 15일에 나가는 동안에 섬 주변 바다의 소라·전복·미역 등 해녀채취물을 증식시켜 주며 또 어로 일반까지 보호하여 주는 내방신으로 제주인의 삶의 터전을 관장한다. 그러기에 이 영등신을 위하는 영등당 영등굿은 도민 자신들의 삶에 관한 것이기에 성대하게 치러진다. 잔치 집에 비견할 수 있는 굿이다.
본토설화에서는 검은 소가 난제를 해결케 해 주지만 제주에서는 까마귀가 등장한다. 이 까마귀는 차사본풀이에 의하면, 강림을 대신하여 적배지(저승문서)를 전달하는 저승사자와 같은 존재로 俗의 世界가 아닌 聖의 세계의 대표자다. 그런 존재이기에 난제 해결쯤은 문제가 안 되는 것이다. 더구나 항아리의 터진 구멍을 막는데 있어 생활 주변의 소재인 송진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더 합리적·현실적인 사고임을 알 수 있다. 소 대신 말이 등장하는 것도 제주의 자연환경과 밀접하다고 본다.
다음으로 본토에서는 선녀가 등장하여 원조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나 제주의 하늘애기는 원조이면선 해결자이다. 콩쟁이에게 신을 제공하면서 그와 결혼하는 것이 하늘애기이기 때문이다. 선녀 대신에 하늘애기로 나타나는 것은 제주의 일반본풀에서 신을 지칭할 때 '○○애기'라 하듯이 신성한 존재를 의미하는 말이다.
화소 5에서 참새가 주인공을 도와주는데, 이것은 초공본풀이에서 '노가단풍 호지맹왕 아기씨'가 주자 선생을 찾아갔을 때 벼를 두 동이나 가져와 '손톱으로 다 까 올리라'는 과제를 내는데 이 때 새가 나타나 도와주는 것과 같다. 문헌기록 (고대소설 <콩쥐팥쥐>)의 내용과 같다는 점은 설화의 소설화 과정을 밝혀주는 자료도 된다.
다음 결말 부분에 해당하는 화소8은 문전본풀이의 화소와 일치한다. 남선비를 찾아간 여산부인을 주천강 연못으로 목욕하려 가자고 꾀어 수중고혼을 만들고 자신이 본 부인인 척하는 노일제개귀일의 딸의 행위와 대응된다. 화소 9는 차사본풀이의 화소와 일치한다. 버무왕의 아들 삼 형제의 재물에 눈이 어두운 과양생의 처는 삼 형제를 죽이고 주천강 연못에 수장시킨다. 7일이 지난 후 연못에서 고운 꽃 3송이를 얻어 집에 갖다 놓으니 꽃은 그녀를 괴롭힌다. 괘씸하다 하여 화로 불을 넣으니 삼색구슬로 변한다. 이와 같이 같은 내용의 화소가 하나는 신화에서 불려지고, 하나는 민담으로 구연된다는 점 또한 신화와 민담간에 화소의 수수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이뿐만이 아니라 <왕고냉이> 설화는 지하국대적치 설화 화소가 녹아들어 있고, <천 년 된 쥐와 삼 년 된 수탉>은 <옹고집전>을 연산시킨다. 후자를 예로 들면
1. 어떤 부자와 외아들과 천 년 된 쥐, 3년 된 수탉을 거느리고 살았다.
2. 외아들의 결혼식 날 쥐는 신랑으로, 닭은 말로 변신하여 진짜 신랑을 내쫓는다.
3. 쫓겨난 신랑은 나뭇조각에 의지하여 과부들만 사는 예 나라에 도착한다.
4. 만 년 고양이를 구하여 쥐에게 복수한다.
5. 신부, 양친과 더불어 예 나라로 돌아가 행복하게 생활한다.
眞假爭鬪의 이야기임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쥐 이야기>에 따르면 손톱, 발톱 깍은 것을 많이 먹은 쥐가 변신하여 진짜 주인을 내쫓는데, 한 노인의 도움으로 세 발 달린 강아지로 쥐를 잡게 하여 거짓 주인을 밝혀내고 있어 쥐를 소재로 한 설화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힘센 여성에 관한 이야기들도 많다. <힘이 센 할머니>에서 보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부엌일로 이해 다투게 되었을 때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지붕위로 던져버렸다. 마침 지나가던 동네 머슴이 보자, 멋쩍은 할아버지는 " 이 호박 딸까? 저 호박 딸까?" 라 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설화는 본토에서 꼬마신랑과 과년한 색시한테 하는 얘기로 나타난다. 본토에서는 꼬마신랑의 재치에 주안점을 두어 전승되는 설화인 반면에 제주의 것은 여성의 힘에 초점이 두어져 있다. 이것은 힘세 여성에 대한 흥미로서가 아니라 제주의 각박한 풍토를 이겨내며 살아가는 걸 이상으로 삼은 제주의 여성상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동물의 보은에 관한 민담으로 <은혜 갚은 꿩>을 들 수 있다. 꿩이 뱀에 휘감겨 죽어가고 있는 것을 구해 주자 鐘에 머리를 박아 죽음으로써 은혜를 갚는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유형의 설화는 <새의 보은>,<비둘기의 보은>으로 전한다. 제주민담은 제재가 묏새에서 제주에서 자라는 꿩으로 바뀐 점을 들 수 있다.
夜來者 설화 유형으로는 <황거지네와 거지>를 들 수 있다. 밤마다 찾아오는 夜來者를 자물쇠를 이용해 퇴치하는 모티브가 특이하다.
<말이 없는 며느리>는 <3년 동안 벙어리, 귀머거리, 장님> 이라는 제목으로 본토에 전승되고 있다. '고된 시집살이를 견뎌가려면 조심해야 한다'는 충고를 지키려고 애쓰다가 시댁에서 벙어리라는 오해를 받아 쫓겨난다. 친정으로 가는 도중 꿩이 나는 것을 보고 서운한 심사를 노래로써 달래다 오해가 풀려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처녀가 제물로 바쳐지기 전에 밥을 주며 키웠던 개구리가 처녀를 잡아먹으려는 지네와 싸움을 벌려 자신은 죽음으로서 처녀를 구한다는 <은혜 갚은 개구리>가 본토에서는 <지네와 두꺼비> 이야기로 전승되고 있다. <은혜 갚은 두꺼비> 에서는 두꺼비가 내뿜은 독에 의해 지네는 죽고 두꺼비는 살아남으며 처녀가 시집가서 도적에 의해 또 다시 죽게 되었을 때 그녀를 구해줌으로써 밥을 먹여 구해준 은혜에 보답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처럼 제주의 민담은 독자적이 것이 아니라 본토의 것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이러 결과로 민담은 세계성을 띤다고 할 수 있다.
제주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롱이 구병> 이 있다.
돈 많은 과부의 외아들이 병에 걸렸다. 점을 치니 모일 모시에 만나는 나그네가 병을 고칠 것이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그네는 과부집에 유숙하게 되고 병을 고쳐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난감한 나그네는 천정만 쳐다보다가 매달린 대롱이를 보고 "그것 참 대롱이군 "했다. 주위에 모였던 사람들이 그 전에 이 집에 살던 대롱이란 노인이 '걸렸다'는 이야기라며 제물을 차려 비니 아들이 소생하였다.
이 설화는 '들린다'라는 현상을 한 것으로 이러한 현상에 대한관념은 제주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다. 들리는 대상은 남녀를 불문하나 주로 여성이다. 무속의례의 한 현상이 민담화 된 것으로 제주의 신앙형태를 보여주는 설화다.
동물유래담으로 팥벌레의 모습을 형상화시킨 <풋버랭이>가 있다.
옛날 귀신과 생인이 같이 살 때인 딸아기가 가난한 백성이 밥을 얻으러 가면 상한 밥을 주고 장을 얻으러 가면 상한 장을 주었다. 옥황상제가 이를 괘씸히 여겨 이승으로 귀양을 보냈다. 이승에서도 목동에게서는 점심, 밭일하는 일꾼에게서는 저녁을 얻어먹고 살아가니 옥황상제는 남의 밥만 얻어먹는 주책없는 년이기에 평생 푸른 옷을 입어 숟가락을 똥구멍에 찔러 콩밭에 숨어살도록 하는 벌을 내렸다. 그 이후로 옥황 큰딸 애기는 버렝이가 되었다고 한다.
이는 전승집단의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상한 음식을 주는 행위 자체를 부정하며, 일을 하며 살아야지 놀면서 얻어먹는 것은 용납지 못하고 있다. 팥벌레의 생김새에서, 제주인들은 이웃을 도와주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근면성·성실성을 배우고 있다.
제주인들이 향유하는 설화 속에서 동물의 습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게는 왜 바다와 육지를 오가게 되고, 새는 왜 산에서 날아다니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게이광생이>가 있다. 외삼촌에게 구박을 받던 오누이는 집을 나와 산열매를 따먹으며 돌아다니다 서로가 길을 잃는다. 누이는 죽을 뻔한 뱀장어를 구해주는데, 그는 용왕의 아들이었다. 그 덕택으로 '게'로 환생시켜주니, 그 이후로 육지와 바다를 오가며 오래비를 찾아다니고 있고, 오래비는 울며불며 누이를 찾아다니다 산신대왕의 도움으로 '새'로 환생하여 이산 저산 옮아 다니며 누이을 찾아 헤매고 있다. 동물들의 습성을 제재로 형제간의 우애를 드러내고 있다.
이 외에도 신화로 불려지는 삼공본풀이가 민간에 녹아들어 신성성이 사라진 채 민담화된 것이 있다. <은장아기와 작은 마퉁이>, <마퉁이>가 이것이다. 세 딸을 불러놓고 누구 복에 사느냐는 물음에 '내 복에 산다'고 대답한 셋째 딸을 쫓겨난다. 마퉁이를 만나 살림을 찾고 마구덩이에서 금덩이를 발견하여 부자가 된다. 맹인이 된 부모를 만나기 위해 걸인잔치를 여러 찾아온 부모의 눈을 뜨게 해 준다. 盲人得明 모티브를 제외한 이야기는 본토에서 ' 내 복에 산다형 설화'라는 유형으로 전국에 산재해 있다.
그 외로 지역적인 특성을 가진 이야기가 있다. 제주도는 濟州牧(모관)·旌義縣·大靜縣으로 三縣으로 행정구역이 되어 있었는데 이를 구분 짓는 데 달리기 경쟁으로 경계 지웠다는 설화다. 제주목과 정의현의 경계를 지우는데 두 지역의 중심부에서 양편으로 걸어가다가 서로 만나는 곳을 경계선으로 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모관 사람은 말을 타서 달리다가 정의사람을 만남직한 곳에서 걸어가고, 정의사람은 처음부터 정직하게 걸어가서 둘이 만나는 곳을 경계로 정했기에 제주목의 경계가 정의현보다 훨씬 넓어졌다는 것이다. 이 설화 속에는 제주목 사람들은 약삭빠른 반면 정의현 사람은 정직하다는 의식이 숨어있다. 이러한 관념은 <모관 사람과 정의사람>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모관 사람이 정의고을에 凉太 장사를 갔다. 한 아이가 아주버니가 오신다는 바람에 그를 집안에 모셔들이고 대접을 성대히 한다. 진짠지 가짠지 살피려고도 않았다. 모관 사람은 모른 척하고 사위처럼 행세한다. 다음 날 가짜인 줄 안 정의사람은 나가 달라며 모관 사람이 요구한 사모관대를 해준다. 새신랑인 척 꾸민 모관 사람들은 돌아오는 길에 잔칫집에 찾아가 신랑으로 대접을 받는다. 진짜 신랑이 나타나자 잔칫집에서는 많은 돈을 주며 나가 달라고 부탁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공짜로 부자가 되었다.
본토의 <개성사람과 수원사람>에서는 어느 쪽이 더 구두쇠인가를 드러내자 제주 설화에서는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사건으로, 제주목에 사는 사람들이 정의현 사람들보다 더 약삭빠르고 반면에 정의현 사람들은 순박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인식하게끔 나타나 있다.
이상의 논의에서 드러나듯이 제주의 민담은 본토의 것과 같은 유형의 것이 많으며 다만 소재가 제주적인 것으로 변이되어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또한 제주민들은 민담을 통하여 삶의 방식도 배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진성기, 「남국의 설화」, 박문출판사, 1964, pp.101-108
2. 진성기, 앞의 책, pp185-187
3.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제주설화집성(1)」, 탐라문화총서(2), 1985, pp.420-426
4.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앞의 책, pp.83-84
5. 성기열, 「한국민담의 세계」, 인하대학교 출판부, p 130.
6.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앞의 책, pp.149-153
7. 임동권, 「한국의 민담」, 서문당, 1981, pp.103-105.
8. 임동권, 앞의 책, pp.106-107
9. 진성기, 앞의 책, pp.190-193
10.진성기, 앞의 책, pp.210-212
11.임동권, 앞의 책, pp.252-256
12.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앞의 책, pp208-210
13.임동권, 16) 책, pp.45-49
14.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앞의 책, pp.448-450
15.진성기, 「남국의 전설」, 일지사, 1968, 개정판, pp.198-200
16.진성기, 「남국의 민담」, 형설출판사, 1976, pp. 44-45
17.진성기, 앞의 책, pp.45-49
18.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앞의 책, pp.214-220
19.진성기, 「남국의 설화」, 박문출판사, 1964, pp.41-45
20.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구비문하개계 9-1」, pp.183-185
21.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구비문학대계 9-2」, pp.252-257
22.임동권, 앞의 책, pp.55-56